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167)화 (167/240)

- 167화 -

서창민의 말이 되는 대로 대충 내뱉은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이쪽의 이상함을 느끼고 다가오던 다른 남자에게로 단박에 총구가 향했다.

“야, 무슨 일……!”

탁-! 탁탁-!

남자의 신경질 담긴 말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따가운 소리가 터졌다. 경쾌한 폭발음이 아니라, 뭔가에 날카롭게 부딪히며 반감된 찌릿한 소음이다.

“우악!”

태평하게 느릿느릿 걸어오던 상대가 일순 춤을 추듯 뜀박질했다. 그의 발 옆을 아슬아슬 때린 총탄이 무섭게 튀었다.

미처 손에 든 총의 안전장치를 풀 새도 없이 허둥지둥하던 남자에게 창민이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남자는 후다닥 총구를 겨누려 했으나, 창민이 수도로 손목을 내리쳐버리는 바람에 총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직후, 남자의 멱살을 붙잡은 창민이 그의 다리 뒤쪽을 공 차듯이 차서 뒤로 넘어뜨렸다.

퍽, 소리가 날 만큼 제대로 나자빠진 남자가 얼른 몸을 일으키려는데, 그의 얼굴 좌우를 총알 두 개가 쏜살같이 스쳐 지나가서 땅바닥을 때렸다.

조금만 잘못 움직였으면 양쪽 귀, 혹은 광대뼈까지 박살 났을지도 모른다. 땅바닥에서 피어오른 총탄의 열기는 남자를 겁먹게 하기 충분했다.

철컥, 일부러 소리 내어 장전한 창민의 총이 지척에서 남자의 이마를 겨눴다.

“움직이면 머리가 통째로 박살 날 거야.”

바닥에 널브러진 남자를 차갑게 내려다본 창민이 낮게 으름장을 놓았다. 그를 올려다보며 마른침을 삼킨 남자가 씩 웃으며 허세를 부렸다.

“같잖게 허세는. 사람 쏠 줄이나 아냐?”

남자의 도발에 창민의 총구가 방향을 틀었다.

탁-!

“아악-!”

둔탁한 소음과 남자의 비명이 터진 건 거의 동시였다.

남자의 오른쪽 어깨를 주저 없이 쏴버린 창민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총으로 그의 왼쪽 어깨를 겨누었다. 좀비의 것과는 사뭇 다른 선명한 피가 창민의 시야에 들어왔으나,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남자의 일그러진 얼굴만 노려보고 있었다.

“인질들 어딨어?”

“뭐, 뭐?”

창민이 몸을 숙여, 그의 왼쪽 어깨에 총구를 가까이 가져갔다. 그것만으로도 남자는 고통 어린 숨을 삼키며 몸을 떨었다.

“너희들이 잡아둔 사람들 말이야. 저쪽 창고에 있는 거지?”

여전히 남자에게 시선을 박은 채로 턱을 까딱해서 공장 뒤편을 가리키자, 그가 후다닥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 맞아! 맞으니까 쏘, 쏘지 말라고…….”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것으로 보아, 사람을 쏘는 데에 전혀 주저함이 없는 자였다. 남자로서는 왼쪽 어깨까지 박살 나지 않기 위해 고분고분하게 굴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남자의 대답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뭐라고 했든, 창고는 반드시 확인해야 했으니까.

다른 일행들이 남자를 포박하는 동안, 창민은 그가 떨어뜨린 총을 경오에게 건넸다.

“나 초, 총 무서운데.”

“군대 다녀와 봤으니까 쏠 줄 알 거 아녜요.”

“그, 나보다는 저쪽이 더…….”

경오가 일행 중에서 이지안 다음으로 어린 젊은 청년을 가리키자, 창민이 그의 손에 직접 총을 쥐여 주었다.

“성인 된 지 3개월 됐대요. 어릴 때 비비탄 총 쏴본 게 전부일 텐데, 예비군 훈련까지 다 받은 형이 들고 있는 게 낫잖아요.”

“으….”

맞는 말이라서 차마 반박할 수 없었기에, 경오는 원치 않게 총을 쥐고 말았다.

남자의 포박이 끝나고 그의 입에 대충 손수건을 대어 재갈 물린 걸 확인한 창민이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는 대욱의 일행인 두 명의 남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두 사람과 같이 공장 뒤쪽 창고에 다녀올게요. 나머지는 여기서 저놈들 감시하면서 좀비나 다른 사람들이 오진 않는지 경계해 주세요.”

“잠깐만, 나보고 여기 남아 있으라고?”

유슬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나섰다.

“내 동생을 구하는 일인데 내가 왜 남아 있어야 해?! 나도 같이 가!”

공장과 가까워질수록 조급함이 커져 가던 유슬이었지만 지금까지는 그래도 창민의 지시에 따라 얌전히 굴었다. 하지만 막상 인질들이 있으리라 추정되는 창고에 자신은 쏙 빼놓고 가겠다는 소리이니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창민은 유슬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내저었다.

“마음은 알겠지만, 되도록 가족끼리 무사히 만나게 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저, 저기. 유슬아, 진정해.”

목소리를 높이려던 유슬을 붙잡은 건 경오였다.

그 역시 따라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실 이대로 기다리는 게 베스트였다.

냉정할 땐 냉정해도 기본적으로 불같은 성격의 임유슬과 심약한 어리바리 황경오는 분명 창민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전투력이 낮은 것도 이유라고 볼 순 있겠으나, 본인들의 가족이 지척에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되면 앞뒤 가리지 않고 튀어 나갈 정도로 쉽게 흥분한다는 게 결정적인 문제였다.

