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
다가온 한서의 입술이 준성과 맞닿았다. 사납게 달려들 것 같던 기세와 달리 이번 입맞춤은 어딘가 좀 달랐다.
일부러 입 안의 자극이 되는 곳만 골라서 훑어대고 두드리는 건 똑같아도 급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평소에는 어디론가 도망가버릴까 봐 꽉 붙들어 잡아두고는 반쯤 폭력적으로 혼을 빼놓기 일쑤였는데.
‘애초에 도망갈 수가 없어서인가.’
벽을 등졌기 때문이 아니라, 이 격리실에 설치된 지문인식장치가 문제였다.
한서 말로는 연구실을 폐쇄하는 단계에서 이곳의 모든 보안 시스템이 1급 출입 가능자에 한해서만 반응하게 바뀌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이 격리실에서 벗어나려면 한서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걸 알기에 도한서는 얄미울 정도로 여유로웠다.
그래서인지.
‘기분이 이상해.’
입 안을 쓰다듬는 타인의 혀가 유독 부드럽고 간질거린다.
“음, 으응….”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신음도 평소와 달랐다. 숨이 막힌 상태로 채 억누르지 못한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도 낯부끄러울 만큼 기분 좋아 보이는 신음이 나왔다.
혓바닥을 들어서 조물거리다가 그 아래에 드러난 여린 표면을 가로로 슥슥, 빗질하듯 쓸어준다.
그러다가 치열을 안쪽 바깥쪽 할 것 없이 치덕대며 훑다가 볼 안쪽 속살을 쓸어 올라가고, 그대로 위쪽 치열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더듬는다. 그때마다 치아와 연결된 신경이 간질거리는 통에 신음을 흘려버리면, 연결된 입술이 미세한 호선을 그리며 기세를 더해버린다.
검사하듯이 치아를 모두 더듬고 나면 꼭 입천장을 건드린다. 글씨를 쓰는 건지, 그림을 그리는 건지는 몰라도, 한서의 혀끝은 준성의 입천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궤적을 남겼다. 지나간 자리엔 언제나 잔열이 남아 간질거리기에 준성의 신음은 멈추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입 안을 그렇게 모두 제 것처럼 빈틈없이 쓸고 나면 준성이 가장 약한 부분인 목구멍 앞을 휘저어댔다. 말랑한 준성의 혀를 혀끝으로 꾹 눌러버리고 고개를 좀 더 젖히게 해서 자연히 목구멍이 넓어지도록 하는 건 기본이다. 그 상태로 목구멍으로 향하는 내벽을 긴 혀로 빠르게 쓸며 간지럽혀버리면, 몸 전체가 여지없이 파들거리며 신음이 한층 높아진다.
“흐읍, 으-! 으응…!”
한서는 내리깐 눈가를 찌푸리는 준성을 집요할 정도로 응시하고 있었다. 입 안을 구석구석 탐닉하는 혀끝처럼, 준성의 눈짓과 눈썹의 떨림, 눈가에 열기가 몰리는 작은 변화까지도 모두 두 눈에 담기 급급하다.
“…읏?!”
입 안을 점령당한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둔해지는 걸 느끼고 있던 준성은 갑자기 셔츠 속으로 파고든 서늘한 손길에 눈을 번쩍 떴다. 반사적으로 한서를 밀어낼뻔하자, 애무하듯 부드럽던 입속 혀 놀림이 꽤 거칠어졌다.
“읍, 으읏-!”
혀를 감아 당기는 타이밍에 맞춰 셔츠 속을 파고든 손이 가슴을 꽉 쥐었다. 움켜쥘 것도 없이 평평한 가슴팍은 강한 손아귀 힘에 압박을 받는 게 전부인 것처럼 보였지만, 손가락 사이에 끼어버린 작은 돌기가 예상치 못하게도 찌릿하는 감각을 전했다.
“읏-!”
방 안은 지금도 추웠고 준성의 몸은 열이 오르는 중이었다. 따끈한 열이 돌고 있던 몸에 이곳의 하얀 벽만큼이나 차가운 손이 가슴을 누르고 유두를 건드리니, 그 차가움이 곧 자극이 되어버렸다.
