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1회 -
처음에 한서와 태주는 2인 병실로, 준성은 1인 병실로 배정받았다.
이때 한서보다도 준성이 먼저 나서서는 자신과 그가 친구라는 걸 내세워 2인실을 함께 쓰기로 했다. 넓은 1인실을 홀로 쓰게 된 태주는 아무 불만도 없는 눈치였다. 오히려 병실을 배정해준 현제가 아주 잠깐 아쉬운 표정을 지었으나 얼른 표정을 바꾸고는 편하신 대로 하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준성 씨, 구조헬기는……. 아, 얘기하면 안 된다고 했죠?”
태주는 자신이 머무는 병실에 찾아온 준성에게 아차차, 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병원으로 오는 차 안에서 준성이 당부했던 거라, 여태껏 박현제 간호사에게도 구조헬기에 관해 묻지 않았었다.
“우리만 있을 땐 얘기해도 돼요. 다른 사람들이 몰랐으면 하는 것뿐이죠.”
“아하, 알겠습니다. 그럼 구조헬기는 언제 오는 거예요? 시간은 아직 말씀 안 해주셨었죠?”
“구조헬기는 4시에 도착할 거예요.”
“4시…. 그럼 5시간도 안 남았네요.”
병실 벽면에 걸린 아날로그 시계를 확인한 태주가 들뜬 얼굴을 했다. 현재 시각은 11시 30분을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앞으로 5시간만 참으면 여길 벗어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좋아요. 좀비 문제는 인한시만 이런 거겠죠?”
“그럴 거예요. 군이 인한시를 빠르게 폐쇄했다고 알고 있거든요.”
“다행이네요!”
군이 인한시를 폐쇄해서 좀비들이 밖으로 더 나오지 못하도록 발 빠르게 막은 건 여태껏 반복된 꿈에서 수시로 확인된 바였다. 이번 역시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준성은 신나 하는 그에게 다가가 작은 소리로 부탁했다. 자신보다는 그가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저씨, 제가 부탁하는 것 좀 들어주실 수 있으세요? 어려운 건 아니에요.”
“뭐든 말씀해 보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도와야죠, 신세도 졌는데.”
태주가 준성을 향해 눈을 반짝거리며 귀를 기울였다. 준성은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하며 당부도 잊지 않았다.
“……를 해주시면 돼요. 너무 억지로 하실 필요는 없고, 자연스럽게 해주시면 됩니다.”
“어려운 것도 아니니 못 할 건 없지만… 제게 부탁하는 이유가 있어요?”
태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준성이 직접 해도 될 정도로 간단한 일을 굳이 자신에게 부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저씨는 누구와도 금방 친해지시잖아요.”
준성이 파악하고 있는 태주의 특징 중 하나였다.
“이곳의 상황을 좀 제대로 파악해두고 싶어요.”
준성은 병실 밖을 활보하고 있는 박현제와 다른 6명의 대피자들을 떠올렸다.
“안 그러면 우리 모두 위험할 것 같거든요.”
* * *
준성의 기억 속에 있던 병원의 대피자는 13명이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병원 관계자이자 간호사 박현제까지 더한다면 총 14명.
이는 구조 헬기가 도착하는 2일 차 오후 4시까지 변함없는 인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반을 넘는 7명이 사라지고 대피자들을 열렬히 챙기던 박현제 간호사까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는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니었다.
준성은 자신이 기억하는 박현제 간호사에 대한 것부터 짚어 보았다.
묵묵히 제 할 일만 하는 20대의 조용하고 과묵한 남자간호사였다. 지금의 ‘가짜’를 나란히 놓고 본다면 누구든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할 거다. 제아무리 옷과 명찰이 똑같아도 말이다.
그래서 준성은 그를 보자마자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실제 박현제 간호사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
그와 다른 간호사들이 나서서 비상계단 이외의 5층으로 향하는 길을 전부 봉쇄해준 덕분에 좀비들이 퍼지는 건 4층까지가 되었다. 그때 목숨 걸고 나섰던 이들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5층을 밟은 건 박현제 간호사뿐이었다.
층별 리모델링 중이었던 병원 5층과 6층, 7층을 통틀어 살아남은 것 또한 그 한 명이었다.
첫 대피자가 비상계단을 통해 5층에 다다른 건 그로부터 3시간이 지난 후였다.
‘5층에 진입한 첫 대피자는 20대 여성이었어.’
준성이 떠올려본 첫 대피자는 지금은 보이지 않는, 사라진 7인 중 하나였다.
두 번째가 30대 남자, 세 번째도 비슷한 또래의 남자였고, 네 번째는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40대 아저씨.
