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1회 -
-1일째
나름 게임마니아라고 자부하는 강준성은 유독 FPS(First-person shooter) 같은 1인칭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다.
신이라도 된 것처럼 멀찍이서 제 캐릭터를 내려다보며 전후좌우 따질 것 없이 주변 360도를 다 볼 수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뒤에서 적이 튀어나오든 옆에서 흉포한 뭔가가 날아오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좋았다.
또한 ‘내 캐릭터’라고는 해도 어차피 위에서 내려다보는 만큼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몬스터나 다른 캐릭터에 의해 다치거나 죽더라도 큰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본인이 게임 속 캐릭터와 동화된 것처럼 그 시점으로 플레이해야 하는 1인칭 게임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3인칭과는 다른 확연히 제한된 시야, 직접 손에 들고 있는 것 같은 살벌한 무기, 자신을 죽이기 위해 가차 없이 날아오는 탄환과 날붙이들, 눈앞에서 실감 나게 터지는 붉은 피까지.
모든 게 ‘현실’ 같아서 거부감이 들었다.
그건 어릴 때부터 꾸준히 많은 게임을 즐겨온 준성이 유일하게 1인칭 게임을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랬는데 어째서…….
“으아악-!”
이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계속 꾸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컥, 허윽…!”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재미없는 농담을 던지던 중년 남자가 피투성이 네 사람에게 붙잡혀 허우적거렸다. 발버둥 치는 그의 입에선 멈출 수 없는 괴로운 비명과 신음, 선명한 붉은 피가 쿨럭이며 터져 나왔다.
크르르-!
남자의 몸에 얼굴을 묻은 채 그의 살점을 이빨로 사정없이 뜯어내는 사람들의 입에서 괴수를 닮은 으르렁거림이 흘러나왔다. 본인과 남자의 피로 입 안이 걸쭉하게 가득해진 자에게선 가래가 끓는 듯한 그르륵 소리가 나기도 했다.
눈을 반쯤 까뒤집은 채 피를 토하던 중년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준성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사…, 살려…….”
준성은 말을 채 잇지 못할 정도로 괴롭게 피를 토하는 남자와 그를 뜯어먹고 있는 ‘시체’들에게서 슬쩍 반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그의 뒤에 있는 건 높다랗게 올라와 있는 막다른 벽뿐.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루트도 실패인가.’
움직이는 시체, 이른바 ‘좀비’의 수가 가장 적은 이동 루트를 찾아내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설마하니 벽과 가까운 옆 건물 2층에서 우르르 뛰어내릴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 탓에 유쾌한 성격과 다양한 지식으로 꽤 많은 도움을 주었던 중년 남자를 이렇게 잃고 말았다.
크륵!
연신 꿈틀거리는 중년 남자를 게걸스럽게 뜯어 먹던 좀비 하나가 고개를 번쩍 쳐들며 준성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검붉은 피막에 의해 흰자위까지 완전히 덮여버린 괴이한 눈동자가 다른 먹잇감을 찾듯 뒤룩뒤룩 굴러다녔다.
어차피 좀비들은 눈의 검붉은 피막 때문에 완전한 근거리가 아니면 앞에 뭐가 있는지도 잘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니 10m쯤 떨어져 있는 준성을 명확히 알아채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준성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슬그머니 뒷걸음질 쳤다.
이대로 제 등 뒤에 있는 벽에 딱 붙은 채로 조금만 기다리면 시야가 둔한 저 좀비들도 알아서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그때 급히 도망쳤던 길로 되돌아가 옆 골목으로 빠지면 어떻게든 ‘그곳’에 다다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단단한 벽에 등을 댄 순간.
툭, 투둑.
미지근한 뭔가가 준성의 정수리에 떨어져 내렸다.
순간 등골이 저릴 만큼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준성은 굳은 얼굴로 제 정수리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기분 나쁜 걸쭉한 액체가 손끝에 묻어났다. 검붉은 액체를 확인한 준성은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굳이 고민해볼 필요도 없었다.
고개를 들자, 기대어 있던 벽 위에 쭈그려 앉아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한 여자 좀비가 보였다. 붉은 피막이 덮은 눈가에는 아직 채 응고되지 않은 피눈물이 맺혀 있었고, 치아를 내보이며 벌린 입에서는 제 정수리에 떨군 것과 같은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이만큼 가까운 거리라면 아무리 시야가 피막에 가려져 있다고 해도 못 알아볼 리 없다.
캬아악-!
여자 좀비가 입을 쩍 벌리며 괴성을 질렀다. 그와 함께 두 팔을 뻗으며 거꾸로 뛰어내려, 준성을 깔아 눕혀 올라탔다.
