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81)화 (81/240)

- 81화 -

한서의 입매가 유려한 라인을 만들며 천천히 올라갔다.

“나는 아저씨 못 살려요.”

자신뿐만 아니라 누가 와도 살릴 수 없다.

바이러스에 한 번 침식당하면 죽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치료제 따윈, 어디에도 없다.

이 연구소를 가득 채운 돼지 같은 연구원들조차 아직 만들어내지 못했으니까.

“치료제 같은 건 없어요.”

“거짓…말…!”

남자가 흥분한 듯 피를 토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치료제가 있다고… 했어…, 쿨럭! 내 몫을 만들고 있다고……, 허억, 조금만 더 버티라고 했단… 말이야…!”

남자가 피 냄새를 풍기며 힘겹게 말했다.

사실은 말하고 있는 그보다도 한서 쪽이 더 들어주기 힘들었다.

하수구를 향해 흘러내려 가는 물길 속, 턱없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버둥거리는 하루살이 같다.

이 남자뿐만 아니라 바이러스에 침식당한 사람들 모두를 이대로 방치하고 있는 이유는 충분히 알만했다.

바이러스가 숙주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알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걸 위해 숙주가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도록 치료제가 이미 ‘완성’되어 있는 척, 희망을 심어준 거고.

지독한 인간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자에게 연민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를 향해 뻗어 나가는 감정은 경멸과 혐오뿐이다. 그의 멍청함에 치가 떨렸다.

연구원들에게 있어, 그들은 한낱 흔하디흔한 실험체 중 하나일 뿐인데.

남자의 눈을 뒤덮은 붉은 피막에서 점성 있는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이전에 계속 흘리던 것처럼 검붉었으나, 약간 묽어져 있다.

“흑, 흐흑…, 살려……. 살려줘…. 살려달라고…….”

또 애원한다.

듣기 싫은 그륵거리는 목소리에 미련이 담긴다.

아마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치료제따윈 없다는 걸.

자신은 이곳에서 실험당해 죽은 끝에 결국, 사람이 아니게 될 거라는 걸.

몸의 피가 순환하기 어려울 정도로 꾸덕해지고 곳곳의 신체가 제 것이 아닌 것처럼 삐거덕거린다. 머리에 피가 몰려 이곳저곳에서 고통을 동반한 피가 튀어나오고, 뇌의 주름마다 응고되어가는 피가 빈틈없이 채워져 가는 게 느껴진다.

이미 그렇게 망가져 가기 시작한 몸을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건, 바이러스를 주입한 연구원들이 아니어도 다들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남자의 눈에서 눈물 담은 핏줄기가 얇고 길게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마누라…, 내 새끼들…, 엄마…, 아빠….”

50세가 넘은 남자의 울먹임 속에 들어있는 건 나약한 부름이었다. 노숙 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고 신경도 쓰지 못했을, 미련 가득한 가족을 향한 부름.

나는, 그런 것조차, 없었는데.

도한서의 눈빛이 점차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대로 죽으면 괴물이 될 거예요.”

“괴…, 괴물…?”

입에 고인 핏물을 어렵사리 삼켜낸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사람이 아니게 될 거라고요. 죽었는데도 움직이면 그걸 괴물이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르겠어요?”

“그게… 뭐야…. 좀비야…?”

남자가 이 와중에도 헛웃음을 담아 물었다.

좀비.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살아있는 시체.

한서의 차가운 눈을 담은 눈꼬리가 남자를 비웃듯이 살풋 내려갔다.

“맞아요.”

아주 잘 어울리는 단어야.

“이대로 죽으면 아저씨는 좀비가 될 거예요.”

“말도… 안……!”

쾅-!

부정하려던 남자의 말을 막듯, 바로 옆 방의 벽이 크게 울렸다. 뒤이어 들린 건 도저히 사람이 내는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괴한 소리였다.

캬아아아아악-!

이름 모를 짐승의 포효 같기도 하고, 깊은 어둠 속에서 강제로 끌려 올라오며 몸부림치는 소리 같기도 했다.

