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화 -
숨이 멎을 것 같은 어마어마한 살기가 단검의 끝에 응축되어 내리꽂혔다.
남기혁은 준성을 죽일 생각이 추호도 없었지만, 손에 쥔 단검으로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팔을 잘라낼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일말의 주저함도 없어야 했기에, 다른 인간들의 목을 잘라버릴 때처럼 지독한 살기를 품었다.
노리는 곳은 왼쪽 어깨 끝, 팔이 뻗어 나오기 시작하는 곳.
어깨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4개의 근육과 힘줄의 조합을 끊고 관절 인대를 잘라낼 생각이었다. 칼끝으로 뼈를 갉아내듯이 빗겨 나가 단번에 힘주어 잘라내기만 하면, 두세 번의 궤적만으로도 팔을 뚝 떨어져 나가게 만들 수 있다.
‘미안.’
속으로는 미안해하면서도 입가에 떠 있는 미소는 지울 수가 없었다.
꿈속에서처럼 자신을 버리는 선택지 따윈 없다는 걸 깨닫게 해줘야 했다.
팔다리를 잘라내고 몸통만 남아버리면 더 이상 제게서 도망갈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벌레처럼 기어가는 것조차 제 도움이 필요해졌다는 걸 알게끔 교육해주는 것도 필수다.
‘그쯤 되면 넌… 살기 위해서라도 내게 웃어주겠지.’
이때껏 살기 위해 죽음을 택해왔던 너니까.
수도 없이 만나왔던 강준성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검날 끝에 깃든 살기는 단 한 순간도 흐려지지 않았다.
남기혁에게 깔려 있던 준성은 살기등등한 단검이 어딜 노리는지 단번에 파악하고서 황급히 몸을 틀었다.
“악-!”
다행히 남기혁이 노리던 어깨 부분은 피해냈지만, 대신 몸을 돌리면서 드러난 어깨 뒤쪽과 등에 깊은 자상을 입었다. 그 여파로 메고 있던 백팩의 왼쪽 어깨 줄이 끊어져 버렸다.
“움직이면 안 돼. 다쳐.”
남기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팔 자르는 것도 다치는 거야, 이 미친놈아!’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왼손으로 남기혁의 가슴팍을 밀어내듯 짚었다.
따다닥-!
“……?!”
남기혁의 가슴팍을 짚은 준성의 손안에서 전기가 튀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 전체가 찌릿해지는 통증에 움찔한 사이, 준성이 무방비해진 남기혁의 옆구리를 향해 오른손에 든 마체테를 휘둘렀다.
남기혁은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굴렸다. 누운 상태에서 휘두르는 바람에 다소 정교함이 떨어진 마체테의 칼날이 남기혁의 옆구리 대신 그의 왼팔을 스쳤다.
“크윽!”
남기혁의 입에서 좀처럼 들을 수 없는 고통 어린 신음이 흘렀다. 분진 폭발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크게 다친 팔이라, 마체테의 칼날이 더해준 통증은 생각보다 더 심했다.
옆으로 쓰러졌던 남기혁은 눈을 부릅뜨며 얼른 몸을 일으켰다. 그사이 준성 역시 몸을 일으켜, 그와의 거리를 벌렸다.
“손 괜찮아?! 안 다쳤어?!”
남기혁은 자신의 가슴팍에 전해지던 전기충격을 떠올리며 당황해하고 있었다.
강준성도 아파할까 봐.
다행히 준성의 왼손에는 검은 가죽 장갑이 끼워져 있었고, 손바닥에는 고무 깔창을 대충 얇게 잘라놓은 조각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방금 써먹은 손바닥 크기의 급조한 전기충격기 정도로는 별다른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준성은 남기혁의 반응이 실로 어이가 없었다.
팔을 잘라내려던 놈이 고작 손바닥에 전기충격이 갔을까 봐 걱정하다니.
준성은 한 번밖에 써먹지 못하는 전기충격기를 바닥에 버리며 남기혁을 주시했다. 다용도 물품을 파는 곳에서 구한 전기 파리채가 고작 3개였기에, 그걸 분해해서 만든 일회용 전기충격기의 여분은 이제 두 개뿐이었다.
한쪽 끈이 잘려 기우뚱한 백팩에서 여분으로 만들어둔 또 하나의 전기충격기를 꺼내어 쥐는 동안, 남기혁은 준성의 왼손에 끼워진 장갑을 보며 안도하고 있었다.
“위험한 짓 좀 하지 마. 꿈속하고 달리 지금은 고통도 다 느낄 거 아니야.”
“내 팔 자르려 한 건 그새 잊었어?”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도 안 되고 어이도 없어서 표독스럽게 맞받아쳤다.
“그건 어쩔 수 없잖아. 또 도망가면 곤란한걸.”
초조함이 깃들어 있던 남기혁의 얼굴이 사르르 풀어지더니, 해맑게 웃는다.
“그리고 내가 주는 고통쯤은 괜찮잖아.”
“안 괜찮아, 개새끼야.”
“하핫, 투정하는 것도 귀엽네.”
실없는 소리를 하며 몸을 바르게 일으킨 남기혁이 금방이라도 다시 달려들 것처럼 단검을 고쳐 쥐었다.
“잠깐만 참으면 돼. 깔끔히 잘라내고 나면 형이 바로 지혈도 하고 치료도 해줄게. 아깝긴 하지만, 아픈 게 싫으면 약도 그때보다 더 강한 거로 준비해줄 수도 있어.”
