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이해가 안 되네.”
한서는 이상할 만큼 뛰는 가슴에 손을 얹은 채, 텅 빈 폴더를 노려보았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건 어딜 보나, 나 때문이잖아. 심지어 그 해결책도 결국은 나야.”
딱히 죄책감이 있다거나 과거를 후회하는 건 아니었다. 지금도 과거로 돌아간다면 똑같은 짓을 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연구소에 속한 모든 걸 부수고 싶었고, 양부모가 자신들이 꿈꿔온 이상을 그들 스스로 깨부수며 부정하길 바랐다.
그 탓에 타인이 어떻게 되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보통은 속죄라든지 참회하라고 하지 않아?”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내뱉지 않을까. 마치 평생을 꽉 찬 윤리의식 속에서 오직 도덕적인 길만 걸어온 인간들처럼.
그 속죄라는 게 비록 한 인간을 평생 연구재료로 처박아둬야 한다 해도 말이다.
“모처럼 나만 아는 진짜 연구자료를 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깔끔히 날려버리면 죽도 밥도 안 되잖아.”
한서의 말에, 준성이 긴장 어린 얼굴을 쓸어내리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패기롭게 지워버리긴 했지만, 그 역시 일말의 고민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아무리 생각하고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봐도 나오는 답은 계속 똑같았기에 이런 선택을 했을 뿐.
“네가 희생해야만 하는 거라면, 난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을 때로 돌아갈 거야.”
사건의 전말이든 해결책이든 뭐든, 아무것도 모르던 때로.
답을 찾기 위해 방황하기만 하던 꿈속의 그때로.
하지만 그 전에, 짚어야 할 게 있었다.
“그리고…, 아직 네가 바이러스를 퍼뜨렸다고 속단하긴 일러.”
한서의 손등에 얹어져 있던 준성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그 손을 따라 시선을 돌린 한서의 눈에, 준성의 석연찮은 얼굴이 보였다.
“네가 말한 것과 내가 아는 꿈속 내용엔 다른 점이 있거든.”
“무슨 소리야?”
한서가 눈가를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그로서는 강준성에게 자신의 모든 걸 내보여준 셈이었다. 그랬기에 이를 의심하는 듯한 그의 말은 턱 끝까지 뛰어오르던 이상한 감정을 손바닥으로 가차 없이 짓누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네가 거짓말을 했다는 게 아니야. 내 꿈과 다른 게 있다는 거지.”
준성은 한서의 과거를 들으며 복잡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동안에도 자신이 꿈속에서 얻었던 정보와 그 내용을 대조해보고 있었다. 비록 한서의 과거를 꿈속에서도 다 알고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의 이야기 끝부분에 해당하는 부분만큼은 준성의 정보와 충분히 비교해볼 수 있었다.
준성은 자연스레 떠오른 머릿속의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한서가 메고 있던 백팩의 옆구리에 끼워 넣었던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짧게 신호를 주니, 곧이어 알림음과 함께 상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성이니? 밖으로 나왔어?
무전기 너머로 창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요. 그보다 확인해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혹시 보안실로 되돌아가 줄 수 있겠어요?”
-상관없지만, 무슨 일인데?
“CCTV로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요. 일단 도착하면 알려주세요.”
-알았어. 금방 갈게.
의아한 눈치였지만 집요하게 묻진 않았다. 그만큼 준성에 대한 창민의 신뢰는 상당히 컸다.
준성이 무전기를 코트 주머니에 넣으며 물었다.
“작정하고 일을 벌였을 테니, CCTV 정도는 알아서 피하든가 지웠겠지?”
“사건이 있던 날, 내가 찍혔던 것만 골라서 지웠어.”
“그럼 됐어.”
고개를 끄덕인 준성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한서에게 뭘 먼저 물을까 하다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근본적인 것부터 짚어 보기로 했다.
“좀비 바이러스를 퍼뜨린 게 정말 ‘양아버지’인 게 맞아?”