괴성을 들은 남자의 얼굴이 피범벅인 상태로 딱딱히 굳어버렸다. 붉은 피막 때문에 눈앞의 한서 외에는 제대로 보이는 것도 없을 남자가 방금 소리가 들린 벽 쪽을 바라보았다.

귀를 찢을 듯한 괴성, 그리고 간간이 추임새처럼 이어지는 피 가래 끓는 소리와 소름 끼치는 낮은 신음.

남자는 옆방에 들어간 노숙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처음 노숙을 하던 5년 전부터 지금까지 매일 동고동락하던 사람이었다. 다른 노숙자들이 ‘아저씨들끼리 뭘 그렇게 붙어 다니냐’고 놀림 삼아 비웃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정도였고, 모처럼 얻은 소주마저 남은 한 방울까지 나눠 마실 만큼 절친했다.

이 연구소의 임상시험을 추천하고 함께 들어가자고 조른 건 남자였다. 옆방의 노숙자는 영 마뜩잖은 내색을 보였으나, 절친인 남자를 혼자 보낼 수 없다고 함께 가겠다며 짐을 꾸렸다.

그랬던 친구가 지금은 전혀 사람 같지 않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남자의 황망한 얼굴을 보고 있던 한서는 소리 없이 문으로 다가갔다. 살짝 열어본 문으로 다급한 발소리를 포함한 연구원들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하필이면 꿀잠 자고 있을 때 변하고 지랄이야.”

“4시간 37분…. 이번엔 좀 빨리 변한 감이 있네.”

“다들, 체크할 거 빨리 체크하고 머리 부숴서 버려. 본능 때문에 사람만 보면 감염시키려고 안달이니까 못 물도록 입에 재갈부터 물리고.”

“시체 상태 체크보다도 당장 혈액 채취부터 해야 해요. 지금 상태에서 더 응고되어버리면 테스트가 어려울 거예요.”

밀폐되어 있던 방 안에 흘러들어온 목소리는 하나같이 차갑고 딱딱했다. 어느새 방 안의 남자는 거친 호흡을 내쉬는 것조차 잊은 채,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럼 이제 옆 방의 C-9 실험체 하나 남았나요?”

남자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가 누워 있는 수술대 시트의 발치에는 ‘C-9’라고 적힌 코팅된 네임택이 붙어 있었다.

“제일 오래 버텼으니까 그건 좀 더 두고 볼 가치가 있어. 곧 그쪽도 죽어서 변하게 될 테니, 그때 8번 격리실에 넣어놔.”

“알겠습니다.”

도한서의 아버지 행세를 하는 수석연구원의 목소리, 그리고 그에게 순종하는 한 연구원의 대답.

부친의 기계 같은 차가운 얼굴을 떠올리고 있던 한서가 그제야 소리 없이 문을 닫았다. 돌아선 그의 손에는 언젠가 길거리에서 처음으로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접이식 잭나이프가 들려 있었다.

차칵,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예리한 칼날을 빼낸 도한서가 남자 곁에 다가섰다.

남자의 얼굴엔 어느새 절망과 허탈함만 남아 있었다.

옆방이 ‘좀비’의 괴성과 몸부림으로 한층 시끄러워진 반면, 그들이 있는 이 공간엔 무겁고 싸늘한 침묵만이 남아 있었다.

“나도… 저렇게 되는 건가….”

체념한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약간의 피를 토하며 함께 흘러나왔다. 피의 질척한 정도와 어두운 색상으로 볼 때, 남자 역시 곧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한서는 물론이거니와 남자 본인도 자신의 말로를 짐작할 수 있었다.

고작 몇 분 차이이지만, 이번 기수 실험체 중에서 가장 오래 생존했다는 이유로 밀폐된 격리실에 끌려가게 될 것이다. 이미 죽었음에도 이성 없는 좀비가 되어, 저런 괴성을 내지르는 괴물 상태로 언제까지고 실험용 쥐 신세가 되겠지.

“죽여줘….”

남자가 피막 때문에 감기지도 않는 눈으로 한서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자신의 신세를 비관해서라기보다, 조용히 끓고 있는 분노를 어찌할 수 없어서라는 게 맞을 것이다.

연구원들에게 조금이라도 복수하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고 응해버린 무지한 노숙자들과 좀비가 되어버린 친구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죽길 바랐다.

