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6회 -
툭 끊겨버린 정신이 다시금 돌아온 건 흐릿한 머릿속으로 파고든 도한서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준성아, 일어나.”
아직 온전히 돌아오지 못한 정신 속에서 도한서의 목소리만은 유독 또렷이 들려왔다.
그게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준성은 곧 눈을 번쩍 뜰 수 있었다. 이어서 뭔가에 꽉 막혀있던 숨이 탁 트이는 느낌이 났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건 한서의 미소 띤 얼굴이었다.
“무슨 꿈을 꾸길래 그래?”
한서의 손이 준성의 볼을 쓰다듬었다. 새하얗게 질린 채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준성의 얼굴이 한서의 다정한 손길에 맞춰 점차 혈색을 되찾아갔다.
준성은 누운 채로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한서를 마주하다가 갑자기 상체를 벌떡 일으켜 앉았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주변 풍경을 확인했다.
준성이 누워 있던 곳은 폐공장이 아니라 컨테이너 사무실이었다.
주변은 아직 어둑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옅은 빛무리로 보아, 이른 새벽인 듯했다.
불 꺼진 사무실 한구석에는 드론 개조에 한창 열중하고 있는 황경오와 그가 있는 쪽에만 손전등을 비춰주고 있는 서창민이 있었다. 이지안은 준성과 한서가 누워 있는 곳에서 약간 떨어진 자리에 홀로 누워 있었다.
주변을 차근히 둘러보던 준성은 오른손 주먹을 꽉 쥐어 보았다. 깔끔히 감아둔 붕대 속에 숨은 물린 상처가 통증을 호소했다.
고통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지금이 ‘현실’이라는 걸 깨달은 준성은 꿈에서 이어진 단단한 긴장의 끈을 간신히 놓을 수 있었다. 잠든 중에도 꿈에서의 일 때문에 숨이 원활하지 못했던 준성은 뒤늦게 머리가 어질한 것을 느끼며 손으로 눈가를 꾹 눌렀다.
순간, 준성은 자신의 목에 닿는 손길에 흠칫 놀라며 몸을 굳혔다.
준성은 자신의 목을 감싸는 커다란 손의 감촉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돌아오던 호흡이 멈추고 눈조차 깜빡일 수 없을 정도로 몸이 경직되어 버렸다.
목을 감싸 쥐는 듯했던 손은 미끄러지듯 준성의 목덜미를 덮었다. 부릅뜬 눈으로 숨조차 멈춰버렸던 준성은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게 아니라 목덜미를 쓰다듬는 감촉에 겨우 눈가를 떨었다.
“괜찮아?”
식은땀이 밴 목덜미를 쓰다듬는 손길은 아주 상냥했다. 몸에 들어간 과도한 긴장을 금세 풀어버릴 정도로.
준성은 창백한 얼굴로 깊이 숨을 내쉬었다.
‘그 사람이 아니라 도한서야. 괜찮아.’
다시금 엉망이 될 뻔한 머릿속을 달래며 준성이 한서에게 차분히 물었다.
“내가… 혹시 무슨 소리 했어?”
아직 목소리도 떨리고 숨도 가빴지만 말을 내뱉고 나니 조금 더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그냥 숨소리가 달라졌길래 악몽이라도 꾸나 싶어서 깨운 거야.”
한서의 말을 들어보니, 다행히 별다른 잠꼬대를 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준성은 두 달간 꿈을 꿀 때마다 매번 집에 혼자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이번처럼 누군가와 함께 자면서 그런 꿈을 꾼 건 처음이라, 혹시나 괜한 잠꼬대를 해서 다른 사람들을 걱정시키거나 민폐를 끼치진 않았을까 생각했었다.
한서의 손이 준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정 좀 됐어?”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에 준성은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준성은 꿈속에서 만났던 ‘도한서’를 떠올려보았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였다면…….’
꿈이 왜 그때를 체험하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싫어도 깨닫게 되는 게 있었다.
그 당시의 자신은 배신의 충격과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인해 그저 울고 비는 것밖에 할 줄 몰랐다. 어떤 이유인진 몰라도 그때 도한서는 폐공장 근처에 있었고, 그의 성격을 생각해본다면 끝도 없이 나약해진 자신 따윈 구할 가치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외면당했다.
‘외면당했던 게 원망스럽진 않아.’
도한서는 비굴한 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엄밀히 따지면 경멸하는 것에 가까웠다.
반면 죽음을 상대로 발악하는 자를 비정상적일 정도로 좋아했다. 그랬기에 그가 자신을 구해준 패턴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이미 꿈이 끝나버려서 그 뒷부분이 어떻게 흘러가게 되었을진 알 수 없지만, 도한서와 만났다는 사실이 이상한 두근거림이 되어 돌아왔다.
더불어 후회가 되기도 했다.
동생을 구하러 갔을 때 겪은 3분의 변수.
폐공장에서 자신의 행동 여하에 따라 달라졌던 만남.
지금 흘러가는 것처럼 행동했다면 꿈속에서 도한서를 만나, 더욱 확고한 해결책인 그와 함께 꿈을 끝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이 좀비 사태가 시작되었을 때, 동생보다도 그를 가장 먼저 만나러 가지 않았을까.
“무슨 생각 해?”
자신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버린 준성에게 한서가 제 이마를 가져다 대었다. 톡, 하고 닿은 이마를 통해 서로의 체온이 공유되었다.
“널…….”
입을 달싹이던 준성이 일순 말을 멈췄다.
‘널 만났어야 했는데.’
