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133)화 (133/240)

- 133화 -

깊은 새벽에 잠긴 어두운 폐공장.

떠나보낸 일행을 제외하면 드넓은 폐공장에 남아있는 사람은 고작해야 세 명이 전부였다.

삐빅-

유일하게 불빛이 드리워진 자리를 지키듯이 서 있던 보초 중 한 명이 알림 소리를 낸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보고해.”

남자가 무전기에 대고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상대가 목소리를 냈다.

-타깃이 무사히 탈출한 걸 확인했습니다.

“병원 상태는?”

-완전히 무너진 거로 보입니다. 아마 저희와 관련된 증거는 찾기 어려울 겁니다.

무너진 7층짜리 병원의 잔해 속에서 장기밀매의 은밀한 증거를 찾는 건 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장 신고를 받고 출동할 경찰도 없지만, 현 상황이 개선되고 나서 이쪽 조직을 귀찮게 할 만한 요소는 미리 없애버리는 게 나았다.

남자는 인한병원을 붕괴시킨 목적 모두가 이뤄졌다는 사실에 각진 눈가를 누그러뜨렸다.

“좋아. 그럼…….”

“몇 명?”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남자가 말을 끊고 돌아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하얀 매트에 잠들어 있는 것처럼 누워있던 남기혁이 어느새 상체를 일으켜 앉은 채 안경을 쓰고 있다.

“병원에 있던 일행 중에서 몇 명이나 살아남았어?”

기혁의 말에 남자, 우석진이 무전기를 고쳐 쥐었다.

“병원의 타깃 외 생존자는?”

-병원 내부의 생존자는 타깃 외에 총 7인입니다. 전원 생존을 확인했습니다.

무전기의 음성을 들은 기혁이 안경 너머로 눈가를 찌푸렸다. 그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전원? 전부 다 살렸다고?”

“그런가 봅니다.”

석진이 대꾸하자, 기혁이 짧게 혀를 찼다.

“‘그때’의 기억도 없을 텐데 잘도 살렸네.”

준성의 꿈에는 한 번도 나온 적 없었지만 ‘자신의 꿈’에서는 분명하게 나왔던 그 장면.

인한병원의 붕괴.

살기 위해 필사적이던 자들은 남기혁의 ‘장난’으로 인해 그 안에서 모조리 죽음을 맞았었다.

딱 한 명, 강준성만 제외하고.

그때를 회상하며 준비한 선물이었다.

예상대로 준성은 인한병원 붕괴의 기억이 없음에도 무사히 탈출했다.

그리고 예상과 달리 준성은 병원에 머물던 동료 전원을 살리고 말았다. 버스를 탄 다른 생존자들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해도 전원 생존이라는 결과는 확실히 놀라울 만했다.

‘오히려 시답잖은 일행 때문에 준성이가 죽어버리는 건 아닌가 했는데.’

일행을 구하려다가 함께 매몰되어 버린다든지, 일행을 살리고 자신이 죽는다든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었다.

지금이 ‘꿈’이라면 모르겠지만 ‘현실’임을 자각하고 있는 강준성이 그렇게 쉽게 죽어버릴 리가 없다.

꿈과 달리 현실은 진짜 목숨이 달린 일이니만큼, 살고자 하는 의지가 최고점에 달해 있을 것이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강준성은 강하다.

그걸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남기혁이었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점점 달아오르는 남기혁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최측근 우석진이 무전기의 상대에게 말했다.

“탈출한 그쪽 일행의 영상이나 사진은 확보했나?”

-현 장소로 진입할 때의 영상만 남아있습니다.

“이쪽으로 보내고 지시 내릴 때까지 계속 감시해.”

-예.

무전기를 내린 석진이 기혁에게 다가갔다.

“형님, 잠시 인질들 쪽을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응. 시끄럽게 굴면 그냥 좀비 우리에 던져놔도 돼.”

“예.”

냉정한 대화를 마친 석진이 함께 보초를 서고 있던 남자에게 눈짓했다. 매트에 다시 드러눕는 기혁과 폐공장 밖을 향해 걸어가는 석진을 번갈아 바라보던 남자가 조심스레 발을 뗐다.

석진의 뒤를 따라 폐공장 밖으로 나오게 된 남자가 허리춤에 달아뒀던 야간투시경을 쓰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인질들이라면 10분 전에 확인했지 않습니까?”

“알아.”

남자의 물음에 짧게 답한 석진 역시 야간투시경을 썼다. 시야가 녹색으로 변해버렸지만 주변 사물은 대낮처럼 또렷하게 보였다.

“그럼 왜 또…….”

“닥치고 걸어.”

남자의 호기심이 거슬렸는지, 석진이 차갑게 말하며 앞서 걸었다. 주눅 든 남자가 입을 닫은 채 뻣뻣한 걸음으로 뒤따랐다.

두 남자가 벗어난 폐공장에 홀로 남겨진 남기혁은 어느새 거칠어진 숨을 거듭 몰아쉬고 있었다.

“하…, 미치겠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심장은 터질 것처럼 가쁘게 뛰고 호흡은 말하기도 어려울 만큼 거칠어졌다.

기혁의 손이 자신의 아래쪽을 향했다. 자꾸만 아래로 뻐근함이 몰려온다 싶더니 역시나 기세등등하게 단단해져 있는 물건이 만져졌다.

