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
준성과 한서가 원장의 집에서 ‘해결책’을 확보했을 무렵.
버스 팀은 나름 순탄하게 잘 나아가는 중이었다.
“앗, 저 앞에 좀비……!”
한 사람이 길가에 튀어나온 좀비를 보며 입을 열었다.
퍽-!
“……가 있었는데 없네요.”
곧바로 버스에 치여 나동그라지는 좀비를 머쓱하게 바라본 그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버스는 이때껏 열이 넘는 좀비를 무던하게 들이받았을 정도로 상당히 튼튼했다.
공사장에서 쓰는 얇고 단단한 철판으로 전후좌우를 꼼꼼히 둘러 싸뒀고, 특히나 앞쪽에는 철판을 ‘사람 인(人)’자를 만들 듯이 좌우 세 장씩 기울여 붙여두었다.
덕분에 견고한 삼각 철판이 마치 뱃머리의 충각과도 같은 역할을 하여, 좀비들이 모여있어도 비교적 무리 없이 치고 나갈 수 있었다. 아쉽게도, 준성이 짜준 루트에서 배회하는 좀비의 수가 워낙 적어서 제대로 써먹어 보진 못했지만.
“근데 정말 좀비가 적네요. 이런 길은 어떻게 아셨대요?”
주변을 연신 경계하던 대욱의 동료 중 한 명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이에 대욱은 준성이 며칠 전에 직접 지나가본 기억을 더듬어 만든 안전 루트일 뿐이라고만 대답해주었다.
좀비의 출현이 현저히 적은 길을 따라 최대한 배기음을 줄인 채 천천히 나아가던 일행은 곧 터널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은 이 안전 루트를 짤 때, 긴장한 제 민머리를 쓰다듬던 두재가 터널을 지목하며 의문을 제기했었다.
“터널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좀비들이 안에 있다면 터널이 좁아서 둘러싸이기도 쉽고, 빠져나갈 길도 여의치 않습니다.”
그의 걱정은 타당했다.
인한시에 존재하는 터널은 단 두 개.
두재는 생존자를 찾기 위해 그중 한 곳의 대피소에 들렀던 적이 있었다. 대피소의 상황은 역시나 처참했지만, 더 지독했던 건 터널 안이었다.
좀비 사태의 여파로 이리저리 부딪치고 망가진 차들과 그 사이에서 불시에 튀어나오던 좀비들을 만났던 당시의 경험이 있던 두재로서는 충분히 말해볼 만도 했다.
그때는 손남섭과 임유슬까지 해서 단 세 명만이 도보로 이리저리 움직여서 피해 갔다지만, 이번은 버스까지 몰고 있는 데다가 사람도 많았다. 만약 이번 루트의 터널에서도 같은 광경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난잡하게 뒤엉킨 차들과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좀비 무리 속에서 버스가 되레 짐 덩어리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준성은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며 터널 이후의 이동 루트까지 무리 없이 짜주었다.
터널을 마주하게 된 일행은 그제야 준성이 했던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공사 중]
[통행에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이른 시일 내에 공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공사 내용 : 노후화된 조명 시설 개선 공사]
[공사 기간 : 10/01 ~ 11/01]
공사 중인 터널.
입구는 공사 도중에 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갈색 나무판으로 임시 통행문을 만들어 놓았는데, 현재는 문이 굳게 닫힌 채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터널이 있는 길로 진입할 수 있는 갈림길 부근에는 하얗고 빨간 바리케이드가 미리 길을 막듯 배치된 채였고, 공사 안내 현수막까지 걸려 있었기에 이쪽으로는 어떠한 차도 진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터널의 입구에 다다랐지만 공사를 위한 장비나 관련 차량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보통 이런 공사의 마지막 날에는 대대적인 장비를 동원하는 단계를 지나, 작업이 잘 마무리되었는지 체크하는 게 전부였다.
공사의 마지막 날은 11월 1일.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당일이다.
세상이 지금처럼 바뀌지 않았더라면 순탄히 다음 날을 맞아서 터널을 개방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터널 앞에 버스를 세운 일행은 혹시나 주변에 좀비가 있는지를 살폈다. 다행히 보이는 건 터널 앞의 휑한 도로뿐이다.
공사의 마지막 날에 터널을 점검하던 이들은 당일에 일찌감치 돌아간 모양이었다. 새로 터널을 파거나 뭔가 새로운 걸 설치한 게 아니라 조명 시설을 바꾼 것뿐이니, 점검할 게 그리 많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 탓에 입구를 막고 있는 임시 통행문에는 자물쇠가 떡하니 달려있었다.
즉, 자물쇠를 채워놔도 될 정도로 이 터널 안에는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터널 안이 일종의 청정 구역이나 다름없는 상태라는 걸 확인한 두재는 자진해서 버스 밖으로 나갔다. 그의 손에는 준성이 필요할 거라는 말과 함께 내줬던 펜치가 들려있었다.
‘이런 것까지 다 알고 있었다니.’
새삼 준성의 꿈과 그의 머리에 혀를 내둘렀다.
꿈속에서 우연히 알아냈다고 해도 이를 전부 똑똑히 기억하며 막힘없이 안전 루트를 짜는 건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 펜치까지 준비해뒀을 정도로 빈틈이 없다.
두재는 앞으로 준성이 하는 말에 일절 태클을 걸지 말아야겠다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펜치로 단번에 자물쇠의 연결고리를 뚝 잘라내버렸다.
자물쇠를 제거하고 휑한 터널 안으로 들어가자, 막막한 어둠이 일행을 맞았다. 터널의 길이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반대편 출구 쪽도 입구와 엇비슷한 방법으로 막혀있는 탓에 빛이라고는 하나도 기대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터널 안에 좀비가 없는 건 확실했다.