방금의 꿈속에서 자신이 그에게 하려던 말을 되풀이할뻔했다.
‘이미 만났잖아.’
꿈속에서는 계속 엇갈렸을지 몰라도 지금은 함께 있었다.
눈앞에 도한서가 있다는 것.
그게 가장 중요했다.
준성은 괜한 후회와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엷게 웃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마저 자자.”
방금 꿨던 꿈에 관해서는 그다지 얘기할 생각이 없었다.
미래의 힌트가 되는 것도 아니고 과거를 되짚어서 자신의 선택을 타박하는 것에 불과했기에 굳이 말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누워버린 준성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던 한서가 그의 옆에 나란히 누웠다. 웬일로 한서는 준성을 추궁하지 않고 그저 옆으로 누워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담요가 두 개뿐이라서 함께 한 담요를 덮고 있던 한서는 준성의 숨이 점점 균일하게 가라앉는 걸 한참이나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걸려 있던 ‘기본적인 미소’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한서의 손이 준성의 목으로 향했다. 큰 손아귀가 살포시 붙잡은 목을 통해 그의 호흡이 여실히 느껴졌다.
한서는 조금 전, 준성이 숨넘어갈 것처럼 색색거리던 때를 떠올려보았다.
머리를 뒤로 젖힌 채 목을 훤히 내놓고서 숨도 제대로 못 쉬던 그 모습은 마치 누군가에게 목을 졸리고 있는 모습 같았다. 그 모습 위로 준성이 보이던 과호흡 증세가 겹쳐서 자연스레 이어지기 시작했다.
준성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가 꾼 꿈속에 누가 있었는지.
“어떤 새끼지.”
한서의 입술 사이로 그가 미처 삼키지 못한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준성의 하얀 목을 감싸 쥔 채 매만져보던 한서가 그의 몸을 끌어당겨 안았다. 얕은 신음을 흘리며 얌전히 안긴 준성의 머리 아래에 팔을 넣어, 단단한 팔베개를 만들어주었다.
한서는 자신을 향해 있는 준성의 볼을 쓰다듬으며 그의 괴로워하던 얼굴을 겹쳐 보았다.
까득, 이가 갈리는 짧은 소리가 났다.
“내 건데, 감히 어떤 새끼가 먼저 건드렸을까.”
그런 얼굴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자신이어야 했고 볼 수 있는 것도 자신뿐이어야 했는데.
준성의 머리를 끌어당겨 그의 얼굴과 머리에 입을 맞추던 도한서의 눈빛엔 누구든 찢어 죽일 수 있을 듯한 강한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 * *
같은 시각.
잠에서 깬 한 남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침대를 박찼다.
“씨발!”
거친 욕설을 내뱉은 남자가 발에 걸리는 물건과 의자를 치거나 내던지며 패악을 부렸다. 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몇 사람이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형님, 무슨 일이십니까?!”
“닥쳐!”
해명도 없이 성난 목소리를 낸 남자가 또다시 몇 개의 물건을 내던지고 부수며 욕설을 거듭했다. 그러다 씩씩거리는 숨을 고르며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
남자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중얼거렸다.
“잊지 마. 잊으면 안 돼. 잊지 말라고, 씨발!”
남자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차츰 지워져 가는 꿈의 조각들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이거 잊으면 머리 박고 뒤져야 해. 안 돼. 잊으면 안 된다고.”
목소리까지 떨면서 한참 동안 중얼거리던 남자는 곧 냉정을 되찾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좋아.”
남자는 조금 전에 패악을 부리던 사람과 동일인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차분했다. 그도 모자라 얼굴에 보기 좋은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어떤 새끼인지 몰라도 똑똑히 기억했어.’
꿈속에서 본 검은 옷의 키가 큰 청년을 되새겨보았다. 차츰 망각하게 될 꿈속이 아니라 길을 가다 만났던 거라면 굳이 이렇게 발악하지 않아도 알아서 기억할 정도로 눈에 띄는 얼굴이었다.
청년을 떠올리고 나니, 그의 품에 꼭 끌어안겼던 준성의 모습이 함께 그려졌다.
남자의 입매가 비틀려 올라갔다.
‘꿈이라곤 해도 내 걸 건드린 놈은 죽어야지.’
기괴할 정도로 일그러진 채 미소를 띤 남자가 침대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밖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서성이던 두 남자가 있었다.
“저, 기혁이 형님…. 괜찮으신… 겁니까?”
한 명이 눈치를 보며 묻자, 남기혁이 싱긋 웃었다.
“아주 괜찮아.”
기혁이 상쾌한 투로 말하며 그들을 지나 복도를 걸었다. 두 남자가 그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몇 명 추려서 헬기 준비해.”
“오늘 출발하시려고요? 아직 그쪽에 아지트 준비가 덜 됐을 텐데요.”
“상관없어.”
뒤따라온 남자 중 하나가 그에게 안경을 건넸다. 그걸 받아 쓴 기혁이 한층 또렷해진 눈으로 복도 끝에 있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로 점점 밝아오던 하늘엔 어느새 먹구름이 가득했다.
“그동안 참았으니까 지금이라도 얼굴을 봐야겠거든.”
꿈속에서 다시 만났기 때문이었을까.
기혁은 억눌러 참았던 그리움을 더 이상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그는 두 부하에게 ‘인한시’로 향할 헬기의 준비를 다시금 재촉하며 입매를 다듬었다. 그의 머릿속은 지금쯤 강준성이 어디에 있을지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상당히 바쁘게 굴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