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벌 그만두겠습니다 (114)화 (116/132)

114.

어나더와의 길드 전쟁을 앞두고 우리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바로 ‘heunjeok’ 계정의 공개 타이밍이었다.

길드 전쟁에서 복귀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만큼, 우리는 어떻게든 ‘heunjeok’ 계정이 멀쩡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전쟁 전까지 숨겨야 했다.

섣불리 길드에 가입시켰다가 말이 새어 나가기라도 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거고, 어나더 측에서 다른 대비를 해 올지도 모르니까.

“최대한 버티다가 전쟁 시작 직전에 들어오면 좋겠는데.”

길드원들을 신뢰하지 않다기보단 서정연이 길드로 들어오면서 필수적으로 생길 소란이 걱정스러웠다.

과하게 소란스럽다 보면 얘기가 밖으로 새어 나갈 가능성도 커지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아크로드는 오프라인 상태로도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어서, 길드원 중 누가 들어와 있는지 정확한 파악이 어려웠다.

‘뭐, 솔직히 길드원 숫자가 한둘이 아닌데 우리가 했듯이 어나더 쪽에서도 스파이 한 명 정도는 심어 놨을 수도 있지.’

어나더와의 마지막 길드 전쟁이 될 예정인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서 성공시키고 싶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서정연의 복귀이지 않나.

“음, 일단 전쟁 직전에 새로운 유저가 길드에 가입하는 건 딱히 제한이 없는 것 같긴 하네.”

핸드폰으로 관련 정보를 찾으며 말하자 서정연이 포도 한 알을 내 입에 넣어 주며 대답했다.

“좋네요. 시작 직전에 길드 가입하면 되겠어요.”

“좀 불안하긴 해. 관련 내용이 아예 적히지 않은 거지, 언제든 가입해서 전쟁에 참여해도 된다고 써진 게 아니라서.”

“하긴. 게임사에서 설명을 빼놓는 경우는 종종 있었으니까.”

내 말을 들은 서정연도 이해한다는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사에 뒤통수 여러 번 맞다 보면 이런 사소한 부분에도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테스트해 볼 여유도 없고. 그냥 얘기가 새어 나가더라도 안전하게 하는 게 낫나?”

뒤에서 나를 끌어안고 있는 서정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한탄하자 서정연이 빙긋 웃으며 포도알을 하나 더 내 입에 넣어 줬다.

“그럼 물어볼까요?”

“어? 뭘?”

“정말로 제한이 없는지. 물어봐서 확인해 보면 되죠.”

“…누구한테?”

“누구긴요.”

나를 품에 안고서 손을 뻗은 서정연이 포도가 담긴 접시 옆에 놔둔 자신의 핸드폰을 들었다.

“이왕 번호를 얻었는데 그대로 썩히기엔 아깝잖아요.”

“설마…….”

“디렉터한테 물어보면 확인해 주겠죠.”

상상도 못 한 방법에 경악하는 나를 두고 서정연은 핸드폰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미친, 진짜로 디렉터한테 연락해서 물어보려고? 서정연의 거침없는 행동에 내가 더 기겁하며 손을 붙잡았다.

“잠깐, 잠깐만.”

“네?”

내게 잡힌 제 손을 잠시 바라보던 서정연이 눈을 깜빡였다.

“왜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디렉터인데 이런 걸 물어보는 건 조금 그렇지 않냐?”

“물어볼 수도 있죠. 디렉터한테 묻는 게 제일 확실할 텐데. 본인이 몰라도 직원들한테 물어봐 줄 수도 있고.”

“그쪽이 먼저 번호를 줬다지만 이런 일로 연락해 봤자 무시만 당할 것 같은데.”

“무시당하면 어쩔 수 없는 거고요. 그런데요, 도해준 씨.”

오히려 내 팔을 끌어당겨 손등에 입을 맞춘 서정연이 말했다.

“아마 디렉터는 제 연락을 무시하지도 않을 거고, 질문에 대답도 해 줄 거예요. 지금 우리를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디렉터를 포함한 관계자들일 테니까.”

우리를 신경 쓰고 있다고? 디렉터가?

서정연의 설명에 나도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디렉터가 우리를 신경 써야 할 이유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증거 영상 때문에?”

“네. 회의실에서 우리는 제안을 받아 주면 영상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특수한 상황이라서 배려해 준 거지, 남들이라면 절대 그러지 않을 거니까.”

“그거야 그렇긴 하지.”

