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인한시의 한 폐공장.
먹구름으로 채워진 하늘 때문에 아직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은 어두우면서도 음습하기만 했다.
이에 분위기를 맞추듯이 폐공장 주변에는 시체들이 난잡하게 늘어져 있었다.
머리 일부가 뭔가에 의해 터져나갔거나 날카로운 칼이 박혔던 흔적을 달고 있는 그들은 빗물에도 씻겨나가지 않는 붉은 피막 덮인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런 시체들 위로 다섯 명의 남자들이 볼썽사납게 나뒹굴었다.
“자, 잠깐만요! 살려 주세요!”
쓰러지자마자 얼른 몸을 일으킨 남자가 자신에게 겨눠진 총구들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소음기처럼 장착한 차량용 엔진 오일 필터의 작게 구멍 난 바닥 부분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다시 마, 맡겨 주시면 이번엔 꼭……!”
남자가 말을 채 잇기도 전에 귀를 때리는 탁-하는 소리가 들렸다.
엔진 오일 필터가 충분한 소음기 역할을 해 주고 있었기에 총탄이 발사될 때 나는 큰 울림소리가 나진 않았지만, 지척에서 들리는 고막 때리는 소리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는 해외에서 정식으로 판매되는 소음기를 장착해도 마찬가지인 점이라서 감안해야만 했다.
그래도 이게 있었기에 소리가 멀리 퍼지지 않아서 어느 정도 거리 이상의 좀비들은 총을 쏴도 알아채지 못했다.
이제까지 동료였던 자들에게 바로 총을 쏘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이들을 대신해 가장 먼저 방아쇠를 당긴 덩치 큰 남자가 뒤이어 총구의 방향을 바꾸었다. 가장 먼저 총을 맞아 죽은 남자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러 갔었던 다른 네 명 역시 결국 똑같이 처리당했다.
아직 뜨거운 피가 흐르는 갓 죽은 머리채 하나를 우악스러운 손아귀가 거침없이 잡아 올렸다.
“또 퍼붓기 전에 빨리빨리 치워.”
임무에 실패한 동료를 서슴없이 처리한 남자가 그리 말하며 먼저 움직이자, 다른 이들도 뒤따라 주변 시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갓 죽은 다섯 남자의 시체는 빗물에 싸늘히 식어 버린 좀비들의 것과 함께 동료들의 손으로 쓰레기처럼 한곳에 던져지게 되었다.
폐공장 밖의 남자들이 비가 멈춘 틈에 시체들을 분주히 모으던 사이.
그들을 둘러보고 있던 덩치 큰 남자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폐공장 안에는 원래 딱히 이렇다 할 게 없었다. 관리되지 않은 광활한 공간에는 그들이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있던 몇 개의 드럼통과 건축 폐기물 약간이 전부였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한가운데에 새것처럼 깨끗한 침대 매트 하나가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었다. 매트 옆에는 단단한 철 기둥이 있었는데, 이와 연결된 다듬어진 밧줄이 침대 위에 둥글게 말려 있고 그 옆에는 경찰이나 쓸법한 거친 수갑도 떨어져 있다.
의문을 들게 하는 물건들을 힐끗 바라보던 덩치 큰 남자가 마저 걸음을 옮겼다. 그는 침대 매트 바로 옆에 배치된 의자에 앉아 있는 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형님, 오늘은 이대로 대기하실 겁니까?”
한두 해만 지나면 충분히 40대에 접어들 것처럼 보이는 남자가 그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자에게 스스럼없이 ‘형님’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음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그 정도로 두 사람의 상하관계는 나이와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다.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있던 남기혁이 고개를 들었다. 붕대에 감긴 왼쪽 눈 대신 멀쩡한 오른쪽 눈이 말없이 남자를 돌아보았다.
“왜? 모처럼 쉴 수 있는데, 쉬기 싫어?”
빙긋이 웃어 보인 기혁이 손에 들고 있던 안경을 집어 썼다. 새벽에 박살 났던 것과 똑같은 안경으로, 미리 준비했던 여분이었다.
하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시금 안경을 벗고서 그걸 남자에게 툭 던져 버렸다. 망가져도 상관없다는 듯이 건성으로 던지는 품새에도 기꺼이 안경을 받아든 남자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자정까지는 여기서 움직이지 않을 거야. 넌 그거 갖고 그때 잡아 둔 안경사나 데리고 나갔다 와.”
남기혁의 측근 중 하나인 우석진은 그의 시력감소에 관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매일같이 자연스레 이어질 시력감소를 감안해서 순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안경들을 준비하도록 명령받은 게 그였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준비했던 안경들도 이제 더는 맞지 않게 되었다. 시력의 퇴화는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도 빨랐다.
‘말리는 게 맞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남기혁은 측근들의 제안과 건의를 나름 즐기는 편이었다. 힘이나 말로 찍어 눌러 묵살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정말 쓸만한 의견에는 환하게 웃으며 칭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특정 인물’과 관련되지 않은 부분에 한해서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특정 인물’과 연결된 부분에 관해서는 누구의 참견도 용서치 않았다. 일례로, 네 명이었던 최측근이 현재는 자신을 포함해 단둘뿐이다.
