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179)화 (179/240)

- 179화 -

홀로 거리를 질주하는 듯하던 차량은 생각보다 그리 빠르지 않았다. 텅 비어있는 도로이니만큼 어느 정도 속도를 내어 볼 법도 한데, 연인과 드라이브 중이기라도 한 것처럼 느긋했다.

하지만 그 뒤로 모습을 드러낸 무리의 모습은 절대 느긋하지 않았다.

키야악-!

칵- 하악!

그어아아-!

괴성 한둘쯤이었다면 거의 들리지 않았을 정도의 거리였다.

그럼에도 거리를 울리는 이 괴이한 고함들.

빠르게 다가오는 저 소음 속 목소리의 수가 도저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방증이었다.

차량 뒤쪽으로 줄지어 달려오는 좀비들을 본 남자들의 얼굴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파리해졌다.

저 좀비들이 왜 차 하나를 저토록 잡아먹을 듯 뒤쫓고 있는가보다도, 운전석에 타고 있는 남자가 더 의문이었다. 좀비들을 떨구어내기는커녕 일부러 그들을 꼬리처럼 달고 이동하기 위해 느긋이 액셀을 밟는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단순히 엔진에 이상이 있는 것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답을 내리기도 전에 차가 점점 가까워졌다.

휑한 도로를 달리는 것치고는 느린 게 맞으나, 전속력으로 달리는 좀비 무리에게 아슬아슬 잡히지 않을 정도로 속도감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차를 일렬로 주차해두고서 밖에 나와 정렬해 있던 남자들에게 있어, 저 검은 차와 좀비들이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질주는 가히 무서울 정도의 속도감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남자들이 당황하고 있던 그때.

차량의 머리가 슬쩍 방향을 바꾸었다.

멀쩡히 달리던 차선을 넘어 역주행한다. 남자들의 차가 줄지어 주차된, 바로 그 차선으로.

남자들의 차에 박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차선을 옮긴 검은 세단이 속도를 높였다.

“뭐야, 저 새끼는?!”

“빨리 쏴버려! 빨리!”

총을 든 남자들이 당황하며 검은 세단의 운전석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소음기에 막힌 탁탁, 하는 귀 아픈 소리가 연이어 터졌다.

하지만 총탄에 맥없이 깨지리라 예상했던 앞 유리는 의외로 튼튼했다. 다른 남자들도 총을 갈겨봤지만, 매섭게 날아간 총알은 앞 유리에 둥그런 충격 자국만 남긴 채 박혀버리거나 그나마도 빗맞아 튕겨 나가는 게 전부였다.

“씨부랄! 왜 안 깨져?!”

답답한 마음에 욕설부터 내뱉던 남자들은 뒤늦게 그 차의 앞 유리가 한 장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차량의 앞 유리에는 일반적인 차량에는 맞지 않는 널찍한 사각 유리가 밀착하여 붙어 있었다. 방탄유리로 보이는 저 사각 유리가 일정하지 않게 발사된 총알을 온몸으로 모두 막아냈기에 운전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는 듯했다.

하지만 남자들은 저 방탄유리를 어디서 가져다가 붙여놨는지보다도, 운전석에 앉은 남자에게 제일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

방탄유리를 확신하고 있더라도 사람이라면 본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총알에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총알이 날아오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패기로 버텨본다고 한들, 총알이 날아와 박히거나 튕겨 나가며 생기는 충격 흔적에는 도저히 평온할 수가 없다.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은 증거가 바로 눈앞에 떡하니 새겨져 버리는 거니까.

그러니 응당 약간의 주저함이나 바퀴의 비틀거림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저 남자는 앞 유리에 남은 총알 자국을 무슨 가을날의 낙엽이라도 날아와 붙은 것처럼 한 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해볼 테면 더 해보라는 것처럼 속도를 높였다.

남자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차량은 어느새 주차된 차들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버렸다. 자살할 생각인가 싶을 정도로 달려오던 검은 세단은 다행히 박치기를 하지 않고 우뚝 멈춰 섰다. 일렬로 주차된 차 중에서 가장 앞에 있던 차량의 헤드라이트와 한 뼘 정도의 여유만 둔 상태다.

“대체 뭐 하는 새끼야?!”

갑자기 튀어나온 검은 세단을 향해 다시금 욕설을 내뱉던 남자들은 한 박자 늦게 사태를 파악했다.

“야, 야야야야! 미친!”

“차, 차 안으로 들어가! 빨리!”

우왕좌왕하던 남자들은 얼른 자신들의 차를 향해 달렸다.

크아아-!

캭, 캬학-!

지척까지 다가온 좀비들의 괴성이 사방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검은 세단이 근처에서 속도를 높였다고는 해도 좀비들을 떨구어낼 정도로 먼 거리를 빠르게 달렸던 건 아니었다. 차량을 뒤쫓던 좀비들은 아직도 건재했고, 그들은 멈춰버린 검은 세단의 꼬리를 향해 무섭게 달려오고 있었다.

좀비 몇 마리 정도라면 모를까, 수십 마리를 넘어 백여 마리쯤은 되어 보이는 저 많은 수를 상대하기란 불가능했다.

총을 든 인원도 그렇고 탄환 또한 넉넉지 않으니, 이 상황에서는 일단 차 안으로 대피하는 게 정답처럼 보였다.

