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7회 -
“차 키가 어디서 난 거야?”
“카운터에 있던데. 누가 주차 부탁이라도 한 거 아닐까? 어쩌면 주인 거일 수도 있고.”
“그런가.”
준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카운터에 들어갔을 때 차 키 같은 건 안 보였는데.’
그냥 어제 경황이 없어서 미처 못 봤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운전석에 탄 한서는 마치 제 차라도 되는 것처럼 단번에 시동을 걸었다.
비척이며 거리를 걷던 좀비들이 차 시동 거는 소리에 고개를 쳐들고서 주차장 앞을 마구 뛰어다녔다. 소리는 바로 지척에서 들리는데 시야에 인간이 들어오질 않으니 무작정 근처를 헤매는 것처럼 보였다.
한서는 주차장 커튼 밑으로 보이는 피투성이의 다리 두 쌍이 좌우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보았다. 그는 좀비가 있든 말든 개의치 않고 주차장 밖으로 향했다.
천천히 주차장 밖으로 나간다 싶은 그때.
불시에 액셀을 밟아서 주차장 커튼 밖으로 나간 차가 그 앞을 뛰어다니던 두 좀비를 멀리 날려버렸다.
크엑!
칵!
차의 갑작스러운 돌진 때문에 뒤로 날아가듯 넘어진 두 좀비가 너덜너덜한 몸을 후다닥 일으켰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다 보니, 한 좀비는 조금 전의 충격으로 팔 하나가 꺾여 있음에도 몸 전체를 흔들며 차로 달려들었다.
한서는 좀비들이 차에 달라붙기 전에 도로로 빠져 속도를 높였다.
조금 전의 둘 외에도 다른 좀비들이 차 소리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차가 아니라 사람이었다면 정말 잡혔을지도 모를 정도로 무서운 속도였다.
다행히 차와 좀비들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고, 이내 뒤따라오던 좀비들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조수석의 사이드미러를 통해 좀비들을 살피고 있던 준성이 한결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한서를 바라보았다. 그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은 채 다른 손으로 차의 이것저것을 만져보며 체크할 정도로 운전을 많이 해본 티가 났다.
“이쪽으로 직진하면 되는 거지?”
“응. 길은 내가 알려줄게.”
휴대폰을 꺼낸 준성은 이전에 받아두었던 오프라인 지도를 보며 직접 제 눈으로 거리와 건물을 가늠해 길을 알려주었다.
얼마 가지 못해 길이 막혀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도로 중간중간에 차량 몇 대만 멈춰 있을 뿐이라 지나가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도로에 정차된 차 중, 운전석 문이 활짝 열린 차량이 보였다.
안에는 이미 좀비가 되어버린 운전자가 마구 날뛰고 있었다. 몸이 안전벨트로 인해 완전히 운전석에 고정되어 있어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운전석에서 내리려다가 그대로 물려서 좀비가 된 건지, 아니면 좀비가 될 걸 알고 운전석에서 안전벨트를 띤 건지는 몰라도, 애처로운 장면인 건 변함없었다.
근처에는 한쪽 팔과 한쪽 다리로 바닥을 기어 다니는 어린 좀비가 있었다. 차 안이기도 하고 거리도 있었기에 그가 입을 쩍 벌리며 지르는 소리가 귀에 들리지는 않았다. 실제로는 괴성이겠지만 처량하고 불쌍한 모습 때문인지 절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보다 조금 떨어진 도로에 세워진 차의 유리에는 새빨간 페인트를 부어놓은 것처럼 온통 피범벅이었다. 조금 열려 있는 창문으로 검붉은 피막이 덮인 눈동자가 밖을 주시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좀비가 된 건지는 몰라도, 지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차 안에 가만히 갇혀 있는가 보다.
그 외에도 도로엔 다양한 좀비가 있었다.
준성이 꿈속에서 한 번도 지나보지 못했던 도로의 풍경도 역시나 다른 지옥과 다르지 않았다.
창밖을 바라보던 준성은 지금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에 한 번 더 씁쓸함을 느껴야 했다.
좀비들의 끔찍한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던 준성은 여태껏 한서에게 쉽사리 꺼내지 못했던 질문을 던졌다.
“너희 가족은 어디 있어?”
한서는 대답 대신 말없이 준성을 바라보았다.
“잘… 있어?”
“그럴걸.”
“그럴걸이라니…….”
설마 인한시에 계신 걸까.
다행히 한서는 무감정한 눈으로 다른 지역을 말했다.
“형제는 없고, 부모님은 청무시에 있어. 난 대학에서 좀 떨어진 위면동 근처에서 혼자 살고 있고.”
“위면동이면 간간이 실종 사건 나던 곳 아냐? 살인사건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러니까 방값이 싸지. 자취할 땐 싼 게 좋잖아.”
“그것도 그렇지.”
온통 명품으로 두르고 다닐 것 같은 냄새를 풍기면서 사실은 저렴한 집을 좋아하는 자취생이었다니.
준성은 한서에게서 예상치 못한 인간미를 느꼈다.
“그러고 보니 청무시에는 군이 관리하는 임시 피난처와 백신 연구시설이 있어.”
준성의 말에 한서의 입가에 번져 있던 미소가 조금씩 식어갔다.
“오늘 병원에 도착할 구조헬기도 거기로 갈 거야.”
“연구시설….”
