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벌 그만두겠습니다 (93)화 (95/132)

93.

내가 옆에 가서 앉자 서정연이 곧장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셔터 소리가 20번쯤 들리고 나서야 서정연은 만족했는지 카메라를 끄고 입을 열었다.

“사실 부길마가 제대로 지적하긴 했어요. 방금 만든 계정으로 쪽지를 보내 봤자 상대가 읽을 리가 없죠.”

“그렇긴 하지.”

“그래서 미리 적당한 사람한테 부탁해 놨어요. 곧 올 거예요. 설마 도해준 씨가 SNS를 할 거라고는 예상을 못 했거든요.”

덧붙이는 말이 어쩐지 가시가 돋친 것처럼 느껴졌다. 머쓱하게 헛기침을 한 뒤에 물었다.

“누군데?”

“서제현이요. SNS에 환장한 놈이라 교복 입고 찍은 사진도 많이 올리거든요. 새로 만든 계정보단 학생 계정이 훨씬 나을 것 같아서요.”

흠, 확실히 방금 막 만든 계정보단 어린 학생으로 보이는 계정이 디엠을 보내면 경계심이 누그러들 것 같긴 하다.

“시간이 늦었는데 불러도 돼?”

“저도 내일 낮에 따로 만나려고 했는데, 마침 학교에서 본가로 돌아가던 참이니까 그냥 바로 여기로 오겠다네요.”

“웬일로 이 밤까지 학교에 있었대?”

공부에 관심 없고 틈만 나면 땡땡이친다고 하지 않았나? 의아해하는 나와 똑같은 표정을 지은 서정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저도 딱히 안 물어봐서 모르겠어요.”

심드렁한 반응을 보아하니 애초에 물어볼 생각도 없었나 보다.

‘…근데 사진 찍는 건 끝난 건가?’

나도 서정연이랑 같이 찍은 사진 갖고 싶은데. 보내 달라고 하면 주려나? 아쉬운 마음에 자꾸만 서정연의 핸드폰으로 힐끔힐끔 시선이 갔다.

말이라도 꺼내 볼지 갈등하던 그때였다. 카페 문이 열리며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한 서제현이 등장했다.

“형!”

서정연을 발견한 서제현이 신나서 달려오다가 뒤늦게 옆에 앉은 나를 발견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매번 저러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저렇게 뒤늦게 발견하는 것도 대단하다면 대단하다. 아무래도 서제현은 무조건 서정연이 제일 먼저 보이는 모양이다.

“씨, 뭐야? 왜 또 둘이 같이 있어?”

서제현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면서 자리에 앉았다. 다소 불량스러운 태도에 서정연의 눈초리가 단번에 날카로워졌다.

“인사 똑바로 안 해?”

“…안녕하세요.”

오자마자 한 소리 들은 서제현이 내게 꾸벅 인사를 해 왔다. 어차피 혼날 텐데 그냥 처음부터 예의 바르게 인사하면 안 되는 건가?

“그래서 뭐! 왜 불렀는데! 잔소리하려고 부른 거야?”

혼나기 싫어서 인사했지만, 자존심은 상하는지 서제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정연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손을 내밀었다.

“서제현, 핸드폰 줘 봐.”

“어?”

“핸드폰 달라고. 잠금 풀어서.”

“왜? 왜 갑자기 핸드폰 검사를 해?”

서제현은 사색이 된 채 의자 등받이에 몸을 찰싹 붙였다. 눈동자가 있는 대로 흔들리는 꼴이 영락없이 부모한테 잘못한 일을 걸린 아이 같았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서제현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니까 저런 식으로 뺏는 것보단 제대로 설명해 주고 부탁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서제현의 나이를 생각하면 사생활에 한창 예민한 시기인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뺏지 말고, 서제현한테도 이번 일을 알려 주는 게 어때? 아무리 메시지라고 해도 말투라는 게 있으니까 서제현이 직접 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거고.”

서제현의 편을 들어 주는 느낌이 지나치게 나지 않도록 적당히 얘기하자 서정연과 서제현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로 향했다.

“도해준 씨 생각이 그렇다면 저도 동의해요.”

“엥? 메시지? 뭔 메시지?”

순순히 의견을 굽히는 서정연의 옆에서 서제현이 맹하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어쩔 수 없이 한숨이 나왔다. 협력해 달라고 말하는 거야 좋다지만, 얘한테 그간의 일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

찾고 있는 사람과 핸드폰 번호가 겹치는 사람의 SNS를 발견했으니까 디엠을 보내서 확인하려고 한다는 말로 설명을 끝냈다.

최대한 줄이고 줄인 설명이었다. 게임을 즐기지 않는 서제현이 넷카마와 관련된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한 서제현이 떨떠름한 기색으로 서정연의 노트북에 자신의 SNS 계정을 로그인했다. 옆에 앉아서 서제현의 스타그램 계정을 보니 정말로 업로드한 사진도 많고 팔로워도 많았다.

“에이, 내 취향 아닌데.”

서제현이 중얼거린 말을 들은 서정연이 대놓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취향 따질 때야? 그리고 17살이 뭔 취향이야, 취향은.”

“나도 취향이 있을 수 있지! 나이랑 무슨 상관이야?”

진짜로 취향이 있는지, 진지한 얼굴을 하고서 대꾸하는 서제현의 모습에 좀 궁금해졌다.

“취향이 뭔데요?”

“무조건 예쁘고! 착하고! 똑똑하고! 돈은 없어도 돼. 내가 많으니까.”

“…….”

양심 없는 대답에 조용히 고개를 젓자 서정연이 서제현의 머리를 꾹 내리누르며 경고했다.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디엠이나 보내.”

“아, 알았다고. 물어봐서 대답해 준 건데 왜 나한테 난리야.”

구시렁거리며 노트북을 제 앞으로 끌어당긴 서제현이 여자 계정에 들어가서 디엠 버튼을 눌렀다.

“뭐, 일단 인사부터 한다?”

“그래.”

타다닥, 노트북 키보드 위에 올라간 서제현의 손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게임도 안 하는 놈이 타자 속도는 왜 이렇게 빠른 거야? 게다가 묘하게 능숙해 보이는 저 태도가 어이없었다. 대체 공부는 안 하고 뭘 하고 다니는 건지.

“했어.”

10초도 안 돼서 서제현이 인사를 했다며 화면을 우리에게 보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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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co.yoo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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