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5회 -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아니, 자신보다도 강준성이 이해가 안 됐다.
살려고 안간힘을 써야지, 왜 타인을 지키려고 몸을 내던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도 좀비들조차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나를?
“네가 백신이든 아니든, 좀비한테 공격을 당하는 놈이든 아니든, 널 방패막이하느니 그냥 내가 물리고 말겠어.”
“최소한 난 친구 목숨을 방패 삼아 살고 싶을 만큼 쓰레기는 아니야.”
친구? 내가?
어느새 강준성의 눈에 담겨 있던 경계심은 눈 녹듯 사라져 있었다.
그에게 있어 자신은 이미 ‘지켜야 할 존재’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었던 거다.
이제껏 살면서 누구도 자신을 지켜주려 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지키는 걸 강요하는 사람은 있어도 타인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려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강준성은 자신을 지키려고 제 몸을 내주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불가였다.
그가 고백했던 자각성 예지몽이 어떻든, 미래가 어떻든, 이 좀비 세상이 어떻든.
도한서에게 강준성은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상한 놈.’
정리되지 않는 머릿속에서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자신을 지켜주려 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거다.
그 사실이 미치도록 짜릿했다.
“하…, 씨발….”
한서의 입에서 낮은 욕설이 흘러나왔다.
그는 손도 대지 않았는데 이미 벌떡 서 있는 제 물건을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보였다.
찬물이 그다지 효과가 없는가 보다.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한서는 조용한 실내를 훑어보다가 작은 방으로 걸어갔다. 준성은 침대를 덩치에 맞게 쓰는 게 좋겠다며 일부러 작은 침대가 있는 방을 골랐었다.
잠깐 눕기만 할 생각이었는지 이불도 걷어내지 않고 그 위에 널브러진 채로 새근거리며 잠든 준성이 보였다. 가만히 내려다보던 무표정한 얼굴의 한서가 준성의 이마를 덮은 앞머리를 쓸어올려 보았다.
그대로 한참이나 준성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던 한서가 다른 손으로 그의 오른손을 살포시 붙잡았다. 조심한다고 했으나 약간의 물기가 묻은 붕대가 느껴졌다.
붕대 위를 살살 어루만지다가 천천히 상처 부위를 눌러보았다.
“으음….”
준성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잠이 깊이 들어서인지 아직 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조금 더, 조금 더.
어느샌가 붕대에 피가 번질 정도로 상처를 꾹 누르고 있었다. 그때쯤엔 준성이 눈가를 몇 번이나 파들거리며 잠결에 신음하고 있었다.
손을 뗀 한서는 상처를 눌렀던 엄지에 피가 묻어난 걸 보았다. 좀비들의 것과는 다른 선명하고 따뜻한 피였다.
할짝.
본능처럼 엄지에 묻은 피를 혀끝으로 핥아보았다. 입 안에 들어온 혀를 굴려 비릿한 피 맛을 음미하듯 맛보았다.
좀비들이 왜 피를 갈구하고 살결에 이빨을 박아넣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의 자신이 딱 그러고 싶으니까.
엄지에 묻은 준성의 피를 달콤한 꿀이라도 핥는 것처럼 흔적도 남기지 않은 한서가 준성의 목으로 손을 뻗었다. 긴 손가락을 가진 큼직한 손아귀 하나에 목이 거의 다 둘러싸였다.
연약한 목.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맥없이 부러질 것 같다.
그대로 손을 미끄러뜨려 쇄골을 더듬었다. 도드라진 쇄골뼈가 예뻐서 마음에 들었다.
거슬리는 가운을 부드럽게 풀어서 앞섶을 훤히 벌려놓았다.
작은 유두가 드러난 납작하고 부드러운 가슴을 손끝으로 그림 그리듯 만져보다가 그 아래의 갈비뼈를 매만졌다.
“음….”
만져지는 뼈를 따라 움직이니 새근거리던 숨이 살짝 흩어졌다.
‘여기가 약하구나.’
그 자리를 두어 번 더 매만져서 감각을 익히다가 아래로 긴 선을 긋듯 내려왔다. 숨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얇은 뱃가죽이 왠지 귀여워 보였다. 갈라서 헤집어놓고 싶을 만큼.
더 내려가니 쇄골만큼이나 도드라진 치골이 만져지고, 이내 가장 살결이 여린 말랑한 성기에 다다랐다.
성기에 손끝이 닿았을 뿐인데 아랫배가 뻐근했다. 누굴 만져도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준성의 성기를 한 손으로 조심스레 잡아보았다. 말랑하고 부드러워서 계속 만지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
“흐으….”
뒤척이는 준성의 신음을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큰일 날 뻔했어.’
이대로 짓눌러 터뜨려버릴 뻔했다.
‘안 되지. 강준성은 안 돼.’
한서는 준성의 가운을 곱게 닫아주며 허리띠까지 단정하게 매 주었다. 그러고선 그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안아 들고는 이불을 걷었다. 폭신한 매트에 살포시 뉘어주고 목까지 이불을 끌어 올려 덮었다. 마지막으로는 흐트러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곱게 빗겨 주었다.
한서는 문득, 자신이 평소에 짓던 가식적인 미소가 아니라 저절로 나오는 은은한 미소를 걸고 있다는 것에 놀라버렸다.
‘신기하네.’