남기혁의 말을 듣는 동안, 준성은 전신이 멋대로 떨리는 걸 느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떠올리기 싫은데도 남기혁이 내뱉는 말을 한 자 한 자 들을 때마다 머릿속이 꽉 차버린다.
무한히 반복되던 지옥의 끔찍한 밑바닥 언저리에서 뒹굴던 그때의 기억으로, 가득.
“우리 준성이, 드디어 일어났네. 벌 받을 시간이야.”
“나는 네가 죽는 게 싫어. 근데…….”
“네가 죽기 싫어서 필사적이 되는 게 너무 좋아. …지금처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몸의 떨림이 심해져 갔다. 이제 남기혁이 만들어 줬던 지옥 따윈 충분히 극복한 줄 알았는데, 영혼 깊이 새겨진 트라우마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제 팔다리를 잘라내어 몸통과 머리만 남길 생각뿐인 남기혁에게, 준성이 경멸을 담아 비웃었다.
“웬일이야? 내게 고통이 없다는 걸 그토록 아쉬워하던 새끼가.”
저 남기혁이 제 고통을 배려해줄 생각을 하긴 했다는 게 신기했다.
남기혁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데에 집착했던 건, 고통다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부위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틀어버릴 것처럼 목을 조르는 육체의 통증은 아무리 해도 느낄 수 없었지만, 강한 압박에 의해 ‘호흡’이 통제당하는 괴로움은 꿈에서조차 피할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목을 조르기 직전에 남기혁이 아쉽다는 듯이 내뱉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고통을 못 느껴? 그럼 안 되는데……. 나 너 비명 지르는 거 듣고 싶단 말이야.”
남기혁은 타인의 고통을 참 좋아했다. 잔인한 고문을 즐기며 그들이 아프다고 내지르는 비명 속에서 즐거운 듯 웃던 남자다.
강준성으로서는 그때도 지금도, 남기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준성이 떠올린 기억을 남기혁 역시 떠올려버렸는지, 그는 눈을 내리깐 채 씁쓸히 웃었다. 꿈속에서 보던 ‘지어낸 표정’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얼굴로 보였기에, 준성은 내심 놀라고 말았다.
“억울했어.”
“뭐?”
준성의 피가 묻은 단검을 바라보며 남기혁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다들 고통 같은 건 모르는 것 같아서, 억울했다고.”
남기혁의 어깨가 떨리고 그의 잇새로 자조 섞인 키득거림이 흘러나왔다.
“왜 매번 나만 아플까? 다들 새로 시작하면 아팠던 것 따윈 아무도 기억 못 하는데, 왜 나만 그 고통을 다 기억해야만 할까?”
꿈속에서 느꼈던 생생한 고통.
찢기고, 뜯기고, 헤집어지고, 부러지고, 조각나고, 짓이겨지고.
꿈이니까 눈을 뜨면 다 잊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이상하게도 그 고통을 포함한 꿈속 내용 모두가 너무 생생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 버티면 돼? 내가 뭘 하면 되는데? 대체 언제 끝나?”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꿈속의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감정이 격해져 갔다. 눈에만 담겨있던 광기가 어느새 남기혁의 얼굴 전체를 일그러뜨렸다.
“왜 나였을까?”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기괴한 얼굴로, 남기혁이 잔혹하게 망가진 제 감정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보며, 준성은 눈을 부릅뜬 채 굳어버리고 말았다.
자신과 똑같았다.
끔찍한 지옥도를 수도 없이 꿔야만 하던 지난날 속에 파묻힌 분노와 원망이 남기혁에게도 똑같이 깃들어 있었다.
왜 자신이어야만 했는가.
이 꿈은 자신에게 대체 뭘 바라고 있는 건가.
끝이 있긴 한 건가.
의문밖에 남지 않는 지옥 속에서 처절하게 살아가던 강준성이, 바로 제 눈앞에도 또 한 명 있었다.
‘남기혁도… 나처럼…….’
반복되는 꿈속에서 발버둥 치던 ‘주인공’은 자신뿐만이 아니었던 거다.
“다음 차례의 ‘회귀자’로 왜 날 선택했던 걸까, ‘그 새끼’는.”
남기혁의 입에서 꿈이 아니라 누군가를 지칭하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준성은 남기혁의 말 속에 담긴 조각들이 하나둘 이어지는 걸 느꼈다.
남기혁은, 아니, 자신들은, 반복되는 꿈을 겪는 ‘꿈속의 회귀자’이다.
이는 계주를 달리는 것처럼 꿈의 주인공이 다음 차례의 누군가에게 ‘회귀’를 떠넘길 수 있고, ‘회귀자’가 된 새로운 사람은 이후로 지옥도의 주인공이 된다는 법칙이 있었던 거다. 그 법칙의 연결고리는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은 남기혁 역시 꿈의 주인공이었고 그를 회귀자로 만든 전대의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젠 그 새끼를 원망하진 않아.”
남기혁의 표정이 바뀌었다.
애정을 담은 해사한 미소가 준성을 향한다.
“덕분에 널 만날 수 있었으니까.”
제아무리 강준성이라도 이때만큼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남기혁과 함께하던 시간 동안, 자신이 가장 믿었던 얼굴이 바로 저 얼굴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