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131)화 (131/240)

- 131화 -

“크흡, 그게 무슨……! 컥!”

경오가 자신의 목을 틀어쥔 한서의 손을 떼어내기 위해 바둥거렸다. 그럴수록 오히려 목을 놓치지 않기 위한 손아귀의 힘 때문에 압박감만 더해질 뿐이었다. 

경오의 얼굴에 피가 몰려 새빨개질 무렵.

“이게 무슨 짓이야?!”

안에서 튀어나온 서창민이 한서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악력과 힘으로만 보자면 한서와 대등한 수준의 창민인지라 조금 버겁긴 해도 충분히 떼어낼 수 있었다.

거친 기침을 토하는 경오와 여전히 살벌한 눈빛의 한서 사이에 선 창민이 당황한 표정으로 상황을 살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창민의 질문에 한서는 대답 대신 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나이프를 닮은 예리한 눈빛이 창민의 긴장을 부추겼다.

창민이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의 경오에게 물었다.

“형, 무슨 일이에요?”

창민은 한서가 이렇듯 갑자기 이를 드러내는 데에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여태껏 봐온 도한서는 겉으로 보기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도 리더인 준성의 말에 묵묵히 잘 따라준 협조적인 일행이었다.

아니, 그냥 준성 외에는 안중에도 없어서 다른 일행에겐 일말의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준성의 제안이 아니었더라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일행의 구출에 손끝조차 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일행 중 한 명에게 살기를 내보였다.

일부러 건들지 않으면 반응조차 안 해줄 것 같은 무심하고 냉정한 사람이 열띤 눈을 하고 있는데 아무 이유도 없을 리가.

입을 닫은 한서 대신 경오에게 물었지만 그는 시선을 외면한 채 기침만 거듭했다.

“모, 몰라, 나도. 콜록! 갑자기 막 목을…….”

“몰라?”

한서가 차갑게 코웃음 치며 발을 뻗었다. 방 안에 들어온 한서는 문을 닫은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강준성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 죽이려고까지 했으면서 모르겠다고?”

“뭐?”

창민이 눈을 크게 뜨며 한서와 경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빨갛던 경오의 얼굴이 부자연스럽게 경직되었다.

“아, 아니야! 난 아니야!”

고개를 내저으며 아니라는 말을 반복하던 경오의 발걸음이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강한 부정, 자꾸만 돌리는 시선, 그리고 이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하는 듯한 본능적인 뒷걸음질.

경오의 반응을 본 창민이 굳은 얼굴로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형, 솔직하게 말해 봐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으응? 아, 아니라니까 너까지 왜 그래….”

추궁하자마자 기세 꺾인 음성과 함께, 눈동자가 오갈 데 없이 마구 흔들렸다.

경오의 심성이 심약하다는 걸 알고 있던 창민은 그의 어깨를 쥔 손아귀에 힘을 더했다. 어깨의 통증보다도 자신에게 가해지는 창민의 압박감이 뭘 뜻하는지 알아챈 경오가 겁먹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창민은 경오의 수상한 반응을 하나하나 주시하며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제가 형을 형으로 존중해줄 수 있을 때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 거예요.”

“윽…. 나, 나는…….”

무너져가는 경오의 얼굴을 바라보는 창민의 입 안은 한약이라도 삼킨 것처럼 씁쓸하게 변해 있었다. 경오에게 어떤 연유가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최소한 한서가 내뱉은 말은 ‘사실’이라는 거니까.

버스에서 새 일행과 만나서 이 모텔로 향하는 동안, 경오는 쭉 어두운 눈을 한 채 말도 거의 안 하고 있었다. 창민과 같은 방에 들어와서 씻고 쉬는 동안에도 혈색은 계속 좋지 않았고, 말을 걸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처럼 건성이었다. 몸이 안 좋냐고 물으면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어딘가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게 보였다.

오늘만 해도 많은 일을 겪었고 죽을 뻔하기도 했으니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이제 보니 다른 이유가 있었던가 보다.

하지만 경오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견디기 힘든 압박이 이어져도 순순히 모든 걸 인정하고 털어놓기란 절대 쉽지 않았다.

한서는 그런 경오를 지켜보다가 무언가를 꺼내어 던졌다.

자신의 발치로 굴러오는 작은 물건을 발견한 경오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가 얼른 손을 뻗어 물건을 집기 직전, 창민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이건…….”

물건을 든 창민이 눈가를 찌푸렸다.

그것은 중앙에 쌀알 정도 크기의 납작한 버튼을 둔 검은 사각 판이었다.

전체적인 크기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상당히 얇은 판이긴 했지만 접합부가 있는 거로 봐선 안에 뭔가가 들어있는 거로 보였다. 아마도 빨간 버튼과 연결된 기계장치일 것이다.