“…뭐?”
한서는 준성이 자신의 얘기를 끝까지 제대로 들었는지에 대해 순간적으로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 선택권을 주었던 건 양부모, 2인.
한서가 연구자료를 폐기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남아 있던 건, 목이 졸린 흔적을 단 채 움직이지 않는 모친이었다. 양부는 친절히 한서에게 연구소 주소까지 적어둔 채 사라졌다.
그 후, 고작해야 대학으로 돌아가서 한가로이 낮잠을 청하고 일어난 정도의 몇 시간 만에 세상은 좀비로 바글바글하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좀비 바이러스를 품은 채 연구소를 벗어난 양부 탓이다.
준성이 꿈속에서 알아냈다던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게 된 원인은 ‘감염된 채 연구소를 벗어난 연구원’이었다. 감염을 늦추지도 못하는 타인의 혈액팩을 갖고 밖으로 나간 양부는 분명 청무시 연구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망했을 테고, 그렇게 다시 일어나 사람들을 물어뜯었을 터였다. 그러니 준성이 꿈속에서 알아냈던 원인과 양부는 완전히 동일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준성은 그 절대적인 가설을, 근본부터 부정했다.
“연구소를 탈출해서 바이러스를 퍼뜨린 건 ‘여자 연구원’이었어. 남자가 아니었다고.”
한서의 눈동자가 점차 커져갔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갑자기 어디론가 빠르게 향하기 시작했다. 준성도 그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연구실도 폐쇄했던 게 맞아?”
한서는 제2연구실을 가장 먼저 폐쇄했고, 뒤이어 양부 홀로 사라져버린 제1연구실 또한 그의 손으로 굳게 닫아버렸다.
한서가 말한 연구소 폐쇄라는 건, 내부의 모든 기능을 정지시키고 자동으로 돌아가는 예비전력 이외의 모든 전력공급을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예비전력으로 기동하는 인식 시스템들은 건재했는데, 이에 한서는 본인이 포함된 1급 출입 가능자 외에는 문을 열 수 없도록 설정에 손을 대었다. 그로 인해 좀비로 차오르기 시작하던 제2연구실에선 누구도 탈출할 수 없었고, 오직 한서와 그의 양부모만이 밖으로 나와 제1연구실로 향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극소수의 1급 출입 가능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 내 손으로 폐쇄했어.”
제2연구실을 시작으로 제1연구실까지.
대답하는 순간에도 한서는 뭔가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럼 말이 안 되잖아.”
확인을 위해서 걸어가던 한서의 발걸음이 이내 멈춰버리고, 그의 옆에 준성이 나란히 마주 섰다.
“죽었다던 네 양어머니는 어디 있는 건데?”
한서가 든 손전등이 텅 빈 공간을 비추고 있다. 그곳은 양부에게 죽은 양모가 쓰러져 있던 자리이자, 준성과 한서가 혈액 보관실에 다다르기 전에 지나쳤던 곳이기도 했다.
응당 있어야 할 한 여자의 시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다.
“…그 여자가 죽은 건 내가 직접 확인했어.”
“그럼 더더욱 의문이네. 죽은 게 확실한 여자가 왜 이 자리에 없는 걸까?”
한서는 대답할 수 없었다.
감염된 채 죽더라도 뇌에 손상만 없다면 바이러스의 진행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게워낸 것을 생각해보면 양부모의 체내에 들어간 바이러스는 극소량. 그 상태로 쭉 감염이 진행되었다면 일반적으로 물렸을 때보다 진행이 더디긴 해도 30분 내외를 기점으로 눈에 붉은 피막이 뒤덮이게 된다.
죽었던 양모가 다시 일어났을 땐, 피를 뚝뚝 흘리며 괴성을 내지르는 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거다.
“네가 말했지? 이곳의 인식장치들은 ‘죽은 자’가 지나갈 수 없도록 지문인식과 홍채인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준성은 한서의 손에서 손전등을 빼앗아 들어, 두 눈으로 잘 보라는 듯이 그 자리를 더욱 선명히 비추었다.
