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49)화 (49/240)

- 049회 -

펑-!

귀가 얼얼해질 만큼 큰 폭음과 진동에 모두가 몸을 움츠렸다. 창민은 놀라서 주저앉아버린 지안을 몸으로 덮듯이 끌어안았고, 마지막으로 들어왔던 키 큰 남자는 자신의 등을 철문 쪽으로 향하게 한 채 준성을 품에 폭 끌어안았다.

꽉 닫힌 철문의 틈새로 먼지 바람이 퍽하고 터지듯 들어왔다. 하지만 그게 다일 뿐, 튼튼한 철문은 땅이 뒤흔들릴 정도의 폭발에도 멀쩡했다.

더 이상 폭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도한서에게 안겨 있던 준성은 그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이제 괜찮다는 의미였다.

신호를 받았음에도 조금 느긋하게 준성을 놓아준 한서가 철문의 문손잡이를 잡았다.

끼익.

철문을 열 때는 들리지 않던 마찰음이 들렸다. 직접적으로 폭발에 휘말리진 않았더라도 그만큼 큰 충격이 있었다는 소리다.

밖으로 나가자, 철문 앞쪽과 지하 복도 일부, 그리고 내려오는 계단 바로 앞까지 날아온 유리 파편과 다양한 잔해들이 퍼져 있었다. 주변에는 누가 잿가루라도 풀어놓은 것처럼 먼지가 가득했다.

네 사람은 신경을 곤두세우며 계단을 올랐다. 제일 앞에는 딱히 긴장감도 없어 보이는 한서가 섰고, 그 뒤를 준성, 창민, 지안 순으로 따라 걸었다.

계단을 올라와서 확인한 상가 건물들은 멀쩡한 게 없었다. 폭발이 어찌나 셌던지 웬만한 유리들은 다 깨져 있었고, 사방에는 어느 상가의 것인지 모를 다양한 물건들이 저마다 찌그러지고 파열되어 있었다.

한서는 자신이 둘러보고 올 테니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며 홀연히 사라졌다. 혼자 가는 그를 보며 창민이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준성이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을음과 먼지가 가득한 상가 내부를 눈으로 훑어보며 짧게 기침한 준성은 습관처럼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해내긴 했네.’

생각했던 대로 해결되어서 다행이었다.

꿈에서도 서창민과 이지안을 구하기 위해 몇 번의 시도를 해봤었다. 도움이 될만한 동료를 미리 만나서 팀을 짠 후 양동작전을 해보기도 했는데, 결과는 언제나 서창민과 이지안의 죽음이었다.

좀비들에게 죽을 뻔한 걸 살려주면 가스폭발로 죽었다.

가스폭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쪽을 조절하러 가면 그새 물려 죽었다.

어떻게든 좀비들에게서 살려내고 지하로 피신해서 폭발을 견디면 그들을 지척에서 쫓던 좀비들도 다 멀쩡한 상태라서 또 사투를 벌이다 죽었다.

어떻게든 살려보려 해도 도전하는 족족 죽기만 했다.

‘도한서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한 식당에 갇혀 있던 좀비가 안에서 난동을 부리면서 가스가 폭발하게 되는데, 이때 이쪽 상가의 위치와 창민이 도망치던 자리가 꽤 멀다. 한쪽이 가스폭발을 막고 다른 한쪽이 창민과 지안을 위기에서 구해낸다고 한들, 그들을 노리던 좀비들은 건재했다. 가스폭발을 막은 쪽도 많은 좀비 때문에 합류는커녕 어디론가 숨어야 했다.

결국 해결되는 건 없었다.

하지만 도한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수많은 좀비를 뚫고 가스가 폭발하는 쪽으로 가는 역할로는 도한서를 골랐다. 그는 어차피 좀비 무리에 있어도 무사하니, 그만큼 적격인 자가 없다. 창민 쪽을 구하게끔 보내면 많은 좀비 사이에서 무사한 그의 존재가 더욱 두드러질 테니 그쪽은 안 된다.

