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
도한서를 알아본 건 장대욱 다음으로 곽두재였다. 반질거리는 머리통에 맺힌 긴장 어린 식은땀을 닦아내던 그는 당장이라도 버스에서 뛰어내릴 기세였다.
“도한서 씨! 괜찮은 겁니까?!”
“나가면 안 돼요! 물렸을 수도 있잖아요!”
대욱의 일행 중 한 남자가 버스 앞문으로 향하려던 두재를 와락 붙잡으며 말렸다. 두재의 덩치가 워낙 큰 편이기도 했고 힘도 셌기에 남자 한 명 정도로는 도저히 말릴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가 내뱉은 ‘물렸을 수도 있다’라는 말은 두재를 포함한 모두를 뻣뻣이 얼어붙게 만들었다.
버스에 있던 사람들 모두는 아군 혹은 지인이 좀비가 되어버린 걸 봐왔던 자들이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마주했던 좀비들을 곱씹으며 딱딱한 얼굴로 차창 너머의 도한서를 바라보았다.
터벅, 터벅.
밖을 살피기 위해 반쯤 열어두었던 창문을 타고 흙바닥을 밟는 균일한 발소리가 들렸다.
찰박, 찰박.
이윽고 질척한 피 웅덩이를 스스럼없이 밟으며 다가오는 발소리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오싹오싹한 불안감에 보다 못한 강채이가 나서서 반쯤 열린 창문을 닫으려 했다. 갑자기 달려와 그 틈으로 얼굴부터 들이밀고서 창문을 힘으로 활짝 열어버리면 어떻게든 버스 안에 침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창문을 여닫기 위한 손잡이를 붙잡고 급히 닫으려는 찰나, 그녀의 손목을 장대욱이 덥석 붙잡았다.
“잠깐만.”
채이를 말리면서도 한서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대욱이 눈을 가늘게 떴다.
건물 입구에서 나와 버스까지 걸어오는 동안, 도한서의 걸음걸이부터 시작해 그의 행동거지 모두가 정상적이었다. 피를 흠뻑 뒤집어쓴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체에는 평소에 입던 재킷도 없이 핏물 절은 검은 셔츠 한 장만 입고 있었는데, 물리거나 찢긴 흔적이 전혀 없어서 오히려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한서가 버스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그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던 장대욱이 열린 창문 너머로 질문했다.
“물렸어?”
“그래 보여?”
질문에 질문으로 답한 한서의 입매가 살짝 웃었다. 경계하는 꼴이 가소롭다고 말하는 것 같은 얄미운 입가를 보며, 대욱이 눈가를 찌푸렸다.
“그거야 홀딱 벗겨놓지 않는 이상은 모르지.”
“아쉽게도 내 알몸은 누구 외엔 아무도 보여줄 생각이 없어서.”
‘누구’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떠오른 강준성의 얼굴에, 대욱이 다급히 물었다.
“준성이는? 준성이는 어떻게 된 거야?”
분명 도한서는 강준성과 함께 있었는데, 지금은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가 보이질 않았다. 건물 안에 있는 건가, 아니면 설마…….
순식간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건 사색이 된 강채이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도한서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우려했던 것과 달랐다.
“강준성은 여기 없어. 일단은 무사하고.”
그 말에 대욱은 소리 내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채이는 순간적으로 힘이 빠진 듯이 창문 옆 좌석에 털썩 앉아버렸다.
하지만 ‘일단은’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두 사람이 왜 떨어져 있는 건지도.
버스 가까이 느긋하게 걸어오던 한서가 발을 멈추었다.
그가 멈춘 자리는 버스의 열린 창문을 기준으로 2m 정도 떨어진 위치였다. 버스에 탄 사람들을 공격하려면 열린 창문을 향해 최소 한두 발은 더 내뻗어야 했다. 아무리 도한서가 빨라도 아직까지 창문의 손잡이를 굳게 잡고 있는 채이의 손이 창문을 확 닫아버리는 게 한결 빠를 거리였다.
아직 자신을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을 눈으로 훑어본 한서가 자신이 걸어 나온 건물을 잭나이프 든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건물 지하로 가. 가보면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을 거야.”
가리키다 보니 문득 붉게 절은 잭나이프가 보여, 허공에 휘둘러 피를 털어냈다. 질척한 검붉은 핏방울이 허공에 후두둑 털어졌다.
“장치 옆에 혈액팩과 USB가 들어있는 가방을 놔뒀어. 군부에서 데리러 오면 그것부터 건네줘.”
“그게 뭔데?”
한서가 말한 혈액팩과 USB는 상당히 뜬금없었다. 두 가지의 관계성도 모르겠고.
한서는 순순히 대답해주려다가 멈칫했다. 그의 입꼬리가 묘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넌 알 거 없어.”
가늘게 뜬 눈으로 대욱을 바라보던 한서가 몸을 돌렸다. 피를 어느 정도 털어낸 잭나이프를 챙겨 든 한서가 기세 좋게 기지개를 켜며 다른 건물로 향했다.
“난 샤워하고 다시 돌아갈 거니까 알아서들 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돌아간다니?”
깜짝 놀란 대욱이 창문 밖으로 얼굴을 불쑥 내밀며 외쳤다. 태연한 걸음으로 대답 없이 멀어지는 도한서의 등을 보며, 버스팀 모두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특히나 장대욱은 소름이 돋은 팔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눈가를 떨었다.
