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19)화 (19/240)

- 019회 -

쾅-!

갑자기 들린 문소리가 두 사람을 방해했다.

“씨발!”

아까 담배를 들고 나갔던 50대 남자의 목소리였다. 화가 잔뜩 나서 욕을 했다기보다, 당황스러움과 초조함 때문에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토해낸 것 같았다.

준성은 남자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기에 얼른 텐트 밖으로 나갔다.

대피소 안으로 들어온 남자를 본 준성은 딱딱히 굳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자신의 팔을 봐달라는 것처럼 오른팔을 앞으로 뻗은 채였는데, 그의 팔뚝에는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던 분명한 상처가 있었다. 뭔가에 물려서 살점을 고스란히 뜯긴 자리에선 보기만 해도 피비린내가 느껴지는 선혈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 부위에서 번진 피로 인해 소매의 절반이 붉게 변해 있었다.

남자는 텐트에서 나온 대피소 사람들의 창백한 얼굴을 눈으로 훑어보며 초조하게 소리쳤다.

“빨리! 빨리 어떻게 좀 해봐!”

“꺄아악!”

가장 늦게 텐트에서 나왔던 만삭의 젊은 임산부가 사색이 되어 비명을 질렀다.

“가, 감염자!”

“뭐가 어째?!”

자신을 감염자라고 칭하는 소리에 버럭 소리를 지른 남자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대피소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지우는 심지어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자신의 텐트 안으로 쏙 들어가서 지퍼까지 잠가버렸다.

“나 감염 안 됐어!”

어느 모로 보나 남자는 이미 물린 상태였다. 그가 스스로 자신의 팔뚝을 물어뜯었을 리도 없고, 눈의 흰자위가 빠르게 충혈되고 있는 상태로 봐선 이미 좀비 바이러스의 감염증세가 나타나고 있었다.

남자가 현실을 부정하며 소리쳤다.

“그 개 같은 좀비들에게 살짝, 아주 살짝 물린 거야! 빨리 치료하면 감염 안 돼!”

“무슨 소리예요! 물린 사람들은 다 감염됐는데!”

젊은 임산부를 끌어안은 채 뒤로 천천히 물러나던 또래의 여자가 악을 쓰며 소리쳤다.

“당신 감염자라고! 감염됐으면 나가!”

“아니야!”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현실을 부정하듯 세차게 저어댔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남자는 온몸의 피가 서서히 굳어가는 듯한 기괴한 감각과 동시에 눈가에 열이 몰리는 걸 느꼈다.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 같더니, 시야가 붉게 물들어갔다.

고개를 번쩍 든 남자의 눈에서 피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난 감염되지 않았어!”

남자의 말과 달리 그의 몸에 나타나는 이상 현상은 명백한 감염증상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준성은 남자를 보며 혼란에 빠졌다.

‘저 남자는 우리가 대피소를 나가는 순간까지도 멀쩡히 살아있었어. 좀비에게 물리는 일 따윈 없었다고.’

꿈속에선 분명 그랬다. 이 대피소를 찾는 족족 저 남자는 좀비와 사투조차 벌이지 않은 깔끔한 차림새였고, 오래도록 이곳에 남아서 시간을 보내봐도 그가 좀비가 되는 일은 없었다.

‘꿈속에서 진행하던 대로 똑같이 했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그런데 왜…….’

카악-!

대피소에 있는 사람 전원의 몸이 굳었다.

조금 전의 소리는 꽤 멀리서 들리긴 했어도 분명 좀비의 괴성이었다.

즉, 안전하던 터널에 좀비가 나타났다.

남자가 눈에서 붉은 피를 흘리며 대피소 문을 가리켰다.

“저, 저 좀비들이 깨진 유리를 부수고 몰려왔어! 저 새끼들 때문이야! 나, 난 잘못 없어!”

남자는 피에 섞여서 분간되지도 않는 눈물을 흘려대며 제일 가까이 있던 철호에게 다가가 매달렸다.

