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6회 -
“뭐, 뭐야, 당신들은!”
안으로 급히 들어온 사람은 흰 머리가 성성한 삐쩍 마른 남자였다. 그는 이 세탁소의 주인으로, 좀비가 퍼졌을 당시에 사람들 무리에 휩쓸려서 다른 곳에 숨어있다가 이제야 돌아온 참이었다.
세탁소 주인은 설마 자신의 가게 안에 낯선 사람이 무려 넷이나 있을 줄은 몰랐었기에 심장이 철렁한 얼굴이었다.
세탁소 안쪽에는 파란색 시트지가 어른 어깨만큼의 길이로 잘려 붙어 있었고, 입구 유리문에는 색색의 시트지로 큼직하게 ‘세탁’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시트지에 가려서 보이지 않거나 입구와 떨어져 있어서 못 알아챈 듯하다. 어쩌면 너무 급해서 그런 걸 신경 쓸 겨를도 없었고.
문에 딱 붙어서 겁먹은 얼굴로 안을 바라보던 세탁소 주인은 사람들을 향해 목소리를 낮춰 소리쳤다.
“당장 나가요! 내 가게라고!”
자기 가게라고 하니 싫다고 대들기도 난감했다.
지안이 그의 눈치를 보며 조금 애교라도 피울까 할 때였다.
“아저씨가 나가! 밖에 괴물밖에 없는데 어딜 나가라는 거야! 제정신이야?!”
안 그래도 화나 있던 어린 청년이 언성을 높였다. 세탁소 주인은 혹시나 저 소리에 좀비들이 올까 봐 황급히 문 너머를 힐끔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지척에서 캭! 하는 짧고 굵은 괴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좀비 하나가 유리문에 온몸 바쳐 달려들었다.
캬학-!
문에 달라붙은 좀비가 입을 쩍 벌렸다.
“으악!”
세탁소 주인이 깜짝 놀라며 입구에서 떨어졌다. 유리문이 가득 흔들릴 만큼 거칠게 달려든 좀비가 유리 너머에서 입을 쩍 벌렸다. 검붉은 피막이 덮은 눈만큼이나 걸쭉한 피가 줄줄 흐르는 입, 그리고 부서진 치아 사이로 시끄러운 괴성이 터졌다.
캬학- 칵!
마구 소리를 지르며 피 묻은 두 손으로 입구를 때렸다. 유리문이 두껍다고는 하나, 저 정도로 격하게 흔들고 때리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빨리 몸 숨겨요! 다들 빨리빨리!”
지안이 외치며 시트지에 가려지는 구석 자리로 달려가 몸을 웅크렸다. 다른 사람들도 입구의 유리를 통해 자신들이 비치지 않도록 재주껏 숨기 바빴다. 어떻게든 시야에서 오래 벗어나 있으면 어느 순간 좀비들도 돌아선다는 걸 첫날에 이미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좀비의 괴성 때문에 저 멀리 어딘가의 다른 좀비가 괴성을 지르며 뛰어오는 게 느껴졌다. 다른 방향에서도 마찬가지다.
‘어후, 정말! 또 둘러싸이겠네.’
안 그래도 첫날에 이런 광경을 자주 본 탓에 지안은 이제 아주 이골이 났다. 저 좀비들은 도대체가 지치질 않는다며,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중얼 욕을 해버렸다.
‘오빠는 어쩌지?’
서창민은 친오빠도 아니고 세탁소에 숨어들어서 처음 만나게 된 사람이지만, 워낙 든든하고 사람이 착해서 많이 의지가 되었었다. 본인이 마실 물도 양보하고 사람들이 추울까 봐 직접 두툼한 옷도 찾아다 주고 했던 사람이니까 아마도 밖에 먹을 걸 구하러 나갔나 보다. 밖이 저렇게나 위험한데.
‘괜찮으려……!’
