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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 그만두겠습니다 (29)화 (30/132)

29화.

약속이 있다며 카페를 떠나갔던 서정연은 정말로 내 퇴근 시간에 맞춰서 돌아왔다.

매장 안으로 들어오는 대신 옆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웠는지, 문 밖에서 마주한 서정연에게는 옅은 담배 냄새가 풍겼다.

“고생했네요.”

“이걸 진짜 기다린 너도 참 제정신은 아니다.”

“어차피 집에 가는 길이니까 상관없어요.”

나랑 같이 어딜 갈 것도 아니고, 각자 집으로 가면 되는데 기다린 게 어이가 없었다.

뭔가 사고방식이 일반인 같지가 않단 말이지. 저번처럼 담배꽁초를 휴대용 재떨이에 챙기는 서정연을 노려보던 나는 담배 냄새와 뒤섞인 다른 냄새를 알아챘다.

‘여자 향수 냄새?’

남자가 쓰기에는 지나치게 고혹적인 향이었다. 약속 상대가 여자였나?

‘뭐, 얼굴이 저러니 여자야 당연히 있겠지.’

그래도 약속 간다면서 몰래 부캐 키우고 온 건 아니구나. 그런 거면 만나자마자 바로 따지려고 했는데.

“다음부터는 기다리지 말고 알아서 가.”

아무튼 내 눈앞에 계속 있을 거 아니면 굳이 알바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었다. 앞서 걸어가며 말하자 뒤를 따라오던 서정연이 고개를 기울였다.

“왜요?”

“아니, 애초에 기다리는 이유가 나랑 부캐 키우는 시간 맞추려고 한 거잖아. 오늘처럼 이러면 의미가 있냐고.”

“꼭 의미가 있어야 하나요?”

“이 자식이 또 신박한 헛소리를 하네…….”

“중요한 건 저랑 도해준 씨가 같은 시간에 부캐를 키운다는 거니까요.”

“그건 그렇지.”

알바하는 동안 아무것도 안 먹었더니 굉장히 출출했다.

서정연의 말에 적당히 대꾸하며 가는 길에 컵라면이나 편의점 도시락이라도 사 갈까 고민하는데, 잠시간 말이 없던 서정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밥 먹고 갈래요?”

“갑자기 뭐야. 내가 너랑 밥을 왜 먹어.”

“일하는 동안 아무것도 못 먹은 거 아니에요? 저도 약속 갔다 오느라 먹은 게 없고. 어차피 먹어야 하는데, 같이 먹으면 좋잖아요.”

그렇긴 한데. 이 근처에서 식사할 만한 곳이라고는…….

나는 앞에 서 있는 서정연의 옷차림을 천천히 살펴봤다. 더운 날씨에 맞춰서 차림새가 가볍긴 하지만, 대충 검은 면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 나보다 몇 배는 깔끔하고 세련됐다.

당장 호텔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스테이크를 썰어도 이상하지 않을 저 차림으로 나랑 밥을 먹겠다고?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녀석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 따라와.”

척척 앞장서는 나를 서정연이 웃으며 따라왔다. 저 웃음도 지금뿐일 거다.

어딜 갈지 이미 결정을 내린 나는 목적지를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다. 카페에서 오른쪽으로 갔다가 한 번 꺾으면 도착하는 곳이라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힘찬 인사가 들림과 동시에 이미 식사 중인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테이블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서정연을 의기양양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뭐 먹을래?”

김밥 헤븐. 싸고 간단하게 한 끼 때울 수 있는 분식점. PC방이 비위생적이라며 질색하던 서정연에게 아주 좋은 장소였다.

“난 라면.”

웃으며 쐐기를 박듯 이어 말하자 잠자코 응시하던 서정연도 나를 따라 픽 웃으며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럼 저도 라면 먹을게요.”

“네가 여기서 라면을 먹겠다고?”

“못 먹을 건 없죠.”

아, 그러셔? 난 보란 듯이 소리쳤다.

“여기 라면 두 개요!”

주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갓 끓인 라면 두 개가 테이블에 놓였다. 이제 와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일부러 수저통에서 젓가락과 숟가락을 꺼내 녀석에게 내밀었다.

“내가 살 테니까 꼭 다 먹어라.”

“와, 정말요? 고맙네요.”

남기기만 해 봐. 팔짱을 끼고 노려보는 나를 두고 서정연이 먼저 젓가락을 들었다.

곧게 뻗은 새하얀 손가락으로 젓가락을 쥐고 라면 면발을 짚어서 살짝 벌린 입 안으로 넣는다. 후루룩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국물이 튀지도 않는, 그야말로 완벽한 젓가락질이었다.

무슨 귀족이 와서 파스타 먹는 줄 알겠다. 분식집에서 라면 먹는데 이렇게 우아할 일이냐고.

나를 포함해서 가게 안에 있는 다른 손님들과 라면을 갖다준 아주머니들까지 넋 놓고 서정연을 바라보는 것을 알아채고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짚어 주지 않아도 확실하게 알았다. 이번 도발도 내 패배였다.

***

집에 돌아온 나는 씻은 뒤에 컴퓨터에 앉아서 아크로드를 켰다.

원래라면 본캐인 ‘오늘은일요일’부터 접속해서 하루 간 별일 없었는지 확인했겠지만, 오늘은 서정연과 쓸데없이 시간을 보냈으니 곧장 부캐로 접속했다.

빚과송금: ㅎㅇㅎㅇ

빚과송금: 왤케 늦게 와여ㅜ

Z10N: ㅈㅅ

Z10N: 파티 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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