누운 채로 벨트를 풀고서 바지 지퍼를 열었다. 부드러운 드로어즈에 도드라진 묵직한 것을 쓰다듬다가 기어코 안으로 손을 넣어서 맨 기둥을 붙잡았다. 이제 막 손을 댔을 뿐임에도 벌써 절정이 코앞인 것처럼 단단하다.

“우리 준성이는……, 읏, 형 물건 세우는 데에 아주 천재적이구나.”

준성의 얼굴을 떠올리며 키득거리던 기혁이 과거의 꿈을 떠올렸다.

그저 장난이었다.

‘이번엔 어떻게 죽어볼까’라는 비정상적인 생각에서 시작한 단순한 장난.

무너지는 건물에 매몰되어 죽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얼마나 새로울까.

얼마나 살아있을 수 있을까.

인간의 정신을 구성하는 요소 대부분이 망가졌던 무렵에 시도해본 그 장난 속에서, 남기혁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구제’당했다.

“형, 괜찮아요?”

일일이 얼굴을 기억할 필요도 없는 일회용 생존자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빛나는 것처럼 보였던 한 사람.

“누가 이대로 개죽음당할 줄 알고?!”

피 냄새만 가득하던 메마른 흑백의 시야가 누군가에 의해 색채를 띤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얌전히 죽어보려던 남기혁은 선명한 색채에게 이끌려 그를 따라 나왔다.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거대한 굉음과 돌가루 섞인 엄청난 먼지바람이 오감을 채웠음에도 그 색채는 전혀 퇴색되지 않았다.

“…젠장.”

안타까움이 깃든 먼지 묻은 얼굴이 참 예뻐 보였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생존자를 잃게 된 씁쓸함이 진하게 다가왔다. 생기를 반영한 붉은 입술이 더는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을 때, 기혁은 저도 모르게 그에게 손을 뻗고 말았다.

어쩌면 그때 반해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내쉬며 그 무렵의 준성을 머릿속으로 수없이 그려보았다.

흑백의 세상 속에서 고고한 빛을 내던 맑은 눈동자, 자신에게 내밀어준 가느다란 뼈마디의 고운 손, 어떠한 위기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목소리, 옆에 선 것만으로도 또렷하게 느끼고 마는 그의 생기.

그 모든 게 남기혁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강준성, 그마저도.

“씨…발…. 하아, 읏….”

성기를 쥐지 않은 손이 시트 없는 매트 위에서 힘주어 곱아들었다. 손톱이 매트를 찢을 것처럼 까드득, 하는 소리를 내었다.

기혁은 셔츠를 약간 들춰둔 자신의 아랫배에 질척한 액이 묻는 걸 느꼈다. 윤활유도 필요 없을 정도로 흘러나온 액이 기혁의 흥분을 더욱 부추겼다.

헐떡이는 자신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날의 회상을 이어갔다.

준성에게 뻗은 손이 그의 목에 닿았을 때, 기혁은 자신의 성기가 지금처럼 바짝 서버렸었다는 걸 알고 있다.

강하게 틀어쥔 하얀 목에 핏줄이 돋고 움직임을 방해당한 목울대가 손바닥 안에서 움찔거릴 때마다 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손을 떼려고 바둥거리는 모습이 병원 건물을 빠져나올 때와 같이 필사적이라, 도저히 힘을 거둘 수가 없었다.

제대로 호흡하지 못해 거칠기만 하던 숨소리가 점차 작아질 무렵.

자신에게서 떨어지기 위한 발버둥이 매달림으로 바뀐다 싶을 때쯤, 맑았던 눈동자가 탁해지고 가녀린 육체가 힘없이 늘어졌다.

“씹, 크흑…!”

남기혁의 부푼 성기가 절정에 치달았다.

돌처럼 단단해진 물건이 크게 움찔한 순간, 배에 진득한 액이 후두둑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자신의 체온이 이렇게 높았던가, 싶을 정도로 뜨거운 액이 움찔거리는 뱃가죽을 끊임없이 두드렸다.

그때도 아마 배를 드러낸 채 성기를 꺼내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사정했을 것이다. 그땐 사정하고 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넋이 나가 있어서 바지 속에서 싸버리고 말았지만.

“하아….”

강준성의 생기가 제 손아귀에서 사라지던 그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떠올리는 족족 흥분해버려, 가끔은 그때처럼 손도 대지 않고 사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사정의 후희에 젖어 흥분한 숨을 흐트러뜨리던 기혁이 느릿하게 손을 들었다. 천장에서 내리쬐는 빛을 받은 탁한 정액이 유독 또렷하게 보였다.

혀끝을 내밀어 제 손에 흐르는 정액을 훔치듯 핥아보았다. 비릿한 맛이 났지만, 목이 졸린 준성의 입가에서 흐르던 타액을 상상하니 또다시 아랫도리가 뻐근해지려 했다.

하지만 곧 전신의 열기가 싸늘히 식어버렸다.

생기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준성의 얼굴은 자신의 세상을 다시금 흑백으로 물들였다. 그 기억만은 지금도 너무 끔찍했기에,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준성아….”

다정하게 준성의 이름을 부르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남기혁의 입술이 준성을 칭하는 다른 단어를 입에 담았다.

나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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