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여자는 자신의 동생에 대해 말을 이었다.
그녀의 동생은 예전부터 한탕으로 목돈을 버는 데에 집중하며 위험한 일에도 곧잘 발을 담갔다고 한다. 그래서 시청에서 오래 일하며 꾸준히 돈을 모아 오던 여자와 자주 싸우기도 했지만 가족이라고는 둘뿐이었기에 상당히 끈끈한 사이였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여자가 봐도 된다고 허락해 준 동생과의 메시지는 하루도 거른 날이 없었고, 내용 또한 서로를 걱정하거나 격려하는 것뿐이었다.
좀비 사태가 발생하기 일주일 전.
동생은 남기혁이라는 이름의 형님 밑에서 일하는 중이라며, 미친 사람 같긴 하지만 엄청난 돈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며 들뜬 분위기를 담아 메시지를 보냈다. 여자는 이번엔 또 무슨 위험한 짓을 하는 거냐고 추궁했고, 동생은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더불어 이번 일만 잘 끝나면 해외로 함께 나가서 살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남겼다.
누가 봐도 수상한 느낌이라,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당장 그만둬’라고 말하기도 하고 경찰에 신고할 거라는 압박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자 동생은 도리어 크게 화를 내며 이후의 메시지들을 충분히 읽고도 답장하지 않았다.
불안감 속에서 고민하던 여자가 신고를 결심한 날이자, 좀비 사태가 일어났던 1일째 아침.
여태 무시하기만 하던 동생이 갑자기 메시지를 보내왔다. 오늘은 출근하지 말고 집에만 붙어 있으라는 내용이었다.
뜬금없는 명령에 여자가 화를 내며 전화를 걸었는데, 어딘가에 숨어서 통화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춘 동생이 제발 제 말을 들어 달라는 말을 남기며 전화를 끊었다. 이후로는 아무리 전화를 걸어 봐도 통화할 수 없는 상태라며 거는 족족 끊어졌다.
여자는 승진을 목전에 둔 상태라서 지극히 성실한 모습을 보여야만 했고, 연락을 받은 것도 출근을 앞둔 시간이었다. 뉴스나 인터넷 매체 어디에도 인한시나 시청과 관련된 위험 기사조차 없다는 걸 확인한 여자는 동생이 여태 그랬던 것처럼 그녀 또한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시청으로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한창 일에 집중하느라 휴대폰을 제때 확인하지 못하고 있던 여자는 잠깐의 여유 시간에 동생의 나머지 메시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은 준성이 제일 처음 읽어 내려갔던 ‘좀비 바이러스’에 관한 언급과 일이 터졌을 때 시청 안에서 어디로 어떻게 도망쳐야 살 수 있을 거라는 믿기 힘든 정보였다.
여자는 동생이 허무맹랑한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시청 안으로 달려온 좀비들이 사람들을 가차 없이 물어뜯는 걸 보기 전까지만 해도.
여자는 좀비 사태를 미리 예견하고 부하들에게 이에 관한 정보를 준 남기혁이야말로 좀비 바이러스의 원흉이라고 생각했다.
조작했다고 보기 어려운 오랜 대화 내용과 여자가 혹시 몰라 녹음해 둔 동생과의 마지막 통화 내용은 그녀의 말이 ‘진실’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걸 봐줘.”
여자는 피가 말라붙어 있는 꼬깃꼬깃한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3일째에 그놈들이 학살한 대피소 현장에 놔두고 간 내 동생 사진이야.”
여자의 붉은 눈가에서 기어코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만큼 폴라로이드 사진 속 상황은 암담했다.
여자와 상당히 닮은 30대 초반의 남자가 눈을 반쯤 뜬 채 머리를 짓밟히고 있었다. 구타를 당했는지, 사진에 나온 얼굴과 상체에 맞은 흔적과 피가 꽤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밧줄에 묶여 있는 몇 사람이 보였는데, 그들 모두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그들이 보는 앞에서 본보기 같은 느낌으로 남자에게 폭력을 쓴 것 같았다.
준성은 그 안에서 한 명의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는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김태주 아저씨….’
2일째 때 도로 한복판에서 만나서 인한병원까지 함께 왔던 남자이자, 구조헬기에 태워 보낸 생존자였다. 그런 그가 사진 구석에서 질겁한 얼굴로 몸을 웅크리고 있다.
새벽에 두재 일행을 습격했을 때, 도청기를 심은 남자 외에도 여자까지 가만히 내버려 둔 이유를 알 만했다.
‘내가 네 손 안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
구하려고 했던 생존자의 안위를 보여주는 사진, 게다가 이걸 가져온 건 남기혁이라는 변수와 연결된 인물로 인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여자였다. 그녀의 일행은 남기혁이 의도적으로 살려둔 남자, 그리고 꿈속과 달리 크게 다친 곽두재였다.
