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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닷 (107)화 (107/240)

- 107화 -

드론을 따라 움직이던 곽두재는 슬쩍 눈을 들어 병원을 올려다보았다.

안전한 안내 덕분에 건물과의 거리는 가까워졌어도 7층까지의 높이가 있었기에 남녀를 구분하는 것까진 어려웠다. 그래도 몇 명이 창가에 서 있는지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다섯 명인가?’

병원 7층의 한 창가에 셋, 같은 층의 다른 창가 두 곳에 각각 한 명.

그들 외에 딱히 병원에서 밖을 내다보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1층부터 4층까지의 창가 너머로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배회하는 좀비들이 보였다.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찾아온 마지막 대피소, 인한병원.

기대한 것처럼 생존자들은 분명히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찾아왔다.

[갖고 계신 무전기의 인이어를 이쪽 무전기에 연결해주세요.]

[병원 진입을 돕겠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드론에 붙어 있던 쪽지 속 내용은 충분히 의심스러울 만했다. 보통 이런 상황에 무전기나 인이어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할까?

자신이 갖고 있는 무전기는 이미 어제 배터리가 다해버리고 말았다. 같은 일을 하던 다른 경호원 중에 응답하는 사람이 있진 않을까 하여 배터리가 닳을 때까지 수시로 무전을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절망적일 정도의 고요함뿐이었다.

배터리 없는 무전기와 다른 곳에는 쓸 일도 없는 전용 인이어.

오는 길에 짐만 되는 이 물건들을 버릴 수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배터리를 충전할 만한 곳만 찾아낸다면 다시 멀쩡히 쓸 수 있게 된다.

특히나 다른 무전기와는 주파수만 맞춰둬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기에, 지금처럼 보편적인 통신이 끊긴 인한시 내에서 이를 통한 무선연락은 아주 귀중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무전기의 존재는 이를 배달한 드론과 안내 쪽지만큼이나 놀라웠다.

‘새벽에 만났던 놈들일지도 몰라.’

새벽에 갑자기 나타난 괴한 무리와 싸울 때 격하게 움직이다가 무전기를 떨어뜨렸던 적이 있으니 그들이라면 충분히 알 만도 했다.

진통제의 약효가 끊겨가는 건지, 잘린 왼쪽 팔이 얼얼하게 아파지기 시작했다. 통증을 삼키던 두재는 이쪽을 지켜보며 지시를 내리는 7층의 청년을 의심스럽게 노려보았다.

두재의 경호 대상은 인한시장이었고, 공교롭게도 사건이 터졌을 때 그들이 있던 곳은 인한시청이었다. 경호원으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패닉을 일으켜 멋대로 행동하던 인한시장은 그대로 좀비들에게 물어 뜯겨버렸다.

인한시장은 그가 죽기 전, 위급할 때만 쓸 수 있는 인한시 외부와의 비밀회선을 이용해 밖과 연락을 취했다. 그 과정에서 두재는 ‘이미 군에서 인한시 봉쇄에 들어갔다’라는 정보와 인한시 외곽의 ‘임시 피난소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발 빠른 봉쇄로 인해 인한시 밖은 안전하다.

인한시 안의 사람들도 임시 피난소에서 감염 여부만 확인되면 안전한 밖으로 내보내 준다고 한다.

이는 두재와 생존자들에게 있어 아주 유용한 정보였다.

두재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생존자를 데려가기 위해 시청 안을 꼼꼼히 뒤져가며 살아있는 사람들을 모았다. 이때 합류했던 생존자 중 한 명이 영특하게도 인한시 대피소 목록을 출력해 왔기에, 시청을 탈출한 두재 일행은 곧바로 몸을 쉴 수 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1일째에 살아남은 두재 일행은 총 여덟 명.

그들 중 반 이상이 인한시에 있을 자신들의 가족을 찾길 원했고, 당시 그들이 있던 대피소는 그리 견고하지 못했다. 그래서 가까운 곳부터 시작하여 다른 안전한 대피소를 더 찾아보기로 했다. 그 과정에 생존자들을 더 모을 수만 있다면 좀비들의 위협도 그리 무섭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향하는 대피소마다 시체가 가득했다. 심지어 그 시체들은 좀비에게 물어뜯긴 상태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 휘두른 칼에 당한 흔적뿐이었다. 그곳에서 두재 일행이 얻은 거라고는 대피소에서 보관 중이던 보존식품 몇 가지와 극도의 경계심뿐이었다.

7일째가 된 새벽.

모처럼 찾아낸 가족에게 산 채로 물어뜯겨 버린 자들을 제외하고, 당시 살아 남아있던 건 두재를 포함한 다섯 명이 전부였다.

고작 두 개만 남아버린 대피소 목록과 그곳까지의 이동 경로를 짤 겸 불침번을 서고 있던 두재는 대피소에 갑자기 들이닥친 검은 옷의 괴한 무리와 맞붙게 되었다.

열 명의 괴한들은 정식 훈련을 받은 건 아닌 듯했으나, 뒷골목 같은 곳에서 몸으로 배웠을 법한 예측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보였다. 게다가 하나같이 잘 벼려진 군용 단검을 들고 있었기에, 한 발 쏘면 재장전까지 시간이 걸리는 테이저건을 제대로 사용할 틈도 없이 사방에서 칼날이 쳐들어왔다.

