소설리스트

레드 닷 (184)화 (184/240)

- 184화 -

우석진은 예의도 없이 사람 얼굴에 직접 빛을 쏘아대는 남자를 노려보며 야간투시경을 벗었다. 남자의 손전등 불빛이 주변을 충분히 비춰주고 있어,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우석진의 미간이 꿈틀했다.

남자는 분명 낯이 익었다.

‘어디에서 봤지?’

눈에 띄는 얼굴이라서 잘못 봤을 리가 없다.

남자의 냉담한 눈을 노려보던 우석진은 곧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타깃과 함께 있던 놈이군.’

부하들이 보내왔던 드론 속 영상에서 본 적이 있다. 남기혁을 도발하려고 작정한 타깃이 불쑥 입을 맞췄던 바로 그 상대.

남자는 버스팀과 떨어져 타깃과 단둘이 행동했었으니 이 자리에 그가 있는 것도 납득이 갔다.

다만 남기혁이 추측하길, 타깃의 성격상 지극히 위험한 일에는 되도록 동료들을 끌어들이지 않으려 할 것이라 말했다. 그에게 있어 좀비보다 더 위험할 자신과 소중한 동료들을 마주하게 두진 않을 거라고.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타깃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아무도 없던 깨끗한 건물에 좀비가 만연했다. 밖에서 얼핏 들었을 때, 3층쯤에서 수류탄과는 다른 폭발음이 들리기도 했다.

좀비와 폭발을 이용한 함정들.

이런 위험천만한 설계라면 타깃의 동료라 하더라도 조금 삐끗하자마자 바로 저승행일 것이다. 그러니 함정을 준비한 건 남기혁의 말마따나 타깃 혼자일 텐데, 대체 어떻게 한 건지 새삼 의아할 따름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혼자일 거라 생각했던 타깃에게 도움을 줄 아군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눈앞의 남자가 절대 예사 사람이 아니라는 것 또한 우석진의 경계심에 불을 붙였다.

‘이 녀석, 뭔가 있다.’

건물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가지 못한 폭발의 먼지, 그리고 좀비들 특유의 마른 피 냄새 속에서도 남자는 비정상적으로 여유로웠다.

마치… 좀비 따윈 전혀 신경 쓸 것도 없다는 것처럼.

우석진의 시선이 남자의 뒤편, 에스컬레이터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바닥을 느릿하게 기어 올라오고 있는 좀비들이 있었고, 주변에는 이미 몸을 일으킨 채 휘적거리며 배회하는 자들도 있었다. 심지어 남자의 발치에는 폭발의 여파로 머리만 남은 채 꿈틀거리는 좀비도 있다.

그들 모두가 바로 지척에 있는 남자의 존재를 모르는 듯했다.

아니,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째서?’

걷잡을 수 없는 의문이 우석진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설마… 면역자인가?’

좀비에게서 안전할 수 있다면 여기까지 무탈하게 올라온 것도 이해가 갔다. 손전등의 빛 때문에 주변 좀비들이 남자를 못 알아챌 리가 없음에도 그들이 이토록 얌전한 건 그것 외에 답이 없다.

우석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를 눈앞의 남자를 향해 살기를 드러내었다. 손에 든 군용 단검을 언제든 곧바로 휘두를 수 있게끔 꽉 틀어쥐고, 다시금 야간투시경을 썼다.

‘만약 정말 면역자라면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해.’

남기혁은 이 좀비 세상이 끝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한국 전역이 좀비로 뒤덮여버리고, 그 누구도 쉽사리 간섭할 수 없는 폐허와도 같은 지옥이 되길 바랐다.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장면이 있다.

좀비들이 모여있는 바이러스의 근원지를 파괴하고 더 퍼져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사일이나 폭탄을 투하하는 장면.

하지만 핵무기 보유국인 북한이 근접해 있는 이상, 그러한 방법이 통용될 리 없었다.

자칫 북한의 핵 개발 시설에 영향을 끼쳐버리면 그 여파가 절대 한국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각국의 핵심 격인 사람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한국 정부나 해외로 피난을 간 사람들이 조국을 불태우는 걸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느니 백신을 만들며 때를 기다렸다가, 한국을 망가뜨리지 않는 선에서 좀비들을 어떻게든 몰아낼 방법을 취하려 하겠지.

현실적으로 한 나라를 완전히 폭살(爆殺)하는 건 실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고 볼 수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인한시를 완벽히 봉쇄한 후에 이 지역에만 소각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남기혁이 먼저 움직여서 봉쇄선을 모조리 망가뜨려 놨고, 하루가 다르게 늘어난 좀비들은 이미 한국을 넘어 북한까지 넘보고 있었다.

겨우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정부의 인도에 따라, 공군 기지의 활주로를 빌린 임시 공항 인근에 설치된 피난소에 모여서 벌벌 떠는 중이다. 그 외에도 어렵사리 안전을 확보한 국제무역항과 군항 쪽에도 다수의 피난소가 몰려있다.

남기혁은 생존자들 대부분이 해외로 피난하게 될 것이며, 결국은 좀비들을 한국에 철저히 격리시키게 될 거라고 했다.

그 안에서 자신은 강준성과 단둘이서 살아가고 싶다고, 해맑은 얼굴로 꿈꾸듯 말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형님이 그걸 원하신다면…….’

남기혁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 이뤄주고 싶었다.

그걸 위해서라면 눈앞의 면역자만큼은 반드시 제 손으로 없애야 했다.

예고도 없이 남자에게 달려든 우석진은 야간투시경을 쓴 제 시야를 방해하는 손전등을 향해 발을 휘둘렀다. 반응 속도가 좋아서 손까지 쳐내는 데엔 실패했지만, 손전등의 머리 부분을 차서 떨어뜨리는 데엔 성공했다.

