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4회 -
겉보기와 달리 모텔 안쪽은 나름 괜찮았다.
간판은 대체 왜 그렇게 해둔 건가 싶을 정도로 깔끔하고 단아한 로비, 대리석 바닥, 내부와 전체적으로 색감을 잘 맞춘 카운터 등, 신경을 쓴 티가 났다.
카운터에는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조용한 로비를 보며 준성의 허리에서 손을 뗀 한서가 카운터를 훌쩍 넘어 들어갔다. 그는 안에서 검은 카드키를 하나 들고 나왔다.
“왜 하나야?”
준성이 묻자 한서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같이 자야지. 내가 있어야 좀비가 오더라도 네가 안전할 거 아냐.”
준성은 ‘같이 잔다’는 말에 눈가를 확 찌푸리며 그 역시 카운터로 들어갔다. 드문드문 꽂혀 있는 검은 카드들 가운데, ROYAL이라고 표기된 701호 카드키를 꺼냈다.
성실하게도, 준성은 작은 표에 적혀 있는 숙박금액을 꼼꼼히 확인해 카운터에 돈을 올려놓았다.
준성이 골라온 701호는 이 모텔의 로얄 스위트룸이었다. 이름만 거창할 뿐이고 어차피 모텔인지라 내부 환경은 고가의 호텔 스위트룸과 천지 차이였다. 그래도 넓은 침대가 안방에 하나, 작은 침대가 다른 방에 하나 있을 정도로 꽤 좋은 사이즈의 투룸 구조다.
방 사이즈와 내부에 나름 만족한 준성은 곧바로 옷부터 벗어 던졌다. 피가 꽤 많이 묻은 코트를 벗어 던지고 뒤이어 셔츠와 바지까지 벗어버렸다.
“먼저 씻는…….”
타월을 들고 욕실로 들어가려던 준성은 그때까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한서를 볼 수 있었다. 한서는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선 채 팔짱까지 끼고서 준성의 몸을 훑어보는 중이다.
“네가 내 몸 검사할 때 이런 기분이었어?”
“무슨 기분?”
한서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덮치고 싶은 기분.”
준성은 대답 대신 그가 손에 들고 있던 타월을 한서의 얼굴로 거세게 던져버렸다. 얼굴에 닿기 전에 거뜬히 잡아낸 한서가 다시금 준성을 보려 했을 땐 그가 이미 욕실로 쏙 들어가 버린 후였다.
백팩을 내려놓은 한서가 그 역시 옷을 벗어내며 욕실을 향해 말을 걸었다.
“너 오른손 못 쓰잖아. 씻겨줄게.”
“됐어. 샤워 정도는 혼자 할 수 있어.”
어느새 속옷까지 전부 벗어버린 한서가 욕실 문을 열었다. 러브호텔답게 반투명한 여닫이 유리 한 장이 문의 역할을 할 뿐, 잠금쇠조차 없었기에 안으로 들어가는 건 손쉬웠다.
안에 들어가니 투명한 샤워부스 안에서 수도를 틀고 있는 준성이 보였다.
한서는 준성이 있는 샤워부스 안으로 서슴없이 들어갔다. 준성은 부스 안이 급격히 비좁아지는 것을 느끼며 한서의 단단한 가슴을 밀어내었다.
“혼자 씻을 수 있다니까.”
“쓰는 손을 다쳤을 땐 생각보다 불편한 게 굉장히 많아. 대표적인 게 씻는 거고.”
샤워기를 손에 쥔 한서는 직접 물 온도까지 조절해준 후에 정말 말 그대로 준성을 씻기려 했다.
목과 어깨에 뿌려진 물이 어깨선과 가슴을 타고 밑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서도 피부가 하얗긴 하지만 그는 약간 창백한 느낌에 가까웠는데, 준성의 하얀 피부는 옅게 윤기가 돌고 부드러워서 만져보고 싶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피부가 얇아서 그런지, 따뜻한 물을 이제 뿌리기 시작했을 뿐인데 몸의 혈색이 한층 진해지는 게 보였다.
몸의 곡선을 타고 부드럽게 떨어져 내리는 물을 보고 있자니, 그의 연하고 작은 유두에 눈길이 갔다. 하얀 피부 위에 작은 분홍색 열매 하나를 얹어둔 것만 같다.
한서의 눈이 이번엔 그 아래의 늘씬한 허리로 향하려는 찰나.
준성이 눈을 가늘게 뜨며 샤워기를 빼앗아 들었다.
“근육도 없는 빈약한 몸이니까 그렇게 보지 마.”
준성은 한서가 제 몸을 보고 속으로 비웃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욕실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싱글거리며 웃던 녀석이 저렇게 무표정한 얼굴로 제 몸을 노려보고 있을 리가 없다.
준성이 왼손으로 요령 좋게 물을 뿌리고 있는데, 한서가 그의 멍든 왼팔을 매만졌다. 팔을 휘감은 것처럼 대각선으로 네 줄의 띠 같은 멍이 들어있다.
미간을 꿈틀한 한서가 준성의 손에서 다시금 샤워기를 뺏었다.
“안 되겠다. 만세 하고 있어.”
“뭐?”
준성의 양팔이 멀쩡하지 않다는 걸 안 이상, 한서도 이번만큼은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반강제로 준성의 샤워를 돕고 직접 머리까지 감겨준 한서는 그를 먼저 내보내고서 뒤늦게 샤워를 시작했다. 준성을 씻길 때와 달리, 그는 얼음장 같은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고 있었다.
