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55)화 (55/240)

- 055회 -



[잠깐 내려주세요.]

경오는 그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려줘? 뭘?’

그들이 쓴 글을 일반적인 사람이 봐주길 원한 거였다면 저렇게 쓸 리가 없었다. 버젓이 계단까지 있는 구름다리에서 자신들을 내려달라고 저렇게 종이를 들고 대기하는 것도 아닐 테고, 만약 좀비가 무서워서 그런 거라면 저런 표현보다는 ‘구해주세요’가 맞지 않을까.

그리고 높은 곳에 있는 사람에게 내려와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면 ‘내려주세요’라고 쓴 것부터 잘못되었다.

의아해하던 경오는 남자가 종이를 보란 듯이 더 흔드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가 자신에게 ‘드론을 내려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어디서 보고 미리 저런 걸 적어둔 건지 모르겠지만, 수상하다고 해서 무작정 무시할 수도 없었다. 모처럼 만난 의사소통 가능한 생존자들이니까.

머뭇거리던 경오는 일단 속는 셈 치고 드론을 그들 앞에 내려주었다. 만약 훔쳐 가려 한다면 드론에 내장된 경고음을 켜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드론을 두고 뭔가 하는 것 같더니, 처음에 종이를 들었던 체구가 작은 청년이 종이에 [쪽지 확인해주세요]라는 문구를 적어 보여주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생존자가 보내는 쪽지.

생전에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러브레터를 받는다 해도 이만큼 가슴이 떨리진 않을 것 같다.

경오는 저 생존자들이 어쩌면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지금 이 시각에 드론을 날린 게 정말이지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드론을 그들 앞에서 띄우던 경오는 본체가 어딘지 모르게 비틀거린다는 걸 알아챘다. 이는 드론이 본체에 추가된 무게로 인해 무게중심을 잡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이었다.

즉, 저들은 쪽지 정도의 아주 가벼운 무언가 말고도 다른 걸 붙여놓은 거다.

수상하긴 해도 일단 문제없이 비행은 가능했기에 긴장한 얼굴로 그것을 되돌아오게끔 조종했다.

돌아오는 드론의 카메라에 자신의 집 베란다가 잡힌 순간, 경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난간에 매달리듯 붙어버렸다. 쪽지 말고 대체 무엇이 붙어 있는지 궁금했다. 이렇게 날 수 있을 정도라면 엄청 무거운 걸 매달아 놓은 것도 아니니 가벼운 비상식량 정도가 아닐까.

역시나 드론의 배에는 뭔가가 있었다. 흰 붕대로 드론의 몸과 함께 칭칭 감아놔서 정확히 무엇인지는 분간하기 어려웠다.

떨리는 손으로 드론의 배를 감은 붕대를 풀어보았다. 그러자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게 들어있었다.

낯익은 디자인의 손바닥만 한 분사형 흡입기, 검은색의 작고 가벼운 무전기, 그리고 그들이 말했던 쪽지.

경오는 다른 무엇보다도 흡입기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웬만한 건강한 사람들은 일평생 써볼 일도 없는 의약품이다. 경오 본인에게는 지금 당장 식량이나 식수보다도 가장 필요한 물건이기도 했다.

그런 물건을 어떻게 제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딱 맞춰 보내줄 수 있을까?

경오는 저도 모르게 집 안을 두리번거렸다. 별 볼 일 없는 일개 보안업체 시스템 기사를 감시하기 위해 CCTV라도 설치했나? 왜?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보며 긴장 어린 눈을 한 경오는 흡입기와 함께 온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드론…. 무전기….’

경오는 저도 모르게 눈을 반짝거렸다.

‘이거, 뭔가 그 영화 같은데?’

몇 달 전, 대학 동기 한 명이 직장 상사에게 깨져서 우울해하는 자신을 위로해준답시고 한국 좀비 영화 ‘#죽어있다’를 보러 영화관에 간 적이 있었다.

지금은 누가 좀비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면 정색하면서 거절하겠지만, 당시엔 어차피 자신과 상관없을 배경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스트레스 풀기엔 자극적인 영화만큼 좋은 것도 없기에 흔쾌히 따라갔었다.

재미있게 보긴 했는데, 친구와 자신 둘 다 기계공학과 출신이라서 그런지 기억에 남는 거라고는 탐나는 드론뿐이었다. 그때 흥미가 돌아서 지금의 애마를 구매 후 개조한 거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무전기 전달 방법이 좀 다르긴 했지만, 여하튼 드론에 이런 걸 붙여서 보내줄 줄이야.

이건 누가 봐도 통신하자는 의미였다.

경오는 직업 특성상 가끔 무전기를 쓰기도 한다. 그래서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이 무전기의 전원을 어떻게 켜고 어떻게 통신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전원을 켜기 전에 일단 쪽지부터 열어보았다.

[주파수는 맞춰뒀으니 바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흔한 인사말도 없이 용건만 간단하다.

급한 상황이든 아니든, 언제나 용건만 간단히 하는 걸 선호하는 경오로서는 이 쪽지를 준 왜소한 체구의 청년이 참 마음에 들었다.

무전기 머리 부분의 돌출된 부분을 시계방향으로 돌려서 전원을 켠 경오는 기계 옆구리의 버튼을 꾹 눌렀다. 기계음이 들린 걸 확인한 그가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드, 들립니까?”

말하자마자 버튼을 누르고 있던 손가락을 재빨리 뗐다. 이쪽에서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으면 저쪽의 말이 들리지 않기에, 혹시라도 대답을 못 들을까 봐 초보처럼 조급해했다.