남기혁의 손에 의해 벌써부터 눈을 감고 싶지는 않았기에, 석진은 감히 걱정의 말조차 내뱉을 수가 없었다.
석진은 입 안을 맴도는 여러 말을 삼키며 순순히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뒤이어 시력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오늘 밤에라도 인원을 다시 추려서 보낼까요?”
“아니, 됐어. 인원이 꽤 많다며? 30명이랬나, 40명이랬나.”
“강채이를 포함해 총 38명으로 파악 중입니다. 하지만 노인과 아이들도 있어서 실질적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인원은 반 정도밖에 안 됩니다.”
석진의 말에 기혁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걸 고려해서 보냈던 건데도 된통당해서 왔잖아. 게다가 지금쯤이면 다른 데로 이동했을걸. 다시 찾아서 포획하기엔 인력도 그렇고 시간도 꽤 걸려.”
“하지만 강채이가 이대로 그쪽과 합류하게 되면 여기서 이렇게 기다리는 게 아무 의미도 없어집니다.”
“음, 그치. 맞아.”
웃으며 말한 남기혁이 두 팔을 높이 들고서 한껏 기지개를 켰다. 그의 얼굴에선 자신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것에 대한 분노나 걱정의 빛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기다릴 거야. 와 주기만 하면 정말 그걸로 끝낼 거거든.”
한쪽뿐인 눈을 아련하게 내리깐 남기혁이 석진을 돌아보며 웃었다.
“세상일은 참 마음대로 되는 법이 없어. 그치?”
해맑은 얼굴과 달리 늙은이 같은 소리를 내뱉은 남기혁의 얼굴에 씁쓸한 빛이 스쳤다.
“일주일 내내 느꼈던 것처럼 오늘도 마찬가지일 거야.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질 않지.”
“형님….”
남기혁이 평소와 달리 어딘가 처져 보인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을 건네려던 석진은 돌연 그가 음산하게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걸 왜 더 절실히 느끼게 되는 줄 알아?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래. 뭐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있으니까 그에 딱 맞는 계획이란 걸 세우게 되는 건데, 정작 어딘가 톱니 하나 빠진 것처럼 맞물려지질 않으니까 더 짜증 나는 거야.”
어린아이 같은 웃음소리 사이로 그의 광기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 진짜… 너무 재밌게 말이야….”
기혁의 눈동자에 점차 먹구름을 닮은 탁기가 맺혔다.
“오늘까지 준성이의 전제 조건들을 모조리 박살 내고 싶었는데… 그건 좀 아쉽네.”
강준성이 현실의 루트를 짤 때 깔아뒀을 전제 조건의 반 정도가 살아남았다. 최소한 강채이의 포획이나 곽두재를 살해하는 거라도 성공했어야 했다. 이대로면 강준성이 계속해서 자신을 피해 다닌 끝에 결국은 이 재난사태가 마무리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놔둘 생각은 절대 없었다.
“자료는 전부 불태운 거 맞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예, 물론입니다.”
인한혈액원 지하 연구실의 연구자료.
준성의 꿈을 ‘엿볼 때’부터 짐작했던 그 해결책이라면 직접 가져와 불태웠다. 준성은 어차피 다른 일행들을 위해서라도 안전한 루트로만 움직일 테니, 그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가서 해결책을 취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꿈이 언젠가 현실이 될 거라는 걸 모르고 있었던 준성은 기껏해야 당일에 움직이는 게 전부였겠지만, 이쪽은 그보다 며칠 앞서 준비해둔 것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비교적 위험함에도 충분히 혈액원 내부에 진입할 수 있었다.
좀비 사태의 해결책은 이미 사라졌다.
살아남은 연구원도 없고, 해결책의 정확한 위치와 연구실 문을 여는 법을 제공해준 혈액원 원장도 죽었다.
그러니 이대로 좀비 사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전역을 집어삼키고 더 멀리까지 퍼져가는 걸 그저 두고만 봐야 한다.
그런 절망적인 현실을 만들어버린 자신을, 강준성은 과연 어떤 눈으로 바라봐줄 것인가.
기혁은 준성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오싹함을 느끼며 자신의 목을 손으로 감싸 보았다.
꿈속에서 준성에게 몇 번이나 찔렸던 자리였다. 그의 목을 조르며 즐기던 자신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고스란히 담긴 칼날이 목젖과 성대를 찢어발기는 느낌이 지금도 생생했다.
‘아팠지. 아주, 많이.’
꿈속에서 고통을 느낄 수 없었던 준성과 달리, 남기혁은 스스로 아무것도 제어할 수 없는 반복되는 꿈속에서 그 고통을 모두 느껴야만 했다.
그렇게 복수를 위해 다가오는 칼날에 무참히 살해당하던 어느 날.
감겨가는 시야 속에서 이제껏 보지 못한 미소를 보았다.
너무나 아름답고, 맑았던, 이후로 다시는 볼 수 없었던 쾌락에 젖은 미소를.
“하아….”
긴 숨을 토하는 남기혁의 몸이 짧게 전율했다.
그 얼굴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