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9)화 (9/240)

- 009회 -

“무슨… 소리 들렸지, 방금?”

지우가 떨면서 말하자마자 또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명백한 노크 소리.

지우와 소연이 저마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들만큼은 아니어도 채이 역시 놀랐는지, 준성의 팔을 꽉 잡으며 얼굴을 굳혔다.

세 사람은 저 소리를 좀비가 두드리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3층에는 그녀들 말곤 아무도 살아있는 사람이 없었고, 그 아래층으로는 이상한 알람 소리 때문에 좀비가 가득했다. 누군가 생존한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준성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는 다른 의미로 놀라고 있었다.

‘이상해.’

꿈에서 몇 번이나 겪었던 조교실에서의 상황은 언제나 같았다. 세 사람과 함께 머물게 된 조교실에서 그들에게 간단한 상황 설명을 한 후, 이곳을 빠져나가 은신할 수 있는 곳으로 향한다. 준성은 이 과정에서 누굴 만나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손에 잡힐 듯 뻔히 알고 있었다.

헌데 이런 상황은 처음이다.

조급함도 없고 당황스러움도 전혀 없는 차분한 노크.

이건 누가 내는 소리일까?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이런 상황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준성은 자신의 팔을 붙잡은 채이의 손을 조심히 떼어내며 문으로 향했다. 등 뒤에서 세 사람의 숨죽이는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걸어가 문 앞에 멈춰 섰다.

시끄럽던 알람 소리는 이미 멈춰 있었다. 문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좀비가 지나가다가 부딪친 것뿐인가?’

꿈과 달리 알람이 늦게 울렸으니 그 정도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아까도 상체로 기어 다니던 좀비가 뒤늦게 강의실을 나오던 것도 봤으니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 정도 변수라면…….’

똑똑-

다시 들려온 노크 소리.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균일한 속도로 노크했다면 이건 절대 좀비가 아니었다.

그의 생각에 확신을 주려는 듯,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있지?”

노크만큼이나 떨림 하나 없는 듣기 좋은 소리가 들렸다. 성악을 한다면 훌륭한 바리톤이 어울릴 것 같은 낮고 굵은 남자 목소리였다.

“문 좀 열어줄래?”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준성은 남자가 문 너머에서 웃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한서 선배?!”

목소리를 알아들은 지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으로 뛰어갔다.

“한서 선배세요?!”

“날 알아?”

문 너머의 태평한 목소리가 되물었다. 지우는 반가움을 넘어 감격한 표정으로 방방 뛰며 문손잡이로 손을 뻗었다.

“당연하죠! 빨리 들어오세요!”

“잠깐만.”

문을 열어주려던 지우의 손을 붙잡아 막고서 문 너머의 남자에게 물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

“계단으로.”

“좀비는?”

“2층에 전부 모여 있길래 그냥 피해서 왔는데.”

“어디 물리진 않았고?”

“원한다면 들어가자마자 홀딱 벗어줄게. 안 물렸으니까 마음껏 검사해 봐.”

한가로이 공원을 거닐며 잡담을 나누는 것처럼 태평한 목소리였다. 좀비에게 점령당한 건물 한복판에 선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그는 준성을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한 ‘변수’였다.

준성은 왼손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현재 시각 2시 27분.

모든 꿈에선 조교실에 진입한 후부터 이 대학을 탈출하게 될 3시까지 그 어떠한 생존자도 만나지 못했었다. 이 조교실에 계속 머무르는 방법을 택했던 경우도 있었지만, 그때 역시 5시가 넘어갈 무렵에 찾아온 조교 외엔 누구도 없었다. 그 조교도 이미 좀비에게 물린 터라 안에 들여주자마자 돌변해서 모두를 물어 죽였으니, 완전한 생존자라고 칭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랬기에 지금 이 남자의 등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이것도 내가 늦었기 때문인가?’

고작 몇 분 지연된 것 때문에 많은 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나마 이제까지는 충분히 자그마하다고 볼 수 있는 변수뿐이었는데, ‘사람’은 체감되는 사이즈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사람으로 인해 자신이 알던 앞날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 알 수 없는 이상, 섣불리 안에 들일 수가 없었다.

“안 열어줄 거야? 이대로 죽을까?”

웃고 있는 건지, 남자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웃음기가 보였다. 그러니 더더욱 이해가 되질 않았다. 좀비들이 가득한 곳에 무방비하게 서 있으면서 어떻게 웃을 수가 있지?

절대 공감할 수 없는 남자의 정신 상태에 의문만 가중될 무렵.

뒤에서 다가온 채이가 문에 귀를 바짝 대어보았다.

“좀비 소리는 하나도 안 들려.”

좀비가 있다면 응당 들려야 할 괴성이나 작은 신음마저도 없었다. 밖에 좀비가 없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았다.

