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63)화 (63/240)

- 063회 -

“위험해. 가려면 나도 같이 데려가.”

창민이 걱정하며 말했지만, 준성은 고개를 저었다.

“이 사무실은 저도 꿈속에서 한 번 보고 지나치기만 했던 곳이라, 좀비들이 언제 올지 예측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제가 잘 아는 은신처로 이동하기엔 아직 위험하고요.”

준성이 말하는 은신처는 인한병원이었다.

그곳엔 아직도 좀비가 바글바글했다. 아마 그들이 돌아갈 7일 차 무렵까지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 수많은 좀비를 몰아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나, 문제는 그곳에 돌아가기 전에 데려가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것이다. 인한병원의 상태로 봐선 그곳을 쉽게 오고 갈 수가 없으니 마지막 한 사람까지 합류한 후에 이동해야 했다.

더군다나 개조한 드론을 테스트하기 적합한 곳은 이렇게 넓은 공터를 가진 공사현장 쪽이 병원보다 훨씬 나았다. 인한병원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옥상뿐이라, 혹시라도 그곳에서 드론이 잘못 날아가 버리면 수습도 불가능했다.

준성은 아직도 걱정을 떨치지 못한 창민과 다른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멀리 가려는 건 아니에요. 근처에 백화점이 하나 있는데 제 기억상으로 그 안엔 좀비가 그리 많지 않았거든요.”

준성의 시선이 경오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아마 드론에 쓸 배터리팩도 더 필요할 거예요.”

“아, 확실히 배터리팩은 여유가 없긴 해.”

경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현재 개조할 드론에 장착된 배터리만으로는 연습하는 동안에 반 이상 써버릴 것 같아서 안 그래도 불안하던 참이었다.

“배터리팩도 구해올 겸 여분 식량이랑 갈아입을 옷도 챙겨와 볼게요.”

“와! 정말요?!”

지안이 반색하며 활짝 웃었다. 그녀는 드디어 지저분한 교복을 벗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거기도 꿈에서 가봤던 곳이라는 거지?”

“네. 그래서 어느 쪽으로 가야 안전할지도 알아요.”

준성의 말을 들으며 고민하는 눈을 하던 창민이 한서를 바라보았다.

창민은 경오를 구출해서 준성과 함께 구름다리로 나왔던 그때, 한서가 쌓아두었던 시체들을 떠올려보았다. 지안이 쌍안경으로 아파트의 상태를 확인하느라 정신없는 사이, 그는 그렇게나 소리도 없이 많은 좀비를 홀로 처리해버렸다. 굳이 옷을 벗겨보지 않아도 한서가 얼마나 단련된 육체를 가졌는지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게다가 한서는 자신과 지안을 구출하던 상가에서도 수많은 좀비를 끌어들인 후에 그 자리를 유유히 탈출하기까지 했다. 직접 목도한 적은 없어도 그의 뛰어난 실력과 대담함은 인정해야만 했다.

그런 사람이 같이 가는 것이니만큼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게다가 준성이한테는 굉장히 친한 친구인 것 같으니…….’

한서와 알고 지낸 지 고작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창민은 그가 연신 걸고 있는 미소와 달리 눈빛만은 무서울 정도로 차갑고 날카롭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입가에만 보기 좋은 가면을 쓴 것 같은 이질적인 도한서가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준성이 말하던 꿈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도한서는 애초에 자신이나 이지안처럼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던 인물이라고 하기에 충분히 의심스러울 만도 했다.

하지만 준성이 도한서를 신뢰하는 게 보였고, 한서 역시 그에게만은 한껏 누그러진 눈을 하고 있었기에 의심을 지웠다. 서로 가끔 대화하는 거나 분위기를 보면 이번 일로 만난 사이 같지 않은 끈끈함도 엿보였기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알았어. 대신 옷은 최소한으로 하되 편한 복장이 좋아. 겉옷은 부피가 크니까 피하는 게 좋고.”

겨울임을 감안한 창민의 조언에 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메모지 나눠드릴 테니까 다들 꼭 필요한 거 있으면 적어줘요. 말도 안 되는 거 적으면 당연히 패스할 거니까 그렇게 아시고요.”

한서를 염두에 둔 말이었으나, 정작 그는 별생각 없는 눈치였다.

모두에게 메모지를 돌리고서 회수한 직후.

준성은 도한서를 향해 매서운 눈을 부라렸다.

소소한 여러 가지 목록이 적혀 있던 다른 사람들의 메모지와 달리, 도한서의 것에는 ‘콘돔’이라는 두 글자만 적혀 있었다.

* * *

그날 새벽.

