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
남기혁에게 붙잡혀 건물 밖으로 떨어진 준성은 바닥에 두 발을 대자마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이 새끼, 제정신인가?’
갑자기 높은 곳에서 떨어져 본 게 처음은 아니었다. 빌딩 옥상에서 좀비들과 싸우다가 발을 헛디뎌서 떨어졌던 적도 있고, 꿈의 반복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자의로 몸을 던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타인이 안고 뛰어내린 적은 처음이었다. 남에게 제 목숨이 강제로 내맡겨졌었다는 느낌에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미쳤어요?! 뒤지고 싶으면 혼자 뒤지든가!”
준성 역시 기혁과 같은 생각을 하긴 했었다. 옥상이니까 환풍구나 큼직한 에어컨 실외기쯤은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곳에 묶고 내려갔을 때 1층까지 다다를만한 충분한 길이의 로프도 미리 준비해왔다.
하지만 이처럼 아무 안전장치도 없이 추락할 생각은 아니었다. 처음 보는 남자에게 안겨서 오직 그의 팔 힘에 목숨을 맡긴 채 떨어져야 한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해맑게 웃는 기혁의 정강이를 향해 앉은 상태로 주먹을 휘둘렀다. 뼈를 힘껏 때렸으니 원래대로라면 손가락이 부러질 것처럼 아파야 했지만,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준성의 주먹은 통증에 멈칫하는 기색도 없이 아주 야무졌다.
짧게 윽, 소리를 내던 기혁은 그러면서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준성을 일으켜주었다. 그새 빨갛게 변한 그의 주먹도 부드럽게 어루만져준다.
바닥에 툭 떨어질 뻔했던 가슴을 쓸며 몸을 일으킨 준성은 기혁을 매섭게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사람 좋은 얼굴로 계속 웃고 있으니 더는 화낼 기력도 나지 않았다.
정강이 좀 때렸다고 약간 뻐근해진 주먹을 두어 번 탈탈 털던 준성이 백팩을 뒤적거렸다.
“무기로 쓸 만한 건 있어요? 없으면 이거라도…….”
“난 괜찮아.”
기혁이 코트를 열어 보여주며 웃었다.
그의 허리 벨트 옆부분에는 가죽 검집에 들어있는 단검 한 자루가 부착되어 있었다. 단검이라고는 해도 검날 길이가 한 뼘을 조금 넘어서 생각보다 긴 느낌이었다.
얼핏 보니 군용 단검 같은데, 어디서 구했는지는 몰라도 꽤 쓸 만한 걸 갖고 있다. 최소한 백팩에서 꺼내주려던 스패너보다야 낫다.
기혁에게 주려던 스패너를 대신 쓰려고 꺼내 들자, 그가 만류하며 자신의 것과 같은 단검을 내밀었다.
“그것보단 이걸 써. 잘못 휘두르다가 손목 나가.”
묵직한 쇳덩어리나 마찬가지인 스패너보다야 효율적인 공격을 펼칠 수 있는 가벼운 단검이 훨씬 낫긴 했다. 준성도 본인의 힘이 그리 세다고는 자신할 수는 없기에, 그가 주는 단검을 사양 않고 받아 들었다.
“고맙긴 한데, 처음 만난 사람한테 원래 이렇게 무기 같은 거 막 줘요?”
“너니까 주는 거야.”
기혁이 준성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방긋 웃었다.
“절 언제 봤다고?”
“음, 꿈에서 봤나?”
“장난해요?”
“응.”
기혁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도통 떼어놓질 않았다. 누가 보면 오래 알고 지낸 형 동생 사이인 줄로 오해할 법했다.
경계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기혁과 달리, 준성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런 좀비 세상이 일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태연자약한 데다가, 저 높은 곳에서 제대로 된 안전장치도 없이 타인을 안고 뛰어내리는 데도 일말의 주저함이나 두려움도 없었다.
남기혁이 어떤 자인진 모르겠으나, 최소한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란 건 확실히 알 만했다.