“역무원 양반! 나 좀 살려줘! 이거, 이거 빨리 낫게 해줘! 역무원이면 역무원답게 고객 좀 지키란 말이야!”

“히익!”

철호는 붉은 피막처럼 피가 번져서 새빨개져 버린 눈을 마주하자 너무도 극심한 공포를 느낀 나머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들거리는 다리 대신 두 팔로 바닥을 밀어서 엉덩이로 물러난 철호가 벌벌 떨었다.

준성은 감염자가 확실한 남자를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준성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눈에서 출혈이 일어났으니까 5분 이내에 사망할 거야.’

문제는 사망 후에도 뇌가 멀쩡하다면 1분도 채 되지 않아 좀비가 되어 일어난다는 거다.

그것만은 피해야 했다.

준성은 텐트 밖으로 나와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채이를 바라보았다. 꽉 쥔 주먹은 두려움을 이겨내 보려는 것처럼 덜덜 떨고 있었고, 겁먹은 소리를 막기 위해 꽉 깨문 아랫입술에선 자칫 피가 날 것 같았다.

‘채이는 안 돼.’

동생만큼은 죽게 둘 수 없었다. 꿈속에서도 절대 죽지 않게 지켜냈던 동생인데 현실에서 죽어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다.

동생이 있는 이곳에선 절대 단 한 명의 좀비도 허용하지 않겠다.

준성은 사람들의 비명을 뒤로한 채 텐트로 뛰어들어갔다. 그는 얼른 겉옷을 입고 백팩과 마체테를 챙겼다. 뒤따라온 한서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물었다.

“뭐 하려고?”

“끌어내야지.”

한서가 텐트 입구를 몸으로 막았다.

“끌어내기만 할 거면 짐은 왜 챙겨?”

“저 사람 말대로라면 밖에 좀비가 우글우글할 거야. 대피소가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다른 곳으로 유인해야 해.”

문제는 하나의 통로로 길게 이어진 터널에서 한곳으로 유인을 한다는 건, 미끼가 된 당사자가 이곳까지 다시 돌아오지 못할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죽었든 살았든.

“비켜.”

준성이 한서의 몸을 밀어내려 하자, 그가 눈가를 찌푸렸다.

“죽고 싶어?”

한서의 목소리가 음산하게 내리깔렸다.

“좀비들은 발이 부서지든 다리가 파열되든 지치지도 않고 무서운 속도로 쫓아올 거야.”

“그렇겠지.”

“그럼 넌?”

“…….”

“지치는 순간 잡아먹히는 거야. 지하철로 뛰어들어올 때와는 달라.”

“알아.”

준성은 한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미 알고 있었다.

지하철로 뛰어들어올 때는 모퉁이나 계단, 개찰구처럼 지형지물을 이용하기도 했고 방향을 틀어 뛸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직진밖에 모르는 좀비들이 아무리 빨라도 그들에게 잡히지 않을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선로가 있는 지하철 터널은 달랐다.

오로지 직진.

같은 방향으로 직진밖에 할 수 없다면 머지않아 좀비들에게 붙잡혀 뜯어먹힐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다 알지만, 해야만 할 때가 있다.

“그래도 갈 거야.”

“강준성.”

“가긴 가는데 죽으러 가는 건 아니야.”

꿈에서 이번과 같은 루트를 선택해본 적이 없어서 불안하긴 하지만, 좀비들을 유인하면서 살아남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준성을 빤히 바라보던 한서가 물었다.

“안 죽을 방법이 있는 건 확실해?”

“어.”

준성의 대답을 들은 후에야 한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럼 나도 같이 가.”

“안 돼.”

준성이 단박에 거절했다.

하지만 한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짐이라고 해봐야 나무 막대 하나뿐이었던 한서는 겉옷만 챙겨 입고서 텐트 입구를 열어주었다.

“같이 가는 게 아니면 죽으러 간다고 생각하고 말릴 거야.”

“어린애야? 떼를 쓰게.”

“어린애만 떼쓰란 법이 있나.”