세탁소 안의 넓은 다리미판 밑에 숨었던 지안은 고개를 돌리다가 경악할 만한 것을 보고야 말았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자신처럼 다른 다리미판 밑에 몸을 웅크린 채 얼굴을 푹 숙이고 있는 세탁소 주인이 있었다.
뚝, 뚝.
세탁소 주인의 눈에서 붉은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눈알은 이미 붉은 피에 물들어 있었고, 그는 목구멍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피를 막기 위해서인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지안은 너무 놀라서 웅크리고 있던 상태로 뒤로 툭 넘어졌다. 엉덩이가 찬 바닥에 닿으면서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의 오싹함이 올라왔다.
‘어, 어떡해…!’
세탁소 주인의 변화를 본 것은 지안뿐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덜덜 떨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바깥에 있는 좀비의 시야에서 벗어나려는 생각밖에 없어서 웅크리고 숨을 죽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사이, 입구의 문과 그 옆의 시트지가 붙은 유리 쪽에 몇 명의 좀비가 더 달라붙어 버렸다.
좀비들은 한 명, 두 명, 적은 수일 때는 결국 시야에 들어오는 게 없으면 천천히 돌아선다. 하지만 좀비들의 수가 많아지고 괴성이 더 커지면 또 새로운 좀비들을 불러온다. 돌아섰어도 요란한 괴성이 쌓이고 쌓여, 그걸 듣고 다시 달려들게 되곤 한다.
지금 상황은 가히 좋지 않았다. 좀비의 수가 이대로 늘어가면 금세 포위되어 오도 가도 못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큰 문제는 세탁소 주인이었다.
“우욱!”
세탁소 주인이 참지 못하고 입에서 피를 왈칵 뱉어냈다. 좀비로 변하는 사람들이 피눈물을 줄줄 흘리다가 눈알을 빨간 막이 뒤덮고 나면 꼭 저렇게 입 밖으로 핏덩이를 뱉어냈다.
“꺅!”
바닥에 후두둑 떨어져서 선명히 퍼지는 핏물을 본 지안이 뒤로 바닥을 기어 물러났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도 세탁소 주인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우악, 씨발! 아저씨 뭐야!”
“조, 좀비?!”
“으아악! 으악! 빠, 빨리 내보내요!”
다들 너도나도 할 거 없이 소리만 빽빽 지를 뿐이었다. 다들 황급히 물러나기 바빴고, 그러다가 그만 입구랑 가까워졌다. 문밖에서 마구 소리를 지르던 좀비들이 더욱 크게 소리쳤다. 다시금 시야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잡히자, 기뻐서 포효라도 하는 듯이 마구 날뛰었다.
지안은 어깨를 벌벌 떨며 이 상황에 절망했다.
밖에 나갔을 창민이 빨리 와서 도와주길 바라는 한편, 그가 와도 방법이 없을 걸 알기에 차라리 일찍 밖에 나가버린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으으…, 오빠….”
저도 모르게 흘리기 시작한 눈물에 숨을 들이켜고 있던 그때.
검은 모자를 쓴 누군가가 밖에 있던 좀비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한 좀비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 쓰러뜨리더니, 뒤이어 다른 좀비의 머리를 웬 2L 생수병으로 내리찍어버렸다.
그를 알아본 지안이 눈을 크게 떴다.
“창민 오빠!”
역시 버리고 간 게 아니었다. 물은 어디서 구했는지, 또 한 통의 2L 생수병 바닥으로 다른 좀비의 면상을 가격하는 게 보였다.
좋아하던 것도 잠시.
“으, 어어으아-!”
갑자기 세탁소 주인이 허리를 기이하게 뒤로 꺾으며 입을 쩍 벌려 울었다. 어깨가 탈골될 것처럼 비틀리고 양손의 피 묻은 손은 관절이 온전치 못한 것처럼 뚝뚝 이리저리 비틀렸다. 그의 입에서 아직 덜 굳은 붉은 피가 쩍 벌린 입 밖으로 주르륵 흘러나왔다.