옥상에서 남기혁이 안전한 길을 미리 봐뒀다는 건 확실한 듯했다.
기혁을 따라서 움직이는 동안 쓰러뜨린 좀비의 수라고 해봐야 고작 열도 채 안 되었다.
‘근데 그 옥상에서 이렇게 멀리까지 다 볼 수가 있나?’
나아가는 동안 당연한 의문이 들었다.
상당히 먼 거리까지 나아왔는데, 지금도 좀비가 적은 길만 골라서 척척 걸어가고 있다. 오피스텔 옥상에서 도저히 볼 수 있을 만한 거리가 아닌데도 말이다.
‘시력이 아주 좋다…라는 거로 퉁치기엔 너무 먼 거리야. 이미 지나왔던 길인가? 만약 그렇다면 굳이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갈 이유가 없는데…….’
두 사람은 ‘같은 목적’을 두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기보다는 목적을 위해 새로운 길을 계속 찾아 나가야 할 텐데, 역시나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캬악-!
생각에 잠겨 있던 준성은 옆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듯 들려온 괴성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 준성이 단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다른 날붙이가 매섭게 날아와, 좀비의 관자놀이를 움푹 꿰뚫었다.
컥!
단검에 머리를 뚫려버린 좀비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몸이 쓰러지기 전에 머리채를 한 손으로 붙잡은 기혁이 단숨에 단검을 빼 들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마치 칼로 두부를 구멍 뚫었다가 빼 든 것 같다. 단단한 두개골에 박힌 단검을 전혀 힘들이지 않고 빼는 걸 보며, 준성은 그의 정체가 더더욱 의심스러워졌다.
사람의 두개골은 굉장히 단단하다. 그걸 꿰뚫고 박혀버린 날붙이를 빼낼 때 얼마나 많은 힘이 들어가는지는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보기보다 힘이 엄청 좋다는 건 알겠는데… 단검을 쓰는 요령이 너무 좋아서 수상해. 게다가 좀비 죽이는 것도 너무 아무렇지 않아 보이고.’
좀비를 거리낌 없이 죽이는 건 준성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혁에게 있어 좀비를 만난 건 오늘로써 기껏해야 2일째밖에 되지 않았을 터.
경험치에 비해 너무 능숙하고 태연해서 상당히 수상쩍다.
다만, 수상쩍은 걸 모른 체해 줄 만큼 든든하긴 했다.
준성은 게임 캐릭터의 능력치를 분석하듯이 기혁을 유심히 관찰해보았다. 처음 보는 생존자를 만나면 으레 하는 일이었다.
‘피지컬만 따지자면 창민이 형 정도 되나? 상황판단력도 좋아 보이고.’
서창민은 준성이 아군으로 삼고 싶어 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707 특수임무단 소속으로, 육체적 능력으로 따지자면 이때껏 만난 사람 중에서 곽두재라는 베테랑 경호원급의 능력자다. 일전에 몇 회차에 걸쳐 그를 구하고자 접촉했을 때 대화해본 바로는 머리도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이고, 정의감도 투철한 편이라서 꽤 마음에 들었다. 어떻게 해도 구할 수가 없어서 지금은 포기 상태였지만.
그런 서창민과 엇비슷한 놀라운 피지컬, 좀비가 갑자기 튀어나와도 놀라기는커녕 감탄할 정도로 능숙히 대처하는 순간 대응력,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사고하는 상황판단력과 이 긴 길을 순간적으로 다 외워버린 기억력까지.
그야말로 사기급 캐릭터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준성은 제아무리 유능한 자라고 하더라도 쉽게 믿거나 의지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이번 회차를 낭비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신(新)캐릭터를 충분히 파악해보고자 마음먹었다.
3일째.
4일째.
5일째.
이윽고 좀비 사태가 터진 지 6일째 되던 날.
“안 돼, 준성아!”
처음으로 남기혁의 굳은 얼굴을 보았다. 이때껏 여유롭고 밝은 모습만 봐왔던 그의 얼굴에 순간의 절망이 스쳤다.