몸을 움츠리며 크게 움찔해버린 준성은 아차 싶었다. 역시나, 마주친 한서의 눈이 이채를 띠고 있다.
맞닿아 있던 입술이 홱 떨어져 나가고, 입 안을 파고든 서늘한 공기가 뜨겁던 안쪽을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그와 동시에 코트를 강제로 빼앗겨버리는 바람에 셔츠뿐인 상체에 한기가 들이닥쳤다.
바닥에 버려지듯 떨어져 있는 한서의 옷 위에 대충 던져진 코트를 황망하게 바라보는 사이, 한서의 손이 준성의 셔츠 단추를 빠르게 풀어나갔다. 그의 미간은 급한 상태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꽤나 일그러져 있는 상태다.
“…확 찢어버릴까.”
“찢지 마.”
한서의 중얼거림에 대꾸하던 준성은 어느새 제 앞섶이 훤히 열려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단추를 다 풀어버린 한서의 두 손이 준성의 가슴을 매만졌다. 마사지하는 것처럼 주무르며 움켜쥐자, 턱까지 차오른 물이 가슴을 압박하는 것처럼 숨이 조금 더 가빠졌다.
“만질 것도 없는데 왜……. 아-!”
가슴을 압박하던 손길 사이에 작은 유두가 꽉 끼어버렸다. 좌우의 것 모두 두 손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어서는 세게 꼬집히고 있다.
“으….”
의도적인 게 분명한 꼬집힘에 양쪽 유두가 찌릿거리는 감각을 전했다. 압박감은 곧 사라졌지만, 막혔던 피가 사르르 풀리는 저릿함과 공기의 서늘함까지 겹쳐서 순간적으로 더한 자극이 왔다.
준성의 반응을 눈여겨보고 있던 한서가 양쪽 유두를 엄지로 누르듯 문질렀다.
“읏…, 뭐 하는 거야?”
준성은 이상할 정도로 찌릿거리는 유두의 감각 때문에 어째 신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애써 참아보며 한서를 노려보았다. 유두를 건드리는 중에도 한서의 시선은 준성의 얼굴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여기가 좋아?”
“몰라.”
“흐음.”
준성을 보며 눈가를 가늘게 뜬 한서가 그의 목에 입을 맞췄다. 가슴의 이질적인 감각뿐만이 아니라 목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숨결과 부드러운 입맞춤까지 느껴버리니, 오싹거리는 몸이 성대를 타고 신음을 흘려버릴 것 같다.
한서의 두 손이 돌연 준성의 유두를 꽉 꼬집어 당겼다. 아릿한 통증과 함께 생소한 감각이 퍼졌다.
“앗-!”
준성의 입에서 참고 있던 소리가 나왔다. 꼬집어 당겨진 유두에서는 이제까지와 비교도 안 되는 찌릿거림이 톡톡 터져 나왔고, 그곳에서 시작된 자극이 가슴 전체를 뒤덮었다.
“읏, 그거 하지 마…!”
“아파?”
“당연하지!”
아팠던 건 사실이라서 일부러 힘주어 말하니, 한서가 순순히 유두를 놓아준다. 얼얼함과 함께 찾아온 찌르르 울리는 전기 감각 같은 이상한 느낌 때문에 가슴 전체가 움찔거렸다.
“흐음.”
한서의 눈이 좀 더 가늘어졌다.
포기하지 않고 양쪽 유두를 비비며 만지작거리던 한서가 이번엔 한쪽을 입에 확 머금었다.
“야…! 아-!”
당황하던 준성은 얼얼한 유두에 닿는 말랑하고 뜨거운 살덩이의 감촉에 허리를 곧추세웠다. 등허리에 닿는 차가운 온도의 벽과 달리, 한서가 점령한 가슴은 놀랄 만큼 뜨거워지고 있었다.
