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4회 -
-4일째
다 쓰러져가는 낡은 빌라.
입구부터 4층 꼭대기까지 온통 신음하며 배회하는 좀비로 가득 차 있고, 곳곳에는 사람의 신체 일부였던 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흘린 과자조각마냥 산재해 있다. 페인트칠을 안 한 지 최소 몇 년은 된 것 같은 낡은 내벽엔 누군가가 새빨간 벽화라도 그린 것처럼 다양한 핏자국이 묻어있었다.
그 빌라의 4층 복도 끝 405호.
그곳은 이 빌라의 유일한 생존자 황경오가 숨어 지내는 곳이었다.
와드득, 와드득.
이빨로 뭔가를 부숴 먹는 소리가 방 안에 가득했다.
유일한 식량이던 봉지라면의 찌꺼기들을 알차게 깨부숴 집어먹던 경오는 곧 착잡한 얼굴로 봉지 속을 내려다보았다.
“다 먹었네….”
얼마 먹지도 않은 거 같은데 벌써 가루소스밖에 남아 있질 않다. 이틀에 걸쳐 먹은 거니, 완전한 바닥을 보인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한숨을 쉬며 헤드폰을 벗고 빈 봉지를 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로 나와 싱크대로 향한 그는 싱크대의 수도 손잡이를 올리며 물이 나올 부분에 습관처럼 입을 벌려 들이밀었다.
하지만 똑, 똑, 고작 두 방울의 수돗물이 전부였다.
“아…. 물 끊겼지, 참.”
입맛을 다시며 냉장고를 열었다. 안에 있던 생수통을 꺼내서 물의 양을 확인했다. 2L가 담겨 있었던 물통에는 이제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높이의 물밖에 남지 않았다. 고작해야 두 모금일 것 같다.
물통에 입을 댄 채 반 모금 정도만 마셨다.
‘그냥 소스 없이 먹었어야 했는데.’
익히지 않은 생라면의 면발만으로는 아무 맛도 없어서 괜히 소스를 뿌려 먹었나 싶었다. 덕분에 라면 소스의 짠기가 더 많은 물을 요구했다.
경오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냉장고에 얼마 남지 않은 물을 넣어놓았다.
나흘 전.
세상이 지옥으로 변했을 때까지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상상만 했던 게 현실이 되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세상에 진짜 좀비가 있구나.
귀신처럼 허무맹랑한 게 아니었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저번에 친구가 꼬셨던 좀비물 게임이라도 열심히 해볼걸.
가벼운 생각뿐이었다.
출근도 안 해도 되고 직장 상사한테 깨지지 않아도 된다. 부모님과 형은 지방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니 이렇게 먼 인한시까지 갑자기 달려올 리도 없었다. 그러니 가족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이 평온했다.
어차피 자신은 출근만 아니면 집에서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굳이 문을 열고 나가지 않는 한은 좀비와 맞닥뜨릴 일도 없다. 가끔 하는 게임의 온라인 친구들 외에는 찾아올 사람도 없고, 기다릴 사람도 없고, 나가서 만날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구조될 때까지 이 집의 문을 여닫을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집에 남아있는 거라고는 즉석밥 2개, 봉지라면 1개, 그리고 엄마가 지방에서 보내준 먹지도 않는 나물 반찬들과 묵은지 한 통, 2L 생수 반병.
이 정도로는 며칠 버티지도 못할 게 뻔했다.
집에 있는 식량을 확인하고 나서야 암담해졌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으면 비상식량이라도 챙겨두는 건데!
재난 상황에 빠진 직후에 누구나 생각하는 바를 그 역시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빨리 나가서 식량을 구해와야 할지, 아니면 이것만 갖고 버틸지 고민에 빠졌다. 그러는 사이, 빌라 안은 삽시간에 좀비로 뒤덮이고 말았다.
조금 낙관적으로 생각하자고 마음 먹은 경오는 이 얼마 되지 않는 식량으로 조금씩 아껴서 버티다 보면 금방 구조대가 올 거라 생각하며 집 안에 머물기로 했다.
해외의 좀비물 영화나 드라마는 관객의 흥미를 위해 주인공들이 구조도 없이 자력 생존하거나, 피가 튀는 잔인함을 앞세워 극단적인 것만 보여준다는 인식이 강했다. 빠른 구조 활동을 벌이기 어려울 정도로 땅덩이가 큰 미국 같은 곳보다야 한국이 훨씬 구조하기 쉬우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재난문자에서도 그랬듯, 야외 활동을 안 하면 된다.
안전한 곳에서 버티는 자가 결국 살아남게 될 거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4일째가 되는 오늘도 이렇다 할 구조 소식이 없었다.
2일째부터 자신의 ‘애마’를 하루 두 번씩 밖으로 내보내 봤는데, 구조대는커녕 온통 좀비밖에 보이지 않았다. 경찰서와 소방서까지 전부 좀비뿐이고, 우연히 생존자를 찾아도 얼마 못 가 좀비들에게 다 뜯어먹혔다.
정찰을 하면 할수록 알게 되는 건, 세상이 정말 지옥이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애마’가 여태껏 눈에 담았던 상황들을 떠올리자, 금방이라도 구토할 것처럼 속이 안 좋았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점차 엄청난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흡…, 헉…!”