상가로 돌입할 때 준성에게 ‘백신’을 놓아준 한서는 예정된 가스폭발을 막는 대신, 그쪽으로 좀비들을 유인하기로 했다.

준성은 좀비들을 끌어낼 용도로 자신의 휴대폰을 제공했다. 그는 이전에 꿈에서 가스폭발을 막는 역할로 이동했을 당시, 그 식당 옆에 있는 네일아트 샵에 유선 스피커가 있는 걸 목격했었기에 그것도 이용하고자 했다.

준성의 휴대폰에서 나오는 벨소리를 스피커로 이용한 효과는 확실히 컸다. 창민을 쫓던 좀비들 외에도 상가 구석구석에 퍼져 있던 좀비들 모두가 한서 쪽으로 모여들었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보고 있던 한서는 준성이 지시한 시간에 맞춰 음악을 끄고 유유히 좀비 사이를 걸어 나왔다. 막상 모여버린 좀비들은 서로 목적을 잃은 것처럼 그 자리를 서성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뒤이어 그들은 모두 폭발에 휘말렸다.

준성은 돌아온 한서가 ‘좀비는 다 죽었다’라고 말해준 후에야 순수히 안도할 수 있었다. 그제야 진짜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껏 꿈에서 서창민과 이지안을 구하려 할 때마다 너무 많은 실패와 죽음을 체험해왔기에 이번의 성공은 더 크게 다가왔다.

긴장을 푼 준성이 그제야 창민과 지안을 돌아보며 그들에게 인사했다.

“강준성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친구 도한서고요.”

한서까지 함께 소개해주자, 창민이 모자에 눌려있던 머리를 손으로 헤집어 풀고는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서창민입니다.”

“이지안이에요. 근데 어떻게 된 거예요? 밖에서 왔어요? 여기 상가에 있던 오빠들 아니죠? 그리고…….”

통성명을 하자마자 지안이 질문을 쏟아냈다. 그녀는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을 손등으로 벅벅 문질러 닦더니, 사흘째 참았던 말을 내뱉었다.

“배고파요.”

* * *

서창민과 이지안을 구하는 데 성공한 준성과 한서는 근처의 공사 중인 빌딩으로 향했다. 틀 정도만 잡혀 있어서 쌀쌀한 바람조차 제대로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초기작업밖에 진행되지 않은 건물이었지만, 그들이 머물 곳은 그곳이 아니었다.

“들어와요.”

준성은 건설현장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 안을 마치 자기 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어오라고 권했다. 창민은 예의 바르게도 ‘실례합니다’라고 말하며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준성은 그들을 구하러 가기 직전에 이곳을 먼저 들렀다. 인한병원까지는 거리도 있고 무엇보다 그쪽은 아직까지도 좀비가 너무 많아서 이들을 데리고 들어가긴 어려웠다. 자신과 한서 둘뿐이라면 백신을 맞든 그와 껴안고 걷든 해서라도 돌파할 수 있지만, 이 둘까지는 불가능했다. 한서의 능력은 만일을 위해 감춰야만 하고 말이다.

어차피 병원으로 돌아가는 건 7일째 혹은 그 전날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몇 명 더 필요한 인원이 있으니, 최대한 그들을 구해서 합류 후 이동할 생각이었다.

임시 거처로 낙인찍은 곳은 바로 이곳, 건설현장의 컨테이너 박스 사무실이었다.

안에는 협소하긴 해도 화장실이 있었고, 세면대와 그 옆에 엉성하게 걸린 샤워기까지 있었다. 자가발전기를 탑재한 덕분에 한동안 전기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보일러도 건재했다. 하나 아쉬운 거라면 단수가 되어서 정수기가 있어도 물이 안 나온다는 거였다.

물과 식량 문제만 해결된다면 여러모로 잠시 머물기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사무실로 쓰던 곳이다 보니, 한두 사람이 겨우 오고 갈 수 있을 정도로 빽빽한 책상과 테이블, 의자 등이 많았다. 그래서 일행은 우선 쓸모도 없는 그 가구들을 모두 밖으로 빼놓기로 했다.

