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
어느 5일째 아침.
준성과 기혁이 1일째부터 함께 구성하며 동료로 삼아온 이들은 현재 그들 외 8명이었다.
그들 중에는 고립된 가족을 구하고 싶어 하는 자들도 있었고, 준성과 기혁처럼 이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자들도 있었다.
준성은 자신들을 포함한 총 열 명의 인원을 반씩 나눠서 두 팀으로 움직이기로 했고, 당연히 그와 기혁은 바이러스의 진원지를 추적할 팀에 들어갔다.
가족들을 구하겠다는 의사가 완강한 팀을 응원하며, 차후에 합류할 지점을 정해서 배웅해준 준성은 기혁과 함께 다른 세 명의 남은 동료를 한데 모았다.
이 상황을 무한히 반복해왔었다는 것과 그 과정에서 얻었던 정보들, 현재가 그에게 있어 ‘꿈’이기에 고통을 느낄 수 없다는 것, 안전한 루트와 해결책을 찾기 위한 실마리 등. 준성은 이때까지 함께 해오며 나름 믿을만하다고 생각한 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와 정보를 공유했다.
그게 가능했던 데에는 남기혁의 영향이 컸다.
예전에도 같은 이야기를 몇 사람에게 했던 적이 있었다. 미친놈으로 몰리기도 했고, 억울한 상황에 부닥치기도 했으며, 심할 때는 고통도 못 느끼는 괴물 취급을 받으며 장난처럼 고문받다가 좀비 무리에 던져지기도 했다.
그러한 경험들이 있었기에 웬만한 사람들은 깊이 믿지 않으려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면 상대가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기에 되도록 숨기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신과 똑같진 않아도 비슷한 상황을 겪은 탓에 제 말이라면 뭐든 믿어주는 남기혁이 있었다. 자신을 맹목적일 정도로 지켜주는 든든한 아군이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모든 걸 혼자 짊어지며 마음을 닫아버릴 뻔했던 준성은 기혁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지금만큼은 자신의 비밀을 다시금 입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는… 역시나 아쉬웠다.
세 명의 동료는 준성을 이상한 놈으로 취급했고, 기혁 역시 똑같은 사람으로 치부해버렸다. 미리 다 알고 있었기에 피할 수 있었던 루트와 지금까지 달려오면서 보여준 예지력을 하나하나 짚어줘도 미친놈 취급만 할 뿐이고 괴상한 능력을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혹시나 했던 그들이 역시나 자신을 믿어주지 않고, 꺼림칙하니 따로 가겠다는 말을 할 때도 약간의 속 쓰림 정도가 다였다.
남기혁이 있으니까.
자신을 믿어주는 남기혁이 언제나 함께해줄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했다. 이번 회차에서 또 죽게 되면 다음 회차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믿어주고 이를 무기 삼아 움직일 수 있는 새로운 동료들을 또 찾아서 모으면 될 일이다.
그렇게 찾고 또 찾고, 모으고 또 모으다 보면, 이내 완벽한 신뢰로 이루어진 사람들을 한데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남기혁과 자신처럼.
그래서 이번 일은 조금 아쉬울 뿐인 상태에서 그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세 일행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떠날 채비를 하느라, 혹은 가기 전에 정찰을 하느라 보이지 않는 줄 알았다.
건물 옥상에 진열하듯 가지런히 놓여 있는 누군가의 몸 조각과 내장이 없었더라면, 쭉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다른 곳에서도 또 하나 발견되었다. 옥상에서처럼 몸 조각이 일렬로 고르게 정렬되어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옆에는 내장을 이것저것 섞어서 씩 웃는 얼굴을 만들어 놓기까지 했다.
손발이 덜덜 떨리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릴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다.
사람을 분해하고 잘라놓은 것보다도 그걸 피 웅덩이 위에 깔끔히 ‘진열’해 놨다는 게 더 무서웠다. 그 옆에 내장 조각을 그림 그리듯 배치해둘 수 있는 태연함에 기겁했다.
범인은 좀비가 아니다.
분명 사람이다.
그것도 지독하게 미친 사람.
‘어, 어떻게 이런 짓을…….’
문득, 몇 회차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저쪽 터널에 있는 대피소에서 겨우 도망쳐 왔던 사람이 있었거든. 그 사람 말이, 웬 미친 살인마가 돌아다닌다나 봐.
-나도 저번에 김 씨한테 들었어. 사람 팔다리 잘라놓고 웃다가 죽인다며? 산 채로 배 갈라 죽이기도 한다던데…….
-맞아, 그렇게 죽여서는 부하들 시켜서 막 보기 좋게 모아두거나 진열한대잖아. 으으, 무서워….
-세상에, 무슨 그런 싸이코가 다 있담.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당시엔 세상이 망가지니까 별의별 이상한 사람이 다 튀어나오는구나, 정도로만 여겼다.
소문의 살인마만큼은 아니어도 하루아침에 정신적으로 이상해진 사람이나 성격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리는 경우, 얌전하던 자가 짐승처럼 포악해지는 것도 꽤 많이 보았다. 살인마 역시 본성이 그랬을 수도 있고, 세상이 이따위로 돌아가니 미쳐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스스럼없이 사람을 죽이고 잔인하게 분해한다는 점에서 이미 정상인이 아니다. 그러니 경계해야 마땅했다.
