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3회 -
키스와 손바닥에서 만족하는 게 아니라, 그 몸 안을 마구 헤집고 싶다.
이불을 걷어내고 옷을 거칠게 잡아 뜯고서 그의 두 다리를 벌려 박아 넣고 싶었다.
‘돌아버리겠네.’
과격한 상상과 함께 몸 곳곳에 퍼지는 저릿함이 너무나 기분 좋았다.
준성의 입술을 빨아당기고 아프지 않을 정도로 잘근거리며 씹다가 할짝이길 반복했다. 흉기에 가까운 큼직한 아랫도리가 한껏 성을 내는 것과는 달리 간지러울 정도로 상냥한 애무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한서의 머릿속은 강준성을 향한 온갖 과격한 생각이 가득했다.
아래가 뚫리는 고통과 쾌감에 울부짖는 강준성이 보고 싶다.
제게 매달려 엉엉 우는 강준성이 보고 싶다.
그만하라고 애원하면서도 질질 싸주는 강준성이 보고 싶다.
강준성. 강준성. 강준성. 강준성. 강준성. 강준성.
머릿속이 온통 강준성으로 도배가 되었다.
그에 맞춰 쿠퍼액까지 뚝뚝 흘러나올 정도로 잔뜩 부풀어버린 성기가 슬슬 절정을 맞으려 했다.
더 비벼대고 싶었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한서의 성기가 준성의 손에 앞뒤로 빠르게 비벼졌다. 퉁, 퉁, 거세게 올려치듯이 앞으로 돌진하다가 쑥 빠져서는 그 반동만큼 또 퉁, 하고 쳐들어갔다.
한서는 자신의 머릿속에 멋대로 상상되는 강준성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이렇게 강하게 쳐올릴 때마다 자지러지는 그의 얼굴을 상상하니 감정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애꿎은 준성의 입술과 목을 쪽쪽 빨아당겼다. 욕망에 취해서 끙끙대는 짐승처럼 그와 볼을 비비다가 할짝거렸다.
“하아…, 준성아…, 준성아….”
강준성의 이름을 닳도록 읊어대며 아래를 마구 비볐다. 아랫배 깊은 곳에서 손톱을 세워 올라오고 있는 강렬한 쾌감의 머리가 보였다. 그것은 곧 굵은 성기에 빠르게 차올라, 금세 엄청난 감각의 절정을 선사해 주었다.
“윽…!”
한서의 입에서 이를 꽉 깨문 신음이 흘렀다.
뒤이어 투두둑, 투둑, 하는 액체 튀는 소리가 들렸다.
강하게 쳐올리는 자세로 멈춰 서서 사정해버린 성기 끝이 위아래로 꺼덕이며 준성의 배를 톡톡 두드렸다. 그때마다 미처 기둥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던 액이 쥐어짜듯 떨어졌다.
“하….”
사정의 후희에 취한 한서의 신음이 준성의 입술에 닿았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쾌감에 홀려버린 한서는 준성의 입술에 연신 입을 맞추었다.
‘지금도 이렇게 좋아 죽겠는데, 몸 안에 깊숙이 넣어보면 얼마나 기분 좋을까.’
손에 비벼지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겠지.
벌써부터 설렌다.
침대도 부실하고 처음부터 과격하게 하면 도망가버릴까 봐 이 정도로 만족하려던 거였는데, 오히려 충동에 불씨를 지폈다.
‘다음엔 꼭 튼튼한 침대 위에서 마구 넣어봐야겠어. 도망 못 가게 묶어놓고서라도 해봐야지.’
한서가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그의 아래에서 손을 빌려준 채 연신 키스 당하고 있던 준성은 반쯤 혼이 나가 있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제 손에 성기를 개처럼 비벼대며 헐떡거리던 한서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속에서 웅웅거리고 있었다. 성기에 비벼지고 쓸리면서 마찰 때문에 간질거리게 된 손바닥이 마구 움찔거렸다. 물린 것처럼 아릿한 목 언저리가 화끈거렸다.
준성은 어둠 속에서 자신이 도한서와 뭘 한 건지 재차 자각했다.
“그럼 약속해줄래? 내가 이상한 충동이 좀 자주 오거든.”
“그럴 땐 네가 억제해주면 안 될까? 무슨 방법으로든.”
낮에 한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가 말한 ‘무슨 방법으로든’의 뜻이 이런 거였나 보다.
“살인 충동과 성욕은, 흐음…, 종이 한 장 차이야…. 어느 쪽이든 흥분된다는 건 똑같거든…. 다르게 말하면…, 하…, 두 욕구가 서로를 대신할 수 있다는 거지….”
열에 들뜬 목소리로 말해주던 그 내용을 함께 조합해보니, 억제제의 역할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는 살인의 대체가 성욕 풀이로 가능하다는 데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행위로 살인을 억누를 수 있다면 오히려 싸게 먹힌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반면 준성의 몸은 머릿속만큼이나 냉정하지 못했다.
‘도한서는 그렇다 치고 나는 왜…….’
뜨거울 정도로 얼굴에 열이 올라버린 준성은 이불 속에 숨은 오른손으로 자신의 아래쪽을 꾹 눌렀다. 두툼하게 올라와 있는 앞섶이 준성의 오른손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잠을 잘 자게 해주겠다며 침대를 벗어났던 한서는 준성의 이불을 새것으로 바꿔주고서 금세 잠들어버렸다. 반면 준성은 얼굴과 아래쪽에 몰린 열기가 완전히 사그라질 때까지 더더욱 잠을 못 자게 되었다.