크아아-!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린 괴성이 세탁소 안을 채웠다.
어떻게 대처할 새도 없었다.
그나마 가장 가까이 있던 뚱뚱한 30대 남자에게 달려든 세탁소 주인이 그의 목과 어깨 사이의 움푹 들어간 자리를 물어뜯었다.
“으아아아아-!”
목에서 한 움큼이나 되는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뜯어먹힌 부위에서 피가 터지고, 뒤이어 이를 박아넣은 통통한 볼도 곧 반쪽이 되어 피 칠갑이 되었다.
피에 절기 시작한 30대 남자가 괴로워서 몸부림쳤다. 세탁소 주인은 그 삐쩍 마른 몸을 지금부터라도 찌워보려는 것처럼 남자를 게걸스럽게 뜯어먹었다.
“으, 으악…!”
두 다리를 벌벌 떤 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던 젊은 청년이 뒤로 물러나다가 그만 다리가 풀려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 기척에 세탁소 주인, 아니, 좀비가 그를 노려보았다. 입으로는 손바닥만 한 고깃덩이를 맛있게 질겅거리면서도 붉은 피막이 덮은 눈으로는 청년을 다음 먹잇감으로 점찍었다.
캭, 크학-!
좀비는 입에서 본인 것인지 뜯어먹힌 사람의 것인지 모를 피를 흘려대며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팔다리의 힘이 다 빠져 있던 겁먹은 청년은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처절한 비명만 질러대야 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지안은 도저히 제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었다. 사방에서 좀비들의 미친 듯한 괴성이 난무하고, 사람들의 고통 어린 비명이 터지며,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온통 피, 피, 피, 피뿐이다.
지안은 다시 다리미판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귀가 짓눌릴 만큼 닫아도 괴성과 비명이 파고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눈을 꾹 감고 이를 꽉 깨물었다.
그저 이 지옥이 빨리 지나가길 빌었다.
아줌마의 비명까지 덧대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아무 비명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설마… 다 끝났나…?’
근거도 없으면서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가 뭘 어떻게 해줬든 상관없었다. 그냥 좀비들이 다 가버렸으면, 이 상황이 다 끝났으면 좋겠다.
일말의 희망을 갖고 눈을 천천히 떠보았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건, 바로 코앞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붉은 눈의 좀비였다.
캬아아-!
“꺄아아-!”
닮은 느낌의 괴성과 비명이 함께 터졌다.
“지안아!”
세탁소 안으로 뛰어들어온 창민은 이제 막 지안을 뜯어먹어 보려던 좀비의 머리를 급하게 발로 후려쳤다. 날아가다시피 한 좀비가 볼썽사납게 바닥에 떨어졌다가 몸을 뚜둑뚜둑거리며 일으켜 세웠다.
그러는 사이, 가장 먼저 물렸던 뚱뚱한 남자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의 눈과 입에서는 역시나 좀비들과 같은 붉은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창민은 그들을 전부 상대하기보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지안을 데리고 피신할 생각이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세탁소 밖으로 뛰쳐나왔다.
상가 건물에 넓게 퍼져 있던 좀비들이 소란을 듣고 몰려오고 있었다. 점점 불어나는 수에 지안이 기겁하며 숨을 삼켰다. 그녀의 손을 꽉 잡은 창민 역시 검은 모자 밑으로 이를 꽉 깨물었다.
창민은 지안을 데리고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위해 달리면 달릴수록 좀비들에게 포위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능 없는 좀비가 의도적으로 그러진 않았을 테니, 아마도 퍼져 있던 좀비들이 점점 더 몰려오는 것일 거다.
‘방법이 없나….’
산전수전 다 겪어왔던 창민도 이번만큼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는데.
크헉-!
달려오는 좀비 무리의 끝에서 다른 성향의 괴성이 들렸다.
‘저게… 뭐지…?’
누군가가 좀비 무리의 뒷머리를 사정없이 깨부수며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