준성의 유두 한쪽을 입에 머금은 한서는 혀끝으로 작은 돌기를 할짝거려보았다. 고양이가 그루밍을 하듯이 사악, 사악, 소리가 날 정도로 아래에서 위로 핥아 올린다. 그때마다 조금 딱딱해진 유두가 혀끝을 따라 고개를 쳐들다가 탄력 있게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렇게 하는 건 안 아프지?”
“으, 으읏….”
준성은 자신의 가슴을 핥으며 올려다보는 한서에게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쪽 유두는 여전히 한서의 손가락에 빙글빙글 돌려지고 문질러지면서 괴롭힘당하고 있었는데, 어째 그쪽까지 혀로 핥아지는 느낌이라서 엄청난 자극이 왔다.
부드러운 혀가 유두를 건드릴 때마다 가슴에서 퍼져 나간 찌릿거림이 전신을 간지럽히는 느낌이다. 아까 꼬집혔을 때의 아릿한 통증은 어느새 둘도 없는 자극으로 바뀌어버렸다.
입 밖으로 뭔가 말을 하기도 전에 이상한 신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숨을 삼키느라 급급하다. 키스할 때 자연스레 흘러나오던 신음과는 확연히 다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기분 좋아?”
눈치 없는 질문이 찾아왔다. 준성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한서를 내려다보자, 그가 가슴을 한차례 강한 힘으로 빨아들였다.
“읏-!”
빨아들인 것뿐이라면 약간의 통증에 가까울 테지만, 한서는 그렇게 머금은 가슴팍에 혀까지 세워버렸다. 빨아들이는 바람에 더욱 도드라진 유두가 그의 입 안에서 인정사정없이 빠르게 치대졌다. 질척한 혀가 단단한 유두를 이리저리 비벼대며 쳐대는 감각이 무수히 많은 혈관을 따라 전신을 쿡쿡 찔러댔다.
“으윽-! 읍, 흣…!”
야한 소리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 준성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다른 손으로는 한서의 어깨를 밀어냈다. 1mm도 밀려나지 않는 한서의 단단한 어깨가 얄미워서 주먹으로 힘없이 퍽퍽 쳐대기도 했다.
“읏…. 흐윽?!”
신음을 참아내느라 ‘이제 그만 좀 빨아’라는 말을 차마 내뱉지도 못하고 입 안에 담고 있던 그때, 도한서의 손이 준성의 바지 속으로 쑥 들어왔다.
언제 풀어뒀던 건지, 준성의 바지 앞섶은 드로워즈를 훤히 보인 채 완전히 열려 있었다. 한서의 손은 그 드로워즈 안쪽으로 파고들어, 준성의 성기를 쓰다듬는 중이다.
“으읍!”
놀란 준성이 다리를 오므리기도 전에 그 사이로 파고들어 있던 한서가 눈꼬리를 휘었다.
“오늘은 보는 눈이 아무도 없네.”
빨갛게 농익은 유두에 입을 맞춘 한서가 그만큼이나 달아오른 얼굴을 들었다.
드로워즈를 빠져나간 한서의 손이 준성의 바지 허리춤을 잡았다. 코트를 벗겨졌을 때처럼 단숨에 바지까지 벗겨져 버린 준성이 당황하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등에는 이미 차가운 벽이 닿아 있었다.
“좀 딱딱하지만 튼튼한 침대도 있어.”
좌우로 훤히 열린 흰 셔츠와 드로워즈 하나만 입은 꼴이 된 준성이 민망함에 두 다리를 모으자, 한서의 두 손이 그의 무릎을 잡았다.
“그러니까…….”
준성의 두 다리가 강한 힘에 의해 좌우로 쫙 벌려졌다. 얼굴이 확 달아오를 만큼 민망함을 느낀 준성이 다급한 소리를 내려던 찰나.
열이 차오른 도한서의 붉은 얼굴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무서운 기운을 품은 그의 눈동자가 번들거리며 빛났다.
“오늘은 못 봐준다?”
도한서의 거친 숨소리를 품은 또렷한 목소리가 준성을 에워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