‘차라리 좀비가 된 거였다면 덜 무서웠을 거야.’
사방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는 수많은 좀비.
그들 사이를 비틀거림 하나 없이 반듯하게 걷고 있는 피투성이의 도한서.
저토록 많은 좀비를 죽이고 진한 피를 잔뜩 뒤집어쓴 주제에 어느 한 곳 물리지 않고 멀쩡하다는 게 너무나 무서웠다.
장대욱에게 알려준 건물의 바로 옆 구조물에 들어선 도한서는 시체가 즐비하고 피로 가득한 내부를 거닐며 셔츠를 벗어버렸다. 피를 먹고 묵직해진 셔츠가 바닥에 철퍽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군인들이 쓰던 임시 샤워실에 들어선 한서는 옷을 전부 벗어 던지고서 깨끗한 물에 검붉은 피를 씻어내었다.
맑은 물이 하얀 얼굴에 묻은 피까지 말끔히 씻어냈을 즈음.
한서가 누군가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대가는 제대로 치러야 할 거야, 강준성.’
자신을 곁에서 떼어놓다 못해 이런 곳에 홀로 보내버리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제 주인님은 좀 혼나야 할 것 같다.
도한서가 홀로 군용 대피소에 향하기 전.
한 건물 앞에 멈춰 선 차 안에서 강준성이 진지한 얼굴로 그에게 부탁했다.
“나는 네가, 군용 대피소에 있는 모든 좀비를 죽여줬으면 해.”
준성의 명령은 일견 가혹해 보였으나, 엄밀히 말하면 도한서에게 있어 식은 죽 먹기에 가까웠다. 모든 좀비는 그에게 이빨도 드러내지 못한 채 기피하게 되니까.
그걸 너무도 잘 알기에 할 수 있는 부탁이었다.
“군용 대피소도 좀비 소굴이 되어있을 거야. 인한시 밖까지 좀비로 가득 차 있을 정도라면 그곳도 절대 무사하지 못해.”
꿈속과 달리 인한시 봉쇄는 성공하지 못했다.
봉쇄와 함께 갖춰질 민간인 보호 설비는 당연히 기대할 수 없으니 민간 피난소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아무 생존자도 없이 엉망이 되어있을 거라고 상정했고, 이는 군용 대피소 역시 마찬가지였다.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무장한 군인들이라고 해도 무자비하게 늘어나는 좀비들의 돌진을 능히 막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대항하던 그들 역시 하나둘 좀비가 되어갔을 테고, 그러다 아군 속에서 발생한 감염자가 내부를 휘젓고 다니면서 결국 초토화가 됐을 것이다.
준성은 꿈속에서 맞닥뜨린 군인 좀비들을 떠올렸다.
생전에 군인이었던 좀비는 가히 손에 꼽을 만큼 무서운 존재였다.
좀비들은 지성이 없고, 고통마저 없다. 그렇다 보니 근육이 파열되고 뼈가 부러지는 줄도 모르고 온 힘을 다해 달린다. 좀비가 된 나날이 길어질수록 몸 어딘가가 꺾이거나 부러지고 피부가 터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럼에도 좀비들은 바이러스가 시키는 대로 온몸이 부서지도록 달리고 또 달린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일반인.
본디 군인이었던 좀비들은 그간 혹독한 훈련으로 다져진 육체를 마음껏 휘두르며 공격해온다. 그래서 일반인 좀비에 비해 훨씬 빠르고 매서우며 아주 강했다. 단련된 근육 덕분에 몸 자체도 튼튼한 편이니, 지구력으로도 그들을 이기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면, 제아무리 육탄전에 강한 특임단 소속 서창민과 베테랑 경호원 곽두재가 있다 해도 군용 대피소의 군인들 대여섯이 달려들어 버리면 답이 없을 것이다. 다른 일행은 말할 것도 없다.
오직 단 한 사람.
도한서라면 무사할 수 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군인 좀비라고 한들, 좀비 바이러스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도한서를 공격하진 못한다.
그래서 강준성은 도한서에게 이런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준성은 내비게이션에 뜬 경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 이 경로대로 가면 중간에 길이 막혀서 돌아가는 걸 감안한다고 해도 버스팀보다 훨씬 더 일찍 도착하게 될 거야. 도착하면 네가…….”
“전부 다시 한번 죽여라, 이거지?”
준성은 대답 대신 도한서를 바라보았다. 한서 또한 차가운 얼굴로 그를 마주했다.
“싫어.”
“너밖에 못 하는 일이야.”
“그래도 싫어. 안 돼.”
“도한서.”
“싫다고.”
준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정신연령이 퇴화한 듯이 어린애처럼 거부하는 도한서에게 준성이 달래듯 말했다.
“좀비들을 일일이 찾아 죽여야 하니까 네가 많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그딴 건 수십 수백 마리도 거뜬히 죽여. 하지만 내가 왜 그딴 것들이나 처리하려고 너랑 떨어져 있어야 하냐고.”
불만족스러운 얼굴의 도한서가 강준성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이 개새끼는 지금 주인님과 산책할 시간도 모자라 뒤질 지경인데 말이야.”
진짜 개와 동화된 것처럼 ‘산책’을 운운하는 도한서를 보며, 준성이 짧게 헛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