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8회 -
“어…떻게…….”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누가 봐도 물어뜯겨 죽을 상황이었다. 빈틈없이 포위한 좀비들의 얼굴이 서로 앞다투어 물어뜯기 위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그들의 붉은 눈은 분명히 준성을 눈에 담고 있었다.
카학….
크흐….
괴성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신음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소리가 나왔다. 한서를 향해서는 꼬리 내린 덜 떨어진 신음이나 흘리더니, 준성에게는 ‘이걸 물어, 말어’하고 고민하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다.
아직까지 준성을 포위한 채 그르렁거리며 주춤하던 좀비들은 한서가 그들에게 가까이 걸어가자 멈칫하더니 뒤로 물러났다. 한서가 준성 옆에 다가섰을 땐 먹이를 다 같이 뜯어 먹기 위한 좀비들의 포위망도 완전히 깨져 있었다.
좀비들은 준성을 보며 입맛 다시듯 그르렁거리긴 했지만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그건 한서의 영향이 크겠지만, 준성마저도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게 확실했다.
준성은 긴장한 얼굴로 한서를 바라보았다.
“네 피 때문이야?”
“약 5분. 양에 따라 다르지만 주사기 한 병 분량이면 그 정도는 버텨.”
“5분….”
꽤 구체적인 시간이 수상쩍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너로는 테스트도 안 될 텐데.”
도한서는 애초에 좀비가 기피하는 데다가 본인이 본인 피를 본인에게 넣어봐야 별다른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임상시험은 어떻게 한 걸까.
한서의 미소가 기괴하게 비틀렸다.
“알고 싶어?”
흐음- 하는 소리와 함께 고민하는 척하는 얼굴이 보였다. 그러다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안 돼.”
한서는 애초에 준성에게 말해줄 생각이 없었던 눈치다. 단호한 얼굴 위로, 더 이상 물어보지 말라는 의미가 담긴 날카로운 눈동자가 베일 듯한 기세를 뿌렸다.
“난 네게 내 ‘이용 방법’을 하나 더 알려주는 것뿐이야. 그걸 믿고 이용하든 아니면 무시하든, 결정하는 건 네가 해.”
더 깊이 파고들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집요해졌다가는 자신 쪽이 도리어 파헤쳐질 것 같은 기분.
준성은 말없이 ‘자신의 백신’을 바라보았다.
준성은 새롭게 알게 된 도한서의 능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캭, 카학…!
이를 박아넣으려던 좀비 하나가 주춤한 사이, 그 머리를 강하게 내리쳐 깨버렸다. 박혀있던 마체테를 빼내자, 눈앞에서 검붉은 피가 튀었다.
도한서의 피는 ‘백신’으로서의 효과를 톡톡히 보여주고 있었다.
한서에게 그렇듯이 좀비들이 처음부터 기피하고 거리를 두는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그들 얼굴과의 거리가 한 뼘도 안 되면 그때 덜컥 멈추게 되는 것 같았다.
살아있는 완벽한 백신.
면역자 같은 건 도한서에게 비벼볼 수도 없다.
심지어 그의 피는 실제로 백신을 주사한 것 이상의 효과를 냈다.
‘5분밖에 안 된다는 게 흠이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물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 무기를 휘두르는 손은 거침이 없었다. 5분밖에 안 되는 제한된 시간 안에 서창민과 그 옆의 여학생을 구해야 하니, 마음이 급해서 팔이 아프든 말든 달려드는 것도 있었다.
준성은 좀비들을 상대하면서 점차 빠르게 서창민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중간에 합류하는 좀비들이 많긴 하지만 일부러 거리상 합류가 빠르고 적은 좀비를 상대할 수 있는 곳으로만 골라서 파고들고 있었다.
가까워지는 동안, 서창민은 준성 쪽을 의식하면서도 이지안을 지키는 데에 전력을 다했다. 겁에 질린 지안을 등진 채 상당한 몸놀림으로 좀비들을 밀어 넘어뜨리고 있었다. 이렇다 할 무기도 없이 육체적 공격으로만 저렇게 방어가 가능하다는 게 대단할 뿐이다.
거의 다 가까워졌다 싶은 그때.
시계를 확인한 준성이 고개를 번쩍 들며 창민에게 외쳤다.
“지금 바로 옆 골목으로 들어가서 끝까지 뛰어요! 중간에 파이프!”
준성의 말을 들은 창민은 잠깐의 멈춤도 없이 곧바로 튀어나갔다. 지안의 손을 붙잡고서 준성이 말한 둘 정도밖에 지나가지 못하는 좁은 상가 골목으로 들어가자, 좌우 상가의 창문에 길을 막듯 가로로 얹어져 있는 허리 높이의 쇠파이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안과 함께 허리를 숙여 쇠파이프를 지나친 창민은 준성이 말했던 대로 골목 끝까지 빠르게 뛰어갔다. 그러는 동안 등 뒤에서 괴성이 우르르 막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캭! 카학! 칵!
가아악!
소리가 금세 멀어지기에 뒤를 돌아보자, 지능이 없는 좀비들은 앞다투어 돌진만 하다가 쇠파이프에 걸린 채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앞으로 갈 줄만 알지, 숙여서 지나가거나 뒤로 물러나는 등의 방법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좀비 무리의 앞 열이 파이프에 허리가 걸려 퍼덕거리고, 그 뒤를 차곡차곡 쌓듯이 돌진만 하고 있다. 덕분에 도망칠 시간을 벌었다.