일행은 처음으로 버스 안의 전등을 모두 켠 채, 앞으로 부드럽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버스가 터널에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
“저, 저기! 악!”
얌전히 좌석에 앉아있던 황경오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그 탓에 정수리가 버스 천장에 세게 닿아서 얼빠진 퍽 소리가 났다.
짧게 신음하며 정수리를 매만지던 경오는 자신에게 주목하고 있는 일행을 보며 긴장한 듯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 터널을 나가기 전에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왜인지 안색까지 창백해져서는, 뭔가 엄청난 고백이라도 할 것 같은 모양새였다.
“사실은 내, 내가 폭탄을 터뜨린 범인이에요!”
아니, ‘할 것 같은’이 아니라 진짜로 엄청난 고백을 해버렸다.
경오를 바라보던 이들이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고, 묵묵히 운전대를 잡고 있던 운전수는 브레이크를 밟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황당한 고백을 내뱉어버린 경오가 버스 가운데로 나와서는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렸다. 정수리를 부딪쳤을 때처럼 퍽 소리를 내며 이마를 바닥에 박아버린 그가 몸을 벌벌 떨었다.
“자,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모두…….”
고의가 아니었다, 그렇게 될 줄 몰랐다, 시켜서 한 일이었을 뿐이다.
그런 회피성 변명부터 늘어놓는 건 그만두었다.
자신이 잘못해서 병원이 무너지고 모두가 위험에 빠졌던 건 명백한 진실이다. 그건 어떻게 포장을 하든 절대 바뀌지 않는다.
새벽에 창민이 해줬던 그 말은 경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었다.
예기치 않은 폭탄 발언을 들어버린 일행이 한 박자 늦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나서서 입을 연 건 욱하는 기질이 있는 임유슬이었다.
“지금 그게 정말이야?! 네가 우리 다 죽이려고 했던 거냐고!”
무너지는 인한병원 지하에서 빠져나오던 순간은 유슬이 살면서 느껴본 공포 중에 가히 최상급이었다. 좀비들에게 우르르 쫓기던 때보다 더 무서웠을 정도이니, 그야말로 간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는 표현이 딱 알맞았다.
이는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랬는데, 그 사건이 아군에 의한 공격이었다니.
쉽사리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황경오는 눈물까지 그렁그렁해서는 계속 사죄의 말을 내뱉고 있었다. 이러면 도저히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상황을 파악한 일행이 저마다 유슬의 말을 이어 한마디씩 거칠게 내뱉으려던 순간.
“저도 미안해요.”
손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난 건 창민이었다.
“경오 형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었으면서도 지금까지 일부러 입 다물고 있었어요. 죄송합니다.”
씁쓸한 표정으로 창민까지 고개를 숙여 보이자, 일행은 이제 아예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고개를 들어 그들의 표정을 바라보던 창민은 이마를 땅에 박고 있는 경오를 대신해서 사실을 털어놓았다. 남기혁이 어떻게 경오에게 접촉했는지부터 시작해서 그가 한 짓이 어떤 참사를 불러왔는지까지.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일행은 마냥 화만 낼 수가 없었다.
가족이 인질로 잡혀 있는 걸 봐버렸기에 일행에게 말도 못 한 채 남기혁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황경오. 두재와 함께 일행에 합류한 손남섭의 휴대폰을 이용한 접촉. 임유슬이 갖고 있던 동생의 사진으로 인질이 있음을 확인시켜주기까지.
게다가 당시 경오에게 남은 시간은 충분한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지 않았다. 당일 자정에 남기혁 측에게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인질의 목숨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폭탄을 움직이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일행조차 이 대목에서는 침음을 삼켰다.
“……이렇게 됐던 겁니다. 믿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만약 일행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짓을 시켰다면 경오 형도 절대 응하지 않았을 거예요.”
심약한 황경오가 가족을 구하겠다고 일행을 직접 해하는 짓을 할 리가 없다. 최소한 창민이 이때껏 함께해 온 바로는 그랬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안이 후다닥 나와서 외쳤다.
“맞아요! 경오 아저씨는 그 나쁜 놈한테 이용당했을 뿐이라고요! 나쁜 건 남기혁이라는 그 살인마 새끼예요!”
지안은 경오를 지키려는 것처럼 그를 몸으로 가리며 두 팔을 쫙 벌려 보였다. 인상을 쓰고 있지만, 그건 경오가 밉거나 그를 쏘아보는 일행들 탓이 아니라 이 일의 ‘원흉’ 때문이었다.
“그래. 나쁜 건 그 새끼지.”
말을 얹으며 일어선 건 임유슬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누구보다 사납게 경오를 노려보던 유슬은 어느새 차분한 얼굴이 되어있었다.
“근데 이 말을 왜 지금 하는 거야? 털어놓을 거면 준성이까지 있는 데서 하지.”
유슬이 묻는 말에는 따지려는 기색이 없었다. 순수히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뿐.
보아하니 아침에 회의를 위해 모였던 이들조차 창민 외에는 모르고 있던 눈치였다. 혹시나 준성에게는 간밤에 따로 말해두기라도 한 걸까.
이에 훌쩍이는 경오 대신 창민이 대답했다.
“준성이에겐 일부러 말하지 않았어요.”
“왜?”
“준성이가 모르는 2차 플랜을 짜야 했으니까요.”
창민의 대답에 경오를 제외한 일행 모두의 얼굴에 의문이 비쳤다.
창민은 여전히 엎드려있는 경오를 붙잡아 일으켜주며 일행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한 번 더 두 팀으로 나눠야 합니다.”
준성의 안전 루트 속에서, 창민과 경오는 도한서가 만든 또 다른 루트로 향할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