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150)화 (150/240)

- 150화 -

“그거 하지 마. 뜯어먹고 싶어지니까.”

“네가 좀비 새끼야?”

“개새끼도 뜯어먹을 줄 아니까 조심하라는 얘기야.”

무슨 개소리가 이렇게 진심 같은지, 원.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도한서를 한차례 쏘아본 준성이 그를 밀어내며 앞서 걸었다.

들어올 때도 확인한 바였지만, 그들이 선 아파트 입구와 지상 주차장에는 비어있는 차들만 보일 뿐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이나 배회하는 좀비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앞서 걷던 준성은 지상 주차장에 듬성듬성 서 있는 차량을 눈여겨보았다. 그중 검은색 세단 뒤에 멈춰 선다.

“이거 받아.”

준성이 검은색 세단을 눈짓하며 한서에게 자그마한 뭔가를 던졌다. 짤랑, 소리가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보니 웬 차 키이다.

“이게 원장 차야. 기름은 넉넉하던 거로 기억해.”

마지막 회차에서 원장과 함께 혈액원으로 이동할 때 그의 차를 사용했던 기억이 있었다.

저번에 창민까지 셋이서 원장의 집을 들렀을 땐 이리저리 조용히 움직여야 하기도 했고, 목적지들 사이사이의 이동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았기에 불필요하다 여겼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이 차를 타고 군용 대피소까지 갈 거야. 아주 먼 거리는 아니지만 차 없이는 가기 힘들어.”

“위치는?”

“차 안에 내비게이션 있으니까 위치 찍어 줄게.”

원장의 차 내비게이션이 잘만 돌아가던 걸 떠올린 준성이 조수석으로 향했다. 운전석에 올라탄 한서가 시동을 거는 동안, 준성은 인터넷이 안 돼서 일부 기능을 사용할 수 없게 된 내비게이션에 군용 대피소의 위치를 찍었다.

“남기혁도 그곳 위치를 알고 있는 거 아냐?”

준성이 찍는 위치를 바라보던 한서가 묻자, 준성이 걱정 없이 대답했다.

“그럴 일은 없어. 꿈속에서는 한 번도 안 갔던 곳이니까.”

군용 대피소의 존재를 알아냈던 건 꿈이 아닌 ‘현실’에서다.

준성은 반복되는 꿈속에서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고자, 현실에서도 쉬지 않았던 덕에 결코 적잖은 정보를 모아가곤 했다.

그때 발견한 게 ‘군용 대피소’였다. 준성은 시 외곽의 민간 피난소가 그토록 급히 만들어졌음에도 상당히 그럴듯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곳에서 초기 물자를 공수해 왔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꿈속에서 준성이 동료들에게 이 군용 대피소에 대해 따로 언급하거나 가보자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차피 준성의 주목적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세상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었고, 피난소는 어디까지나 아군과 생존자들을 위한 부차적인 사항이었기에.

게다가 꿈속에서는 지금처럼 인한시 밖까지 좀비가 바글바글해진 상황이 아니라 상당히 빠른 봉쇄가 이루어졌었다. 다른 피난소를, 그것도 민간인은 들여보내 주지도 않는 군용 대피소를 굳이 찾아갈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러니 남기혁이 제아무리 꿈을 기억하고 있다고 한들, 군용 대피소까진 생각지 못할 것이다.

내비게이션에 군용 대피소가 있는 주소를 찍어두고 거리를 확인했다. 예상대로 원장의 아파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반면 일행이 향하고 있을 민간 피난소와는 거리가 꽤 있었다.

거리를 확인한 준성은 출발 전, 차 트렁크의 잡동사니 사이에서 제법 튼튼한 쇼핑백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선 그 안에 원장의 집에서 가져온 혈액팩을 전부 옮겨 넣어 뒷좌석에 실었다.

한서는 그걸 왜 따로 옮기는가 싶어 잠시 준성을 바라보다가 이내 납득할 수 있었다.

준성의 가방에는 함정 설치를 위한 몇 가지 물건과 작은 크기의 연장, 쓰고 남은 연막탄과 여분의 자갈 폭탄 몇 개가 들어있었다. 안전성을 위해서라도 혈액팩은 따로 보관하는 게 옳았다.

가벼워진 백팩을 들고 조수석에 올라탄 준성은 문득 든 생각에 운전석의 도한서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너, 차 운전은 어떻게 하는 거야?”

“어떻게 하다니?”

시동을 걸고 천천히 차를 후진시켜서 주차 칸을 벗어난 한서가 능숙하게 사이드미러를 살폈다.

“운전 배운 적 없잖아.”

준성의 말에 한서가 피식 웃었다. 그 와중에도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액셀을 밟고 운전대를 움직이고 있었다.

“잘 알아챘네.”

“과거를 몰랐을 땐 그러려니 했지만, 그 얘기대로면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게 이상하잖아.”

도한서는 양부모에 의해 연구소에 감금되어 살아왔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다른 길로 빠지는 법 없이 연구소만 오갔고, 누가 족쇄를 채워둔 것도 아닌데 반항 없이 얌전히 실험당했다.