준성은 자신의 기억 속에 있던 14명 전원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꿈속의 기억은 현실에서 뭔가를 기억하는 것보다 또렷해서, 그들의 얼굴과 생김새를 그리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대피해온 순서를 어떻게 알아? 꿈속에서 이곳에 도착했을 땐 이미 14명이 다 있었다며.”
준성이 떠올리며 말하던 걸 들어보고 있던 한서가 의문을 제기했다.
“당시의 박현제 간호사는 사람들이 대피해온 순서대로 병실을 내줬어. 701호실이 첫 번째 대피자, 702호실이 두 번째 대피자, 이런 식으로.”
덕분에 대피자들의 얼굴과 그들이 있던 병실 호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대피 순서를 알 수 있었다.
반면 지금의 ‘가짜’는 내키는 대로 병실을 주고 있었다.
14명의 대피 순서를 모두 떠올린 준성이 공통점을 찾아내었다.
“2, 30대 사람들만 없어졌어. 그것도 혼자인 사람들만.”
현재 남아있는 6명 중에서 2, 30대는 젊은 부부뿐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부부는 언제나 둘이서 꼭 붙어 다녔다. 구조헬기에 오를 때도 그들은 손을 꼭 붙잡고 있었을 정도로 절대 떨어지려 하지 않았었다.
‘젊은 사람들만 사라진 이유가 뭘까?’
준성은 기억을 더듬어서 앞서 사라진 젊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던 네 번째 대피자, 40대의 배 나온 남자를 떠올려 보았다.
남자는 지금도 병실 침대에 앉아, 내부가 연기로 자욱해질 정도로 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있었다. 워낙 골초에다가 담배 없이는 도저히 살 수가 없다던 그는, 대피해있는 동안에 피울 담배 한 보루를 목숨 걸고 가져왔다고 한다. 정작 식수나 먹을 것은 챙기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그 정도로 담배에 혈안인 남자는 이번 역시 준성이 알고 있던 그대로였다.
“아휴, 담배 냄새 때문에 질식사하는 줄 알았어요.”
준성의 부탁으로 40대 남자의 병실에 다녀온 태주는 그 안의 답답하고 매캐한 공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뒤이어 준성이 알고 있던 ‘담배 한 보루 무용담’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뒤이어 준성의 기억과 다른 사실 하나를 말해주었다.
“본인이 첫 번째 대피자래요. 문 열고 처음 들어갔던 건 5층이었고요.”
실제로는 네 번째 대피자였던 그가 첫 번째라면, 아마도 도착하기 전에 이미 세 번째 대피자까지 모두 사라졌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그는 5층에 홀로 들어온 자신을 7층에서 뛰어 내려온 ‘가짜’ 박현제 간호사가 반갑게 맞아주고 직접 7층으로 안내까지 해주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40대 남자 외에 남은 다섯 사람에게도 똑같이 다녀왔었던 태주는 일곱 번째 대피자인 60대 남자가 본인을 두 번째라 말했다고 전했다.
“저…, 근데 이게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돼요?”
“물론이죠.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태주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씩 웃었다.
“그냥 잡담만 하고 왔을 뿐인데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또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요!”
사람 좋게 웃은 태주가 병실을 나섰다.
한서와 둘만 있게 된 병실에 점차 긴장이 흘렀다.
“그 빨간 글씨……. 얼핏 4층까지 좀비가 있다는 걸 알리려는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5층 문을 안심하고 특별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장치해둔 것 같지 않아?”
머릿속의 생각을 착착 정리해나가던 준성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혼자인 젊은 사람들은 7층에도 못 오고 5층에서 사라졌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준성이 묻자, 한서가 픽 웃었다.
“지금까지 안 보인다는 건 죽었다는 거겠지. 5층에서.”
“5층에도 좀비가 있는 걸까?”
한서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가끔은 좀비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야. 너도 겪어봤으니 알 거 아니야.”
한서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싸늘했다. 그 역시 같은 일을 겪어보기라도 한 것처럼.
준성은 입술을 꾹 깨문 채 눈을 내리깔았다.
결국은 그가 가장 생각하기 싫었던 방향으로 답을 내려야 했다.
같은 시각.
이제 막 자신의 1인 병실로 들어가려던 태주를 박현제가 멈춰 세웠다.
“태주 씨, 잠깐 시간 되세요?”
“무슨 일이세요? 뭐 도와드릴까요?”
“예, 태주 씨가 도와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걸 좋아하는 착한 태주가 현제의 곤란해하는 얼굴을 보며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뭐든 말씀하세요!”
현제가 눈가를 휘며 씩 웃었다.
“5층에 있는 수술실에서 급히 챙겨올 게 좀 있거든요. 혼자서는 힘들어서 그러는데, 도와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