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남기혁의 ‘벌’은 준성이 예상했던 범주를 벗어난 것이었다.
기껏해야 다른 동료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잔인하게 토막 내어 놀다가 죽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고통도 못 느끼니까 너무 끔찍하고 지독해도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최종적으로는 죽기만 하면 이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남기혁은 준성의 꿈이 가진 법칙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때껏 그가 꿔온 꿈 중에는 강준성이 회차를 재시작하고자 스스럼없이 자살하는 것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었기에.
무엇보다 남기혁 본인이 준성의 죽음을 원하지 않았다.
대신, 강준성이 아닌 다른 자들을 죽였다.
준성의 눈앞에서.
“으악-!”
그를 죽였던 인간들을.
“사, 살려줘!”
혹은 그의 마지막에 함께 있던 동료들을.
“너희들 뭐, 뭐야! 왜 이러는 거야?!”
혹은 그가 믿던 자들을.
“준성아! 네가 왜 여기……! 아아악-!”
사람의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찢고, 가르고, 이곳저곳을 파낸 것으로도 모자라.
“자, 선물이야.”
반드시 그들의 목을 잘라 준성의 눈앞에 가져다주었다.
준성은 자신의 눈앞에 이전 회차의 연장선처럼 다시금 나타난 장대욱의 머리를 보며, 거친 숨을 헐떡였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사람의 머리가 올라가 있던 탓에 핏물이 가실 일 없는 은쟁반에 준성의 창백한 얼굴이 비쳤다.
기혁은 준성의 반응 하나하나를 유심히 눈여겨보았다.
눈가가 어떻게 떨리는지, 눈빛은 얼마나 탁해졌는지, 창백함의 정도는 어떠한지, 숨소리의 변화 폭은 얼마나 되는지.
남기혁의 눈이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는 느낌이었다.
“역시 준성이는 이렇게 모가지 잘라놓은 걸 좋아하네.”
상큼하게 웃어 보인 남기혁이 옆에 서 있던 우석진에게 장대욱의 머리가 든 쟁반을 건네주었다. 말 잘 듣는 인형처럼 쟁반을 든 석진이 그대로 대욱의 머리를 가져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몸 조각 사이에 던져놓았다.
분산된 몸 조각을 가운데로 몰아넣은 다른 남자들이 바닥의 투명한 비닐을 잡고 한 뭉텅이로 모았다. 그들은 새빨간 피로 흥건한 투명한 비닐 끝을 자루처럼 만들어서 대충 묶고는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장대욱이었던 고깃덩이가 쓰레기처럼 질질 끌려 나가는 것을 보며, 준성은 기어코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남기혁은 그 눈물이 떨어지는 게 아깝기라도 한 듯, 입술을 대고 혀끝으로 물기를 핥아먹으며 준성을 천천히 눕혀주었다.
“왜……?”
힘없이 누운 준성의 입에서 처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이래……?”
피와 비명으로 가득한 참상이 사흘 내내 이어졌다. 남기혁이 자리를 비울 때면 강제로 수면제를 먹은 채 잠들어 있어야 했고, 새로운 사람이 끌려오면 다시 그 잔인한 광경을 보기 위해 이상한 각성제를 맞고 눈을 떠야만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질겁할 장면을 두 눈에 똑바로 새기고 나면, 지금처럼 만족스러운 얼굴의 남기혁이 자신을 바르게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탔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폐공장의 환한 전등 빛을 등진 채로 남기혁이 씩 웃는다.
“네가 좋아서.”
“…뭐?”
준성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이유였지만, 남기혁에게는 두말할 것 없는 진심이었다.
“너무 좋아서, 네 비밀을 다른 놈들하고 공유하고 싶지가 않거든.”
아이처럼 해맑게 웃은 남기혁의 두 손이 준성의 목을 감쌌다. 이제부터 시작될 고통을 알기에, 학습된 반응처럼 전신이 급속도로 떨리기 시작했다.
“네 비밀을 아는 새끼들, 알았던 새끼들. 전부 다 죽여버릴 거야.”
목을 감싼 살결이 짓눌렸다. 강한 압박에 숨통이 점차 조여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거칠던 숨이 한층 가빠지고, 맑은 목소리 대신 바람 섞인 신음만 흘러나왔다.
고통은 없었다.
그저 감각만 있을 뿐.
누군가의 손에 호흡을 조절 당하는 감각은 최악이었다. 원하는 대로 숨을 편히 들이마시고 내쉴 수 없다는 괴로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실신 직전까지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브레스 컨트롤(Breath Control)은 준성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고통이었다.
힘없이 깔려있던 준성의 몸이 바르작거렸다. 본능적인 생존 본능에 따라 조금이라도 더 호흡하고자 컥컥 소리를 내며 숨을 삼키고,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남기혁의 팔을 수갑 찬 손으로 어떻게든 떼어내려 애를 쓴다.
“하아…, 준성아….”
풀린 눈으로 한껏 달아오른 얼굴의 남기혁이 속삭였다.
“나는 네가 죽는 게 싫어. 근데…….”
기혁의 얼굴이 진한 황홀경에 젖어 들어갔다.
“네가 죽기 싫어서 필사적이 되는 게 너무 좋아. …지금처럼.”
남기혁의 손에는 사흘 내내 깊이 새겨져 버린 수많은 긁힌 자국이 있었다. 그의 손등에 지금 막, 또 하나의 붉은 자국이 길게 새겨졌다.
준성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생리적인 눈물을 몇 번이나 할짝거린 기혁이 거친 숨소리를 내며 속삭였다.
“형이 알아서 다 해줄게…. 해결책만 찾으면 네 꿈도 끝나게 될 테니까, 형이 찾아줄게….”
