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5회 -
남자가 무리에게 눈짓하자, 단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가 폐공장 밖으로 향했다. 남아 있는 두 사람은 각목이나 쇠파이프 등의 무기를 든 다른 자들과 달리 각기 총을 하나씩을 빼 들었다.
사람들이 폐공장 밖으로 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캬아악-!
크엑!
여태껏 조용하던 사방에서 좀비의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으악!”
“조, 좀비! 좀……! 아악-!”
뒤이어 사람들의 당황 섞인 비명이 터졌다.
준성은 자신 위에 올라탄 채로 폐공장 밖을 주시하던 남자의 얼굴이 딱딱히 굳는 걸 보았다. 언제나 생글거리며 웃거나 반대로 전혀 다른 사람처럼 험악해진 얼굴만 보았는데, 이때만큼은 보기 드물게 바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형님, 수가 꽤 많은 것 같습니다.”
폐공장 입구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던 자가 남자를 보호하듯 등지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좀비의 수가 꽤 많은지, 아직까지도 괴성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좀비들의 괴성은 건재한 듯한데 사람들의 목소리만 점점 더 줄어드는 듯했다.
“이상해.”
남자가 중얼거리며 눈가를 찌푸리던 순간이었다.
팍-!
폐공장의 전등불이 갑자기 일제히 꺼져버렸다.
전등불 스위치는 폐공장 입구와 뒷문 쪽에 있으며, 스위치가 워낙 많아서 한 번에 전부를 끄는 건 손가락이 아무리 많아도 불가능했다.
“형님!”
총을 든 두 사람이 당황하며 남자를 불렀다. 전등불이 갑자기 사라진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음에도 남자는 그들과 달리 냉정했다.
“진정해. 둘 중 하나는 나가서 차단기 확인 좀 해 봐. 차단기 쪽에 누가 있으면 아군이더라도 일단 죽이고.”
“예? 하지만 그쪽에서 좀비랑 싸우고 있는 걸 수도…….”
“머리에 든 게 없으면 명령대로 따르기나 해.”
남자의 목소리가 험악해졌다. 긴장한 두 사람이 마른침을 삼키며 머뭇거리다가 그중 한 명이 남자의 명령대로 차단기를 찾아 이동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어둠 속은 굉장히 고요했다.
어둠 속에서 바짝 긴장해 있던 건 준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로서는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약간의 기대감도 갖고 있었다.
어쩌면 이 상황을 죽지 않고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
“준성아.”
정적을 깨듯, 남자가 준성의 이름을 불렀다. 그와 함께 준성의 목에 남자의 손아귀가 휘감겼다.
“윽!”
그나마 돌아오던 호흡이 다시금 틀어막혔다. 목이 부러질 것 같은 강한 힘은 아니었으나, 휘감은 압박감이 준성의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그나마 잊어가던 괴로운 어느 날이 겹쳐졌다.
“우리 준성이는 깜깜한 데서 목 졸리는 걸 좋아하는구나? 귀엽네.”
“컥, 허윽…. 형, 그…만! 흑…!”
“이렇게 귀여운데 어떻게 그만해. 야, 아무나 가서 안대 가져와 봐.”
“싫…, 어. 형…, 으흑, 제발……!”
“아니다. 그냥 눈을 못 쓰게 만들면 되겠네. 걱정 마, 형이 소독 잘해서 예쁘게 도려내 줄게.”
“흑, 윽…, 혀엉…!”
“아…, 그치만 좀 아깝네. 아파하질 않으니까 비명을 못 듣잖아.”
그날의 일은 오늘이 아니었다. 며칠 뒤, 이 폐공장보다 더한 음습한 지하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럼에도 이 깜깜한 어둠과 습한 냄새가 같아서인지 그날의 기억이 자꾸만 떠올라 숨이 막혔다.
“그러고 보니 동생이 하나 있었지? 걔가 널 꽤 많이 닮았던데, 혹시 비명도 비슷하려나?”
그때를 떠올리니 그나마 멀쩡하던 정신 속 어딘가가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 났다.
이게 순전히 꿈에 불과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자신이 죽으면 새롭게 눈을 뜨든 다시 시작하든 할 수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고, 조금 전에 떠올린 일도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준성은 떠올려버린 기억을 필사적으로 지워냈다.
‘생각하지 마! 기억하지 마! 그렇게 될 일 없으니까 제발 잊으라고!’
하지만 생각과 달리 몸에는 그때의 정신적 고통이 깊이 뿌리박혀 있는 듯했다.
목을 손으로 감싼 것뿐임에도 숨은 더할 나위 없이 거칠어졌고, 딱히 건들지 않아도 실신할 것처럼 숨이 부족해졌다. 사지가 떨리고 손끝조차 스스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준성의 목을 쥔 채 그의 몸에 올라타 있던 남자도 그의 이상함을 단번에 눈치채버렸다.
“뭐야.”
어둠 속에서 잔뜩 험악해져 있던 남자의 목소리에 기묘한 희열과 기대감이 찼다. 그가 몸을 숙이는 듯하더니, 준성의 귓가에 음산하게 속삭였다.
