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84)화 (84/240)

- 84화 -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던 과거를 되짚으며 비웃듯이 말을 늘어놓을 때까지만 해도 별생각 없었다.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강준성의 눈빛이 어떻게 바뀔지.

오랜 시간 동안 실험체로서 살아왔던 자신을 동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살인’과 떼어놓을 수 없었던 비정상적인 자신을 두려워할 수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자신을 돌보고 키워왔던 두 인간과 연구원들을 죽게 만든 걸 비난하며 혐오를 쏟아낼지도.

그도 아니라면…….

기나긴 악몽의 근원이자 좀비 바이러스를 만들어낸 자신을 증오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강준성의 눈빛이 색다른 빛을 머금는다면 그건 그거대로 재미있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강준성이 어떤 눈을 하고 있을지 기대하며 돌아본 그 자리엔, 평소와 다름없는 맑은 눈동자가 있었다. 굳이 손전등과 컴퓨터의 불빛이 아니어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절대 정상이라 할 수 없는 과거를 잠자코 들어주던 강준성의 품에는 선명한 붉은 색의 혈액팩이 들려 있었다. 혈액팩에는 ‘Base_도한서(RH NULL)’라고 적힌 선명한 네임택이 붙어 있다.

준성이 안고 있던 혈액팩은 원래 한서의 양부가 들고 달아났어야 할 물건이었다. 다른 실험체의 혈액과 바꿔치기하지 않고 내주었다면 양부는 지금쯤 멀쩡히 살아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봐야 청무시 연구소에 다다를 때까지의 단순한 시간 벌이일 뿐, 여분의 혈액이 없으니 백신을 만들기도 전에 좀비가 되었을 게 분명했다. 그랬다면 좀비 바이러스의 진원지가 인한시에서 청무시로 바뀌어버렸을 것이다.

답지 않은 마지막 배려로 혈액팩을 제대로 건네주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준성이 제 혈액팩을 소중하게 안고 있는 모습은 꽤 보기 좋았기에.

한서는 자신의 과거가 그대로 포함된 연구자료와 기밀문서 등을 USB에 옮겨 담았다. 그러는 동안, 굳게 다물려 있던 강준성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럼 다 죽은 거지?”

키보드에 손을 얹고 있던 한서의 손가락이 움찔하며 멈췄다.

“네 과거를 아는 놈들, 널 실험하던 놈들, 전부 다 죽은 거 맞지?”

준성의 목소리에선 딱히 두드러지는 감정이 엿보이지 않았다. 한서는 그를 힐끔 바라보다가, 선택한 모든 자료를 USB 폴더 안으로 드래그하기 위해 마우스에 손을 대었다.

한서의 서늘한 손등 위에 준성의 유달리 뜨거운 손이 얹어졌다. 움직임을 막듯이.

“대답해. 다 죽은 거 맞냐고.”

아주 잠깐, 준성의 목소리 속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한서는 그 끝이 자신을 향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향하는 것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래. 너도 꿈에서 봤다시피 연구에 관해 아는 사람 중에서 생존자는 마침 그날 연구소 밖에 있던 혈액원 원장뿐이야. 바깥 꼴을 보면 유일하게 살아나간 그 인간이 어떻게 되었는지 너도 알겠지.”

연구소에서 감염된 채 빠져나간 유일한 연구원.

그는 한서가 ‘일부러 감염시키고 놓아준’ 양부였다.

감염된 양부는 일말의 효과도 없는 타인의 혈액을 마시다가 얼마 못 가 죽어버렸고, 다시 살아난 그는 이 끔찍한 좀비 사태를 일으켰다. 그가 꿈꾸던 이상과는 정반대되는 불명예가 아닐 수 없었다. 덕분에, 허무맹랑한 이상을 위해 끝없이 이용당했던 한서는 그를 마음껏 부정하고 비웃을 수 있었다.

한서가 양부의 절망에 빠진 얼굴을 떠올리며 피식 웃는 사이, 준성은 그의 손을 쥔 채 마우스를 움직였다. USB 폴더에 닿아 있던 마우스를 치워, 복사를 해제한다.

“이거, 빼내지 말고 폐기하자.”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백신 완성을 목전에 둔 연구자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를 강준성이 아니었다.

백신 제작은 한순간에 되는 게 아니었다. 한서의 양부와 연구원들만 하더라도 이 좀비 바이러스의 완벽한 백신을 만들기 위해 수년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가 눈앞의 모니터에 표시된 수많은 파일이다.

수년의 연구성과가 담긴 이것만 있다면 감염을 잠시 멈출 수 있는 1차 백신을 포함해, 얼마 안 가서 체내의 바이러스를 완전히 사멸시킬 수 있는 2차 백신까지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귀중한 자료였다.

