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갑작스러운 진동에 버스 안의 모든 이들이 몸을 움츠린 채 긴장한 내색을 보였다. 어쩌면 좀비들의 습격보다도 더 무서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곳은 지하 3층.
일직선으로 뛰기만 하면 되는 지상 1층이 아니다.
빠져나갈 수 있는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진 미지수였지만 지상까지 빙빙 돌아서 나가기엔 굉장히 촉박한 순간인 것만은 확실했다.
땅을 울리는 진동 때문에 잠깐 주춤했던 준성과 한서의 다리가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두재가 탑승하자마자 앞문을 닫지도 않은 채 출발한 버스는 주차된 차들을 빙 둘러 지나서 준성과 한서가 달려오는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활짝 열린 앞문의 계단에 붙어서 초조하게 준성을 바라보고 있던 대욱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그의 이름을 삼키며 제발 건물이 더 버텨 주길 바랐다.
쿠구궁-!
또다시 바닥이 울렸다.
이번엔 아까 들렸던 굉음보다 조금 더 가깝게 들려왔고, 진동 또한 한층 강했다.
흔들리는 바닥 때문에 순간적으로 휘청이던 준성을 한서가 붙잡아 안듯이 부축했다. 그 상태로 여전히 다리를 멈추지 않으며 물었다.
“업고 달려 줄까?”
이럴 때마저 태평하다니.
준성은 새삼 도한서의 머릿속이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손전등의 조악한 불빛 하나만 믿고 내달리던 준성이 힐끗 한서의 널찍한 등과 어깨를 바라보았다.
준성의 백팩은 언제나 한서가 강제로 빼앗듯이 메고 다녔으나, 지금만큼은 창민에게 있었다. 준성과 한서가 후발주자이니 여차하면 더욱 빠른 달리기가 요구될 거라며, 이런 거라도 양보해 달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승낙해 버렸다. 덕분에 한서의 넓은 등은 준성 하나쯤 업는다고 해도 거뜬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준성은 코웃음을 치며 눈을 돌렸다.
“입 다물고 그냥 달려.”
안 그래도 제게 과할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는 도한서인데, 멀쩡히 뛰는 것 하나 못해서 그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사이, 또 한 번 이어진 굉음과 여진 때문에 바닥이 물렁물렁해지기라도 한 것처럼 달리기가 힘들었다. 자신들 쪽으로 달려오는 버스를 보며 조금만 더 달리면 된다고 생각할 때쯤.
크학-!
뒤쪽에서 좀비들의 괴성이 들렸다.
하나둘, 그 괴성은 위태로운 건물의 흔들거리는 소리보다 확연히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귀를 때리던 경적이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땅이 크게 흔들리면서 그 진동으로 운전대와 시트 사이에 끼워둔 쇠파이프가 떨어지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등 뒤로 하나둘 늘어나는 괴성이 그 증거다.
이제 와서 발을 멈추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버스의 시동까지 끈다 하더라도 이미 먹잇감을 찾아 달리기 시작한 좀비들을 막을 순 없었다.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어차피 무너지는 건물에 깔려 죽게 될 게 뻔했다.
‘젠장!’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대로 달리는 수밖에 없다.
가까워지는 버스의 배기음.
목덜미를 마구 물어뜯을 것처럼 무섭게 늘어나는 괴성.
긴장과 흥분으로 더욱 빠르게 차오른 숨소리.
무너져가는 건물의 둔탁한 비명.
어둠 속에서 극히 예민해진 청각은 잡아내는 소리마다 온 신경을 쭈뼛 서게 만들었다.
그나마 그 소리 속에서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도한서의 태연한 숨소리 덕분이었다.
도한서의 존재는 이 어둠 속에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들게 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도한서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여길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누가 이딴 곳에서 죽을 줄 알아?!’
도한서도 살려야 하고, 동생도 만나야 하고, 장대욱과 다른 일행들도 모두 무사한지 두 눈으로 확인할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선 다리가 부러져 박살이 나더라도 반드시 저 버스에 올라타서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크하아-!
캭- 캬학-!
뒤에서 들려오는 괴성이 지축의 울림보다 더 크게 들린다 싶을 무렵.
들이박을 것처럼 달려오던 버스가 운전수의 능숙한 기교에 의해 단번에 옆으로 섰다. 정면을 비추는 준성의 손전등 불빛 한가운데에 있는 건, 활짝 열린 탑승구에서 자신들을 기다리는 누군가였다.
“준성아, 빨리!”
야간투시경을 벗어낸 장대욱이 단번에 끌어 올려 줄 것처럼 손을 쭉 뻗었다. 준성은 현실에서 다시 만난 장대욱에게 괜히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 입술을 꽉 깨물며 그 손을 잡으려 했다.
그때, 갑자기 옆에서 몸이 확 붙들려서는 상대에게 폭 안기게 되었다. 이어진 건 숨이 막히는 듯한 컥, 하는 소리와 휙 나가떨어지는 검은 그림자였다.
좀비 무리 중에서 가장 빠르게 달려오던 한 명이 준성을 공격하려고 달려든 것이었다. 준성이 대욱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다면 한서는 주변의 위험한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랬기에 갑자기 달려든 좀비 한 명쯤, 눈 깜짝할 사이에 짐짝 대하듯 차 버릴 수 있었다.
