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166)화 (166/240)

- 166화 -

한편, 터널을 빠져나온 인질 구출팀 6인은 숨죽여 나아간 끝에, 척 보기에도 상당히 오래 방치되어 있던 것으로 보이는 폐공장을 찾을 수 있었다. 부지는 상당히 넓었는데, 공장 뒤편으로는 언덕이 있어서 그런지 그곳에서부터 퍼져 나온 잡초가 주변에 꽤 무성했다.

가장 앞에 서서 동태를 살피고 있던 건 서창민이었다.

그는 공장 입구의 옆쪽 벽에 몸을 숨긴 채, 뒤에 가까이 따라붙은 동료들을 대신하여 안쪽을 유심히 둘러보았다.

“어때요, 형?”

창민의 바로 뒤에 서 있는 건 대욱의 일행 중 한 명인 의욕적인 남자였다. 군대나 갔다 왔을까 싶을 정도로 앳된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는데, 그의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듯한 의기양양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돌아다니는 건 두 명뿐이네. 하지만 저게 전부일 것 같진 않아.”

“아, 내가 확인해볼게.”

여섯 명 중 다섯 번째 자리에 웅크려있던 경오가 손에 든 드론 조종기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창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경오가 긴장한 얼굴로 드론을 띄웠다.

이전에 개조해둔 덕분에 특유의 시끄러운 소리가 거의 나지 않게 된 드론이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높이 띄웠다. 좀비들과 달리 사람은 멀리까지 볼 수 있으니, 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혹여나 드론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하늘을 올려다보게 될 수도 있었다.

높이 띄운 드론은 공장을 조금 빙 둘러 넘어갔고, 이내 창민이 말한 두 명의 남자가 어떤 식으로 배회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넓은 부지에 비해 두 명만 배회하며 경계하고 있는 거라, 둘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뭔가 들고 있는데…….”

조종기 화면에 잡힌 자그마한 사람들을 유심히 보던 경오가 돌연 숨을 삼켰다.

“아마도 총을 들고 있겠죠.”

창민의 담담한 말에 이지안까지 깜짝 놀랐다.

“초, 총이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낼뻔하다가 얼른 목소리를 줄인 지안이 주변을 불안하게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총을 들고 있다고요? 우린 기껏해야 이런 몽둥이가 전부인데…….”

묵직한 쇠 파이프 대신 모텔 청소용 물걸레에서 막대기만 뚝 떼어왔던 지안이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날붙이를 들고 싸울 자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몽둥이로 힘껏 패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상대가 총을 들고 있다면 애당초 맞서는 게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몽둥이를 들자마자 몸에 바람구멍이 생기고 말 테니까.

“괜찮아. 총이 있다고 무조건 다 이기는 것도 아니고, 제압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야.”

총과는 꽤 밀접한 사이인 특임단 소속 서창민은 새삼 놀란 기색도 없었다. 혈액원에서 머리 뒤쪽이 터져 죽은 좀비들과 그곳 CCTV에 잡혔던 총 든 사람들을 보고 이미 이 정도는 예상한 바였다.

고문할 때라면 모를까, 인질들을 감시할 땐 확실히 칼보다는 대응할 엄두도 나지 않는 총을 들고 있는 게 효과적이다. 그러니 이 폐공장에 남아 있는 보초들은 전원이 총을 들고 있을 거라 예상하는 게 맞았다.

창민이 총을 든 적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동안, 드론은 부지의 좀 더 안쪽을 향해 나아갔다.

그제야 커다란 폐공장 뒤쪽에 건물이 하나 더 있는 걸 발견했다. 규모는 공장 자체 면적의 5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사이즈였다. 그래도 잡다한 물건을 쌓아두기엔 충분해 보인다.

그 창고 앞을, 두 명의 남자가 보초를 서고 있다. 폐공장 건물 밖을 배회하며 경계하는 다른 두 명과 달리, 두 남자는 창고 입구의 좌우에 서서는 움직일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여, 여긴가 봐!”

누가 보더라도 수상쩍은 상황.

경오는 물론이거니와 일행 모두가 창고를 주목했다. 이처럼 보초를 서고 있다는 것부터가 그 안에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얘기다. 그게 안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거든, 외부로부터 창고 안에 있는 것들을 빼앗기지 않도록 보호하는 거든 말이다.

상황을 말없이 지켜보던 창민은 드론이 정찰을 끝내고 무사히 돌아온 걸 확인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저쪽 수는 총 네 명이에요. 인질들이 폐공장 안에 있을 수도 있지만 경계하는 방식으로 봐선 창고 쪽이 확실해 보여요.”

“저쪽은 전부 총을 갖고 있는 거 아냐? 무턱대고 들어갔다간 위험할 것 같은데.”

유슬이 심각한 얼굴로 말하자, 창민이 경오가 메고 있던 백팩으로 손을 뻗었다.

“무턱대고 들어가진 않아요.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인질을 구해내는 게 우리 목표니까요.”

경오의 백팩에서 그가 쓰던 케이블타이 뭉치를 꺼내 든 창민이 유슬을 바라보았다.

“혹시 휴대폰 좀 빌려도 돼요?”

“응? 휴대폰은 왜?”

유슬은 반문하면서도 휴대폰을 꺼내어 건네주었다.