우리는 서정연의 사칭범과 어나더 길드의 비매너 플레이 사건을 겪고서, 노퓨쳐와 사칭범의 계정 자체를 정지시키기 위해 지금껏 움직였다.

그런 이유가 아니었으면 버그를 악용한다는 증거 영상을 얻은 즉시 바로 공개했을 거다. 굳이 디렉터를 만날 필요도 없고, 그럴 생각도 안 했을 거다.

“우리가 멋대로 커뮤니티 같은 곳에 영상을 공개할까 봐 걱정하는 건가?”

“네. 그리고 우린 게임 회사 직원이 고의로 버그를 유출했다는 걸 증명할 영상도 갖고 있으니까. 이걸 커뮤니티에 공개했다간 난리가 날걸요.”

어차피 주말이 지나고 나면 게임 회사에서 노퓨쳐를 직접 만나고, 그 후에는 아크로드 홈페이지에 정식으로 공지 사항이 올라가겠지만… 합의가 모두 끝난 다음에 공지 사항으로 사건을 알리는 것과 커뮤니티에 영상부터 올라가는 건 상황이 많이 달랐다.

게임사 측은 이 문제를 어떻게든 조용히 해결하고 싶겠지. 그렇다면 서정연의 말대로 우리가 정말 영상을 공개 안 하고 얌전히 있어 줄지 관심이 많을 거다.

나는 여기까지 생각한 서정연이 어이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디렉터가 연락을 무시한다고 해서 영상을 공개할 생각도 없으면서.”

“당연하죠. 그건 너무 얄밉잖아요.”

“알았어. 연락해 봐. 나도 답장이 올지 안 올지 궁금해졌어.”

서정연의 말을 해석하자면 약점이 잡힌 쪽이 알아서 기라는 건데, 이쯤 되면 게임사한테 당한 게 많은 나도 디렉터가 조금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네에. 저만 믿어요, 도해준 씨.”

서정연이 걱정하지 말라는 얼굴로 나를 꽉 끌어안으며 뺨에 뽀뽀를 마구 쏟아 냈다.

힘은 또 왜 이렇게 센지, 벗어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붙잡혀서 뽀뽀를 받게 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

“…진짜로 알려 줄 줄이야.”

길드 전쟁 당일.

옆자리에서 대기 중이던 서정연이 내 중얼거림을 듣고는 눈을 길게 접어 웃었다.

“제가 믿으라고 했잖아요.”

“어이가 없어서 그래…….”

길드 전쟁 직전에 길드에 가입해도 전쟁에 참여할 수 있냐는 서정연의 메시지에 디렉터는 곧바로 별달리 제한을 둔 건 없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알고 보니 다른 서버에서 이미 몇 번 쓴 전략이라고 한다. 그리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 내진 못한 듯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걱정 하나는 덜었네.’

이제 남은 건 서정연을 길드에 가입시키고 함께 전쟁에서 승리하는 일뿐이었다.

나는 선두를 지키던 평소와 달리 맨 뒷자리로 빠졌다. 그리고 디코 음성방에 들어와 있는 길드원들에게 최종 브리핑을 했다.

“곧 길전 시작하니까 각자 장비 점검하시고. 전쟁 중에는 제가 따로 짚어 준 분들 제외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탱, 딜, 힐 포지션에서 벗어나지 말고 싸우세요.”

[길드] 불좀켜줄래: 난 준비 완료~

[길드] 야옹이라옹: ㅇㅅㅇ)9

[길드] sky004: 예압

[길드] 류페: 팀 안나누고 싸우는거 이번에 첨 아닌가ㄷㄷ

[길드] 저6천원있어요: 지금 어나더쪽도 보니까 포지션 개판인데?

[길드] 여여랑: ㅇㅇ

[길드] 여여랑: 팀 안나눠도 별 상관없을듯

[길드] 불좀켜줄래: 쟤네 근데 포지션 ㄹㅇ왜저럼?

[길드] rxrx78: 길마랑 부길마 지키는 위주로 가는거같은데

[길드] 좋은날씨: 그래서 개판이라는 겁니다ㅋ

[길드] 아스타로트: ㅋㅋㅋㅋㅋㅋ

[길드] 여여랑: ㄹㅇ지킬걸 지켜야지ㅋ

[길드] 저6천원있어요: 우리 누구 한명 더 온다고 하지 않음?

[길드] 저6천원있어요: 곧 시작인데 안오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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