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5회 -
아마도 질리도록 꿔왔던 꿈이 아니었더라면 동생의 행방을 찾는 데에만 한참의 시간을 쏟았을 것이다. 5일 차와 6일 차 꿈에서 이 대학 좀비들에게 물리면서까지 필사적으로 동생의 위치를 알아뒀기에 7일 차 이후의 합류는 꽤 순탄할 수 있었다.
하지만 5일 차와 6일 차에 비하면 순탄이라는 뜻이지, 상황 자체는 결코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건 꿈과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현실’이라는 것.
아마도, 아니, 분명히 좀비에게 물리면 자신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물린 직후에 찾아오던 온몸의 피가 삽시간에 굳어버리는 느낌, 피가 온통 머리에 차오르는 감각, 그리고 꿈과 달리 비명이 절로 터질 것 같은 끔찍한 고통도 함께 겪게 되겠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현실이 몇 번이나 다시 시작할 수 있던 게임 같은 꿈처럼 제아무리 똑같이 흘러간다 한들, 결정적인 부분이 다르다는 건 인정해야 했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
조금만 잘못 생각해도 죽는다.
조금만 허술해도 모두 끝장이다.
세뇌하듯 되뇌며 긴장한 제 가슴팍을 주먹으로 퍽퍽 때렸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차가운 공포가 가슴팍의 아릿한 통증 덕분에 훅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돼.’
동생과 합류할 수 있는 타이밍은 단 한 번.
안 그래도 늦었는데 그 타이밍을 맞추려면 지금 당장 움직여야 했다.
깊이 심호흡한 준성은 웅크린 상태로 뒤를 돌아보았다.
준성이 숨어있는 차량 바로 뒤에는 벽돌로 낮은 테두리를 만든 긴 화단이 있었다. 주차장 뒤에 일부러 만들었다기보다, 이미 만들어져 있던 긴 화단 앞 공터를 활용하고자 임의로 차를 댈 수 있도록 합의된 것 같았다.
준성은 좀비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여전히 몸을 웅크린 채 화단 쪽으로 다가갔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히 화단에 접근한 그는 경계선이나 다름없는 벽돌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역시나 꿈에서 봤던 것과 같이 회반죽이 거의 벗겨져 있어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빼낼 수 있었다.
벽돌을 집어 들고서 주변을 살핀 준성은 얼른 몸을 일으켜서 그것을 최대한 멀리 집어 던졌다. 준성이 다시금 몸을 숨기고자 웅크려 주저앉음과 동시에 저 멀리서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삐익- 삐익- 삐익- 삐익-!
뒤이어 꽤 떨어진 자리에 있던 차량이 경보음을 울렸다. 그 차의 트렁크 가운데에는 준성이 던진 벽돌에 맞아 움푹 들어간 자국이 있었다.
* * *
“으, 으으…. 허억….”
몸을 부르르 떨며 크게 들썩거리던 청년이 거친 숨을 내뱉었다. 숨소리는 마치 목구멍에 커다란 뭔가가 걸린 것처럼 고르지 못했고, 몸은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강의실의 제일 앞 책상에 걸터앉아 있던 남자가 그런 청년을 감상하듯 바라보았다.
“고개 들어봐.”
벽에 등을 댄 채 가까스로 서 있던 청년이 푹 숙였던 머리를 천천히 삐걱삐걱 들어 올렸다.
드러난 청년의 얼굴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동공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진한 피로 둘러싸인 눈에서 검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남자는 그런 청년의 얼굴을 보고도 놀라거나 무서워하기는커녕 아주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 나 좀 사, 살려줘….”
피눈물을 흘리던 청년이 꺽꺽대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아직……, 아직 나 좀비… 아니야….”
“음, 아직은 그렇지만 곧 바뀔걸.”
“아, 안 바…뀌고 싶어. 좀비 시, 싫어…. 흑, 살려…줘….”
말 한마디 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숨이 턱턱 막혔다.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에 맑은 눈물이 섞여들었지만, 붉은색에 가려져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청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책상에서 내려섰다.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재미없다는 듯이 청년의 말을 읊어본 남자가 그의 앞에 바짝 다가섰다. 남자의 오른손 손가락 사이에서 검은 볼펜 하나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나는 살려달라고 부탁하는 놈들한텐 관심 없는데.”
“흑, 흐흑…. 큿, 으어….”
머리를 쳐들며 숨이 막히는 듯이 꺽꺽거리던 청년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부탁했다.
“살려…줘….”
“그러니까―!”
남자가 목소리를 높이며 청년의 목을 왼손으로 콱 틀어쥐었다. 그땐 이미 남자의 머리가 푹 떨궈지고 어깨도 축 늘어져 있었다. 남자가 강한 힘으로 목을 쥐면서 밀어붙이지 않았더라면 벽에 기대어 맥없이 주저앉았을 것 같다.
고개를 떨군 청년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이 기묘한 광기를 띠었다.
“남한테 살려달라고 하지 말고 네가 싸워서 살아남았어야지.”
남자의 입술이 유려한 곡선을 그렸다. 그에 반응하듯, 청년의 몸이 두어 번 크게 퍼덕거렸다.
뒤이어.