피곤한 몸으로 잠에 빠져든 준성은 이번 역시 아무 꿈도 꾸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사실 두 달간 꿨던 꿈은 전부 이 좀비 사태의 예지몽이자, 무한히 재반복되는 지긋지긋한 악몽뿐이었다. 고통이 있고 없고만 빼면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은 극한의 체험기였다.

그런 것만 두 달 내내 꿨었다 보니, 모두가 흔히 얘기하는 ‘꿈’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체감이 안 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좀비 사태 발생 이후, 꿈을 아예 꾸지 않게 된 게 너무나 좋았다.

준성에게 있어 꿈이라는 건, 자각한 상태로 겪어야 하는 악몽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기에 차라리 아무것도 꾸지 않고 푹 자고 일어나는 게 그야말로 꿀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제까지였을 뿐.

오늘, 준성은 또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오랜만에 꾼 꿈은 이전과 달리 원룸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시작점은 웬 폐공장이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불빛이 너무 적었다. 현실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음습한 냄새가 가득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이한 신음이 준성의 감각을 자극했다.

‘뭐지, 이건? 꿈?’

꿈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확신했다.

이건 꿈이었다.

그것도 두 달간 꿔왔던 꿈과 같이 소름 돋을 정도로 현실감 있는 꿈.

설마 이전의 꿈들과 같은 건가 싶어서 흠칫했지만, 생각해보면 배경이 달랐다. 꿈이 시작되면 언제나 원룸 한가운데에 서 있는 상태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낯선 폐공장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준성은 주변을 둘러보며 주먹을 꽉 쥐어 보았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느낌은 분명히 있었지만,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손바닥만 마취된 느낌이었다.

‘역시 꿈이야.’

알고는 있었지만 통증으로 직접 확인해보니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두 달간 꿨던 꿈처럼 똑같은 감각을 지닌 채 눈을 떠버렸다. 이것도 예지몽인 건지 아니면 이전에 꿨던 꿈과는 전혀 관련 없는 꿈인 건지도 모르겠고, 이번엔 어떻게 해야 꿈을 깰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준성은 갑자기 꾸게 된 꿈에 혼란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철컹-!

철 기둥에 쇠사슬이 당겨지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준성은 배에 가해지는 압박감에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그제야 어둑한 어둠 속에서 눈을 내린 준성은 자신의 허리에 웬 밧줄이 감겨 있다는 걸 알아챘다. 두 손은 앞으로 해서 수갑까지 채워져 있다는 걸 이때 깨달았다.

당황한 준성이 허리를 돌리고 두 손을 뒤쪽으로 뻗어서 밧줄을 더듬어보았다. 매듭이 걸린 부분은 등허리에 가 있었고, 그 고리 부분에 함께 묶인 1m 정도의 짧은 쇠사슬이 뒤쪽의 철 기둥에 매어져 있었다.

사슬을 몇 번 당겨본 준성은 곧 사색이 되었다.

‘이건…, 이건 설마…….’

지금 이 상황.

처음 겪는 일이 아니었다.

저 먼 곳 어디선가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사람들이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그들이 진입한 폐공장 저 끝에서부터 조금씩 전등불이 들어왔다.

발소리와 전등불이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준성은 전신을 감싸는 오한에 몸을 떨었다. 어느새 그는 겁에 질린 것처럼 뒤로 물러나, 철 기둥에 등을 딱 붙인 상태였다.

가까이 다가오는 발걸음들 사이로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좀비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언제나 유쾌하게 웃던 그의 목소리는 지금도 절대 잊을 수가 없었기에, 이 꿈이 누구를 보여주려 하는지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미친 꿈, 미친 머리통…!’

하필 오랜만에 꿈을 보여줘도 왜 이딴 걸 보여주는 건지, 제 머릿속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오지 마….”

준성은 자신의 잇새로 흘러나오는 말을 삼키지 못한 채 연신 중얼거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어떻게든 이 꿈을 깨고 싶어서 애꿎은 주먹만 꽉 쥐었다.

그러는 사이, 전등불은 어느새 준성의 바로 앞까지 밝혀지고 있었다.

뒤이어 고개를 푹 숙인 준성이 앉아 있던 자리에 팍, 하고 불이 들어왔다.

가까워지는 발소리 속에서 잊지 못할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준성이, 일어났어?”

한 남자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전신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공포가 찾아와 준성의 전신을 덮었다.

많은 발소리 중, 유난히 경쾌한 누군가의 구둣발 소리가 준성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럼에도 준성은 ‘오지 마’라는 말만 중얼거리며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준성아.”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기는커녕, 준성은 오히려 몸을 더욱 움츠려버렸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남자의 손아귀가 준성의 머리채를 강하게 움켜쥐어 쳐들었다. 눈을 꾹 감고 있던 준성의 귀에, 남자의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주인님 오셨으면 꼬리부터 흔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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