살인마가 있다는 소문은 그 회차뿐만 아니라 다른 몇몇 회차에서도 엇비슷하게 들어왔었다.
이때까지의 소문과 이전 회차들 곳곳에서 접한 정보를 토대로 살인마의 이동 경로를 예측했다. 그렇게 되도록 멀리 돌아가더라도 직접 맞부딪치기 힘든 길로만 골라 다녔다.
그래서인지 남기혁과 만나고 그와 동료가 된 이후의 회차쯤부터는 살인마에 대한 일말의 소문도 듣지 못했다. 살인마에 대한 소문을 굳이 신경 쓰지 않게 되었던 것도 그즈음부터다.
설마 이번 회차에서 살인마에 대한 소문 대신 그가 벌여둔 참상을 먼저 목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좀비들의 것과는 사뭇 다른 지독히 선명한 피 냄새에 구토감이 올라오던 찰나.
준성의 머릿속에 남기혁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형…. 기혁이 형!”
저도 모르게 기혁의 이름을 부르며 벌떡 일어나 뛰쳐나갔다. 주변에 좀비가 없는 안전한 구역에 아지트를 만들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좀비들이 바로 달려올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였다.
그만큼 준성의 마음은 너무도 다급했다.
‘형은 무사한 건가?! 형, 제발……!’
기혁을 찾아 뛰어다니던 중에 또 한 구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는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그 시체가 순간 남기혁으로 보였을 땐 디디고 있던 땅이 무너져 내려 훅 빠지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세 번째 동료의 시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을 땐 그래서는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버렸다.
세 번째 시체 앞에 주저앉아 있다가 어렵사리 몸을 일으켰을 때.
“준성아?”
건물 모퉁이를 돌아서 달려오는 남기혁이 보였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 물기가 스며든 새 와이셔츠, 한 손에는 그가 유독 애용하던 진한 남색 타월.
누가 봐도 이제 막 씻고 나온 모습이다.
날씨도 추운데 겉옷도 입지 않고 저렇게 다닌다는 데에 충분히 잔소리해줄 수 있었지만, 준성은 그런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였다. 그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건 오로지 남기혁의 안위뿐이었기에, 그의 멀쩡한 모습을 보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갔다.
“형!”
갑작스레 달려든 것임에도 기혁은 놀라기는커녕, 아주 당연한 듯이 받아서 꼭 끌어안아 주었다.
“뭐야, 왜 그래? 누가 우리 준성이 괴롭혔어?”
방긋 웃으며 말하다가 뒷말에서만큼은 섬뜩할 정도로 무서운 살기가 느껴졌다. 그 살기가 향한 곳은 당연히 준성이 아니었기에, 그는 겁내기보다 오히려 안심한 모습을 보였다.
“형도 잘못된 줄 알았잖아…. 형도 그렇게 됐으면……, 흑, 내가 그 살인마 새끼 찾아서… 죽여버리려고 했어….”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이런 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상당히 자주 해왔다. 하지만 지금처럼 진심으로 반드시 죽여버리고 말겠다는 생각을 한 건 처음이었다.
그만큼 준성에게 있어 남기혁은 특별했다.
다른 동료들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모습을 보더라도 다음 회차에서 피하면 된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살해당해서 누워있는 게 남기혁이었다면?
그것만은 용서할 수 없다.
자신의 유일한 버팀목이라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다른 큰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남기혁은 자신과 달리 고통을 느낀다. 그런 잔인한 살인마에게 살해당하는 동안 기혁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할지를 상상하니 도저히 태연할 수가 없다.
“형…, 괜찮은 거지? 응?”
“그래, 그래. 형 괜찮아.”
준성의 등을 토닥여주며 달래던 남기혁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저 멀리 차례대로 진열된 인간의 몸 조각과 피 웅덩이가 보였다.
기혁의 눈이 별다른 파동 없이 가늘어졌다.
“너야말로 괜찮아?”
“응, 괜찮아….”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준성이 퍼뜩 정신을 차리며 그를 떼어냈다.
“형, 이럴 때가 아니야! 살인마가 근처에 있어. 당장 벗어나야 해.”
살인마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긴 했지만, 남기혁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는데 이렇게 무방비하게 있을 순 없었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주변을 살피던 준성이 기혁의 팔을 붙잡아 끌며 달렸다. 아직 기혁이 시체를 발견하지 못한 줄 알고 있던 그로서는 조금 돌아서 가더라도 그가 무서운 장면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아지트로 들어간 준성이 급히 짐을 챙기며 기혁과 밖으로 뛰쳐나왔다. 다행히 그때까지도 살인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형이 ‘사람’에게 죽는 것만은 반드시 피해야 해.’
좀비에게 죽는 것과 같은 사람에게 살해당하는 정신적 충격의 차이는 굉장히 컸다. 죽는 순간뿐이라고는 해도 이 꿈을 다음 회차에서도 고스란히 기억할 사람이니 더더욱 그러했다.
‘근데…….’
준성은 자신과 바짝 붙어서 뛰고 있는 남기혁을 바라보았다. 그의 머리에서는 아직 덜 말린 물기가 한두 방울씩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방금 씻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진한 피 냄새가 나지?’
시선을 느낀 기혁이 준성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기혁의 눈웃음이 무섭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