“우리 준성이는 깜깜한 데서 목 졸리는 걸 좋아하는구나?”
그때와 같은 감정을 담은 목소리, 같은 말.
준성은 자신의 목에 강한 압박이 가해짐과 동시에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얗게 변해버리는 걸 느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 걸 느끼는 가운데.
총을 든 채 남자를 보호하듯 대기하고 있던 사람에게 갑자기 웬 물풍선 같은 게 날아왔다. 어둠 속이기도 했고 설마 그런 게 날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터라, 그대로 몸에 맞아버려서 팍,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났다.
총을 든 팔이 통째로 흥건해졌다.
직후, 남자는 코를 찌르는 피 비린내에 기겁을 해야 했다.
“뭐, 뭐야, 이게?! 피?!”
캬악!
하아악-! 카학-!
갑자기 폐공장 안쪽에서 좀비들의 괴성이 터졌다. 폐공장 입구나 뒷문처럼 외부와 연결된 쪽이 아니라 아예 지척에서 갑자기 터져 나온 소리였다.
대체 언제 들어와 있던 건지, 넷이나 되는 좀비들이 괴성을 터뜨리며 남자에게로 달려들었다.
“우아악!”
시야가 보이질 않아서 속절없이 좀비들에게 뒤덮인 꼴이 된 사람이 그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하지만 당황한 나머지 좀비들의 머리를 맞추긴커녕 그들의 몸을 때리기 일쑤였고, 그대로 피 묻은 두 팔을 내주어야만 했다.
“으아, 아-! 아파! 아아악-!”
어둠 속에서 좀비들이 무언가를 게걸스럽게 뜯어먹는 소리와 처절한 비명이 섞여 들렸다.
준성의 위에 올라타 있던 남자는 그제야 몸을 일으켜서는 품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때.
퍽-!
“흡!”
남자가 어둠 속에서 돌연 신음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더니 어딘가를 또 한 대 맞고서 날아가듯 쓰러져버렸다. 통증도 없는 것처럼 곧바로 벌떡 일어나긴 했으나, 쓰러져 있던 준성과의 거리는 그새 서너 발걸음 정도 떨어진 상태가 되어 있었다.
목을 압박한 손이 떨어졌어도 이미 언제 실신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호흡이 가빴던 터라, 준성은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 준성의 몸을 누군가가 받쳐 안았다. 준성은 지금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릿속이 엉망인 채라, 자신을 안고 있는 누군가를 힘없는 손으로 자꾸만 밀어내려 했다.
“가만히 있어. 나랑 붙어 있으면 안전해.”
준성은 먹먹해진 귓가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서 손끝을 멈췄다. 이상할 정도로 익숙한 목소리였다.
준성을 대신해 남자가 소리쳤다.
“너 누구야?!”
캬아아악-!
남자의 외침에 반응한 좀비가 괴성을 질렀다. 피를 따라 달려들었던 것처럼 이번엔 소리를 따라 달려들기 시작한 좀비를 향해 남자가 거친 욕설과 함께 방아쇠를 당겼다.
탕-!
귀를 때리는 총성과 함께 잠깐의 불빛이 터졌다.
그 불빛 덕분에 준성은 자신을 안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어렴풋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정신은 이미 충분히 혼미해졌음에도 반쯤 감겨버린 눈은 상대를 확인해야 한다며, 줄곧 그의 얼굴이 있을 자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준성은 자신을 안고 있는 자를 확인하자마자 서서히 눈이 감기는 걸 느꼈다.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던 정신과 몸은 이대로 쉬길 바랐다.
또 한 번의 총성과 좀비의 짧은 괴성이 울렸다.
잠깐 밝아지면서 준성과 그를 끌어안고 있는 자를 확인한 남자가 무서울 정도로 험악한 목소리를 토했다.
“준성이한테서 당장 떨어져! 내놔!”
남자는 좀비가 아닌 준성을 안고 있는 자에게로 총을 겨누었다. 아직 둘이나 좀비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그의 행동은 그야말로 무모했지만, 그는 그런 것보다도 누군가가 자신의 것에 감히 손을 대고 있다는 걸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좀비가 아닌 다른 방향을 향해 총구가 불을 뿜었다. 어둠 속이었기에 총알은 완전히 타겟을 빗나가버렸지만, 덕분에 준성은 정신이 희미해지는 와중에도 자신을 안고 있는 자의 얼굴을 다시금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의 차갑던 입매가 예쁜 곡선을 그렸다.
좀비의 괴성 속에서 그를 노리는 총구를 봤음에도 전혀 긴장한 내색조차 없던 누군가가 천천히 시선을 내려서 준성과 눈을 마주했다. 준성은 자신의 몸을 끌어안은 팔이 전신을 옭아매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짧게 전율했다.
“이름이 준성이구나?”
어둠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도한서’를 향해 입을 달싹이던 준성은 그때까지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정신의 끈을 그대로 놓아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