극도의 불안감으로 인해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호흡곤란 증세가 이어졌다.
올 초에 직장 내 최악의 상사와 일하게 되면서 얻었던 공황장애가 지금처럼 정신적으로 불안할 때 한 번씩 발작적으로 찾아오곤 했다. 이럴 때 책상 밑에 들어가서 웅크리고 있거나 이불이라도 뒤집어쓰고 있으면 몇 분 만에 별 탈 없이 사라졌지만, 문제는 이게 신체의 다른 곳에도 영향을 준다는 거였다.
“힉, 허억, 헉…, 헉!”
경오는 다급히 방으로 뛰어들어가서 책상을 뒤졌다. 별의별 물건이 다 널려 있는 지저분한 책상 위를 한참을 더듬거리던 그가 한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그는 그 물건을 소중하게 품고서 얼른 책상 밑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새액, 색-
경오가 들숨에서 색색거리는 소리가 심해졌다. 평소에는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지금처럼 공황장애로 인해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을 깊이 들이마실 수밖에 없게 되면 꼭 이렇게 된다.
책상에서 집어 들고 온 손바닥만 한 천식 환자용 분사 흡입기를 급히 입에 물었다. 약물이 거꾸로 뒤집혀 꽂혀 있는 위쪽 부분을 누르며 5초에 걸쳐 숨을 들이쉬었다. 흡입기에 들어가 있던 약물이 스프레이 형태로 목구멍을 향해 분사되었다. 그대로 10초쯤 숨을 참았다가 내쉬니, 그제야 숨이 돌아오고 가슴의 답답함도 좀 사그라졌다.
이후에도 두 번 더 사용해서 호흡의 안정을 되찾은 경오는 곧 어두운 얼굴이 되었다. 흡입기 안에 들어있던 약병을 꺼내자, 역시나 약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천식이 있었던 경오는 공황장애를 얻음과 동시에 이 또한 심해져, 지금은 흡입기 없이는 불안해서 출근조차 못 하는 지경이었다.
흡입기의 약이 없으면 지금처럼 천식 발작이 올 때 이 상태를 이겨낼 수가 없다. 물이 많고 식량이 풍족해도 자칫 호흡곤란으로 꺽꺽거리다가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
‘오늘은 반드시 뭐라도 찾아내야 해. 구조대가 되었든, 생존자한테 도움을 요청하든, 뭐라도 해야한다고.’
이대로는 죽는다, 라는 생각이 강해진 경오에겐 더 이상 여유 부릴 틈이 없었다.
경오는 방 책장에 진열하듯 올려져 있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드론을 꺼냈다. 네 개의 프로펠러가 달린 흰색의 사각 드론이었는데, 어째 여기저기 기스가 많고 피까지 묻어있었다.
어제 좀비에게 잘못 걸려서 박살 날 뻔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돌아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부디 이번 정찰도 좀비들에게 걸리지 않고 잘 살아남아서 정상적인 누군가와 만날 수 있길 바랐다.
경오는 이번 좀비 사태 때문에 직접 소음이 거의 나지 않도록 개조한 자신의 ‘애마’와 컨트로러를 가지고 베란다로 나갔다. 밖을 둘러보니 역시나 좀비가 바글바글하고 멀리서까지 그들의 괴성으로 들려왔다.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범위에 보이는 생존자는 아직까지 아무도 없었다.
경오는 제발 이번만은 성과가 있길 바라며, 그렇게 드론을 띄웠다.
네 개의 프로펠러가 열심히 돌아가며 공중에 뜬 드론은 경오의 컨트롤러가 내리는 지시에 따라 힘있게 움직였다.
원래는 프로펠러에서 상당한 소음이 들릴 테지만, 좀비들이 몰려들 것을 우려해서 미리 개조해둔 덕에 지금은 값비싼 저소음 드론만큼 조용했다.
드론이 점점 멀리 날아가기 시작하고, 경오는 전방 카메라가 비추고 있는 모습을 컨트롤러의 작은 화면으로 확인하며 긴장한 얼굴을 했다.
‘오늘은 제발 누구라도 만나라. 제발…….’
속으로 애원하며 열심히 드론을 조종했다. 가면 갈수록 보이는 건 역시나 좀비뿐이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걸고자 했다.
그렇게 어제와 다른 방향으로 드론의 머리를 꺾는데.
‘응? 저게 뭐지?’
경오는 자신이 있는 빌라 쪽으로 넘어오는 구름다리에 몇 명이 가만히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드론을 점점 그들 가까이로 가져간 경오는 곧 화색을 띠었다.
‘사, 사람! 생존자!’
젊은 남녀로 구성된 네 명의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여자애까지 있었다.
경오는 드디어 살아있는 사람들과 제대로 만났다는 것에 반가워하며 속도를 높여 다가갔다.
그러자 그들 중 가운데에 선 한 남자가 웬 종이를 펼쳐 들었다. 다른 남자들에 비해 마르고 유순하게 생긴 청년이었는데, 오른손에는 수상쩍게도 붕대를 감고 있었다.
‘설마 물린 건 아니겠지?’
그랬으면 다른 사람들이 저렇게 멀쩡히 같이 있진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불안한 마음을 달랜 경오는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종이에 적힌 내용을 확인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