그의 시선이 자신의 아랫도리로 향했다. 그새 발기한 성기 끝이 하얀 가운을 들썩거리고 있었다.
“욕구불만인가.”
그럴 만도 했다.
어제까지 상당히 오랜 금욕을 했으니까.
‘슬슬 풀러 가야지.’
한서는 준성의 얼굴을 한 차례 더 눈에 담고서 방을 나섰다. 푹 잘 수 있도록 불도 꺼주고 문도 닫아주었다.
거실로 나온 한서는 자신의 검은 재킷을 들어 주머니를 뒤졌다. 안에서 나온 건 그의 애용품인 검은색 잭나이프였다.
한서는 잭나이프의 서슬 퍼런 날을 꺼내든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1시간 후.
하얗던 샤워 가운을 온통 붉게 물들인 한서가 조용히 방으로 돌아왔다. 그의 입가에는 제법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피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다른 방에 있던 타월로 대충 몸을 닦고 온 한서는 가운 끝에 뭉친 피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욕실로 향했다.
“아.”
짧게 소리 낸 한서가 욕실 문 앞에 멈춰 섰다. 그의 머릿속에 준성의 왼팔에 있던 네 줄의 멍이 떠올랐다.
한서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 * *
인한대역과 개안역 터널 사이에 있는 비상대피소.
그 안은 그야말로 암울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흑….”
2인용 텐트 안에서 홀로 숨죽여 울고 있던 소연에게 난감한 얼굴의 지우가 찾아왔다.
“야…. 그만 울어. 탈수 걸리겠다.”
“흡, 흑…, 네가 할 말은 아니거든…?”
울면서도 할 말은 다 하고 있다.
지우가 그녀의 눈치를 보다가 슬쩍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소연의 등을 토닥이며 쓸어주었다.
“괜찮을 거야. 네 부모님도 그렇고, 채이도 그렇고, 또…….”
“흑흑흑….”
어째 위로를 해주려고 말을 꺼내면 꺼낼수록 더 울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지우는 그냥 입을 다문 채 열심히 토닥이기만 하기로 했다.
‘이럴 때 채이가 있어야 했는데.’
같은 과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채이가 일종의 정신적 지주였다. 매사 냉정하고 사리 분별도 정확하며 가끔은 겁도 없는…….
그래, 겁이 없는 게 문제다.
‘좀비가 가득한데 무슨 오빠를 찾으러 간다고 뛰쳐나가?’
제 생각을 채이나 소연이 들었다면 분명 매정하다고 눈을 부라렸겠지만, 지우의 솔직한 심정은 그랬다. 감염자에게 손을 물리는 걸 뻔히 봤는데 그럼 당연히 지금쯤 좀비가 됐지 않겠는가.
‘그냥 마음 추스르고 구조대 오는 거나 기다리고 있었으면 좀 좋냐고.’
채이의 마음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녀답지 않게 감정적이었던 건 확실하다. 감염자가 된 오빠를 찾아 좀비들에게 죽으러 가다니.
자신에게 만약 형제가 있었더라도 자신이 제일 중요하니까 채이처럼은 도저히 못 했을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빨리 눈물 좀 그치라는 의미로 연신 등을 쓸어주던 지우는 어디선가 들리는 노크에 고개를 들었다.
똑똑-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한 박자의 노크 소리.
지우는 소연을 달래던 걸 멈추고서 텐트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대피소 문 근처에 있던 다른 텐트의 사람들도 문을 보고 있는 거로 보아,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 모양이었다.
똑똑-
또 한 번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와중에 이 노크 소리를 들은 소연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채이! 채이가 왔나 봐!”
소연이 다급히 텐트를 뛰쳐나왔다. 문으로 달려간 소연을 급히 붙잡아 막은 철호가 긴장한 눈으로 문을 바라보았다.
균일한 노크 소리와 좀비 특유의 괴성이 없는 거로 봐선 밖에 있는 게 사람임은 분명해 보였다. 그래도 확실히 하고자, 철호가 말을 걸었다.
“누, 누구십니까?”
대답 대신 문손잡이가 돌아갔다. 하지만 잠가놓은 탓에 완전히 돌아가지 못하고 뭔가에 턱, 걸렸다.
대답도 하지 않고 문을 열려고 했다는 것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철호는 마른침을 삼키며 재차 물었다.
“누구냐고요!”
목소리를 좀 높이자 다행히 문 너머에서 상대가 대답했다.
“거기 있는 학생들 대학 선배요.”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는 낮은 목소리였다. 밖은 터널이고 사이에 철문까지 있어서 목소리가 맑진 않았지만 젊은 남자의 것임은 분명했다.
“설마 한서 선배?!”
텐트에 있던 지우가 재빨리 달려 나와 문의 잠금쇠를 풀었다. 가끔 무서운 선배긴 하지만, 지금처럼 암담하고 우울한 상황에 그처럼 든든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게다가 좀비에게 물린 건 채이의 오빠지, 그 사람이 아니었다.
지우가 활짝 웃으며 문을 열어 주었다.
“선배! 잘 도망쳐 나오……!”
지우는 말을 채 잇지 못한 채 눈을 크게 떴다. 목을 꿰뚫는 차가운 날붙이의 감각이 뒤늦게 퍼져 왔다.
눈앞에 선 남자가 빙긋이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