억압된 자유 외엔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가스라이팅 당하며 살아온 도한서에게, 그 인간 같지도 않은 양부모가 운전을 가르쳐줬을 리가 없었다.

이동 수단의 사용법은 결코 육체적 자유와 무관하지 않으니 말이다.

한서는 부드럽게 차를 몰며 입을 열었다.

“뭐든 닮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닮아?”

굴러가는 차 안에서 한서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원하는 대로 해줘야 편했어. 원하는 걸 말하기도 전에 스스로 움직여주면 더 편해질 수 있었지.”

준성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한서가 말한 ‘닮아야 한다’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러려면 그 사람을 닮는 방법밖에 없잖아.”

그 사람이라면 이럴 때 이렇게 움직일 것이다,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이런 걸 원할 것이다…….

그걸 미리 파악하고 선뜻 행동해주면 언제나 칭찬이 돌아왔다. 형식적인 말이었을 뿐이고 그저 고분고분한 강아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게 쌓이고 쌓인 덕분에 최소한의 자유라도 얻을 수 있었다. 양부는 특히나 눈치 없고 둔한 사람을 싫어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도한서는 일찍이 양부를 닮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도한서가 자신을 실험체로 쓴 양부의 연구 과정과 성과를 제 머릿속에 때려 넣고 있을 수 있었던 게.

한서는 원장의 영상 속에서 봤던 양부와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덕분에 운전하는 법도 알잖아.”

“…그렇게 말하지 마. 그냥 네가 눈썰미 좋고 머리가 특출난 거야. 그딴 인간 덕분이 아니라고.”

준성은 입 안이 씁쓸해지는 걸 느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런 준성의 작고 까만 머리통을 도한서가 즐거운 듯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지상 주차장을 지난 차량이 아파트 입구로 향하고 있다.

캬학-!

근처에서 쇳소리 닮은 괴성이 들렸다. 이를 시작으로 몇 명의 좀비들이 불쑥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차를 향해 달라붙는 손.

퍽-!

무작정 돌진하다가 부딪혀서 나가떨어지는 몸.

키흑- 칵-!

크어-!

차체에 막힌 피가 끓는 괴성들.

준성은 차에 달라붙은 좀비들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한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쩌면 한서 쪽으로는 좀비들이 덜 몰리거나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준성이 탄 조수석에 붙은 수만큼은 되어 보였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좀비들이 한서를 피한다고는 하지만, 그게 단순히 시력으로 분간하는 건 아닐 터였다. 붉은 피막 때문에 가까이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안 보일 터인 그들이 인간의 외형을 보고 덮치고 말고를 결정할 리 없었다.

이는 소리 또한 마찬가지다. 지성이 없어서 동족이 내는 괴성에도 무작정 반응할 정도이니, 소리로 구분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럼 후각인가.’

어쩌면 페로몬일 수도.

순간, 준성은 저도 모르게 한서의 어깨를 붙잡고서 그의 목 언저리에 얼굴을 가져갔다.

그러자 한서는 깜짝 놀라기는커녕, 너무나 당연하게 귀를 깨물었다.

“읏, 왜 물어?”

“너야말로 왜 유혹하고 그래? 차에서 덮쳐줘?”

“넌 머리에 그런 생각밖에 없나 봐.”

“아니라곤 못 하겠는데.”

붕대로 가린 목울대와 새벽에 얻어맞은 엉덩이가 아직도 얼얼한데, 이 새까만 맹견은 시도 때도 없이 또 발정하려고 든다.

질린 표정으로 한서를 흘겨본 준성은 방금 맡은 냄새를 곱씹어보았다.

솔직히 피 냄새밖에 안 난다.

‘당연한가.’

원장의 아파트로 향하는 동안 감시의 눈을 속이느라 어쩔 수 없이 좀비 몇 마리를 처리하며 지나갔다. 그 피가 묻었을 테니 혈향이 나는 것도 당연했다.

‘좀비가 되면 뭔가 다른 냄새를 맡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어.’

좀비가 되지 않는 한은 아마도 영영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던 준성이 움찔했다.

아파트 단지 밖으로 펼쳐진 도로.

그 한가운데에 피가 잔뜩 묻은 흰 가운을 입은 여자가 비척거리고 있다. 달리는 차에 부딪히기라도 했던 건지, 한쪽 다리는 정강이뼈가 부러져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고 팔도 기괴하게 꺾인 모양새였다.

준성은 여자를 알아보자마자 한서를 바라보았다.

“흐음.”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얼굴은 으레 널려 있는 좀비 중 하나를 본 것처럼 무감정했다.

이윽고.

쾅-!

이쪽을 발견하고 괴성을 내지르던 여자 좀비가 그녀에게 돌진하는 차체에 부딪혀 저 멀리 튕겨 나갔다. 날아가면서 무방비하게 머리부터 떨어진 여자 좀비는 두어 번 무섭게 펄떡이더니, 곧 움직임을 멈췄다.

준성은 사이드미러에 비친 여자 좀비가 작은 점처럼 보이게 될 때까지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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