한서의 눈이 아주 잠깐 못마땅하게 변했다. 찰나였던 터라 준성은 미처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잘하면 바로 가족 만날 수 있겠네. 다행이다.”
준성의 말에 한서가 그래, 하고 대꾸하긴 했지만 그는 이 이야기에 그다지 흥미를 못 느끼는 것 같았다. 애초에 부모님이 무사하든 말든 아예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작 본인의 이야기엔 무심하던 한서가 표정을 바꿔 준성에게 물었다.
“네 부모님은?”
“안 계셔.”
준성의 대답은 머뭇거림이 없었다. 마치 집에 부모님 지금 계시냐, 라고 물었을 때 지금은 안 계신다고 대답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두 분 다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셨어.”
“그랬구나.”
한서는 준성의 부모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에 남몰래 웃고 있었다.
‘다행이네. 소중한 게 적어서.’
한서의 생각도 모르고, 준성은 간단히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동생과 단둘이야. 동생은 기숙사에 들어가 있고, 난 좀 떨어진 데서 자취 중.”
한서가 눈웃음을 보였다.
“나중에 같이 살아도 되겠다. 방값 아끼고 좋잖아.”
“보기보다 알뜰하네.”
“그런가.”
두 사람 사이에 편안한 미소가 오갔다. 하지만 준성은 한서의 눈빛이 줄곧 자신을 분석하듯 바라보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여동생이랑 많이 친해 보이더라.”
“우리? 안 친해.”
으레 있는 남매들처럼 일단 부정부터 한 준성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할 말 있으면 문자 한둘 오고 가고 없으면 연락도 안 하고. 평범해, 그냥.”
“그런 것치고는 동생이 잘 따르던데.”
“그런가….”
눈을 내리깐 준성이 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살풋 웃었다. 그 모습을 한서가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묻는 목소리는 다정했다.
“너는 어때?”
“응?”
“동생,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냐니…….”
생각을 정리하느라 머뭇거리던 준성이 몇 마디를 뱉었다.
“착하지. 사람도 잘 챙기고 머리도 좋고. 아닌 척해도 마음이 여린 게 걱정이긴 한데, 그래도 어제 보니까…….”
“그런 거 말고.”
한서에게 있어 준성의 동생 강채이가 어떤 사람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준성에게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냐가 중요할 뿐.
“동생은 너한테 있어서 어떤 사람이야?”
질문이 이상하긴 했지만 준성은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중요하지.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걸.”
다양한 표정과는 거리가 멀던 준성의 얼굴이 일순 따뜻하게 바뀌었다.
“오빠들은 다 그렇지 않아? 뭐가 됐든, 일단 동생이라면 지켜주고 싶은 거.”
모든 형제의 첫째들이 다 그런 생각을 할 것 같진 않았지만, 중요한 건 준성이 강채이를 두고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였다.
한서는 준성이 모르도록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창문에 비친 한서의 얼굴은 베일 듯한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분 더 도로를 달렸을 즈음이었다.
준성은 운전대를 잡은 한서에게 곧 오른쪽으로 꺾어야 한다고 알려주며 아직 한참 남은 거리를 계산해보고 있었다.
끼익-!
갑자기 한서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준성은 예기치 못한 정차에 앞으로 몸이 훅 쏠리는 걸 느꼈지만, 다행히 무사했다. 안전벨트를 차고 있기도 했고, 몸이 앞으로 쏠릴 걸 예상했던 한서가 팔을 뻗어 바리케이드 역할을 해준 덕분이었다.
“길이라도 막혔어?”
길이 막혀서 급정거를 한 줄 알고 아쉽다는 얼굴로 고개를 든 준성은 눈앞에 멈춘 자신들과 똑같이 정면으로 오다가 멈춰 선 흰 차를 발견했다. 운전석에는 어딘지 낯이 익은 남자 하나가 타고 있었다.
‘누구지? 꿈에서 본 사람인가?’
명확히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남자가 한 번 보면 쉽게 잊을 정도로 별 특징이 없는 얼굴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놀란 얼굴의 남자는 곧 화색을 띠며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그러고선 머리와 왼팔을 쭉 내밀고 반가운 듯이 손을 흔들었다.
“귀찮은데 박아버릴까.”
“응? 뭐라고 했어?”
작은 중얼거림을 미처 알아듣지 못한 준성을 향해 한서가 싱긋 웃었다.
“아니, 그냥 우리도 인사해줘야 하나 해서.”
그때, 차에서 안전벨트를 벗고 후다닥 내린 남자가 왜인지 운전석으로 달려와 창문을 다급히 노크했다. 가까이서 보니 남자는 눈이 잔뜩 충혈되어 있었고 입술은 버석하게 말라 있었다.
눈만 보일 정도로 작게 창문을 내린 한서에게 남자가 외쳤다.
“조, 좀비! 빨리 도망쳐요! 아, 저 좀 데려가 줘요! 살려줘! 문! 뒷문!”
남자가 뒷좌석 문에 달라붙어서는 무서울 정도로 손잡이를 당겨대고 있었다.
한서는 그의 상태가 이상해서, 아니, 사실 아주 멀쩡한 상태라 해도 이 차에 함께 태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때야 남자가 누구인지 기억해낸 준성이 한서의 팔을 붙잡으며 뒷문을 열어달라고 말하려던 때였다.
남자가 달려왔던 방향에서 엄청난 수의 좀비 떼가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