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형!”
경찰서의 유리문을 누군가가 벌컥 열고 들어오며 큰 소리로 쩌렁쩌렁 외쳤다.
“형……!”
당당하게 교복을 입고 경찰서로 뛰어 들어온 서제현이 나와 나란히 앉아 있는 서정연을 발견하고는 울상을 지으며 한걸음에 달려왔다.
“형, 이게 무슨 일이야? 괜찮아?”
“조용히 해.”
서제현이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서정연의 몸 여기저기를 살폈다. 서정연이 심드렁히 타박했지만 안타깝게도 한껏 흥분한 서제현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미친! 손에 이거 뭐야? 이, 이거 지금 다친 거야? 피 난 거 맞지?”
“하아…….”
“시발!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가 미쳐서 이딴 짓을 벌인 거냐고!”
서정연의 손바닥에서 베인 상처를 발견한 서제현이 한층 더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우리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조사받던 하경민의 등이 움찔 떨렸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서제현을 바라보던 경찰들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한마디 했다.
“어허, 학생. 형 다쳐서 놀란 건 이해하는데 경찰서에서 그렇게 떠들면…….”
“뭐? 뭐어? 떠들면 뭐? 어쩔 건데? 어쩔 거냐고요!”
“아, 아니, 버릇없게 지금…….”
“아저씨가 우리 형 손 다친 거 고쳐 줄 거예요? 애초에 지금 다친 사람 앉혀 두고 뭐 하는 건데요? 병원부터 보내지는 못할망정!”
“큼, 학생, 그건…….”
서제현의 기세에 밀린 경찰 한 명이 하경민이 앉아 있는 쪽을 힐끔 바라보며 헛기침했다.
서정연보다 몇 배는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 하경민도 조사받고 있었지만, 차마 저 녀석이 가해자라고 말하기가 애매한 탓이었다.
“서제현.”
“아야!”
깊은 한숨을 내쉰 서정연이 서제현의 귀를 붙잡아 당기며 물었다.
“윤 비서님은 어디에다 두고 혼자 와 있어.”
“저 여기 있습니다.”
낯선 음성이 들려와 고개를 기울여 서제현의 뒤를 확인하자 어떤 남자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서제현과 비슷한 체격의 상대는 검은 정장을 갖춰 입고 앞머리를 모두 뒤로 넘긴 깔끔한 인상의 남자였다. 저 사람이 서정연이 저번부터 말하던 윤 비서님인 모양이다.
윤 비서가 제 앞을 가로막은 서제현을 밀치며 우리 앞에 걸어와 섰다.
“죄송합니다. 차가 멈추자마자 도련님께서 멋대로 튀어 나가셔서.”
“뭐, 놀랄 것도 없네요.”
윤 비서와 서정연의 대화를 들은 서제현이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였다.
“형이 다쳐서 경찰서로 왔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주차를 기다리고 앉아 있어? 그래서 뭐야. 형한테 흉기 휘두른 새끼가 누군데? 여기 있어?”
흥분해서 있는 대로 소리치던 방금과 달리 범인이 누군지 묻는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경찰서 내부를 훑는 눈동자에는 결코 쉽게 넘어가지 않겠다는 광기가 담겨 있어서 조금 무서울 지경이었다.
“넌 알 거 없고. 애초에 난 윤 비서님만 부른 거로 기억하는데, 네가 왜 따라와?”
“나야 당연히…….”
“아직 학교에서 한창 수업할 시간 아니야? 너 내가 수업 한 번만 더 건너뛰면 어떻게 한다고 했어?”
그 말에 서제현의 눈동자에 담긴 광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껏 당황한 서제현이 변명부터 쏟아 냈다.
“이, 이번 건 논외로 쳐야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 다쳤다는데 내가 학교에 앉아서 수업을 들을 정신이겠어?”
오, 논외 같은 단어도 알고 있고. 대단한데?
옆에서 조용히 놀라는 나를 두고 서정연은 잔소리를 이어 나갔다.
“네가 평소에 얼마나 집중한다고 그딴 핑계를 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돌아가.”
“씨이… 난 진짜 걱정돼서 온 건데.”
“필요 없어. 그리고 윤 비서님.”
“예.”
어깨를 축 늘어뜨린 서제현의 곁에 선 윤 비서가 서정연이 무엇을 물을지 이미 예상한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말씀 주신 대로 박 변호사님께 연락했습니다. 사건에 대한 설명도 모두 마친 상태이고, 여기로 5분 내로 도착할 예정입니다.”
“좋네요.”
“예. 걱정하지 마시고 가시면 됩니다.”
윤 비서의 보고를 들은 서정연이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를 불렀다.
“뒷일 좀 부탁 드려요. 가요, 도해준 씨.”
“어?”
되물으면서도 무심코 서정연을 따라서 의자에서 일어나자 넋을 놓고 우리를 구경하던 아까 그 경찰이 다시 입을 열었다.
“거,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가시면…….”
“곧 변호사가 도착하니 이 뒷얘기는 변호사와 진행하시죠.”
“아니, 두 분은 사건 당사자에 피해자라…….”
“조사서는 두 사람 다 이미 작성한 거로 압니다만.”
“그래! 뭐 할 게 있다고 자꾸 붙잡아요? 우리 형 손바닥 다쳤다니까? 치료 늦어져서 덧나기라도 하면 어떡할 건데?”
당황하는 경찰과 대신 나서서 경찰을 상대하는 윤 비서, 옆에서 시끄럽게 편을 드는 서제현 때문에 경찰서 내부는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소란을 틈타서 다치지 않은 손으로 내 손을 잡은 서정연이 문으로 향했다.