불 켜진 손전등이 조금 먼 바닥에 떨어지며 묵직한 소리를 내자, 주변에 있던 좀비들이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그쪽으로 달려들었다. 때맞춰 우석진이 남자에게 불쑥 뛰어들어 단검을 휘둘렀다.

손전등이 멀리 떨어진 탓에,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빛이 상당히 약했다. 이 정도라면 야간투시경을 쓴 자신 쪽이 훨씬 유리하다.

“성급하기는.”

남자가 차갑게 내뱉으며 몸을 뒤로 뺐다. 군용 단검의 칼끝이 남자를 미처 베지 못하고 지나가자마자 그의 반격이 날아들었다.

시원스러운 돌려차기가 우석진의 머리를 노렸다. 팔을 들어 막았는데도 일순 휘청일 정도로 묵직하다.

‘몸을 쓸 줄 아는 놈인가.’

겉보기에 상당히 좋은 골격과 근육을 가졌다 싶었는데, 그걸 십분 활용할 줄 아는 듯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놀랄 만했다.

“……!”

우석진은 자신의 목을 정확히 노리고 들어오는 작은 칼날에 흠칫했다. 남자의 예사롭지 않은 몸놀림에 한껏 긴장을 끌어올리고 있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목에 잭나이프가 꽂혀 대롱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우석진이 놀란 건 남자의 작은 칼 때문이 아니었다.

목, 그중에서도 경동맥을 정확히 노렸다.

더불어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제정신이 아닌 놈이로군.’

아무런 머뭇거림도 없이 냉정하게 급소를 노릴 수 있는 자는 자신과 남기혁을 포함해, 조직 내에서도 흔치 않았다. 자신들이야 어릴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으니 가능한 것뿐이지만, 일반인이 분명한 눈앞의 남자가 이런 움직임을 보인다는 건 확실히 당황스러울 만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상대가 누구든, 남기혁의 앞길에 방해가 된다면 가차 없이 죽일 뿐이다.

우석진은 남자에게 달려들어 무자비하게 단검을 휘둘렀다. 남자는 이런 어둠 속에서도 상당히 빠른 움직임을 보였지만, 어릴 때부터 단검을 쥐고 살아온 우석진을 막아내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남자의 몸 여기저기에 자상이 생기고 조금씩 피가 보일 즈음.

“흐음.”

눈을 가느다랗게 뜬 남자가 작은 콧소리를 흘렸다. 남자의 슬쩍 올라간 입꼬리가 왜인지 남기혁을 연상케 했다.

여전히 자신을 내려다보는 듯한 거만한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을 그렇게 내려다봐도 되는 남자는 이제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인데.

‘건방진 새끼.’

이번에야말로 남자의 목을 베어주리라 다짐하며 매섭게 단검을 휘두르던 그 순간.

남자가 갑자기 몸을 비틀어서는 바닥에 있는 무언가를 발로 차올렸다. 허공에 뜬 둥그런 무언가가 우석진을 향해 부드럽게 날아들었다.

야간투시경을 쓰고 있었기에 어둠에는 강하다고 해도, 맨눈이 아니어서 시야의 폭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그 탓에 남자가 뭘 차올렸는지 알아채는 게 상당히 늦어져 버렸다. 쉬지 않고 지속된 공방으로 인해 자신이 남자보다 우월한 실력자라는 걸 깨달아, 그만 방심해버린 탓도 있었다.

캬아악-!

“뭐……?!”

남자가 차올린 것은 다름 아닌 머리만 남은 좀비였다.

우석진을 향해 날아가던 좀비 머리가 그를 향해 입을 쩍 벌렸다. 끈적한 핏물이 치아를 타고 걸쭉하게 흘러내렸다.

“큭!”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석진이 얼른 단검을 휘둘러 머리를 쳐내었다. 쩍 벌어졌던 입 속의 피 묻은 치아가 애꿎은 야간투시경을 긁고 지나갔다.

직후, 찰나의 빈틈을 놓치지 않은 남자가 단숨에 우석진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내, 작은 잭나이프가 우석진의 목에 끝까지 뿌리박혔다.

꾸드득.

작은 칼이 피부와 근육을 찢으며 박혀 드는 감각이 끔찍할 정도로 생생했다.

“으윽-!”

목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을 삼킨 우석진이 남자가 꽂아 넣은 잭나이프를 그대로 꽉 쥔 채로 단검을 휘둘렀다. 남자는 설마 우석진이 이 상황에서도 매섭게 공격할 줄은 몰랐는지, 눈가를 못마땅하게 찌푸린 채 뒤로 몸을 뺐다.

“젠…장….”

비틀거리는 우석진의 목에는 남자가 꽂아 넣은 잭나이프가 직각을 만들고 있었다.

아마도 이걸 빼면 피가 분수처럼 치솟는 장면을 볼 수 있으리라.

그 끝에 있는 건 결국 ‘죽음’이다.

‘아직…, 아직이야….’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남기혁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 채…….

마지막으로 남기혁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이대로 죽을 수는…….

그때.

삐-삐-삐-삐-!

어디선가 시끄러운 알림음이 들렸다. 그와 함께 5층에 살아있던 좀비들이 괴성을 내질렀다.

우석진의 온 신경이 알림음이 들려온 곳으로 쏠렸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소리의 끝에 있는 게 남기혁이라는 걸.

우석진은 자신의 목에 칼을 박아넣은 남자에게 반격은커녕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소리에 홀린 좀비들과 똑같이 그쪽을 향해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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