찬물을 맞고 있는 한서의 얼굴은 준성이 이제껏 봤던 그 어떤 표정보다 차갑고 기이했다.
“안 다쳤어?”
조교실에서 탈출한 직후, 자신에 대한 경계심이 이상할 정도로 많다고 생각했던 강준성이 가장 먼저 물은 말이었다. 화내는 표정이 보고 싶어서 장난을 좀 쳐본 건데 설마하니 본인보다도 자신의 안위를 먼저 걱정했다.
‘그렇게 온통 멍을 달고 있는 주제에.’
준성의 팔에 남은 로프 자국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강준성을 처음 봤을 때.
강준성은 좀비들을 요령 좋게 다른 곳으로 유인하며 좀비와 최소한으로 맞붙는 길을 정확히 찾아 움직였다. 능숙한 동작으로 화염방사기까지 만들어서 좀비를 제압할 때는 진심으로 감탄하기까지 했다.
준성이 들어가려는 곳은 자신이 있는 학교 건물이었다. 밖에서 봐도 건물 안에 좀비들이 가득하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창문마다 다 피투성이였고 복도와 강의실은 괴성으로 가득했다. 그런 곳을 제 발로 찾아 들어가려 한다는 게 한서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아무리 임기응변이 좋고 마체테로 휘두르는 족족 좀비의 머리를 깨버린다고 해도 이대로 건물에 들어오는 건 자살행위였다. 죽을 생각으로 사지에 뛰어드는 거라면 신경 써줄 가치도 없었다.
하지만 강준성은 필사적이었다. 밖보다 더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무언가를 위해 필사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면서도 본인을 방어하는 것 또한 능숙해서 싸우는 걸 보는 재미가 있었다.
도한서가 가장 좋아하는 부류는 살아남을 생각으로 목숨 걸고 적에게 달려드는 사람들이었다.
강준성이 딱 그랬다.
그의 필사적인 얼굴과 행동을 보면 싫어도 알게 된다.
사지로 뛰어드는 게 그가 살기 위해 취하는 행동이라는 걸.
그렇게 생각하니 흥미가 생겼다. 좀비가 점령한 건물에 그렇게까지 파고들어서 뭘 하려는 건지 궁금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2시에 울릴 뻔했던 알람을 그가 2층에 숨어든 타이밍에 맞춰 수동으로 틀어놓고 있었다. 수업용 마이크까지 동원해버린 덕에 어느새 주변에는 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좀비가 모여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니 좀비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열어주었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시체들이 열어주는 길이라니.
이젠 별 쓸모도 없어진 휴대폰을 강의실 단상에 버려두고 강준성을 따라 3층으로 향했다.
똑똑, 조교실 문을 두드렸더니 처음으로 목소리를 들려준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차분하고 침착하면서도 명백한 경계심이 깃든 목소리.
마음에 들었다. 적이 가득한 곳 한복판에서 감정도 주체하질 못해서 흥분해버리거나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 건 분명한 문제다.
조교실에 들어가서 강준성을 직접 보고 나니 자꾸 그에게 시선이 가는 것도 이해가 갔다.
주제도 모르고 자신을 압박하던 멍청한 여자애.
듣기 싫을 정도로 징징거리는 귀찮은 겁쟁이.
남이 모든 걸 선택해주길 바라며 아무 노력도 없이 하자는 대로 하는 쓸모없는 후배.
이름을 기억할 가치조차 없다.
하지만 강준성은 달랐다. 당연히 감염을 우려해서 경계하는 줄 알았는데 몸에 물린 자국이 없음에도 그의 눈을 뒤덮은 경계심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왜 그렇게 보는 걸까.
시간이 갈수록 그가 자신을 경계하는 이유가 신경 쓰였다. 다른 사람들이 제게 보이던 다양하고 진한 감정조차 강준성의 경계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신경이 쓰였다. 저격총의 빨간 스코프 레이저가 겨눠진 것처럼.
강준성이 특별한 예지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비로소 그의 경계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은 그의 예지에 없던 사람이었다.
자신이 행한 일로 조금씩 틀어진 미래는 그 역시 알지 못했다.
그 증거로, 자신이 스패너를 쥐여 준 귀찮은 겁쟁이가 스크린도어에 작은 흠집을 만들었다. 작은 흠집은 이윽고 수많은 균열을 가져왔다. 그렇게 터널로 풀려난 좀비들 탓에 강준성은 예지에도 없던 일을 해결해야만 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니 어쩌면 이번에 죽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강준성이 좀비들에게 당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버리는 상상을 하자, 기분 좋게 아랫배가 당겼다.
살려고 아등바등 달려들던 녀석이 죽는 것만큼 짜릿한 것도 없다.
강준성이 필사적으로 도망치다가 죽는 걸 바로 옆에서 보기 위해 그와 함께하기로 했다. 어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좀비에게 둘러싸여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강준성을 보면 그동안 느낄 수 없었던 극상의 쾌감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피투성이가 되어 피눈물을 흘리는 그의 얼굴에 몇 번이나 사정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겁도 없이 자신을 지킨답시고 몸을 던졌다.
제 앞을 몸으로 막아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죽게 될 걸 알면서도 좀비에게 스스로 달려들기까지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그를 제 품에 가둬서 지켜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