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171)화 (171/240)

- 171화 -

건물 안은 기분 나쁠 정도로 고요했다.

통유리를 통해 들어온 빛이 무색하게도, 안을 향해 걸어 들어갈수록 눈앞이 두세 단계씩 어둠에 갇히는 느낌이 들었다.

나쁘지 않았다.

자신의 시력을 그대로 따와 만들어둔 것 같아서 이상한 동질감까지 들었다.

남기혁은 급조한 안경으로 완벽히 커버할 수 없는 흔들리는 시야로 주변을 둘러보며 걸어 나갔다. 그의 눈은 주변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핏자국을 하나하나 훑어보고 있었다.

‘좀비들을 상당히 많이 끌고 들어왔군.’

이 건물은 이미 보고를 받은 바 있었다.

강준성을 휘두를 몇 안 되는 방법이자, ‘그 꿈’에서 미처 죽여주지 못했던 강채이를 손에 넣고자 부하들을 파견했던 건물이었다.

빈손으로 되돌아온 부하들이 했던 변명에 따르면, 이 건물이 좀비 사태 발발 당시 전체 휴무였던 게 문제라고 한다. 좀비 하나 없었던 건물이라서 그 안에 숨어든 자들이 좀비 대비용 함정을 준비해 놓을 수단이 많았다고.

그렇다 해도 실패는 실패였기에 전부 죽여버렸지만.

여하튼, 그런 깨끗한 건물이 지금은 피로 얼룩덜룩해져 있다. 꿈속에서 질리도록 좀비들을 상대해온바, 강준성 또한 자신처럼 좀비에 대한 두려움이 현저히 낮을 게 분명했다. 그들을 이용한 함정을 파놓는 것 따위, 그에겐 거리낄 것도 없었겠지.

‘귀엽기는.’

1 대 1의 싸움에서 강준성이 자신을 이길 수 있을 확률은 0에 수렴한다.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좀비라도 이용해서 함정을 파놨을 것이고.

그 말은 곧.

‘혼자 있구나.’

남기혁의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강준성의 곁에 아군이 있다면 그가 과연 좀비를 이용한 함정을 팔 수 있었을까? 좀비들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본인 또한 죽을지 모르는데, 아군까지 위험에 처하게 둘 강준성이 아니다.

사실은 드론에 찍힌 그 남자부터 붙잡아, 강준성이 보는 앞에서 그 목을 베어버릴 생각이었다.

강준성은 눈앞에서 사람이 잔인하게 고문당하는 것보다, 살려달라고 바둥거리는 자의 목을 베어 완전히 숨을 끊어놓는 걸 더 무서워했다. 살리고 싶어도 살릴 수 없는 완벽한 ‘죽음’을 실감하게 되기 때문일까.

그래서 그 남자 또한 한껏 가지고 놀다가 몸뚱이는 좀비들에게 던져주고 머리는 준성의 품에 폭 안겨줄 생각이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하지만 아쉬움을 훌쩍 뛰어넘는 말 못 할 황홀함이 찾아왔다.

오직 자신만을 위한 공간.

홀로 자신을 기다려주고 있는 강준성.

“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랫배가 저릿저릿했다.

마치 이곳저곳 난잡한 흉터로 둘러싸인 강준성 안에 침입한 느낌이다.

기분 좋은 흥분감에 취해 있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강준성이 좀비들을 이 안에 끌어들였다는 건 핏자국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멀쩡할 수 있었을까.

준성이 웬만한 좀비들쯤은 능수능란하게 제압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원래도 강단이 있었지만, 꿈을 통해 거듭 쌓여온 경험치가 좀비에 대한 두려움까지 잊게 해준 덕분에 이젠 막힘없이 시원시원하게 움직일 줄 알았다.

하지만 제아무리 강준성이라 해도 무적은 아니었다. 심지어 지금은 회귀조차 없는 ‘현실’이다. 그걸 남기혁만큼이나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강준성 본인일 테고.

그런 그가 좀비들을 끌어들였다. 까딱하면 본인이 그들에게 둘러싸여 죽게 될 수 있음에도.

‘무슨 수를 쓴 거지?’

강준성은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면서 도박할 사람이 아니다. 그의 철저한 계산과 준비성만 봐도 알만하다.

좀비에게서 안전할 수 있는 수단이 있는 건가.

‘설마…….’

좀비에게 공격받지 않을 수 있는 방어책을 찾아냈나. 혹은 백신이라든지.

그 가설에, 등골이 뻣뻣해졌다.

“안 되는데…….”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엄지손톱을 까득까득 깨물었다.

방어책이든 백신이든 뭐든, 그딴 게 남아 있으면 안 된다.

꿈속의 자신과는 다른 길을 가야 했다.

바통 터치된 ‘다음 회귀자’의 죽음밖에 꿈꿀 수 없는 ‘NPC(Non-Player Character) 남기혁’은 지금 생각해도 제 손으로 직접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 감히, 강준성을 죽게 만들었으니까.

회귀자‘였던’ 자에게 부여된 강제 간섭권은 딱 세 가지였다.

첫째로, NPC화된 회귀자에겐 다음 회귀자의 ‘죽음’을 엿볼 권한을 준다.

둘째로, 회귀자였던 자에겐 꿈 밖에서 NPC화된 본인의 ‘현실’을 엿볼 권한을 준다.

셋째로, 회귀자였던 자에겐 다음 회귀자의 ‘현실 속 꿈’을 엿볼 권한을 준다.

그마저도 ‘엿볼 권한’이라는 말대로 ‘3인칭 관찰자 시점’을 통해 바라보는 것뿐이다.

관찰자에 불과하니, 당연히 그 안에서 벌어지는 NPC 남기혁과 새로운 ‘꿈의 회귀자’ 강준성이 하는 일에 간섭이 허용될 리 없었다.