“어차피 근처에 좀비도 없는 거 확인했으니까 편하게 내놓으면 될 거예요. 빨리빨리 내놓고 쉬죠.”

거추장스러운 코트를 벗고 팔까지 걷어붙인 준성이 눈앞에 보이는 유리 테이블부터 집어 들었다. 유리 때문인지 생긴 거에 비해 꽤 무게감이 있었다.

“이리 줘, 허리 나가.”

옆에서 불쑥 끼어든 두 손이 유리 테이블을 냉큼 가져가 버렸다. 한서는 준성과 달리 테이블을 너무나 거뜬히 들어서는 컨테이너 사무실 밖으로 갖고 나갔다. 그럼 의자라도 들고 나가야지, 하고 접이식 의자 두 개를 향해 양손을 뻗었다. 후다닥 나타난 창민의 팔이 그 두 개의 의자를 착착 접어서 겹쳐 들었다.

“이런 건 제가 하겠습니다. 다치니까 그냥 쉬고 계세요.”

그러고선 다른 접이식 의자까지 다 챙겨서 무려 여덟 개를 한꺼번에 들고 나가버렸다. 접이식이라고는 해도 철제 기둥이 들어간 거라서 무게가 상당할 텐데도 힘든 내색 하나 없다.

두 남자의 힘자랑 아닌 힘자랑을 봐버린 준성은 뭐라도 밖에 내놓을 요량으로 책상에 있는 컴퓨터로 다가가 연결선을 다 빼버렸다.

모니터를 집어 들자마자 또 뺏겨 버렸다.

“제가 들게요, 오빠. 저 보기보다 힘 좋아요.”

배시시 웃은 지안이 모니터를 품에 폭 안아 들고서 종종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그녀와 바톤 터치라도 하듯이 한서가 들어와서 책상을 뚝 떼어 가져가고, 컴퓨터 본체를 들려고 하자마자 놀라서 달려온 창민이 손 다친다며 또 뺏어갔다.

‘이것들이…….’

준성은 자신이 대체 얼마나 약해 보이길래 다들 저러나 싶어서 한숨을 내쉬었다. 코트를 벗어놔서 늘씬하게 마른 몸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탓이라는 걸, 그는 모르고 있었다.

걸리적거리는 가구들을 전부 내놓고서 병원에서 챙겨온 물티슈로 바닥을 꼼꼼히 닦은 일행은 따뜻하게 보일러까지 도는 그 안에서 둥글게 모여 앉았다.

준성은 물도 제대로 못 마셨을 창민과 지안을 위해 자신의 백팩을 열었다. 그 안에서 두 개의 칼로리 바와 생수 두 통이 튀어나왔다. 두 사람이 환한 얼굴로 그걸 받아들자, 이번엔 병원에서 챙겨온 모포를 꺼내서 지안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보일러가 이제 막 돌기 시작해서인지 그녀의 어깨가 아직 추워 보였기 때문이다.

배시시 웃으며 준성의 배려에 고마워하던 지안이 슬쩍 물었다.

“근데 혹시 구조대는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던데…….”

“한동안은 기대하기 어려울 거야.”

“아….”

지안의 얼굴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그래서 말인데, 내일 인한시 바깥 상황을 알아봐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러 가려고 해요.”

“정말입니까?”

묵묵히 칼로리 바를 먹고 있다가 고개를 번쩍 든 창민이 눈을 빛냈다. 상가 건물에 갇혀서 아무 정보도 못 얻고 답답해했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준성은 인한시 바깥 상황을 알아봐 줄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서창민을 구한 거나 다름없었기에, 그에게 대답을 유도하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좀비들 상대로 아주 잘 싸우시던데, 무술 쪽 하시는 분인가요?”

“무술 쪽이라기보다는…….”

창민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707 특수임무단 소속입니다. 지금은 휴가 중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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