서정연을 따라 경찰서를 나서기 직전, 나는 고개를 돌려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는 하경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거로 끝이겠지.’
아마 앞으로는 두 번 다시 하경민을 만나지 못할 거다. 흉기까지 휘두른 하경민을 서정연과 서제현이 순순히 용서해 줄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게임 회사 건물을 나설 때와 달리 찝찝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 자신이 신기할 정도로 하경민의 등을 봐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저대로… 다시는 내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또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서 서정연을 다치게 한다면 그땐 나도 정말 눈 돌아갈 것 같으니까.
나는 미련 없이 하경민에게서 시선을 돌려 서정연과 같이 경찰서를 나섰다.
“정말 이렇게 가도 되는 거야?”
“네. 저기 더 앉아 있어 봤자 할 것도 없어요. 곧 도착할 변호사가 알아서 다 해 줄 거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이런 일로 경찰서를 와 봤어야 말이지. 머쓱하게 이마를 긁적이다가 번뜩 정신이 들었다. 나는 급히 서정연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기다려 봐.”
“네?”
“당장 병원부터 가자. 아직도 손에서 피나잖아.”
“이 정도는 병원 안 가고 그냥 약 발라도 돼요.”
“안 돼. 절대 안 돼. 병원 가자, 응? 다른 곳도 아니고 손이잖아. 문제 생기면 어떡해.”
병원에 가서 제대로 진찰받아 볼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이는 서정연을 붙잡고 열심히 설득했다.
경찰 측에서 급한 대로 거즈를 붙여 줬다지만 손바닥 중앙이 제대로 베였는데, 치료도 받지 않는 건 많이 걱정스러웠다.
“…알겠어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잠시간 날 쳐다보던 서정연이 옅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병원 들렀다가 바로 집에 가요. 병원은 차가 주차되어 있는 아크로드 본사 근처로 가고. 어때요?”
“좋아.”
“대신 저 손 계속 잡아 줘요. 다친 부위가 아까부터 욱신거려서 아파요…….”
“당연하지! 빨리 병원 가자.”
역시 아픈 거 맞잖아. 눈꼬리를 축 내리는 서정연이 너무 안쓰러워서 잡은 손에 힘을 주며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
하필 다친 부위가 손이라,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부러 신경외과를 찾아서 그곳으로 서정연을 데려갔다.
서정연은 손에 무려 부분 마취를 하고 열 바늘이나 꿰맸다. 치료를 끝낸 의사는 상처 부위에 물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고, 실밥은 2주일 후에 가까운 병원에 가서 풀면 된다고 설명했다.
새하얀 붕대가 칭칭 감긴 손으로 병원을 나선 서정연이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말했다.
“마취가 덜 풀려서 그런가, 느낌이 되게 이상해요.”
“그렇게 막 움직이지 마! 기껏 꿰맨 거 덧나면 어떡하냐?”
손가락은 멀쩡하다고 해도 손바닥과 이어져 있으니 방심할 수 없었다. 내가 옆에서 안절부절못하자 서정연이 씩 웃더니 반대편 손으로 다시 내 손을 잡아 왔다.
“네에. 그럴게요. 저 말 잘 듣잖아요.”
말을 잘 듣기는 무슨. 뻔뻔해서 어이가 없었다.
‘하여간 이럴 때는 나보다 어려 보인다니까.’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차를 주차해 둔 아크로드 본사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손이 다친 서정연 대신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차라리 좋았다. 그간 서정연이 운전대를 도통 양보하지 않아서 미안했는데, 손이 다친 기간에라도 내가 나서서 운전해야겠다.
서정연의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 저 안쪽 방에서부터 챠챠챱 하는 귀여운 발소리를 내며 정이가 헐레벌떡 달려 나왔다.
“정아!”
귀를 펄럭거리며 폴짝폴짝 뛰어오는 정이를 냅다 품에 안았다.
헥헥거리며 내 뺨을 핥는 혓바닥과 부드러운 털, 따듯한 체온을 느끼자 내내 불안하던 기분이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정이를 안고서 서정연과 함께 거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자 몸의 긴장이 확 풀렸다. 나는 소파 등받이에 축 늘어진 몸을 기대며 말했다.
“사장님껜 죄송하지만… 내일도 알바 쉬어야겠어. 도저히 일을 나갈 자신이 없다…….”
“그럴 만해요. 오늘 너무 고생했잖아요.”
“고생을 내가 했어? 네가 했지.”
말하고 나니까 정이로 겨우 진정됐던 감정이 또 울컥 치솟았다.
저 하얗고 예쁜 손에 상처가… 무려 열 바늘이나 꿰맬 정도로… 안쓰럽고 미안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두 눈을 꾹 감고 휘몰아치는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내 옆에서 꼭 붙어 있던 서정연이 대뜸 귓가에 속삭였다.
“그런데요, 도해준 씨.”
“응?”
“저 어떡해요?”
“뭐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리둥절해져서 서정연을 쳐다보자, 그가 마치 자랑하듯 붕대가 감긴 손을 들며 말했다.
“의사가 실밥 풀기 전까진 상처에 물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잖아요. 그렇죠?”
“그렇지.”
“그럼 저 어떻게 씻어요?”
“어… 으응?”
“한 손으로 씻는 건 너무 힘들 것 같은데…….”
말꼬리를 길게 늘인 서정연이 눈을 두어 번 깜빡이고는 날 향해 살짝 웃었다.
“도와줄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