“네 양어머니는 목이 졸려서 죽었다고 했어. 그럼 뇌에 손상도 없었겠지. 그 상태로 시간이 지나 감염되었다면 인식장치를 통과하지 못해서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거야. 여기서 지금까지도 배회하고 있었을 거라고.”
준성의 말대로였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나갈 때 역시 인식장치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살아있는 1급 출입 가능자’여야만 가능했다. 죽거나 좀비가 된 자들은 제아무리 1급 출입 가능자라고 하더라도 인식장치를 통과할 수 없다.
아무도 없는 제1연구실.
사라진 양모의 시체.
꿈속이라고는 하지만, 감염되었을 게 분명한 양부가 아니라 웬 ‘여자’로부터 시작된 좀비 세상.
추측되는 가장 그럴듯한 답은 하나였다.
“여기에 출입이 가능했던 누군가가 좀비가 된 그 여자를 풀어줬다는 거야?”
지금으로서는 그것 외엔 생각할 수가 없다.
하지만 대체 누가?
제1연구실을 출입할 수 있는 1급 출입 가능자는 도한서와 그의 양부모, 그리고…….
“혈액원 원장.”
한서와 같은 사람을 떠올린 준성이 또렷하게 말했다.
“생각해보면 그 사람한테 아주 큰 이상한 점이 있잖아.”
준성은 한숨과 함께 손전등을 돌려 내부를 훑었다. 서늘한 느낌마저 감도는 텅 빈 연구실에는 지금도 코를 아리게 만드는 독한 약품 냄새가 가득했다.
“사건이 일어난 날, 원장은 이곳에 없었어.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당일에 있었던 일을 잘 알고 있을까? 너에 관한 걸 숨기기 위해 시간 흐름이라든지 몇몇 사건들은 대충 둘러댄 감이 있긴 한데, 당일에 일어난 일을 아무 정보도 없이 그렇게 정확히 꾸며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
사건 당일에 연구소에 없었던 사람이 그날 있었던 일을 그토록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의심스러운 건 하나 더 있지.”
준성의 손전등이 아마도 한서가 내던져서 깨버렸을 유리 조각들에 닿았다. 그 자리엔 연한 붉은 빛의 얼룩만 남아 있을 뿐이다.
“연구자료가 두 연구실에 똑같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해도 백신을 만들 수 있는 네 혈액, 바이러스 원액, 미완성 백신까지 있던 곳은 이곳 제1연구실이야. 그런데도 원장은 이곳을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인데도 여길 알려주지 않고 제2연구실만이 진짜인 척 안내해줬어. 널 숨긴 것처럼 의도적으로 제1연구실을 숨겼다고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잖아.”
준성의 말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무전기에서 알림음이 들렸다.
-보안실 도착했어. 영상 어디를 체크해주면 될까?
준성은 무전기 가까이 입을 댄 채, 한서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보안실 내부의 CCTV를 확인해주세요. 날짜는 6일 전으로 맞춰주시고요.”
어차피 한서는 본인이 나온 것만 골라서 지웠다고 했으니, 그 외의 영상은 모두 남아 있을 거다.
알았다는 대답이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가 있어.
직접 보지 않아도 창민의 미간이 찌푸려져 있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는 영상에 비친 사람의 ‘죽은 얼굴’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원장…?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준성은 한서에게 보란 듯이 무전기를 흔들어 보였다.
“들었지?”
준성의 무표정하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사건이 일어난 날, 원장은 보안실에서 모든 걸 보고 있었던 거다.
도한서가 무슨 짓을 하는지.
“도한서.”
한서의 이름을 부르며 그에게 다가간 준성이 그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그대로 당기자, 서로의 이마가 거의 닿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손전등을 내리고 있는 탓에 바닥에 반사된 빛이 준성의 얼굴을 스산하게 비추었다.
“너, 나 믿어줄 수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