그런 물건을, 강준성은 아무렇지 않게 ‘폐기’하자는 말을 꺼냈다.

준성의 움직임에 얌전히 끌려가던 한서의 손이 멈췄다.

“왜?”

“왜냐니.”

의문을 던진 한서에게 준성이 단호한 얼굴을 했다.

“이것만 없으면 네가 백신의 재료라는 걸 아무도 모를 거야. 하지만 이게 남아 있고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전달되기라도 한다면 넌 또…….”

준성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본인 자체가 백신임에도 한서가 굳이 나서려 하지 않던 이유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실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던 이유도.

바이러스와 백신의 원료는 도한서의 피.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위한 백신을 위해 도한서는 또 얼마나 피를 뽑히고 갖은 실험을 당해야 할까. 백신을 만들기 위해, 아마도 정부마저 한서에게 비인도적인 짓을 행하게 될 거다.

다수의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나아가 국가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어쩌면 바이러스마저도 군사적으로 이용당하게 될지도.

‘그렇게 만들 순 없어.’

한서의 이야기를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충격적이었지만, 준성은 이럴 때일수록 냉정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감정적이기도 했다.

“하나도 남김없이 지우자. 너에 관한 건 다 지워버려.”

도한서의 흔적은 이딴 곳에 남겨선 안 된다. 전부 지워서 없애버려야만 실험체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남을 수 있다.

도한서가 살기 위해서 선택했던 일을, 그가 선택하지 못했던 일들 때문에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그걸 위해 강준성은 백신을 만들기 위한 연구자료를, 도한서의 과거를 지우고자 했다.

모니터 속, 파일로 정렬된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던 도한서가 입을 열었다.

“이걸 지우면 백신을 만드는 데에 얼마나 걸릴지 몰라. 어쩌면 한국이 금세 멸망하고 다른 나라까지 좀비 세상이 되어버릴 수도 있어.”

“상관없어.”

준성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호했다. 한서의 시선이 자신의 손을 덮은 준성의 손등에 닿았다.

“네가 그토록 원하던 완벽한 해결책이 사라지는 거야. 사람들이 가득 죽어도 좋아?”

“…상관없다고 했잖아.”

대답하며 준성은 자신의 마지막 꿈을 떠올려 보았다.

남기혁이 가져간 바이러스 안정제와 연구자료.

그것은 마지막 꿈, 그리고 바로 아까까지의 자신이 ‘해결책’이라 생각했던 것들이었다. 특히나 꿈속에서 그 해결책을 갖고 연구소를 빠져나오다가 좀비에게 물려 죽은 후, 그게 정답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꿈이 딱 끊겨버렸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착각이었다.

꿈속의 제2연구실에서 좀비들의 습격을 받았을 때, 준성은 다른 동료들 덕분에 가까스로 해결책과 바이러스 안정제를 챙겨서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직전에 좀비에게 스치듯 물렸던 탓에, 어둠 속의 하얀 복도를 비척이며 걷던 도중에 그만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떨어트린 손전등에선 여전히 불빛이 나오고 있었지만, 이미 붉은 피막이 두 눈을 완전히 감싸고 있었기에 시야는 그저 붉기만 했다. 입 밖으로 피가 토해지고 머리에 피가 몰리는 끔찍한 감각이 찾아왔다.

아깝다, 이번에도 실패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다음 꿈에서는 해결책을 얻은 이후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복도 벽의 일부가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손전등의 불빛이 전혀 다른 곳을 비추고 있었고 두 눈에는 붉은 피막까지 있었기에 명확히 볼 수는 없었으나, 그 직후에 들린 발소리를 기억한다. 분명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어야 할 텐데.

발소리의 주인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별다른 의미 없이 흘려보냈던 기억.

그 기억 속 시선이 누구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자신의 악몽을 끝내준 진정한 ‘해결책’이 무엇인지도.

준성은 악몽이 그토록 바라왔던 대로 결국 만나버린 ‘해결책’을 위해, 꿈속의 자신이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선택지를 골랐다. 그건 아마도 꿈속에서 ‘해결책’이 다시금 이 연구실로 돌아오면서까지 골랐을 선택지이기도 했다.

그게 남아 있는 한, ‘해결책’은 어떻게 해도 본인이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을 테니까.

준성의 손이 파일을 모두 드래그하더니, 그대로 전체 삭제 버튼을 눌렀다.

“네가 희생하느니… 이딴 세상, 다 뒤져버리라고 해.”

폴더에 가득 차 있던 모든 파일이 단숨에 사라져버렸다. 아예 처음부터 비워져 있던 것처럼, 아주 깨끗하게.

[이 폴더는 비어 있습니다.]

폴더에 명시된 문구와 달리, 도한서는 자신의 텅 비어있던 가슴 속 공간에 무언가가 벅찰 만큼 차오르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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