남기혁과 우석진 팀이 들어간 건물 안으로 대피하는 방법도 있었으나, 차마 선택할 수 없었다.

건물의 1층은 벽 표면이 온통 통유리라서 이런 대낮에는 중앙쯤을 제외한 상당 부분을 대충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남기혁을 뒤쫓던 1층의 좀비 무리 또한 그들 모두가 목격한 바이다.

게다가 이 건물은 남기혁이 비상용으로 갖고 있던 수류탄조차 모조리 써버려야 할 정도로 함정이 많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위로 올라갈수록 빛이 필요할 테고, 그런 악조건 속에서 좀비들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고작해야 남기혁과 우석진 정도가 다일 것이다.

남자들 전원은 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차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일단 안으로 대피한 후, 좀비들을 차로 밀어버리고 이곳을 잠시 벗어날 생각이었다. 저 많은 수의 좀비들이 완벽히 에워싸버리면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차에 모두 뛰어 들어가고 나서야 알았다. 곧바로 달리지도 못하게 앞차를 저 검은 세단이 완벽히 막아서고 있었다는걸.

“씨발! 뭐냐고, 대체!”

가장 앞차의 운전석에 앉았던 남자가 눈앞의 검은 세단을 노려보며 습관처럼 경적을 울려버릴 뻔했다. 성격 같아서는 이미 대여섯 번은 연타했겠지만, 다행히 조수석에 있던 남자가 급히 막아준 덕분에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빨리 뒤 차 후진하라고 해! 빨리!”

모두가 냉정한 상황이었다면 가장 뒤에 주차되어 있던 차가 알아서 센스 있게 후진해줬을 것이다. 냉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모두가 심리적으로 ‘직진’밖에 생각지 못한 게 문제였을 뿐.

앞차의 무전 담당이 허둥지둥 무전기를 꺼내 들었을 땐, 이미 검은 세단을 뒤쫓던 좀비들이 다른 차들을 발견한 뒤였다. 결국은 주차된 차 모두를 좀비들이 에워싼 상황이 되었다.

탁탁탁탁탁탁.

크어, 아-!

캬아-!

손바닥과 몸으로 차를 마구 때리는 소리와 유리 너머의 남자들을 향해 입을 쩍 벌린 좀비들의 괴성이 난무했다. 꼼짝없이 차에 갇혀버린 남자들이 각자 무기를 쥔 채 사색이 되어 벌벌 떨었다.

“씨, 씨발….”

“이게 무, 무슨 일이야…!”

두 손에 누군가를 능히 죽일 수 있는 무기를 쥐었다고 해도 지성 없는 괴물들의 아가리를 이길 순 없었다. 인간들의 무기 따위는 그들에게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았다.

그때.

주차되어 있던 차들의 앞길을 막았던 검은 세단의 운전석이 열렸다. 원망의 눈길로 그 차를 노려보고 있던 앞차의 남자들은 곧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운전석에서 내린 자는 말끔한 검은 옷을 입은 굉장한 미남자였다. 좀비에게 둘러싸였다는 극한의 공포 따윈 티끌만큼도 느낄 수 없는 것처럼 평온하고 여유로워 보였으며, 인간 같지 않은 무서운 냉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앞차의 무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버린 건 남자의 외견 때문만이 아니었다.

검은 옷의 남자가 앞차의 문을 열고 내리자, 당연히 그에게 달려들 줄 알았던 좀비들이 멈칫하는 게 보였다. 가까이 서 있던 몇몇 좀비들은 길을 비켜 주는 것처럼 뒤로 물러나기까지 했다.

“내가 지금… 헛걸 보고 있는 거 아니지?”

“말이 돼, 저게……?”

앞차의 무리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중얼거리는 동안, 검은 옷의 남자는 좀비들이 자신을 피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느긋하게 차 문을 열고 나왔다.

검은 세단을 둘러싸고 있던 좀비들은 검은 옷의 남자와 살이 닿는 것조차 피하는 것처럼 눈에 띄게 물러났다. 그러고선 방향을 바꿔, 무리가 타고 있는 앞차를 에워싼 좀비들에게 합류해 괴성을 질렀다. 자연스레 앞차에는 제일 많은 좀비가 달라붙어 버렸고, 그 탓에 가만히 있어도 차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검은 옷의 남자는 좀비들 사이에 멈춰 서서는 남기혁과 우석진 팀이 들어간 5층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이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어마어마한 여유로움이다.

건물을 올려다보던 검은 옷의 남자는 곧 무리의 가장 앞차를 향해 방향을 바꾸었다. 차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던 좀비들 일부가 남자를 인식했는지, 놀랍게도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슬쩍 비켜 주기까지 한다.

차에 갇힌 남자들이 보기에, 저 검은 옷의 남자는 좀비들에게 있어 마치 역병 덩어리처럼 보였다.

그런 남자가 앞차의 운전석 옆에 서서는 차창 너머의 남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갑기 그지없던 남자의 단정한 입매가 금세 매혹적인 곡선을 만들었다.

직후, 남자가 손에 쥐고 있던 송곳을 차창 구석에 가져다 대었다. 그대로 송곳의 손잡이 끝을 주먹으로 강하게 가격했다.

쩌적-!

쨍!

운전석의 차창이 맥없이 깨지자마자 주변의 좀비들이 붉은 눈을 무섭게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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