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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 그만두겠습니다 (98)화 (100/132)

98.

넋을 놓고 서정연의 얼굴을 열심히 구경하던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자, 잠깐. 나 지금 너무 변태 같은 거 아니야?’

그제야 서정연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려고 나도 모르게 상체를 숙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굴로 열이 확 번지며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미친, 서정연이 잠에서 깼으면 어쩌려고 이래?’

사람 얼굴을 이토록 홀린 듯이 본 적이 처음이라 너무 당황스러웠다.

남이 자는 동안 얼굴을 구경하다니, 심지어 적나라하게 입술만! 서정연이 이 사실을 알고 나를 변태라고 매도해도 할 말이 없었다.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로 주춤 물러섰다. 얼굴이 뜨끈뜨끈했다.

그 와중에도 서정연의 얼굴에서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어차피 자는데 구경할 수도 있지 않냐는 마음과 양심이 있으면 당장 서재를 뛰쳐나가라는 마음이 강하게 충돌했다.

“하아…….”

치열하게 갈등하던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휙휙 저었다.

당장 서재를 나가야겠다. 여기 더 있으면 안 된다. 지금 세상에서 제일 파렴치하고 위험한 놈이 바로 나 자신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서정연에게 카디건이 제대로 덮인 것을 확인한 뒤에 몸을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탁!

무언가가 내 손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놀라서 시선을 내리자 새하얗고 커다란 손이 내 손목을 잡고 있었다.

“왜 아무것도 안 하고 가요?”

“……!”

나지막이 나온 목소리에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고개를 들자 의자에 기댄 상태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서정연이 보였다.

언제부터 깨어 있던 거지? 이마에 식은땀이 절로 났다.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며 굳어 있는 나를 잠시간 쳐다보던 서정연이 눈꼬리를 접으며 웃었다.

“사람 잔뜩 기대하게 해 놓고 그냥 가 버리는 거예요?”

“뭐, 뭐?”

“저한테 키스하려고 한 거 아니에요?”

“키…….”

키스…….

예상치 못한 단어가 등장하자 겨우 붙잡은 이성이 다시 뒤흔들렸다.

정신이 아득해진 내가 차마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멍청하게 서 있자, 서정연이 보란 듯이 턱을 치켜들며 나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부러 대놓고 밥상 차려 준 건데, 손가락으로 찔러 보지도 않고 그렇게 가 버리면…….”

“…….”

“저 너무 섭섭하잖아요.”

나를 탓하듯, 조곤조곤 흘러나온 책망 어린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고개를 기울일 때마다 가볍게 흐트러지는 머리카락과 유려하게 올라간 입술, 내 손목 안쪽을 살살 매만지는 손길까지.

서정연이 하는 모든 행동이 마치 나를 유혹하는 몸짓처럼 느껴졌다. 심장이 빠른 속도로 뛰어오르며 간신히 사그라들었던 열이 다시금 타올랐다.

“아, 아니, 너 깨어 있었… 언제부터…….”

“도해준 씨가 방에 들어올 때부터?”

처음부터 깨어 있었다는 거잖아! 제대로 속아 넘어갔다는 생각에 미간을 찌푸리자 서정연이 내 손목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눈이 뻐근해서 잠깐 쉬고 있었는데, 도해준 씨가 들어온 거예요.”

기분 나빠하지 말라는 듯이 덧붙여 말한 서정연이 바로 앞까지 끌려온 나를 올려다봤다.

“그래서요?”

“어?”

“안 해 줄 거예요?”

뭘 안 해 줄 거냐고 묻는 건지는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당혹스러운 마음에 반사적으로 서정연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오히려 서정연은 더 강하게 내 손목을 잡아 왔다. 순순히 내 뜻을 따르고 물러서던 평소와는 다른 태도였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야?”

그래서 덕분에 나도 조금은 진정됐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은 여전했지만, 적어도 서정연의 표정을 살필 정신은 돌아왔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묻자 서정연이 의자에 기대고 있던 상체를 일으켰다.

“저도 도해준 씨처럼 하고 싶다는 의미예요.”

“…….”

“그러니까 해 주면 안 돼요?”

나를 보며 눈을 깜빡이던 서정연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씁쓸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아니면… 이제 와서 고민될 정도로 내가 매력이 없나?”

어쩐지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는 나를 비난하는 듯한 어조였다. 거기까지 들으니 나도 더는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처럼 뛰는 심장 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몸을 숙였다. 끼익, 서정연이 앉고 있는 의자 팔걸이를 손으로 짚자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거리가 한층 더 가까워졌다.

입술로 닿아 오는 서정연의 숨결을 느끼며 물었다.

“후회 안 해?”

내 목소리는 지나치게 낮고 거칠었다. 아까부터 참아 온 탓에 초조함이 갈수록 심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확인도 하지 않고 입술을 부딪칠 순 없었다.

나는 훨씬 더 전부터 서정연에게 끌리고 있었으니 괜찮았지만 서정연은 나를 그저 친구로 여기지 않았나.

아까 술도 마셨고, 우리 둘밖에 없는 상황이고, 사람의 정신이 절반쯤 이상해진다는 새벽이었으니… 한순간의 충동으로 키스를 조르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번 더 물어본 거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었다. 이 이상은 나도 더 배려해 줄 수가 없었다. 만약 이번에도 서정연이 괜찮다고 대답하면…….

