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62)화 (62/240)

- 062회 -

준성은 한서가 엉덩이골 속의 구멍을 눌러댈 때마다 느껴지는 이상한 감각에 흠칫거리며 놀랐다. 앞쪽도 물론이지만 이런 뒤쪽의 은밀한 부분을 타인이 만져댈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했었기에 그 민망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만, 그만 좀……!”

“자꾸 그렇게 예민하게 굴면 잡아먹고 싶잖아.”

“뭘 자꾸 먹는다는 얘길 해!”

한서가 먹는다는 얘기를 할 때마다 어딘지 모를 오싹함이 찾아왔다. 그의 손아귀에서 당장 벗어나야 할 것 같은 두려움이 준성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달칵.

예민해진 귀가 문 열리는 소리를 잡아냈다.

한서의 몸을 거세게 밀어낸 준성이 두 사람을 덮고 있던 담요 밖으로 나왔다. 그새 거칠어진 숨을 삼키며 얼른 고개를 돌리자, 이제 막 머리를 내밀고 있는 지안이 보였다.

“오빠들, 저희 얘기 끝났어요.”

“응, 들어갈게.”

준성의 행동이 빨라서 그런지, 다행히 지안은 두 사람이 껴안고 있었던 걸 못 본 눈치였다. 빛이라고는 컨테이너 사무실 창문으로 흘러나오는 전등불뿐이라서 준성의 얼굴색이 티 나지 않았던 것도 한몫했다.

지안이 다시 사무실 문 안으로 들어간 직후, 준성은 한서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꽤 세게 때리며 눈을 치떴다.

“칭찬받을 때만이라도 가만히 좀 있자, 개새끼야.”

한서는 그 말을 남기며 사무실로 돌아가는 준성을 빤히 바라보다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손아귀 안에는 말랑하고도 탄력 있는 살덩이가 꽉 차 있었다. 그 감각을 떠올리듯 몇 번 손아귀를 움찔거리던 한서가 짧게 입맛을 다셨다. 탐스러운 엉덩이 사이에 있던 작은 구멍의 감각이 그의 숨어있던 정복욕을 자극했다.

‘다음엔 못 참을 것 같은데.’

한서는 그새 두툼해진 자신의 앞섶을 내려다보며 픽 웃었다.

‘하여튼 강준성, 어디 한 곳 만졌다 하면 이 꼴을 만들어버리네.’

제 탓이라는 생각보다는 강준성이 야하고 귀엽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제 보니 강준성은 자신의 억제제가 아니라 발정제에 가깝지 않나.

어깨를 덮고 있던 담요를 걷어 팔에 걸쳐 든 한서가 깜깜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민망해할 강준성을 위해 어느 정도 가라앉히면 그때나 들어갈 생각이었다.

순간, 눈앞이 핑 돌았다.

잠깐 비틀거리던 한서는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이마를 짚었다. 어둠 속이라 눈앞이 잘 보이지 않음에도 시야가 핑핑 돌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귀찮게…….’

일시적인 거지만 좋았던 기분을 망치는 데엔 최고였다.

어릴 때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지긋지긋한 빈혈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빈혈이 찾아오는 빈도가 낮아지긴 했지만, 근래엔 무리하게 움직이기도 했고 어젠 피까지 뽑아버렸다. 예전만큼 많은 양을 뽑은 건 아니라고 해도 제 몸의 특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무리가 갈만했다.

한서는 이마를 짚은 채 이 현기증이 빨리 사라지길 바라며 찬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사무실로 들어온 준성은 안에 앉아 있던 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 모두 진지한 얼굴이긴 하나, 다행히 의심의 빛은 보이지 않았다.

“믿어주기로 하신 거예요?”

준성이 일행 사이에 앉으며 묻자, 창민이 씁쓸히 웃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믿을 수밖에 없잖아. 네가 말하기 전부터 혹시…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창민은 준성이 자신을 구하던 때부터 오늘까지의 일을 모두 되짚어볼수록 그의 말을 믿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시간까지 정확히 예측하며 앞일을 대비하는 건 절대 우연이라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넌 우리 세 사람을 구했잖아.”

강준성을 믿는 가장 큰 이유.

그는 자신들의 생명의 은인이었다.

“어차피 너 아니었으면 우린 다 죽은 사람들이었어.”

준성이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주지 않았다면 세 사람 중 누구도 살아있지 못했을 거라는 걸 그들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준성은 창민의 말에 무언으로 동의하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엷게 웃었다.

“믿어줘서 고마워요. 경오 아저씨는 믿어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솔직히 불안했거든요.”

민망한 듯이 코를 비비던 경오가 손에 들고 있던 흡입기를 들어 보였다.

“내가 딱 흡입기가 필요한 걸 어떻게 알고 이걸 준비해주겠어?”

심지어 드론을 구름다리 쪽으로 보낸 건 충동적이었다. 말도 안 했는데 시간 맞춰 드론에 흡입기를 묶어서 보내주고, 이후로는 자신이 갖고 있는 물건들을 경악할 정도로 훤히 꿰고 있었다.