말하기 위한 버튼을 눌렀을 때와 똑같은 기계음이 들렸다.

-예, 잘 들려요.

한 청년의 명확한 목소리를 들은 경오가 활짝 웃었다. 그는 층간소음 때문에 감히 시도도 못 해 봤던 제자리 뛰기를 하며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힘없이 처져있던 뱃살도 함께 신난 듯 출렁거렸다.

그러는 사이, 무전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저희가 거기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드릴 테니까 지금부터 말씀드린 것들 챙겨서 준비해주시겠어요? 20분 드릴게요.

“예? 뭐, 뭘 챙겨야 하는데요? 미리 말해두지만 먹을 거 하나도 없어요, 지금.”

-알아요. 갖고 계신 것 중에서만 불러드릴 테니까 걱정 마세요.

청년의 말에 경오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갖고 있는 것 중에서?’

자신이 뭘 갖고 있는지 어떻게 알고 불러준다는 걸까?

‘그러고 보니 너무 이상한데.’

경오는 드론으로 만났던 네 명의 남녀를 떠올려보았다.

드론이 그곳으로 향할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

현재의 자신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물건인 흡입기를 갖고 있던 것.

이제는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중에서 챙길 것들을 불러준다고 한다. 집에 뭐가 있는지도 모를 텐데.

경오는 손에 든 무전기를 내려다보았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사용법을 알려줘야 쓸 수 있을 텐데, 무전기 너머의 청년은 자신이 이걸 다룰 줄 안다는 걸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나에 대해 너무 잘 아는 거 아냐? 설마 스토커?! …그건 아니겠지.’

자신을 굳이 스토킹할 이유도 없고, 특히나 이런 시기에는 더더욱 말이 안 된다.

“뭘 챙기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챙긴다고 해도 뭘 어쩌게요?”

-거기서 탈출시켜드리려고요.

경오의 눈이 번뜩였다.

“탈출?! 어, 어떻게요? 여기 밖에 좀비 엄청 많아요.”

-알고 있어요. 가장 먼저 챙겨주셔야 할 건 우선…….

* * *

경오가 있는 아파트가 한눈에 보이는 구름다리 위.

오는 길에 구름다리 주변의 좀비들을 모두 처리해 놔서 그런지 아주 조용했다.

‘차라리 좀비들이 비명 지르는 거라도 들리면 나을 것 같아.’

긴장한 듯이 입술을 몇 번 오므렸다 폈다 하던 지안은 주변이 너무 고요한 나머지, 무슨 소리라도 잡아보려고 귀가 예민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까득-

‘히익….’

옆에서 들린 소리에 어깨를 움츠리며 숨을 삼켰다. 사람이 이빨 가는 소리가 이렇게 무섭게 들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누가 들으면 사람 뼈라도 갉아 먹는 줄 알겠어….’

지안은 너무 무서워서 차마 옆을 볼 수가 없었다.

‘모르는 척하자. 눈치 있게 굴어야 해, 이지안.’

분위기상, 조금이라도 옆 사람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버려질 것 같다. 어디에? 다리 아래로 보이는 좀비 무리에.

‘제발 빨리! 드론 아저씨 빨리 좀!’

발을 동동 구르며 경오가 빨리 제게 드론을 날려주길 바랐다. 그 드론에는 모처럼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물건이 달려 있을 것이다. 맡은 바 임무라도 하면 이 냉랭한 공기가 조금은 수그러들지 않을까.

지안은 준성과 함께 있을 때와 달리 냉기를 풀풀 날리다 못해 냉동고를 만들어버리는 한서가 너무나 무서웠다.

준성과 창민은 못 알아채고 가버렸지만, 그녀는 분명 똑똑히 보았다.

준성이 창민만 데리고 이동하겠다고 했을 때 한서가 그의 재킷 주머니에서 뭔가를 슥 뺐다가 다시 넣었던 것을.

‘난 몰라. 아무것도 못 봤어. 진짜 아무것도…….’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저 진짜 아무것도……!”

갑자기 들린 한서의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속에 있던 말을 토해낼 뻔한 지안이 멈칫했다. 그녀는 조금 전과 달리 입가에 미소를 걸고 있는 한서를 볼 수 있었다.

‘기분 괜찮아졌…나?’

얼떨떨하게 바라보다가 한서의 질문을 떠올리고는 얼른 제 이름을 말했다.

“이지안이요!”

이름만 벌써 7번째 물어보는 거지만 도저히 핀잔을 줄 수가 없었다. 지금도 주변 공기가 추워서 얼어 죽을 것 같다.

“그래, 지안아. 내가 뭐 하나 물어보고 싶거든.”

“뭔데요? 제가 아는 거라면 뭐든 대답해드릴게요!”

한서가 지안을 빤히 보더니, 지금의 공기와 전혀 안 맞는 질문을 던졌다.

“개 키워봤어?”

“어…, 개요?”

“응, 반려견.”

지안은 어릴 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키워봤어요.”

그 대답과 동시에 지안의 얼굴이 씁쓸해졌다.

‘지금은 엄마가 데려가 버리셔서 볼 수 없게 됐지만…….’

지안은 5년 넘게 못 본 엄마와 앙증맞은 포메라니안을 떠올리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시기가 이래서 그런지, 괜히 감성적이 될 것 같아서 머리를 붕붕 내저었다.

그런 지안의 귀에 한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잘 알겠네.”

“뭘요?”

지안은 그제야 한서의 미소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정확히는, 미소가 참 예쁜데 눈이 너무 살벌하다.

“개는 뭘 해야 주인님한테 예쁨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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