콰직, 하는 근육 씹히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선명하게 들려서 그게 제 어깨를 무는 소리인 줄 알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미약한 신음을 들은 후에야 자신이 멀쩡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새 쏜살같이 달려와 준성을 끌어안은 남기혁의 어깨에 피투성이의 좀비 머리가 달라붙어 있다. 두 팔도 없이 몸으로 박치기하듯 달려들어서는 어깨에 얼굴을 박고 있는 좀비가 징그럽기 짝이 없다.
“기혁이 형!”
준성이 눈을 부릅뜨며 기혁의 어깨를 물고 있는 좀비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머리에 단검이 박힌 좀비가 짧은 괴성을 내며 뒤로 넘어져 버렸다.
크에엑-!
캬학!
건물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온 좀비들이 기혁과 준성을 향해 달려 나왔다. 그걸 보며 준성이 침음을 삼켰다.
‘이번 회차는 여기서 끝인 건가.’
그들이 선 곳은 어느 높다란 빌딩의 로비였다.
인한시 폭동에 관한 최초 제보를 추적하여 대략적인 위치를 가늠해서 이동하던 찰나, 어디선가 갑자기 쏟아져나온 좀비들을 피해 지금 있는 빌딩으로 들어왔었다. 겉보기엔 로비에 아무도 없어 보였는데, 이제 보니 밖에서는 볼 수 없는 길과 틈새마다 좀비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준성이 착잡한 마음으로 반쯤 포기하고 있을 때.
기혁이 갑자기 그의 팔을 붙잡고 뛰기 시작했다.
기혁이 준성을 데리고 뛰어간 곳은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전기가 무리 없이 돌고 있는 빌딩이라서 다행히 작동하고 있는 듯했다.
높이 올라가 있던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동안, 기혁은 준성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서며 좀비들을 상대했다. 어깨에서 흐른 피가 뒤덮은 팔에 좀비의 딱딱한 치아가 박혀 들어가고, 단검을 휘두르던 손목의 살점이 잔인하게 뜯겨 나갔다. 너덜너덜해진 코트가 미처 감추지 못한 살갗을 좀비가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다.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로 잔인하게 잡아 먹히는 걸 보며, 그의 등과 엘리베이터 문 사이에 끼이듯 숨겨져 있던 준성이 고개를 내저었다.
“비, 비켜요, 형! 아프지도 않아요?!”
“읏…, 아프긴 해.”
기혁은 대답하는 중에도 아직 놓지 않은 단검을 휘둘러 좀비 한 명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곧바로 그 팔을 물려서 단검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준성은 기혁이 자신을 지키느라 제대로 피하거나 막지도 못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틈새를 노려 자신을 물려는 머리에 기혁이 제 걸 먹으라며 팔을 갖다 대어 주는 것도 봤다.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6일째가 되는 오늘까지 남기혁과 어느 정도 친해진 사이가 된 건 맞지만, 이처럼 몸 바쳐 지켜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처럼 죽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면서.
어째서 그는 우연히 만난 생존자에 불과한 자신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저리 아무렇지 않게 내놓을 수 있는 걸까.
띵-
엘리베이터의 도착음과 함께 이때껏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기혁은 피가 진득하게 묻은 손으로 준성을 그 안에 밀어 넣었다. 그러고선 좀비들을 등진 채 입구를 제 몸으로 완벽히 막아선다.
쿨럭, 기혁의 입에서 피가 토해졌다.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기혁의 핏덩이를 보며, 엘리베이터 안의 준성이 몸을 떨었다.
“형…, 대체 날 왜…….”
머리로는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의 조각 일부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기혁의 핏물 묻은 입술이 달싹거렸다.
“나는…….”
수많은 좀비를 등에 업은 기혁이 준성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나는… 네가 죽는 걸 ‘또’ 보고 싶지 않아….”
닫혀가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기혁의 붉은 피막 덮인 두 눈동자가 보였다.
홀로 남은 엘리베이터 안.
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준성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뒤이어 남기혁에게 받았던 단검이 그의 가느다란 목을 주저 없이 깊게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