준성은 한서를 보며 잠시 고민했지만, 좀비에게 물린 남자가 숨을 컥컥거리며 더욱 심한 감염 증세를 보였기에 시간이 없었다.

‘어차피 나 혼자로는 끌어내기 힘든 게 사실이야.’

아직 좀비가 되지 않은 감염자에게 물려 봐야 그냥 아프고 말 뿐이고 감염도 되지 않지만, 이게 밝혀진 건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였다. 다른 사람들에겐 감염된 사람도 이미 좀비나 마찬가지였고, 그들에게 물리면 당연히 감염될 거라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남자를 같이 끌어내자고 해도 누구 하나 나서지 못할 거다. 밖에서 좀비가 내는 소리도 들었으니.

준성은 언제든 출발 가능하다는 듯이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한서를 바라보았다.

“난동을 부릴지도 몰라. 자칫 물릴 수도 있어.”

“상태를 보아하니 그렇긴 하네.”

자신을 괴물 보듯 보는 사람들 때문에 잔뜩 화가 난 남자의 얼굴은 이미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누가 보면 이미 좀비가 된 줄 알 정도로.

“아직 완전히 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겐 물려도 감염되지 않아. 그러니 난동을 부리더라도 살아있을 때 끌어내야 해.”

“살아있으면 감염이 안 돼?”

한서도 그건 몰랐던 모양이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지 한나절밖에 안 됐으니 지금 시점에 그 사실까지 파악한 사람이 많지 않은 게 당연했다.

“내 말을 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유야. 만약 못 믿겠으면 지금이라도 빠져.”

“믿을게.”

한서가 ‘그게 뭐가 어렵냐’라는 느낌으로 쉽게 대답했다. 너무나 대답이 시원시원해서 오히려 준성 쪽에서 재차 대답을 확인해야 하나 생각할 정도였다.

“근데 차라리 죽여버리는 건?”

그게 더 편하지 않냐는 투의 가벼운 말이었다.

준성은 그가 말한 ‘죽여버린다’가 완전히 좀비화된 남자를 이곳에서 죽이겠다는 거로 이해했다.

“임산부까지 있는데 대피소에 좀비 시체를 둘 순 없잖아.”

조금 떨어진 텐트 앞에 나와 있던 채이가 준성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준성이 당장 나갈 것처럼 겉옷도 입고 백팩까지 멘 걸 보며 당황한 눈치였다.

남자 때문에 대피소 안이 난리인 와중에도 동생에게 말은 전해야 했기에, 소연과 손을 꼭 붙잡은 채 굳어 있는 채이에게 다가갔다.

“오빠, 어디 가려고?”

채이가 감염된 남자와 준성을 불안한 눈으로 번갈아 바라보았다.

“길게 설명할 수 없으니까 짧게 말할게.”

“오빠….”

“만약 내가 1시간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말고 여기서 대기해야 해. 일주일은 버텨야 하니까 다들 최대한 식량 아끼고.”

급한 마음에 빠르게 말했더니 채이와 소연이 불안한 얼굴을 했다.

“일주일? 무슨 말이야, 오빠.”

“일주일이 지나면 뚱뚱한 대머리 아저씨가 찾아올 건데, 그 아저씨 가는 길에 같이 데려가 달라고 해.”

“아저씨? 그 사람은 누군데? 데려가 달라니, 어디로?”

“우리가 가려던 병원으로 갈 거야. 오빠도 그쪽으로 갈게.”

“같이 가야지, 무슨 소리야!”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높이는 채이를 준성이 미안하게 바라보았다.

혼란스러운 마음은 알겠지만, 자세히 설명해 줄 수가 없었다. 남자가 아직 인간인 상태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나중에 보자.”

그 나중이 1시간 뒤일지 일주일 이후가 될지는 모르지만.

준성은 채이와 소연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주며 한서에게 눈짓했다.

곧 준성과 한서는 눈동자에 완전한 피막이 생겨버린 남자에게로 자리를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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