* * *
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
일찍이 잠에서 깨어난 한서는 침대에 앉은 채로 가만히 준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 쪽을 바라보며 옆으로 몸을 둥글게 말아서 자고 있는 모습이 꼭 아기 같다.
한서는 어느새 자신의 침대에서 내려와, 준성의 침대에 두 팔을 얹고서 그 위에 턱을 대었다. 베개를 벤 준성의 얼굴과 한서의 눈높이가 알맞아졌다.
잠든 준성의 얼굴을 조목조목 뜯어보듯 감상해보았다.
얇은 검은 머리카락 속에 가려진 동그란 이마, 두께가 얇고 꼬리가 긴 눈썹, 맑은 눈동자를 감싼 얇은 눈꺼풀과 파르르 떨릴 때 특히 예쁜 속눈썹, 햇빛을 받으면 옅게 빛나는 것 같은 잡티 하나 없는 하얀 볼, 적당한 높이의 얇고 올곧은 콧대, 한입에 먹어버리고 싶은 붉은 입술, 부드럽고 유려한 턱선.
얼굴 하나를 뜯어보는 데만도 눈에 담을 곳이 너무 많았다.
‘강준성은 왜 이렇게 예쁘지.’
신기하다.
여태껏 누구도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내 억제제라서 예쁜 걸 수도 있지.’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한서는 준성의 몸을 덮은 이불을 좀 더 목까지 끌어올려 덮어주고는 병실을 나섰다.
새벽빛이 들어오는 7층은 딱히 불을 켜두지 않아도 적당히 환했다.
아무도 없는 7층 복도를 걸어 로비로 나왔다.
난잡한 서류와 [대피 예정자 명단]이 나와 있는 간호사실 카운터를 지나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일반 계단은 전부 잠겨 있었는데, 간호사실 어딘가에 있을 열쇠를 찾기 귀찮아서 그냥 놔두기로 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 한층 한층 내려가 보았다.
6층, 5층, 4층, 3층.
이윽고 2층에 다다랐다.
‘좀비 있음’이라고 적힌 문의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열쇠가 없었는지, 아니면 잠글 필요가 없었는지, 문은 아주 쉽게 열려버렸다.
문을 열자마자 약간의 악취와 피비린내가 났다.
피비린내라고는 해도 진하고 선명한, 살아있는 사람의 피 냄새와는 좀 차이가 있었다.
일반적인 피비린내는 코를 찌르는 듯한 진하고 뜨거운 냄새이지만, 좀비들이 흘리는 피비린내는 차갑게 말라비틀어지다 못해 가루가 되어 떨어지는 ‘잔재’와 같은 냄새였다. 먼지 냄새가 섞인 탁하고 차가운 피 냄새라고도 할 수 있겠다.
캭!
하악!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근처의 좀비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한서를 바라보았다. 검붉은 피막이 단단히 자리 잡은 좀비들의 무서운 시선이 한곳에 쏠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서를 바라보던 일곱이나 되는 좀비들 모두가 그에겐 관심 없는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까딱이며 움직이는 목, 뚜둑 뚜둑 소리를 내며 어긋난 뼈를 맞추는 것 같은 썩어가는 몸, 분명 흐르는 건 맞지만 살아있는 인간에 비해 한층 꾸덕꾸덕한 핏물.
한서는 그런 좀비들의 기괴한 모습을 바라보다가, 미리 준성의 백팩에서 챙겨온 작은 손전등을 켰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어둑하던 실내에 빛이 생겼다.
손전등에 비친 좀비들의 수는 어마어마했다. 언제나 북적이는 대형 병원이기 때문도 있을 거고, 밖에서 뛰어들어온 좀비들의 수가 많아서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한서는 그들을 손전등으로 무심하게 비춰보다가 앞으로 걸어나갔다. 좀비들 사이를 이리저리 피해서 걸어가지 않고, 부딪히든 말든 그냥 직진했다. 그러자 부딪힐 예정이었던 정면의 좀비 하나가 음산한 신음과 함께 몸을 비틀어서 길을 내주었다. 한서는 그게 당연한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나아갔다.
로비에도 많았지만 각종 검사실로 향하면서 더 많은 좀비를 만나게 되었다. 로비에 있던 많은 사람이 좀비를 피해 달리고 달리면서 이런 검사실 복도까지 우르르 오게 된 모양이었다.
많은 인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복도라서, 이대로 걷다 보면 좀비들과 서로 어깨를 때리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좀비들은 이번 역시 한서에게 길을 내주었다. 한서가 복도 한가운데를 걷자 좌우로 알아서 갈라져 삐걱거렸고, 그가 지나가고 나면 빈 곳을 채우듯이 느릿하게 움직여 모였다.
그렇게 좀비들이 좌우로 갈라져 길을 내주는 것은 참 신기하고도 경악스러운 장면이었다.
마치 한서를 ‘바이러스’로 보는 것처럼 조금도 닿지 않으려고 피하는 느낌이었다. 공격할 의사가 꺾인 것처럼 괴성 한 번 지르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도한서가 아니라면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아니지. 강준성은 볼 수 있지.’
자신이 꽉 끌어안아 준다면 준성 역시 이 해괴한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강준성의 얼굴은 꽤나 볼만할 정도로 귀여울 것 같다.
강준성을 떠올리며 기분 좋게 웃던 한서는 복도를 채운 흉측한 좀비들 사이를 거침없이 걸어나갔다.
그 끝에 다다른 한서가 발걸음을 멈췄다. 불투명한 유리창과 유리문에 좀비들의 손바닥 모양을 한 붉은 손자국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그곳의 문 옆에는 [채혈실]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명패를 잠시 바라보던 한서는 붉은 손자국이 가득한 유리문을 밀어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