키득거리는 기혁의 웃음소리가 괴로워하는 준성의 귀를 간질였다.
“끝내고 나면 평생 형이랑 같이 사는 거야. 알았지?”
“으…흑….”
“알았으면 대답해야지.”
“컥…!”
목을 조르던 기혁의 두 엄지에 강한 힘이 가해졌다. 안 그래도 호흡하기 힘들었는데, 엄지가 숨통을 제대로 눌러버리니 그만큼 괴로운 게 없다.
반쯤 눈이 뒤집힌 채, 살고자 하는 본능으로 뒤덮인 머릿속이 빨리 대답하라며 미친 듯 명령한다.
“아, 알았……, 커흑…!”
“좋아.”
만족스럽게 웃은 기혁이 준성의 볼에 가볍게 입맞춤했다.
“그럼 살려달라고 해봐.”
“읏, 윽…!”
“알려줬잖아. 앞으로 쭉 살고 싶으면 형한테 매달려야 한다고.”
살고 싶냐고?
아니, 죽고 싶었다.
죽기만 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난 몇 번의 고문 끝에 깨달아버렸다.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으면 실신도 못 하고 죽지도 못한 채, 이 고문을 몇 시간이나 계속 받아야 한다는 걸.
무엇보다도 남기혁에게 길들어버린 머릿속이 통제되질 않았다. 평소엔 잘만 굴러가던 두뇌도 지금만큼은 하등 쓸모가 없어졌다.
“살…려……, 헉, 으흑! 사, 살려…줘…!”
“진정성이 없는데? 정말 살고 싶어?”
장난스럽게 키득거리는 기혁의 팔을 더는 긁지 않고 꽉 붙잡았다. 매달리는 것처럼.
“혀엉…, 흑, 무서워…. 큽…! 제발… 살려……, 헉…!”
겨우겨우 말을 내뱉으니, 남기혁의 광기 서린 눈빛이 점차 따뜻한 빛을 띠었다. 세상에 둘도 없을 미친 놈처럼 보이던 얼굴이 더없이 상냥해진다.
“응. 그래, 준성아. 형이 살려줄게.”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전율하며 중얼거리던 기혁이 그제야 천천히 손을 떼었다. 몇 번에 걸쳐 새겨진 피멍 위로 새로운 붉은 손자국이 남았다.
숨이 돌아오기 시작하자마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생각보다 오래 조절 당한 호흡이 머릿속을 일시적인 백치로 만들고 전신의 힘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콜록거리며 기침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힘들었다.
남기혁은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 ‘살려낸’ 준성을 품에 끌어안은 채 함께 누워버렸다.
목이 졸리는 동안 미처 삼키지 못하고 입가로 흘릴 수밖에 없었던 타액을 기혁이 세심히 핥아 먹어 주었다. 그러다가 못 참고 입술을 맞대기도 했다. 거의 정신을 놓은 채로 벌벌 떨고 있던 준성은 기혁이 뭘 하는지도 인식하지 못했지만.
고문을 받고 난 이후의 기혁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정하고 따뜻했다. 자신을 위해 대신 좀비들에게 물려 죽어줄 때처럼 헌신적이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무엇이 한 사람을 이토록 비정상적으로 만들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 * *
폐공장에 감금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준성의 목에 남은 겹겹이 쌓인 멍 자국은 나날이 진해져만 갔다. 기혁은 준성의 숨통을 조일 때마다 전신을 뒤덮는 극도의 쾌락에 푹 빠진 채, 그를 ‘자신의 손안에서 살려냈다’라는 사실에 도취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어지는 타인의 참상을 두 눈에 담고 뒤이어 목이 졸렸다. 절대 죽이지는 않을 걸 알기에 마음에도 없는 살려달라는 말을 하고 목숨을 구걸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말하면 그나마 편해졌다.
누적된 고문의 후유증으로 인해 새는 듯한 숨소리밖에 낼 수 없게 된 준성은 그날도 기혁의 품에서 억지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하도 수시로 수면제를 먹어서 잠이 올 리 없었지만, 그래도 기혁과 함께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이상한 짓을 당하진 않았다.
“형님, 최초 감염자를 찾았습니다.”
어렴풋이 석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혁과 계속 같이 있던 남자이자, 그가 뭘 하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지켜보던 사람이라서 특히나 잘 기억하고 있다.
“목소리 낮춰. 애 깨겠어.”
누운 채로 준성을 품에 더욱 꽉 끌어안은 기혁이 석진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죄송합니다, 하고 작은 소리로 사죄하는 석진에게 기혁이 물었다.
“진원지는?”
“동진아파트입니다. 50대 여자가 최초 감염자이긴 합니다만, 조사 결과 그 아파트에 살던 주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그 여자가 감염된 곳이 따로 있을 수도 있다는 거네.”
“예, 그렇습니다.”
짧게 혀를 찬 기혁이 준성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여자에 대해 더 조사해 봐. 직접 끌고 올 수 있으면 더 좋고.”
“알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석진이 공장 밖으로 향했다.
드넓은 폐공장 안에 단둘만 남게 된 기혁은 잠든 것처럼 보이는 준성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형이 다 정리할게.”
기혁은 눈동자가 깊이 가라앉았다.
“해결책이든 뭐든 형이 다 찾아서 끝낼게. 더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도록 만들어줄게.”
준성의 머리에 입술을 묻은 채 묵직한 음성을 속삭인다.
“우리 이딴 꿈은… 이제 그만 꾸자.”
겁먹은 눈꺼풀 안에서, 준성은 남기혁이 속삭인 말의 의미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