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67)화 (67/240)

- 067회 -

-5일째 

컨테이너 사무실과 도보로 약 20분 거리에 떨어진 한 대형 백화점 앞.

건물을 빙 두르듯이 일정 거리를 두고 배치된 예쁜 화단과 싱싱한 나무들 사이로 배회하는 좀비들이 가득 보였다.

준성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바라보다가 백화점 정문 쪽으로 눈을 돌렸다. 닫혀 있지 않고 활짝 열려 있는 유리문 너머 안쪽에는 바깥만큼이나 내부 역시 좀비로 가득했다.

“근처에 백화점이 하나 있는데 제 기억상으로 그 안엔 좀비가 그리 많지 않았거든요.”

창민과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심시키려고 그렇게 말했었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좀비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한창 쇼핑하느라 바빴을 사람들은 대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백화점 곳곳에서 공격을 받았다.

그 결과, 지금 준성이 바라보는 백화점은 눈을 돌리는 곳마다 좀비가 보일 정도였다.

‘꿈속에선 더 나중에 왔던 곳이지만…….’

그때는 4일 차에 황경오가 준성 일행과 합류하여 개조를 시작한 지 닷새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닷새나 거듭된 개조와 테스트 때문에 드론의 배터리가 거의 남지 않아, 어떻게든 배터리팩의 공급이 필요했었다. 의류나 식량문제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다음 날인 10일 차에 열댓 명의 사람들과 함께 이 백화점에 돌입했고, 예상보다 훨씬 많았던 좀비들 때문에 굉장히 어렵게 탈출했었다. 그 과정에서 두 명의 일행이 좀비가 되는 걸 봐야만 했었기에 준성에게는 씁쓸한 기억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랐다.

준성은 뒤에서 자신의 어깨에 턱을 올리고 있는 도한서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설마 이대로 들어갈 건 아니지?”

“안 돼?”

도한서가 싱글거리며 웃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어깨에 얹어져 있던 그의 날카로운 턱이 함께 움직이며 비벼졌다.

“이 상태로 어떻게 움직여?”

준성은 한서의 두 팔에 허리를 꽉 끌어안겨서 도저히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그럼 마주 안고 갈까?”

“마주 안으면 눈이 안 보여.”

“그러게 내 피를 쓰라니까.”

준성의 허리를 놔준 한서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써. 어차피 내일 밤에 또 뽑아두면 돼.”

내일 밤, 즉 6일 차 밤에는 인한병원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한서는 그때 채혈실을 이용해서 또 뽑으면 되니까 미리 준비해뒀던 채혈통의 피를 쓰라고 말했지만 준성은 그럴 수가 없었다.

한서의 피가 담겨 있던 손가락 길이의 채혈통은 총 다섯 개였다.

그중에서 테스트 한 번과 창민을 구할 때 이미 두 통을 썼다. 남은 건 세 통인데, 준성은 이걸 그리 쉽게 쓰고 싶지 않았다.

한서가 말하길, 채혈통 중에서도 혈액응고방지제가 들어있는 걸 사용했으니 며칠 사이에 굳어버릴 일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다른 해결법이 있는데도 굳이 한서의 피를 급하게 쓸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도 준성은 한서가 어릴 때부터 빈혈 때문에 병원을 자주 들락날락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괜찮다고는 해도 그런 말을 들었었는데 또 빈혈을 일으킬 수 있는 채혈을 유도하고 싶진 않았다.

“아껴야지. 진짜 위험할 때 말고는 안 쓸 거야.”

“저 안은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데?”

한서뿐만이 아니라 그 누가 와서 백화점 안쪽을 본다 해도 같은 말을 할 것이다. 그 정도로 백화점 내부의 좀비는 상당한 수였다.

그럼에도 준성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말했다.

“네가 있잖아.”

준성이 태연한 얼굴로 한서의 옆에 서서 그의 등허리로 팔을 뻗었다. 한서가 멘 비워둔 백팩 안쪽으로 팔을 넣어 허리를 둘러 안았다. 서로의 옆구리가 완전히 밀착했다.

“그러니까 안 위험해.”

한서는 자신의 허리를 팔로 두른 준성을 다소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곧 씨익 웃었다. 한서의 팔도 준성의 허리를 둘렀다. 팔을 엉성하게 둘러서 재킷 옆구리를 손으로 꼭 쥐고 있는 준성과 달리, 한서는 그의 허리를 옭아매듯 단단히 둘러 붙잡았다.

백화점 앞의 공터를 지나 안으로 향하는 동안 주변을 배회하던 좀비들은 역시나 괴성 한 번 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좀비들을 피하지 않고 직진만 해도 알아서 길이 열렸다. 준성으로서는 꿈에서조차 볼 수 없었던 신기한 체험이었다.

서로 밀착한 상태로 움직이는 거라서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백화점 내부에 순탄히 진입할 수 있었다.

백화점 내부는 10일 차에 왔을 때처럼 아주 어두웠다.