NPC 남기혁의 생각대로, 러시아 브로커에게 좀비 샘플을 건네고 백신을 만들게 해서 ‘꿈’이 원하는 해결책을 내놓겠다는 생각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하면 그 순간이 ‘현실’이 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의 남기혁은 그런 걸 원치 않았다.

강준성은 모르는 모양이지만, 그가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전 회차의 시간이 멈추진 않는다. 강준성이 다시금 꿈에 접속하듯이 눈을 감고 새 회차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이전의 꿈이 홀로 쭉 이어지고 있는 거다.

NPC 남기혁의 손아귀 안에 감금되어 있던 강준성이 좀비에게 물려 죽어버린 회차.

그때 다급히 달려온 꿈속의 남기혁은 강준성의 싸늘해진 주검을 보며 난생처음으로 오열했다. ‘회귀의 대가’를 치른 주제에, 강준성을 앞에 두면 그게 가능하다는 것도 신기했다.

꿈속의 남기혁은 스스로가 보기에도 신기할 정도로 구슬피 통곡했다. 강준성을 죽음으로 내몬 게 자신이라는 걸 자각하고 나니 그처럼 끔찍한 절망이 없더라.

회귀의 대가가 적용되는 건 ‘회귀자’로서 꿈속에 있을 때뿐이다.

현실의 남기혁이 관찰자로서 엿볼 때는 당연히 대가가 적용되지 않으나, 이미 대가에 질리도록 절여져 버려서 성격까지 몽땅 바뀌어 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인지 꿈속에서 통곡하던 NPC 남기혁과 완전히 동화된 채 함께 울었다. 관찰하는 내내 가슴이 쥐어뜯기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그 모든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현실의 남기혁도, 꿈속의 NPC 남기혁도, 그저 강준성이 꿈의 시작과 동시에 자신을 찾아와 준다는 것에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의 얼굴이 점차 두 남기혁과 ‘똑같은 대가’를 지게 된 것처럼 변하게 되었을 땐, 강준성의 칼에 목이 잘근잘근 잘려나가도 둘 다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다.

그것도 잠시.

강준성은 더 이상 남기혁을 찾아오지 않았다.

그때 느낀 허탈함이란 가히 끔찍한 것이었다.

매회 차, NPC 남기혁조차 제 머리를 싸매고 그의 이름만 읊어댈 정도로.

NPC 남기혁은 고작해야 강준성의 죽음밖에 보지 못하는 머저리였고, 그 탓에 그가 어떤 루트로 무슨 목적을 갖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엿보는 자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야, 스토리에 간섭 못 하는 일개 관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강준성이 자신을 버렸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한 줄의 문장이, 제 정신을 갉아먹었다. 야금야금 갉아먹다 못해 바닥까지 싹싹 긁어 파고들 지경이다.

그 결과를 만든 건 자신이다.

그리고 강준성은 자신을 버리고 꿈에서 깨기 위해, 더는 꿈을 꾸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도 해결책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렇다면 그 해결책, 자신이 모두 없애주리라.

그딴 게 없다면 더는 꿈에서 깨지 않을 수 있겠지.

너도, 나도, 지옥 같던 그 꿈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거다.

더없이 내몰린 나락 속에서 ‘죽음’이 주는 희망조차 남지 않게 되면, 그땐 너의 모든 걸 이해해주는 나를 버릴 수 없게 될 테니까.

한 번 시행착오를 겪어봤으니, 이번만큼은 절대 강준성을 손아귀에서 놓지 않으리라.

자신의 ‘현실’은 바로 그이기에.

“준성아.”

나직이 속삭이듯, 준성의 이름을 읊어보았다.

“이번에는, 죽게 하지 않을게.”

중얼거리며 칼을 빼 들었다.

이번만큼은 자살을 시도조차 못 하도록 육체부터 철저히 망가뜨린 뒤에, 해결책 없는 ‘꿈’속에서 영원히 품어주겠다.

낮게 웃음을 흘리던 남기혁이 1층 중앙에 다다랐을 때.

삐익-!

근처에서 갑자기 새는 듯한 기계음이 들렸다. 이어서 동요를 노래하는 싸구려 음률이 퍼진다.

미약한 어둠 속에서 기혁이 느긋하게 주변을 살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이 지나던 길의 옆쪽, 화분 위였다. 풍성한 화초를 헤집으니 붉은빛이 점멸하는 손바닥만 한 기계가 보였다. 하얀 비누처럼 생긴 주제에 제법 알림음이 우렁차다.

기혁이 찾아낸 것은 매장에서 보통 출입구 알림 벨로 쓰는 무선 기계로, 센서에 사람의 움직임이 포착되면 자동으로 소리를 내게끔 되어있었다. 알림음은 손님이 깜짝 놀라지 않을 정도로만 조절해둬야 맞지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손댔음을 알려주듯이 지금은 귀를 막고 싶어질 정도로 상당한 음량이었다.

사방이 어두운 데다가 화초가 센서의 붉은빛을 교묘하게 가리고 있었기에 눈치 빠른 남기혁조차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덕분에 고요하던 사방이 단숨에 아우성쳤다.

크아아-!

캬학!

갑작스레 울려 퍼진 우렁찬 소리에 화답하듯, 이때껏 몇몇 가게 안에 밀어 넣어졌던 좀비들이 일제히 괴성을 내질렀다. 사방에서 괴성이 터지고, 앞다투어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남기혁의 입술이 비릿한 곡선을 만들었다.

창문을 통해 들이쳐 온 빛무리를 온몸으로 막아내듯, 셀 수 없이 많은 좀비 떼가 남기혁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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