두재가 고전하는 사이, 함께 있던 다섯 명 중 두 명이 죽었다. 일행이 눈앞에서 둘이나 죽어버리는 모습을 봐버린 두재는 이성을 잃은 채 괴한들에게 달려들었고, 당황한 그들 역시 똑같은 수의 동료를 잃었다.

그대로 두재가 괴한 모두를 제압할 것 같던 그때.

“아저씨는 버거울 줄 알았어요.”

괴한들 사이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맑은 목소리의 남자가 다른 이들의 것과는 약간 다른 형태의 검은 군용 단검을 휘둘렀다.

날렵한 움직임과 묵직한 힘을 실은 휘두름은 이성을 잃은 두재마저 반응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유효타를 먹이기 위해 연이어 달려들었고, 그 결과 상대의 안경 쓴 눈에 제대로 한 방 먹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상대는 한쪽 눈에 박혀 들어간 렌즈 파편으로 인해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살의를 멈추지 않았다. 두재가 그에게 이제 그만 물러나라고 경고하려는 순간, 군용 단검을 미끼 삼아 휘두르던 상대가 대피소 벽면에 비상용으로 부착되어 있던 손도끼를 들어 불시에 공격을 가했다.

노렸던 건 목인 듯했지만, 시력을 보정하기 위한 안경도 망가졌고 한쪽 눈은 피에 절어서 눈꺼풀조차 열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불행 중 다행으로 손도끼의 날은 두재의 목이 아니라 그의 왼팔을 잘라버렸다.

팔이 잘린 두재는 주춤하긴커녕 오히려 더욱 광분했다. 이대로 물러났다가는 저 움츠린 무리에게 모두가 죽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두재의 무시무시한 괴력과 몸의 상처를 신경 쓰지 않는 광폭한 싸움에 질겁한 괴한들은 성한 곳 없는 동료들과 그들의 리더로 보이는 안경 쓴 남자를 챙겨서 부랴부랴 대피소를 떠났다.

남자는 대피소를 나서기 직전, 두재에게 웃음기 담은 살벌한 으름장을 놓았다.

“아저씨, 다음에 만나면 그 애 보는 앞에서 두 눈을 죄다 후벼 파줄게. 기대해요.”

남자가 말한 ‘그 애’가 누구일까?

남자의 살기 어린 말이 뇌리에 깊이 뿌리박히면서 의문을 남겼으나,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그들이 떠나고 나서야 자신의 몸을 돌아본 두재는 죽은 일행 사이에 날아가 떨어져 있는 자신의 왼팔을 바라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팔을 잘라낸 손도끼는 지금 두재가 가진 최대의 무기였다.

당시 그들이 머물던 대피소에는 조악한 구급약 몇 가지 이외에는 쓸만한 게 없었다.

대충 지혈만 한 채로 잘린 팔에 붕대를 두껍게 휘감은 두재는 마음이 급해졌다. 이때껏 지나온 대피소의 참혹한 상태와 새벽에 그들이 있던 장소를 습격한 자들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남은 두 곳의 대피소 중 하나인 인한대역 지하철 대피소에 다다른 두재는 또 한 번 큰 충격을 받았다.

이때껏 지나온 대피소들은 그저 안에 있던 자들을 빨리 처리하고 나가려는 잡다한 움직임이 많이 보였고 시체들 또한 중구난방으로 버려지듯 쓰러져 있었다.

그와 달리 지하철 대피소의 시체들은 누군가가 고의로 배치한 게 분명한 둥근 원을 만들며 죽은 채 앉아 있었다. 하얀 벽과 주변 바닥은 그들의 피로 그림을 그리듯이 마구 엉망이 된 상태다.

죽인 시체들로 모임 하듯 둥글게 앉혀두기까지 한 상대의 정신 상태에 치가 떨렸다. 이런 꼴을 만든 자들은 절대 정상인이 아니었다.

여러 대피소의 참상을 두 눈에 담고서 마지막으로 인한병원에 다다른 두재는 자연히 병원 안의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 자리에 있는 다른 두 명의 일행은 시청에서부터 지금까지 함께 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제외하면 다른 대피소의 생존자는 0명이었으니, 저 병원만 멀쩡히 생존자들이 있는 게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괴한 무리는 분명 인한시의 모든 대피소를 습격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믿어도 되는 걸까?’

어떤 자들인지 의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존자들을 죽이려고 대피소를 습격하던 괴한 무리라면 굳이 자신들을 살리려 하진 않을 텐데.

만약 사람을 살려놓고 직접 자신들 손으로 죽이는 걸 즐기는 괴이한 살인마들이라고 한들, 그들이 가진 귀한 장비까지 내놓으면서 병원으로 진입하도록 도울 것 같진 않았다.

무엇보다 다른 두 일행도 괴한들 때문에 잔뜩 지친 데다가 자신은 큰 부상까지 입었다. 이대로 쉬지도 못하고 제대로 치료까지 받지 못하면 어차피 얼마 가지 못한다.

-믿어주세요, 아저씨.

갑자기 들려온 청년의 목소리에 두재가 흠칫하며 놀란 얼굴을 했다.

마치 제 생각뿐만 아니라 의심의 원인까지 모두 이해한다는 듯한 너그러운 목소리였다.

-아저씨는 반드시 제가 살릴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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