준성은 자신을 보며 조소하는 남기혁의 얼굴을 떠올리며 입가를 떨었다.
여자가 준성에게 건넨 사진을 보며 끔찍함에 눈살을 찌푸리던 일행 중, 그녀와 일주일을 보낸 곽두재가 화를 참으며 물었다.
“이걸 왜 진작 말하지 않았습니까?”
“말할 수 없었겠죠.”
여자 대신 준성이 대답했다.
“아저씨는 남기혁의 부하인 저분 동생이 직접 이름까지 언급한 사람이에요. 아저씨와 함께 있으면 안전할 거라는 말도 했죠. 그러니 사실은 남기혁과 한패가 아닌지 의심했을 거예요.”
준성의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인 여자가 눈가의 눈물을 훔치며 두재를 바라보았다.
“새벽에 두재 씨 팔을 그 꼴로 만든 놈들이 남기혁 쪽인 걸 알았다면 좀 더 일찍 말했을 텐데……. 의심해서 미안해요.”
일주일간 좋든 싫든 많은 도움을 받았던 여자였다. 그간 고마워도 의심 때문에 입을 닫고 있던 여자는 그제야 두재를 향해 머리를 숙여 보였다.
“아닙니다. 나도 유슬 씨에게 미안해해야 할 일이 있어요.”
두재는 자신에게 머리를 숙인 임유슬을 다독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붕대에 감긴 잘린 팔을 들어 보였다.
“준성 씨에게 들어 보니 이 팔을 잘라 낸 그놈이 남기혁이었습니다. 유슬 씨 일을 알았더라면 더 죽기 살기로 붙잡았어야 했는데,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놈이 남기혁…….”
눈을 크게 뜬 채 새벽에 만난 무서운 살인마를 떠올리던 유슬이 이를 꽉 깨물며 분노를 드러냈다.
“차라리 잘됐어요. 만약 동생을 찾았는데 혹시나 잘못됐다면… 제 손으로 죽여 버려야 하니까요.”
다른 일행들 역시 유슬의 분노에 공감하는 눈치였다.
단 한 사람, 도한서만 제외하고.
한서는 유슬의 동생과 일부 생존자들이 찍혀 있는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는 웬일로 준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었다.
* * *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남자 손남섭.
동생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과 남기혁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를 갈고 있던 여자 임유슬.
의심스럽던 두 사람의 결백이 드러나자 준성은 눈에 띄게 안심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에게까지 꿈에 관한 일을 늘어놓진 않았다. 다른 일행들에게도 그의 꿈에 관한 일은 반드시 비밀로 해 달라고 당부했다.
준성은 자신의 꿈에 관해 누군가에게 말해야만 한다면 꿈속에서 이미 검증된 사람들에게만 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결백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들이 꼭 자신의 비밀을 지켜 줄 거라는 보장도 없고, 이후에 위험해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저들이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으니 최대한 신중해야 했다.
“그래도 다행이야.”
휴게실 테이블에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일행을 바라보던 준성이 안도의 목소리를 흘렸다. 반면 그의 눈은 차갑고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밖으로 내버리지 않아도 돼서.”
준성의 말은 명백한 ‘진심’이었다.
만약 손남섭과 임유슬이 남기혁의 스파이였다면 준성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한서는 준성의 냉정함을 알기에, 그의 머릿속을 엿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겉으론 누구도 이길 수 없을 것처럼 연약해 보이면서도 그 안은 굉장히 단단하고 무서운 사람이다.
준성의 속을 완벽히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자신뿐이었다. 준성 또한 그걸 알기에 자신에게만 이처럼 본모습을 드러내 주고 있다.
도한서로서는 상당히 기꺼울 수밖에 없었다.
“이제 채이가 와도 안심할 수 있겠어.”
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는 준성의 얼굴에 조금씩 긴장이 담겼다.
곧 두 번째로 비가 그치는 시간이 될 테니, 어쩌면 그 틈을 타서 이곳까지 올 수도 있었다.
준성은 자신의 동생 강채이와 친구 장대욱을 기다리며 한동안 창밖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비가 세 번 그칠 동안 병원 주변엔 어떠한 생존자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행 중 그 누구도 차마 준성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동생과 부득이하게 헤어진 준성이 그녀와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말을 들은 유슬은 도중에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정작 준성은 입매를 굳게 다문 채 충혈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11:48 PM]
푹 가라앉은 분위기 속.
7일째가 거의 끝나 가던 즈음이었다.
“준성아!”
“준성 오빠!”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준성의 몸이 한계에 다다라 쓰러지고 말았다. 옆에서 떠나지 않고 있던 도한서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준성의 몸을 받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