딱딱한 바닥에 넘어진 준성은 등으로 전해지는 충격과 별개로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마치 화면 너머 내 캐릭터는 공격을 받고 있지만 정작 나에게는 패드의 진동으로만 다가오는 콘솔 게임기처럼, 감각은 다 살아있지만 통각만 완벽히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이다.
캭, 캬악-!
막거나 피할 새도 없었다.
올라타자마자 곧바로 이를 들이박으며 공격하는 통에 목 언저리에서 피가 튀었다. 여린 피부가 한 움큼 뜯겨 나가고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만약 비명을 지른다면 자신의 목에서도 좀비들과 같은 피 끓는 소리가 섞여 나갈 것 같았다.
좀비들의 것과 다른 뜨끈하고 선명한 피가 목과 턱에 점점이 묻는 느낌이 선명히 전해졌다. 피부가 뜯겨 나갈 때 나는 기묘한 쩍쩍 소리와 제 살점을 야무지게 씹어 먹는 여자의 그르렁거림이 너무나 거슬렸다.
크어-!
이미 죽어버린 중년 남자를 여태 뜯어먹고 있던 다른 좀비들은 준성과 여성 좀비가 뒤엉키는 통에 나던 소리에 반응해 달려들었다. 눈의 검붉은 피막 때문에 시각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 좀비들은 그만큼 소리에 민감했다.
괴성과 함께 달려드는 다른 좀비들을 바라보던 준성은 온몸의 피가 빠르게 굳는 듯한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뒤이어 평소처럼 시야가 빠르게 어두워지는 걸 느끼며 눈을 감았다. 자신의 진한 피 냄새, 그리고 평생 맡을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시체 썩는 악취가 점차 희미해져 갔다.
완전한 어둠에 잠식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준성은 제 방 침대에 바르게 누워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신축 원룸 특유의 깔끔하고 하얀 벽지, 침대에 가득 찰 정도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큼직한 창문, 큰맘 먹고 샀던 푹신한 퀸사이즈 침대, 이름도 기억 안 나는 한 후배에게 받았던 아로마 디퓨저의 은은한 향내.
가는 곳마다 핏자국과 시체 썩는 냄새로 뒤덮여 있던 조금 전의 골목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그럼에도 준성은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눈을 깜빡거리는 것 말고는 놀란 기색 하나 없었다. 오히려 조금 전의 끔찍했던 장면을 하나하나 되새겨보고 있었다.
특히나 그가 주목한 건 층고가 낮은 건물의 2층 창문에서 자신과 중년 남자를 덮치듯 뛰어내리던 좀비들의 모습이었다. 설마하니 그 건물 2층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좀비가 있으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
‘내일 이동할 때는 최대한 건물 벽에 붙어서 움직이되, 몸을 웅크려서 2층 좀비들의 시야가 닿지 않게끔…….’
아까의 상황을 떠올리며 스스로 피드백해보던 준성은 그대로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준성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건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살면서 게임을 소재로 꿈을 꾸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종류의 게임을 해왔으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만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매일 초기화되는 게임’을, 그것도 즐겨 하지도 않는 FPS 장르 아포칼립스 배경의 게임을 꿈으로 만나는 건 아주 생소했다. 심지어 꿈이라는 걸 자각한 채 그 안에서 자유로이 움직이고 사람들과 일일이 대화하는 것까지 가능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앞날이 바뀌는 아주 잘 만든 게임이었다. 자유도가 넘치다 못해 부담스러울 정도라고 할까.
사실은 이 신기한 꿈을 ‘게임’이라고 믿고 싶은 것뿐.
‘생생한 것도 정도가 있지.’
준성이 꿈속에서 겪었던 일들은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꿈속에서 질리도록 맡았던 진한 피 냄새와 걸어 다니는 시체의 악취가 저절로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제 몸을 깔아뭉개던 여자 좀비의 모습과 그 무게감은 지금도 끔찍할 만큼 생생하다. 몇 번이나 겪어봤던 살점 뜯기는 소리와 뜨뜻한 피가 터지는 감각에 대해선 A4용지에 10pt로 한가득 써줄 수도 있다.
그 정도로 현실 같은 꿈을, 준성은 한 달이 넘도록 매일 꾸고 있었다.
잠들면 언제나 이 원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완벽한 집안 풍경에 넋을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은 곧 지독한 아비규환의 현장이 되었다. 거니는 곳마다 영화나 게임으로만 접해봤던 좀비가 넘쳐나고 미친듯한 피비린내가 구토감을 일으켰다. 그러다 자칫 좀비와 정면으로 맞닥뜨려서 물리기라도 하면 살을 뜯어먹히는 끔찍한 감각에 비명을 지르다가 깨어나곤 했다.
그러다 또 잠들면 다시 원룸 한가운데.
시간을 되돌리기라도 한 것처럼 시작점부터 그 뒤에 이어지는 일까지 모두 다 똑같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