준성의 말대로 끝까지 달리니, 오른쪽으로 난 길밖에 없어서 또 달렸고, 그 앞에도 오른쪽 길이기에 무작정 달렸다.
키헤엑!
갑자기 창민의 앞으로 두 팔이 없는 좀비가 나타나, 어깨와 몸을 마구 흔들며 입을 찢어지게 벌려 댔다. 예기치 못한 기습에 검은 캡모자를 얼른 벗어서 그 챙을 입에 처넣었다. 좀비의 입에 가로로 길게 들어간 모자챙이 재갈 역할을 했다.
좀비를 발로 차서 밀어내려던 찰나.
칵!
좀비가 짧게 소리치며 피막으로 뒤덮인 눈을 번쩍 떴다. 그의 정수리에는 검은 도신의 마체테가 박혀있었다. 곧바로 마체테가 박힌 좀비의 몸이 옆으로 맥없이 쓰러졌다.
“괜찮아요? 물린 데는 없죠?”
창민은 눈앞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마체테가 좀비를 단번에 쓰러뜨린 것으로도 놀라운데, 자신을 도와준 게 이렇게 연약해 보이는 사람이라는 것에 훨씬 더 놀라고 말았다. 준성이 그의 속마음을 그대로 들었다면 싸늘하게 정색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걸 얘기할 틈이 없었다.
준성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창민을 확인하고는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골목은 정사각형의 상가를 중심으로 사각 띠처럼 주변을 돌 수 있었다. 즉, 창민이 들어간 골목으로 계속 달리다가 길대로 꺾고를 반복하다 보면 좀비들의 뒤편, 그러니까 준성이 있는 쪽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준성 쪽에서도 창민과 합류하기 위해 일부러 나오는 쪽의 골목으로 좀비들의 눈을 피해 뛰어들어갔던 거고.
준성은 시계를 보며 속으로 초를 세었다. 얼마 가지 않아 멀리서 웬 벨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어찌나 큰지 다들 저도 모르게 귀 한 쪽을 손으로 막아버렸다.
근거리에서 들리던 좀비들의 괴성이 사뭇 바뀌었다. 멀리서 들려온 음악 소리에 맞춰 더욱 큰 괴성을 지르며 그쪽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귀를 세운 준성은 창민과 지안에게 기다리라는 듯이 손을 들어 보이고는 천천히 골목을 나갔다. 파이프에 막혀서 지나갈 수 없던 골목 입구 쪽의 좀비들이 전부 사라져있다.
창민과 지안을 보고 있었다고는 하나, 파이프에 막혀서 허우적대는 동안 시야에서 두 사람을 놓치고 말았다. 시야 범위는 충분했어도 골목 끝으로 가서 꺾어 들어가 보이지 않으니 당연히 놓치게 된다.
그때 맞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면 당연히 그곳으로 우르르 갈 수밖에 없다. 덕분에 지금 골목 밖은 단 한 명의 좀비도 보이지 않는 아주 쾌적한 상태였다.
창민이 안심하려던 순간.
“뛰어요!”
준성이 갑자기 신호를 보내며 창민의 손목을 붙잡아 달렸다. 얼결에 지시대로 달리게 된 창민은 준성처럼 지안의 손목을 잡았다.
시계를 노려보며 어딘가로 뛰던 준성은 상가의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앞으로 22초…!’
앞서 내려가지 않고 창민과 지안을 먼저 보냈다.
“내려가자마자 왼쪽에 철문으로 된 ‘창고’가 있을 거예요. 그 안으로 들어가 있어요.”
“그쪽은요?”
잡았던 손을 풀어주며 보내려는데, 창민이 도리어 준성의 팔을 잡았다.
“그쪽은 안 가요?”
“데려갈 사람이 있어서 그래요. 금방 갈게요.”
“데려갈 사람이라니…….”
오늘 오전에 은밀히 상가 건물 내부를 훑고 물을 챙기던 창민으로서는 데려갈 사람, 즉 좀비로 가득한 이 건물에서 자신들 이외에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 사람이 만약 남아있다고 해도 여기로 오는 도중에 이미 죽었지 않았을까?
“괜찮으니까 빨리 들어가요.”
준성이 창민을 안심시키듯 말하며 지안을 눈짓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창민은 지안 때문에라도 지하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지하로 내려가니 정말 바로 왼쪽에 철문이 하나 있었다. 대놓고 ‘창고’라고 적힌 문을 여니, 문고리도 잘만 돌아갔다.
‘상가 직원이었나?’
의아해하며 문을 열자, 갖가지 물품들로 가득한 좁은 내부가 보였다. 벽지도 없는 사각의 차디찬 콘크리트 방이다.
창민은 지안을 안에 밀어 넣으며 역시 나가서 준성을 끌고 오려 했다.
다행히 그러기도 전에 준성이 나타났다.
창민이 화색을 띤 것도 잠시.
너무도 멀쩡해 보이는 하얀 피부의 키 큰 남자 하나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눈빛이 이상할 정도로 차갑고 분위기가 꺼림칙한 미청년이었다.
남자의 정체를 물을 새도 없이 준성은 밖으로 나오려던 창민을 밀어 넣고서 키 큰 남자까지 들어오자 곧바로 문을 쾅 닫았다.
철문 닫히는 소리보다 몇 배는 큰 폭음이 들린 것은, 준성이 시계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달싹이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