사각 판의 한쪽 옆구리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숨구멍 같은 아주 작은 구멍이 몇 개 뚫려 있었다. 통풍을 위한 것이라기엔, 안에 무언가 장치가 있을 걸 생각하면 오히려 이런 구멍이 고장의 원인이 될 수 있지 않나 싶었다.

사각 판을 눈으로 세세히 살펴보던 창민은 불현듯 검은색 도청기를 떠올렸다. 크기는 조금 다르지만 그것도 이처럼 납작한 검은 케이스 안에 기계장치를 심어두었다. 케이스의 재질도 같으니 아예 무관해 보이진 않았다.

한서는 검은 장치를 보고 사색이 된 경오를 노려보며 창민에게 입을 열었다.

“눌러.”

창민은 경오의 안색을 한번 살펴보다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기계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각 판의 옆구리 쪽, 구멍이 난 부분을 귀에 바짝 가져다 대고 나서야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 * *

때는 7일째 오후 4시가 조금 지났을 즈음이었다.

손남섭 몰래 그의 휴대폰을 조심스레 분해하던 황경오는 내부에 숨겨져 있던 검은색 사각 판 형태의 기계장치를 두 개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는 휴대폰의 SD카드 투입구에 조금의 여유도 없이 딱 맞춰놓은 듯했고, 다른 하나는 메인보드의 납작하고 비좁은 여유 공간에 붙어 있었다.

수상한 두 개의 물건을 세밀한 작업을 통해 조심히 분해해본 경오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나는 음성 수집을 위한 장치가 들어있는 도청기로 보였고, 하나는 아주 작은 초소형 녹음기가 분명했다.

‘이건 좀 이상한 배치인데…….’

녹음기가 들어있던 메인보드의 위치는 예민하기 짝이 없는 인터넷 수신부 근처였다. 단순한 플라스틱도 아니고, 초소형 녹음기 같은 기계장치가 이런 자리에 들어있었다면 인터넷 수신이 원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설치한 사람은 아무렴 상관없었을 거다.

어차피 좀비 사태가 일어나서 인터넷이 모두 끊기고 나면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을 테니까.

이 휴대폰의 주인이 직접 심었든, 누군가가 몰래 심었든 말이다.

긴장한 얼굴의 경오는 우선 현재까지도 아슬아슬 작동하고 있는 도청기를 자신의 병실 서랍에 넣어두었다. 최대한 아무 소리도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도청기를 치운 후에야 녹음기를 손에 들었다.

소리가 흘러나갈 수 있도록 작게 뚫어둔 구멍을 무시한 채, 발가벗기듯 까뒀던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케이스를 벗겼다고는 해도 워낙 작은 소리라서 출력부에 귀를 바짝 대야만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잘 발견해줬어.

귀를 기울이자마자 원치 않는 칭찬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어딘지 익숙하다고 생각하던 경오는 이어지는 음성에 다시 집중했다.

-이걸 가장 처음 들을 사람은 너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황경오.

숨어있던 녹음기를 작동시키고 녹음된 음성을 들을 사람이 누구인지 상대는 이미 짐작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어떻게?

녹음의 주인에게 이름까지 정확히 불려버린 경오의 눈이 분해된 휴대폰에 닿았다. 그와 함께 이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아채고 말았다.

딱 한 번 들었음에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목소리.

가능하다면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무서운 사람.

이 녹음된 음성의 주인은 분명 준성에게 남긴 휴대폰 속 영상의 ‘남기혁’이라는 살인마였다.

그걸 깨닫자마자 등골이 뻣뻣해지는 걸 느꼈다.

만약 정말 남기혁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준성의 꿈속에서 함께 생존하며 그의 동료로 활동했던 사람이라는 걸.

남기혁이 준성의 말대로 그처럼 꿈을 보고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황경오를 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고, 자신의 특기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을 법했다. 생각해보면 혈액원에서 원장의 얼굴 없이도 연구실에 들어올 수 있을 걸 확신하는 사람처럼, 보란 듯이 연구실 CCTV에 준성을 향한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기계를 잘 다루고 조작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일행, 황경오를 염두에 둔 거라면 그러한 기행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이 휴대폰의 수상함을 느끼고 분해할 수 있는 사람은 준성의 일행 중에서 오직 자신뿐이니까.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하는 경오에게 상대가 희미한 웃음소리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상으로 기회를 줄까 해.

녹음된 음성이 태연하게 말을 내뱉었다.

-네 엄마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기회.

경오의 뻣뻣해진 등골에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얼음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뒤이어 전신의 피가 모두 빠져나가는 듯한 극한의 공포와 충격이 경오의 머리를 통째로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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