‘그 냉정하던 준성이조차 동생 일이 되니까 혼자 뛰쳐나가려고 했었는걸.’

인한병원에서 준성이 동생 강채이를 찾으러 가기 위해 잠깐 제정신이 아니었던 걸 떠올려 본 경오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여기 올 때 창민이 지시에 무조건 따르기로 했잖아. 우린, 그, 조금만 믿고 기다려보자, 응?”

유슬의 미간이 날카롭게 일그러졌다. 그녀가 경오에게 말을 쏴붙이려던 찰나, 대욱의 일행 중 여자 쪽이 나서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유슬아, 이 언니가 네 동생 잘 구해서 데려다줄게.”

“뭐래, 동갑이면서.”

“11개월 하고도 25일 차이면 한 살 언니로 인정해줘야 하는 거 아냐?”

“아씨, 지금 그런 말 할 때가……! 읏!”

유슬의 어깨를 그대로 꽉 쥐어 잡은 여자가 진지한 눈으로 그녀를 마주하다가 싱긋 웃었다.

“갔다 올게. 망 좀 잘 봐줘.”

그제야 손을 뗀 여자가 창민에게 다가갔다. 젊은 청년 또한 그녀의 뒤를 따랐다.

유슬은 창민과 남녀, 세 명이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공장 외벽에 몸을 숨긴 채 나아가는 걸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녀의 손이 여자가 쥐었던 어깨에 얹어졌다.

“무식하게 힘만 세서는.”

유슬이 작게 중얼거렸다.

여자의 손아귀 힘은 자신과 비교도 되지 않았다. 듣자 하니 취미로 운동 좀 했다던데, 그렇다고 이렇게 악력 차이가 나나 싶었다. 좀비들을 상대할 때도 워낙 전투적이고 겁이 없어서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그녀만큼 창민에게 도움이 될 자신이 없다.

덕분에 열이 올랐던 머리가 조금 식을 수 있었다.

유슬은 돌연 매섭게 치뜬 눈으로 포박된 두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경오의 눈치를 살피느라 그저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허튼짓했다가는 내 화풀이 대상이 될 줄 알아.”

허공에 위협적으로 쇠 파이프를 휘둘러 보이며 표독스럽게 내뱉은 유슬이 눈을 부라렸다. 눈빛과 기세만 보면 누구도 감히 말을 걸지 못할 정도로 무섭기 짝이 없었다.

포박된 두 사람 중, 어깨에 총탄을 맞는 바람에 무기 하나 제대로 들기 힘들게 된 남자가 창민 일행이 향한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긴 직사각형 형태의 공장 앞쪽을 지나 옆으로 돌아 들어간 그들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았지만, 남자는 왜인지 씩 웃고 있었다.

폐공장 뒤편, 창고 앞.

그 안에는 모두의 예상대로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열 명의 사람들은 각기 다른 연령대였는데, 공장에서 쓰는 투박한 밧줄에 꽁꽁 묶인 채로 입에는 청테이프가 붙어 있다.

“흡, 으흑….”

좀비 사태 발생 2일째에 인한병원의 구조 헬기를 타고 인한시를 벗어났던 김태주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인한병원에서도 장기밀매범들에게 산 채로 장기를 뜯겨 죽을 뻔했는데, 이젠 이런 어두컴컴하고 더러운 곳에서 굶어 죽을 판이다. 간간이 좀비의 괴성이 들리기도 했으니, 어쩌면 반항 한 번 못 해보고 물어뜯겨서 좀비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신빙성 있는 사망 가설은, 바로 저 문 앞에 있는 장치이다.

문의 안쪽 손잡이 부분과 연결된 낚싯줄이 창고 안쪽을 빙 두르고 있다. 그 낚싯줄에 일정 간격을 두고 하나하나 매여져 있는 물건들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또 줄줄 흘러나왔다.

‘흑…, 엄마….’

햇볕 외엔 이렇다 할 빛도 없는 이 어두운 창고와 퍽 잘 어울리는 투박한 수류탄들.

남기혁이 싱글벙글 웃으며 설치한 저 물건들은 귀신보다 더 무서웠다.

밖에서 문을 열기만 해도 문의 움직임에 따라 수류탄의 안전핀이 후두둑 떨어져 나가게끔 세팅되어 있다. 밖을 지키고 있는 괴한들이 문을 열어서 터뜨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신들을 구하러 누군가가 왔을 때도 문제다. 이런 함정이 있는 줄도 모르고 문을 열었다가는 다 같이 폭사하게 된다.

이를 알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 또한 창백한 얼굴로 숨죽여 울고 있었다.

‘흑, 죽기 싫어어….’

태주가 거듭 눈물을 흘리던 그때.

탁-!

“으악!”

밖에서 들린 소리에 모두의 귀가 쫑긋해졌다.

“뭐, 뭐야, 너희?! 억!”

둔탁한 소리와 이상하게 탁탁 터지는 소음이 들렸다. 밖에서 자신들을 감시하던 사람들의 비명도 이어졌고, 뒤이어 금세 고요해졌다.

‘서, 설마 구조가 왔나?!’

눈을 번쩍 뜬 태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발목까지 묶인 상태라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털썩 주저앉았다.

구조가 온 줄 알고 기대에 찬 눈으로 문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곧 사색이 되었다.

모두의 눈이 주변에 설치된 수류탄을 향했다.

때마침 달칵-하는 문의 잠금쇠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읍, 읍읍-!”

입이 막혀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없던 사람들이 저마다 뭐라도 외치려 들었다.

제발 문 열지 마.

이대로 열면 다 죽는 거라고 외치려 했지만, 청테이프에 막힌 그들의 음성은 미처 밖까지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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