“선배 말대로 들어오면 옷 벗어보라고 하면 되잖아. 물렸으면 넷이서 힘으로 내보내면 될 일이고.”

밖의 남자가 감염자일까 봐 준성이 머뭇거리는 거라 생각한 채이는 그를 대신해 문손잡이를 잡았다.

달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한 뼘 정도 벌어진 문틈 사이로 키가 큰 남자 하나가 얼굴을 보였다.

“안녕.”

눈가를 휘며 웃어 보인 남자는 유명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훤칠한 키에 깜짝 놀랄 만큼 잘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약간은 창백해 보이는 하얀 얼굴 때문인지 검은 가죽 재킷이 꽤나 잘 어울렸다.

남자는 문틈으로 조교실 안을 훑어보더니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준성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들어가도 되지?”

묘하게 소름이 돋는 시선이었다. 왜인지 이 자리에서 당장 도망쳐야 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요! 들어와도 돼요, 선배!”

남자가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본 상대는 준성이었지만 대답은 다른 데서 튀어나왔다. 지우는 직접 남자의 팔을 붙잡아 당기며 그를 안으로 들였다.

완전히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바짓단이나 소매 군데군데에 피가 좀 묻어있긴 하지만 준성이나 다른 세 사람의 피 묻은 옷에 비하면 새 옷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더 수상했다.

“선배, 어떻게 된 거예요? 밖에 좀비가 바글바글할 텐데.”

소파에 앉아 있던 소연도 냉큼 다가가서 남자에게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남자가 차가운 눈빛을 죽이며 생글 웃었다.

“강의실에서 문 닫고 혼자 자고 있었는데 일어나보니까 난장판이더라고.”

“또 주무셨어요? 하여튼 여기저기서 잘도 주무셔.”

“졸린 걸 어떡해. 죽더라도 잠은 자야 해, 난.”

남자가 워낙 평온하고 친근하게 대해서인지 조교실 안의 긴장이 빠르게 사그라졌다. 안도한 듯 웃고 있는 지우와 소연까지 남자와 함께 묶어보면 좀비라는 단어가 참 안 어울리는 무리였다.

하지만 채이는 두 사람과 달리 긴장을 풀지 않았다.

“옷 벗어보세요.”

채이의 말에 지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야, 어떻게 진짜 벗으라고 하냐?”

“옷이 이렇게 멀쩡한데 설마 물리셨겠어?”

소연까지 나서서 남자를 감싸자, 채이가 눈가를 찌푸렸다.

“너희들, 다 코가 막히기라도 했어?”

“무슨…….”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말하려던 지우는 금세 채이의 말뜻을 알 수 있었다.

진한 피 냄새.

상대적으로 피가 훨씬 많이 묻은 준성과 세 사람에 비해 이 남자에게선 지독하리만치 진한 혈향이 풍겼다.

“이 정도로 피 냄새가 나는데 옷도 멀쩡하고 물린 곳도 없다고? 난 못 믿어.”

채이가 방금 남자를 들였던 조교실 문을 가리키며 그에게 말했다.

“도한서 선배님, 죄송한데 옷 벗어서 확인시켜주실 거 아니면 나가주시겠어요?”

채이의 말이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되는 것처럼 피식피식 웃던 도한서가 그녀를 차근히 눈으로 훑었다.

“제일 먼저 문 열어준 사람이 너 아니었나?”

“네, 맞아요. 제가 문 열어주자고 했으니까 직접 확인하려고요.”

“만약 물렸으면?”

“나가주셔야죠.”

“나가기 싫다고 버텨도?”

“아무리 선배여도 네 명이 다 덤벼서 밀어내면 가능하지 않겠어요?”

“흐음.”

충분히 기분 나쁠 법한데도 한서는 입가에 걸어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한다고 생각한 지우가 채이를 향해 한소리 하려다가 소연에게 입을 틀어막혔다. 그의 귓가에 소연이 작게 속삭였다.

“가만히 있어 봐. 채이 말 틀린 거 하나도 없잖아.”

오늘 하루 동안 소연에게 세 번이나 입을 틀어막힌 지우가 신경질적으로 그녀의 손을 떼어냈다. 그러고선 한바탕 쏘아붙이려는데, 지퍼를 지익-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이끌린 지우가 시선을 돌렸을 땐 한서가 이미 재킷을 벗어 바닥에 툭 떨어뜨린 후였다.

재킷을 벗은 한서가 검은 목티를 거침없이 훌렁 벗어 던졌다.

상의를 완전히 탈의한 한서의 몸은 옷에 가려두기 아까울 정도로 좋았다. 큰 키에 어울리는 적당한 근육과 단단해 보이는 가슴, 잘 깎은 돌덩이를 배치해 다듬은 듯한 식스팩은 절대 쉽사리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모두가 한서의 몸에 시선을 쏟는 가운데, 그가 이번엔 바지 벨트로 손을 내렸다.

“아래도 벗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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