조용히 날 응시하던 서정연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안 해요.”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팔걸이를 붙잡은 손끝이 절로 떨렸다. 나는 서정연의 새까만 눈동자를 바라봤다.

서정연도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간 서정연과 시선을 맞추다가 천천히 눈을 감으며 서정연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갖다 댔다. 따듯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입술에 닿아 왔다.

처음은 짧았다. 쪽, 가볍게 입을 맞추고 떨어진 나는 서정연의 반응을 살폈다. 다행히 서정연은 불쾌하거나 거북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조금 안심한 나는 다시 입술을 부딪쳤다.

이번에는 방금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깊었다. 혹여 서정연이 놀랄까 봐 감추고 있던 혀로 녀석의 입가를 핥자 굳게 다물렸던 입술이 벌어졌다. 그 틈으로 혀를 집어넣으며 몸을 더욱 밀착하자 서정연의 단 숨결과 함께 은은한 향이 확 풍겨 왔다.

‘미치겠다…….’

드득, 팔걸이를 움켜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뜨겁게 끓어오르는 흥분을 느끼며 서정연의 혀를 꾹 짓눌렀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아서 도무지 감정이 제어가 안 됐다. 더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일단 서정연의 입술을 두어 번 핥고서 키스를 끝냈다.

내가 물러서자 서정연이 묘한 표정을 하고서 눈을 깜빡였다. 남자와 키스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이는 모습에 쓴웃음이 나왔다.

“그, 미안. 혹시 싫……!”

막상 해 보니 싫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사과하려던 그때였다. 갑자기 강한 힘이 내 멱살을 틀어쥐며 몸을 뒤로 확 밀었다.

덜컹!

거칠게 일어나는 서정연의 행동에 의자가 바닥으로 넘어졌다. 서정연에게 멱살이 붙잡힌 채로 밀려 나던 나는 그대로 벽에 등이 부딪혔다.

쿵, 벽에 등이 닿자마자 서정연이 곧장 내 입술을 깨물었다. 어찌나 세게 물었는지, 따끔하고 아릿한 통증이 번져 가 절로 입이 벌어졌다.

“헉, 잠깐, 읏……!”

벌어진 입 사이로 혀가 거침없이 들어왔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따라가려고 노력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데다 내가 리드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몰아치는 탓에 쉽지 않았다.

“하아…….”

내 혀를 쪽쪽 빨던 서정연이 허리를 붙잡았다. 허리를 끌어당기며 내 다리 사이에 제 허벅지를 끼워 넣었다. 온몸에 오싹한 소름이 끼쳤다.

자꾸만 꽉 달라붙는 서정연 때문에 갑갑한 데다 숨까지 틀어 막혔다. 결국 버티던 나는 힘을 줘서 서정연의 어깨를 밀어 냈다. 뺨을 붉힌 서정연이 아깝다는 기색으로 입술을 뗐다.

“서정연, 그만.”

내 다리 사이에 들어와 있는 서정연의 허벅지가 너무나도 신경 쓰였다. 우선 다리부터 치워 달라고 말하려는데, 새하얀 손이 불쑥 튀어나와 내 입가를 매만졌다.

“이런, 피가… 조금 찢어졌네요.”

타액으로 축축하게 젖은 내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쓱 훑어 준 서정연이 아랫입술 끄트머리를 살살 쓸었다. 그러자 쓰라린 통증이 올라왔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방금 서정연이 깨물 때 상처가 생겼단 걸 알 수 있었다.

“너…….”

“미안해요. 저도 자제가 안 돼서… 많이 아파요?”

한 소리 하려던 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내 입술을 매만지는 서정연의 모습에 불만을 꿀꺽 삼켰다. 방금 키스를 해서 그런가, 서정연의 얼굴이 유독 예뻐 보였다.

결국 한 소리 하기보단 아무렇지 않은 척 헛기침을 했다.

“아픈 건 아니고, 그냥 좀 놀랐…….”

“덧나면 안 되는데. 아직 피도 나고.”

“이런 거로 덧나긴. 많이 다친 것도 아니고 약간 찢어진, 읏… 야!”

말하던 나는 입술에 닿아 오는 말캉하고 따듯한 혀의 감촉에 기겁했다. 파드득 떠는 내 허리를 붙잡고서 상처 난 부위를 몇 번이고 핥았다.

“흐… 그만해, 미친놈아.”

“왜요? 싫어요? 막상 하니까 별로예요?”

날 내려다보는 검은 눈동자가 애처로운 빛을 띠고 반짝거렸다.

아래로 축 처지는 눈꼬리와 살짝 달아오른 얼굴, 방금까지 나와 키스해서 잔뜩 젖어 있는 붉은 입술이 무척이나 자극적이었다.

“나도 좋긴 한데…….”

“그럼 왜 그만하라고 해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서정연은 진심으로 왜 그만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왜냐니…….”

어이없어진 내가 허탈하게 웃자, 서정연이 나를 덥석 껴안으며 본격적으로 조르기 시작했다.

“도해준 씨도 좋았다면서요. 그러니까 더해도 되잖아요. 여기에 우리 둘밖에 없는데.”

“그게 아니라, 잠깐…….”

쪽, 쪽, 쪽. 입술이 쉬지 않고 부딪혔다. 나는 제대로 된 반항이나 반박 한번 못해 보고 서정연에게 붙잡힌 채로 입술을 내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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