하악-!
고개를 번쩍 든 청년이 쇳소리 섞인 괴성을 질렀다. 입에서는 눈에서 흘러내리던 피보다 좀 더 어두운 검붉은 피를 쏟아냈다.
보통 사람이라면 비명을 지를만한 광경에도 남자의 여유는 그대로였다.
남자의 검은 펜이 붉은 피막이 덮인 청년의 눈을 노렸다. 얇은 펜의 머리가 피막과 눈알을 가볍게 뚫었다.
캭!
남자는 청년의 왼쪽 눈알 아래쪽에서 뇌가 있는 방향까지 펜을 사선으로 단번에 찔러 넣었다. 그러면서도 더욱 깊이 넣기 위해 펜의 뒤쪽 끝을 손바닥으로 꾸욱 누르기까지 했다. 펜 하나가 청년의 눈으로 거의 다 들어갔을 즈음엔 남자의 오른손이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흉폭한 모습을 보였던 청년은 이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가 목을 잡고 있던 왼손을 놓아주자, 청년의 몸이 바닥에 털썩 떨어져 옆으로 쓰러져버렸다.
남자는 죽은 청년‘이었던’ 좀비 시체를 내려다보며 회색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오른손에 묻은 피를 꽤나 신경 써서 닦아낸 남자가 검은색에 가깝게 물든 손수건을 청년에게 툭 떨어뜨렸다. 피투성이의 손수건이 청년의 얼굴을 가리듯 덮었다.
고요해진 강의실.
남자는 한가로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의실 안에는 청년처럼 눈에서 피를 흘리던 자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미소가 사라진 남자의 얼굴에 따분함이 감돌았다.
“낮잠이나 더 잘까….”
시체들이 즐비한 강의실에서 말도 안 되는 태평한 생각을 하고 있던 남자는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원래는 낮잠이나 자다가 2시에 일어나려고 알람까지 맞춰뒀었는데, 이제 고작 5분 남았다. 이러면 자는 의미가 없다.
남자는 강의실의 복도 쪽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빠르게 질주하는 좀비 몇 명이 보였다.
“테스트나 해볼까.”
의미심장한 소리를 하며 휴대폰을 들고 단상에 올라간 남자는 교수들을 위해 준비된 마이크까지 집어 들었다. 가볍게 마이크 테스트까지 하며 작동하는지를 확인했다. 성능 좋고 깔끔한 음질을 확인한 그는 곧 2시가 되면 울릴 자신의 휴대폰 알람 소리를 퍼뜨려볼 준비를 했다.
이걸 듣고 몰려들 좀비들과 그들에게 둘러싸일 자신을 생각하니, 아랫배가 저릴 만큼 기분 좋은 긴장이 감돌았다.
알람이 울리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삐익- 삐익- 삐익- 삐익-!
갑자기 밖에서 들려온 경적에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이크를 내려놓고 창가로 다가간 남자는 좀비가 비싼 차를 잘못 건들기라도 했나 싶어서 밖을 내다보았다.
* * *
캬아아악-!
크어어!
조용하던 사방에서 좀비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괴성을 질렀다. 비척이며 정처 없이 걷던 좀비들 모두가 소리가 난 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타다다다다다다-!
가늠하기도 어려운 수많은 발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준성은 죽은 자들의 발소리 한가운데에 숨어, 그들이 빨리 지나가 주기를 바랐다.
대부분의 발소리가 경보음을 내뿜는 차에 다다른 걸 느낀 준성은 웅크린 상태 그대로 차 사이에서 건물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그의 오른손은 허리벨트 뒤쪽에 매어둔 검집 속 마체테로 향하고 있었다.
준성은 차 사이에서 나오자마자 예정된 수순인 양 마체테를 꺼내 들었다.
카악!
그럴 리는 없겠지만, 준성이 나오길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불쑥 모습을 드러낸 좀비가 그를 향해 두 손을 뻗으며 달려들었다.
좀비화의 증거라 할 수 있는 눈동자의 붉은 피막과 눈꺼풀 사이에서 아직 선명한 피가 흐르는 거로 봐서는 좀비가 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좀비는 왼쪽 입가에서부터 광대 부근까지 살점이 쭉 뜯겨 나가 있어서 절대 보이지 않아야 할 어금니와 얼굴 뼈 일부까지 노출되어 있었다. 목 언저리는 움푹 파여 있을 정도로 깊이 뜯어 먹혀, 그 자리에서 걸쭉한 검붉은 피를 줄줄 흘려댔다.
그 외에도 너덜너덜한 셔츠 밖으로 삐져나온 기다란 내장 일부와 기이하게 꺾여 파열된 한쪽 다리만 봐도 그가 얼마나 끔찍하게 뜯어 먹혔는지 알만했다.
붉은 피막에 뒤덮인 좀비와 눈을 마주하니, 꿈에서는 채 느낄 수 없었던 가공할 공포심이 차올랐다.
고기, 고기, 고기.
피, 피, 피를 줘.
붉은 피막의 눈이 말을 거는 듯한 기분에 숨이 턱 막혀왔다. 제 살점과 피를 원하며 이빨을 딱딱 부딪치는 소리도 너무나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