좀비들에게서 준성을 방어하듯 품에 안고 있던 한서가 대욱을 노려보았다.
“비켜.”
어둠 속에서도 여실히 느껴지는 차가운 눈빛에 움찔하던 대욱이 얼른 한발 물러났다. 준성의 몸을 두 팔로 감싸 들어서 버스 입구 계단에 올려준 한서가 두 번째로 빠르게 달려든 좀비를 겁도 없이 발로 차내며 그제야 올라탔다.
“출발해요!”
대욱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버스가 시원한 배기음을 내며 반대쪽 길로 달려갔다.
쿠구구궁-!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른 소리와 큰 진동이 느껴졌다. 그 여파로 인해 지하를 달려 올라가는 버스가 경로를 이탈할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너무 흔들려서 안으로 들어갈 새도 없이 입구 근처 바닥에 웅크려 있던 준성은 자신의 허리를 감싸는 팔을 느꼈다. 문이 닫힌 입구 계단에 몸을 숙인 채 바로 옆의 기둥을 붙잡고 있던 도한서였다. 차체가 이리저리 사정없이 흔들리는 중이라, 혹시나 다칠까 봐 굳게 붙잡아 주는 듯했다.
입구 계단에 있는 한서야말로 얄팍한 문을 뚫고 떨어져 나가게 되는 건 아닐까 우려하던 준성이 제 허리에 둘린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 손전등 불빛까지 꺼 버린 깜깜한 어둠 속에서 도한서가 웃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쿠궁-! 쿵-! 쿠궁-!
이젠 버스 안에서도 귀가 아플 정도의 굉음이 들렸다. 야간투시경을 쓰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었지만, 현재 그들이 달리는 길에는 부서진 천장에서 떨어지는 콘크리트 덩이가 미사일처럼 떨어져 내리는 중이었다.
운전수가 근 20년간 고속버스를 몰아온 베테랑 기사가 아니었더라면 저 콘크리트 덩이에 벌써 깔려 버렸을지도 모른다. 유연하게 잘도 피하는 대신, 차체가 워낙 이리저리 흔들려 대서 실내의 이들은 반쯤 죽을 맛이긴 했지만.
퍽, 퍽퍽!
캬흑-!
하악!
어둠 속을 달리는 버스가 뭔가를 치는 느낌이 나고, 창문에 가로막힌 탁한 괴성이 짧게 울리다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 소리의 정체가 뭔지 알기에,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몸을 더욱 웅크리기 바빴다. 서성이는 좀비들을 무섭게 들이박고 쳐내는 걸 두 눈으로 봐야 하는 운전수 혼자만이 식은땀을 흘리며 더욱 강하게 액셀을 밟았다.
버스가 지하 1층에 다다랐을 때.
쿠구구구구궁-!
기어코 지하 1층의 천장 일부가 우르르 내려앉았다. 운전수는 저 멀리서부터 그가 달리는 방향, 즉 출구를 향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천장을 보며 외쳤다.
“다들 뭐든 꽉 붙잡아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차가 마구 흔들리며 강한 배기음을 터뜨렸다. 주차장이 아니라 도로를 달리는 것 같은 빠른 속력도 그렇지만, 배기음을 듣고 버스를 향해 몸을 날리는 좀비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굉장히 무서웠다.
캭! 카악-!
버스의 정면 유리와 차체 사이의 홈에 손을 넣어 매달린 좀비 하나가 이를 딱딱거리며 괴성을 냈다. 다른 좀비들은 모두 쳐내거나 밟고 지나갔는데, 저 좀비만은 근성 있게 매달려서 방해 중이다.
하필 붙은 쪽도 운전석 바로 앞이라, 고개를 들며 기웃거리는 그 좀비가 상당히 거슬렸다.
하지만 운전수는 과감한 베테랑이었다. 그는 핸들을 유려하게 홱 돌려서 차체를 드리프트 하듯이 꺾었고, 그 여파로 날아간 좀비가 때마침 천장에서 떨어지던 콘크리트 덩이에 맞아 한 번 더 날아갔다.
자신의 기술로 좀비를 멋지게 떨어뜨렸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얻은 것일까.
패기롭게 콧김을 한번 킁, 하고 내뿜은 운전수가 차체를 금세 똑바로 돌리며 바짝 기합을 넣었다.
“으랴아-!”
액셀을 부숴 버릴 것처럼 밟고서 핸들을 꽉 잡았다. 이미 버스의 바로 뒤쪽까지 무너지고 있던 터라, 조금도 지체할 틈이 없었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사방에서는 마구 떨어지는 돌덩이 소리가 들리고, 바닥은 아래로 꺼질 것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 안에서 필사적으로 내달리는 버스의 배기음은 일견 아등바등 살아가는 어느 누군가의 거친 숨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윽고 버스가 지상으로 빠져나가는 회오리 같은 출구에 앞바퀴를 얹었다.
굴곡진 벽면에 버스 앞쪽 귀퉁이가 쓸리긴 했지만, 다행히 빗물 깔린 축축한 지상에 완전히 올라설 수 있었다.
헤드라이트조차 없는 버스가 검은 뱀의 입을 닮은 지하에서 탈출하자마자.
쿠구궁-!
뱀이 아쉽다는 듯이 입을 다무는 것처럼, 주차장의 입구가 완전히 무너져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