먹구름이 껴 있긴 해도 충분히 밝았던 밖과 달랐다. 백화점들은 보통 손님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에 푹 빠져 있도록 창문조차 만들지 않은 탓에, 전기가 없으면 이처럼 깜깜할 수밖에 없었다.

손전등을 꺼내 든 준성은 그 불빛으로 내부를 훑었다. 역시나 빼곡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좀비가 가득 차 있다.

좀비들을 바라보던 준성이 입을 열었다.

“내가 이 백화점에 왔던 건 10일 차였어.”

“그럼 오늘은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 불가겠네.”

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서의 말마따나 오늘은 이 백화점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10일 차와 5일 차는 작은 예측도 어려울 정도로 한참의 시간 차이가 있었다. 10일 차에 봤던 그나마 안전하던 루트도 5일 차에선 무용지물이다. 좀비들이 각자 선 자리에 망부석이 되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역순으로 5일간의 이동 노선을 일일이 계산해볼 수 있는 게 아닌 이상은 어떠한 안전 루트도 만들 수가 없다.

그랬기에 도한서가 필요했다. 애초에 도한서가 없었다면 5일 차에 이 백화점에 올 생각조차 못 한 채 10일 차가 되길 가만히 기다렸어야 할 거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도한서의 존재는 준성이 꿈속에서 감히 생각도 하지 못했던 바를 잘도 이루어주고 있었다.

내부를 둘러보던 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한서의 팔이 준성의 허리를 더욱 꽉 붙잡았다.

“나한테서 떨어지지만 마.”

“당연하지.”

준성이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주요 매장들의 위치를 더듬으며 대꾸했다.

“너 없으면 죽는데 내가 떨어지겠어?”

한서의 팔이 움찔했다.

준성은 한서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알아채지 못한 채 기억을 더듬느라 바쁜 상태였다. 그러다가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을 정하고서 그를 바라보았다.

“우선은 8층에서 시작해서 내려오자. 8층에서 드론에 쓸 배터리팩부터……. 왜 그래?”

한서는 손으로 본인의 입가를 가린 채 말없이 준성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가 손에 가려진 입을 달싹이며 물었다.

“오늘따라 왜 자꾸 자극해?”

“내가 뭘?”

“흐음….”

한서는 어딘지 모르게 이글거리는 듯한 눈으로 준성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그의 입가는 평소와 똑같이 웃고 있었는데, 눈빛이 이상해서인지 어딘가 안 어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얗던 얼굴에 웬일로 혈색이 좀 도는 것 같고.

“아무것도 아니야. 8층부터 간다고 했지?”

“응.”

한서도 손전등을 들어 천장 쪽을 비추었다.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 속 에스컬레이터와 비상계단의 위치를 확인했다.

“에스컬레이터와 비상계단, 어느 쪽으로 갈까?”

전기가 나갔으니 엘리베이터는 아예 후보에서 제외였다. 에스컬레이터도 멈췄을 테니 두 종류의 계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10일 차에 방문했을 땐 비상계단 쪽에 죽은 지 오래된 시체들과 다수의 좀비가 있었다. 문이 있는 공간 안에 있던 좀비의 수와 상당히 부패한 시체의 발생 시기를 어림잡아본다면 지금도 똑같은 상황일 거라 생각해야 했다.

당시에는 로비에서 몰려오는 좀비들의 수가 월등히 많았기에 어쩔 수 없이 비상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그 좁은 곳에서 사투를 벌이며 8층까지 올라갔던 기억을 떠올리자, 비상계단의 상황이 한층 더 또렷이 그려졌다.

지금은 굳이 로비의 좀비 떼를 신경 쓸 필요가 없었기에, 준성은 손전등으로 비상계단이 아닌 에스컬레이터 쪽을 가리켰다.

“에스컬레이터로 가자. 앞을 막는 좀비가 있으면 에스컬레이터 옆으로 밀어버리면 되니까.”

한서는 준성의 의견대로 에스컬레이터 쪽을 향해 발을 내뻗었다. 로비를 서성이던 좀비들이 두 사람을 피하듯이 그들에게서 조금씩 비켜섰다.

얼마 가지 않아 에스컬레이터 앞에 다다른 준성은 훤히 뚫린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다행히 올라가면서 좀비를 하나하나 치우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서기에 폭이 그리 넓은 건 아니어도 나란히 붙어 서서 올라갈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계단이 상당히 길어, 5층쯤 다다랐을 땐 준성의 발걸음도 꽤 느려져 있었다.

한서는 숨이 흐트러진 준성을 바라보며 얼굴을 굳혔다.

“역시 넌 체력 좀 길러야겠어.”

“…시끄러.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 같았으면 진작 길렀을 거야.”

“네가 체력이 받쳐 줘야 내가…….”

“불길하니까 그 이상 말하지 마.”

왠지 내용을 다 들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한서의 입가에 손전등을 대어 말을 막았다.

그러고선 다시금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올라 6층에 다다른 순간.

“……?”

6층 어디선가 느껴지는 시선에 준성이 얼른 손전등을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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