그걸 우연이라고 말하는 것보다야 차라리 예지몽이라고 말해주는 게 훨씬 납득할 만했다. 창민과 지안에게 들어보니, 그들을 구할 때나 자신의 아파트로 쳐들어올 때 역시 이미 앞날을 다 아는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했고.

경오는 수많은 꿈으로 이 일들을 미리 겪어봤다고 말하던 준성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흔들림 없는 눈으로 진지한 말을 내뱉는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장난이 아니었다.

창민과 지안 역시 경오와 같은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준성과 한서가 자신들을 구해줄 때의 일을 반쯤 우연이라 생각하며 그들의 전략과 대처 능력에 감탄하는 정도에 그쳤었다.

하지만 경오를 구하는 과정에서 직접 느끼고 목격한 것들은 절대 그리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특히나 준성과 함께 움직여본 창민으로서는 더더욱 그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준성의 능력에 관해 받아들이고 나니, 불안감보다는 나름의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강준성을 따라서 움직이면 머지않아 이 사태를 종식시킬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707 특수임무단 자체가 조국 수호를 철저히 교육받은 부대이다 보니, 비록 휴가 중에 생긴 일이라고는 해도 특임단 대원으로서의 서창민은 이 사태의 종식이 그 무엇보다 최우선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는 이 사태 해결의 열쇠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강준성의 곁에서 그를 도와 움직일 생각이었다.

지안은 사실 허무맹랑한 소리를 한껏 들었음에도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다. 물론 준성의 말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지만, 그의 말대로 움직여서 손해 본 적이 없다.

준성의 말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더라면 자신들이 살아있기나 할까.

지안이 중요하게 생각한 건 딱 그것 하나였다.

죽을 뻔한 걸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 말하는 건데 뭔들 못 믿을까. 자기만 살겠다고 좀비들 사이로 친구까지 내던지는 사람이 태반인걸.

지안은 함께 쇼핑을 즐기던 친구들이 자기네들 살자고 자신을 좀비 무리 쪽으로 내던지고 뛰던 걸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친구들이 그렇게까지 해서 잘 살아있는진 모르겠지만, 그들보다야 준성이 해준 예지몽 얘기가 훨씬 믿을 만했다.

세 사람의 신뢰를 눈으로 확인하는 준성을 향해 창민이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계획이야? 네 말대로 경오 아저씨가 드론을 개조한다고 쳐도 당장 되진 않을 거 아냐.”

준성보다 앞서 경오가 말했다.

“네가 앞날을 봐준 덕에 일주일씩이나 걸릴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시간이 필요해.”

꿈속에서 경오는 무려 일주일의 시간을 보낸 끝에 겨우 장거리 운행 가능한 드론을 만들어내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재료 일부가 모자라서 그의 아파트를 다시 찾아가야 했던 때도 있었고, 어떨 때는 아예 드론 관련 부품을 취급하는 가게를 쳐들어간 적도 있었다. 테스트 운행을 위한 시간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준성은 그 시간을 단 하루로 만들 생각이었다.

“꿈으로 봤다고는 해도 제가 개조하던 순간을 완벽히 다 기억하진 못해요. 하지만 사용된 부품은 모두 기억하고 있고, 어떤 걸 먼저 썼는지 정도는 알아요. 그건 제가 종이에 전부 적어드릴게요.”

현실에서 직접 지켜본 거라면 반 이상 잊어버려도 그럴만하지만, 꿈속에서 겪은 기억들은 달랐다.

우연히 체크한 시간, 문득 쳐다봤을 뿐인 작업과정, 누군가가 잠깐 흘리듯이 내뱉은 스쳐 지나가는 말.

그 모든 게 현실보다 더욱 생생하게 뿌리박혀 있었다. 그랬기에 두 달간 꿈에서 겪었던 패턴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거기도 했고.

준성은 자신의 또렷한 기억을 더듬으며 말을 이었다.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요. 그러니 아저씨는 내일 밤까지 개조를 끝내주셔야 해요. 최소한 내일 모레 오전에는 드론을 날릴 수 있도록요.”

“내일 밤까지… 가능할까?”

장거리 운행까지 가능하도록 개조해본 적은 없기에, 경오가 불안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심지어 하루 만에 완성해야 한다니.

혹시라도 급하게 하느라 어딘가 잘못 건드려버린다면 운행 중에 어딘가 뚝 떨어져서는 회수도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시간은 시간대로 버리고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드론은 드론대로 버리는 꼴이었다.

“걱정 말아요. 실제로도 아저씨는 일주일째 되는 날, 개조했던 걸 전부 풀어내고 반나절 만에 다 조립해서 완성했는걸요.”

그 말을 들은 경오가 조금이나마 편안한 얼굴을 했다.

준성은 경오를 바라보다가 다른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일 아저씨가 개조에 전념하는 동안, 두 사람은 여길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그야 당연히 그럴 거지만… 우리 둘만?”

창민의 의아한 듯 묻자, 준성이 이제 막 사무실로 들어오는 한서를 눈짓하며 말했다.

“내일은 저희 둘만 따로 움직일 곳이 있어요.”

‘둘만’이라는 단어에 한서의 눈이 일순 반짝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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