“도와…줘….”

한서는 남자의 붉은 눈이 처음으로 볼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소리 없이 걸어가, 남자의 머리를 거꾸로 내려다보는 머리맡 자리에 섰다.

잭나이프를 두 손으로 쥔 도한서가 그것을 높이 쳐들었다. 남자는 천장의 빛에 반사되는 날붙이의 형태를 확인하고서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온 거예요.”

도한서가 쥔 잭나이프의 날카로운 끝이 서슴없이 남자의 미간을 내려찍었다.

콰작-, 소리와 함께 뭔가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손끝에 전해지는 파열의 열기와 저릿한 손의 감촉, 깨닫지도 못한 사이에 튀어버린 따뜻한 피, 그리고 꺼져가는 숨소리.

신기했다.

남자의 얼마 남지 않은 열기와 숨이 칼끝을 타고 올라와, 차갑게 굳어 있던 한서의 몸 안을 어루만졌다. 자신이 행한 행위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는 과정에서 퍼져 나간 긴장과 잔열은 한서의 냉정하던 머릿속을 가차 없이 주물러댔다.

‘이게… 뭐지?’

몸 곳곳을 떠도는 열기에 심취해 있던 한서는 자신의 피 묻은 손과 칼을 내려다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선연한 붉은색과 타인이 터뜨린 열기가 한서의 몸에 조금씩 괴이한 뿌리를 내렸다.

이상하게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구했다).

그 사실이 도한서에게 기묘한 희열을 가져다주었다.

어둡고 하얗기만 하던 공간에 열기를 품은 선명한 색이 덧입혀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예쁜 빨간색이.

“하…, 하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몸이 허공에 둥둥 뜬 것 같고 눈에 닿는 모든 게 보기 좋았다. 머리까지 차오른 흥분 덕에 황홀경에 빠진 지금 상태라면 지독한 맛이 나는 실험용액조차 웃는 얼굴로 기꺼이 원샷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들어온 것은 수석연구원 부친이었다.

“도한서, 여기서 뭘……!”

말을 채 잇기도 전에 한서가 뭘 한지 깨달은 부친이 경악한 얼굴을 했다. 그러다 성큼 다가와서는 대뜸 한서의 목에 손을 댄 채 맥박을 체크하며 물었다.

“기분은?”

당연히 실험체를 멋대로 죽여버린 것에 큰 화를 낼 거라 생각했는데, 부친은 의외로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어렴풋한 기대감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솔직히 답해버렸다.

“아주… 좋아요.”

답하지 않아도 얼굴에 이미 희열 담긴 미소가 걸려 있었기에, 다 들켜버렸겠지만.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한서의 말을 증명하듯, 얼굴에서부터 목까지 붉게 달아오른 그의 숨은 잔뜩 흥분한 것처럼 거칠었고 맥박 또한 과할 정도로 빨랐다.

부친의 입가에 점차 한서를 닮은 희열 담긴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돌연 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밖에 있던 연구원들을 불렀다.

“당장 도한서 데이터 딸 준비해!”

영문도 모른 채 몸에 갖은 기구들을 연결하여 몸 상태를 상세히 체크받고, 검사용 채혈까지 당했다. 몸에 깃들었던 열기는 검사 도중에 점차 사그라져버렸다.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한서는 수시로 찾아오던 빈혈과 두통을 완전히 잊어버릴 정도로 맑아진 정신에 적잖이 놀라는 중이었다.

검사결과가 담긴 서류를 확인하던 부친과 다른 연구원들 모두가 어느 순간, 놀란 눈으로 한서를 바라보았다.

도한서는 자라오는 내내 도파민 부족 상태였기에 수시로 정신자극제를 이용해 평균치의 최하위라도 다다를 수 있도록 조절해왔다. 그런 그가 이번만큼은 아무런 약물 의존도 없이 ‘과잉’에 가까울 정도의 높은 도파민 수치를 나타냈다.

그 결과, 혈액 면역계에도 미세한 변화가 일어났다.

한서는 오랜만에 부친의 아주 만족스럽고 행복해하는 입매를 볼 수 있었다.

“몇 명, 더 죽여보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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