창민은 대답 대신 그녀를 향해 한 번 웃어주며 일행을 둘러보았다.

“간단한 계획이니까, 모두 제 말에 따라주세요. 우린 딱 한 명만 조지면 됩니다.”

좀비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창민이 어떤 일을 해왔는지 모두 알고 있었기에, 일행은 일단 저마다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남기혁이 아지트로 사용하던 폐공장 부지에서 쩍쩍 하품하며 경비를 서던 남자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응?”

햇빛을 등지며 날아오는 새 같은 게 보였다.

아니, 자세히 보니 새가 아니라 프로펠러 달린 하얀 드론이다.

“뭐야? 어느 팀 거야?”

종종 드론을 날리는 걸 봤던 터라, 머리 위로 날아오는 저것 역시 아군이 보낸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삐-삐-삐-삐-!

“뭐, 뭐뭐뭐야?!”

드론이 가까이 다가오면 올수록 웬 경고음이 들렸다. 반사적으로 허겁지겁 주변을 살폈다. 눈에 보이는 좀비는 없었지만, 저 소리가 계속되면 조만간 어디서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당황한 남자가 자신의 머리 위를 빙빙 돌고 있는 드론을 노려보았다. 배 부분에 붙어 있는 휴대폰의 경고음도 짜증 나지만, 손이 닿을락 말락 한 거리에서 파리처럼 날아다니는 게 정말이지 얄밉다.

“씹, 어떤 개새끼가 이딴 장난질이야?!”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손에 든 총을 허리춤의 총집에 찔러넣고는 예비용으로 갖고 있던 쇠 파이프를 들어 휘둘렀다. 얼른 고도를 높인 드론의 배를 쇠 파이프가 아깝게 스쳐 지나갔다.

열이 오른 남자가 드론을 향해 쇠 파이프를 휘두르며 그 뒤를 쫓았다. 그 탓에 부지를 경계하던 다른 남자가 보이지 않는 위치에 홀로 이동해버리고 말았다.

그때, 부지 구석의 자재 사이에서 창민 일행 쪽 청년이 불쑥 튀어나왔다.

“으엇?!”

바닥을 박차고 미사일처럼 튀어 나간 청년이 어깨부터 돌진해서 단번에 남자를 쓰러뜨렸다. 나뒹굴며 쇠 파이프를 놓쳐버린 남자가 얼른 총을 빼 들었지만, 청년의 바로 뒤에서 튀어나온 창민이 그의 총구를 홱 돌려버렸다.

탁-!

소음기에 막힌 귀 따가운 소음이 들렸다. 자고로 총은 소음기가 달려 있다고 해서 모든 소리를 차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총에서 총알이 발사될 때 나는 소리에 비하면 작다 싶을 뿐이지, 일반적으로는 귀가 아릿할 정도의 탁-하는 소음이 발생한다.

남자의 총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소음으로 인한 좀비의 주목도를 신경 쓸 수 있을 만큼 태평한 상태가 아니었다.

“이익-!”

총을 붙잡힌 남자가 창민을 밀쳐내며 총구를 그에게 겨누었다. 하지만 들리는 건 틱, 하는 소음 같지도 않은 작은 소리였다.

경악한 남자의 눈에, 자신이 들고 있던 총의 탄창만 쏙 빼서 흔들어 보이는 서창민이 보였다.

“너……! 으헉!”

놀란 남자가 군용 단검을 꺼내어 창민에게 달려들었으나, 1 대 1로는 그를 이길 수 없었다. 남자가 내지른 칼을 피하며 그의 손목을 붙잡아 비튼 창민이 그대로 엎어치기 하여 남자의 등을 부술 듯 내던졌다.

“악-!”

남자가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아픈 등을 뒤틀었다. 어느새 그의 손에 있던 단검마저 창민의 손에 쥐어져 있다.

창민은 남자를 거꾸로 내려다보며 단검을 능숙하게 휘둘러 보였다. 그러더니 남자의 목 바로 옆의 바닥을 단검으로 푹 내리찍었다.

“힉!”

남자의 목 옆에 단검을 찍은 채 그의 얼굴을 거꾸로 내려다보던 창민이 씩 웃었다.

“가만히 안 있으면 이거, 그대로 그어버립니다?”

남자는 목이 베일까 봐 고개도 끄덕이지 못하고 덜덜 떨며 알았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도 싸움을 아예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창민의 빠른 움직임과 대응력에 순간 전의를 상실해버렸다. 물론 갖고 있던 무기 전부를 잃어버린 것도 크게 작용했다.

바닥에 등을 댄 채 뻣뻣이 굳어버린 남자에게 유슬이 다가갔다. 인질 구출에 적극적이던 여자 역시 그녀를 도와서 남자의 두 손목을 케이블타이로 묶어버렸다.

그러는 사이, 창민은 남자에게서 빼앗은 총을 다시 조립해서 상태를 확인했다. 다른 남자가 찾아오진 않나 싶어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지안이 그에게 남몰래 속삭였다.

“오빠, 방금 좀 멋있었던 듯?”

“누구 씨 따라 한 것뿐인데.”

피식 웃어준 창민이 재장전한 총을 내려다보았다.

“아…, 총 들면 성격 좀 바뀌는데 큰일 났네.”

곤란한 듯 말하고 있었지만, 창민의 입매는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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