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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 그만두겠습니다 (20)화 (21/132)

20화.

서정연이 왜 이런 제안을 했는지는 이해한다.

확실히 흔적은 자신의 길드를 관리하거나 길드원들과 교류하면서 지내 온 게 아닌 모양이다. 그러니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정보를 얻어 낼 곳이 없는 거겠지.

친한 사람이 없는 흔적과 다른 길드인 난 정보를 얻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니 직접 어나더 길드로 들어가서 사칭범이 어떤 놈인지, 무슨 목적으로 이런 짓을 벌인 건지 알아내자는 거다.

서정연의 계획은 단순하고 간단했지만 그만큼 확실했다. 부캐를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과 어나더 길드에 무사히 가입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배제하면 제일 쉬운 방법이고.

다 안다, 알겠는데.

“안 해.”

난 그런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엄연히 따지면 흔적이 없는 어나더 길드는 나와 아무 관련이 없었으니까.

물론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어나더 길드가 먼저 도발해 온다면 그때는 이 제안도 고려해 볼 만하지만… 아직 그놈들과 아무런 마찰이 없는 상태이니 굳이 나서서 판에 낄 필요도 없었다.

설마 내가 거절할 줄은 몰랐는지, 서정연이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이번에는 내가 녀석을 비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할 얘기가 이거뿐이라면 먼저 일어난다. 알바하다가 중간에 잠깐 나온 거라서.”

“정말 안 할 거예요? 제대로 된 정보를 얻으려면 이 방법밖엔 없을 텐데요.”

“들어가려면 부캐가 필요한데, 부캐 키우는 건 별로 취향이 아니야. 그리고…….”

이어서 말하려던 나는 멈칫했다.

사실 흔적과 하고 싶은 대화 주제는 따로 있었다. 갑자기 계정 삭제하고 사라진 이유나, 왜 한 달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는가… 이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막상 진짜 흔적과 마주해 보니 저 얘기를 꺼내기가 애매했다. 한 달이나 사라졌다가 일휘일비 캐릭터로 나타난 걸 보면 딱히 묻지 않아도 대충 무슨 상황인지 짐작은 가지만.

‘그럼 어나더 길드가 사칭하더라도 무시할 만하지 않나?’

왜 부캐로 길드에 들어가면서까지 정보를 얻어 내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고작 게임에 왜 저런 정성을 들이냐, 이렇게 따져 봤자 나도 게임에 과몰입해서 사는 처지였으니 웃기기만 하고.

“음, 그래요…….”

내 거절에 계획을 수정하는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입가를 매만지던 서정연이 테이블에 내려 둔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알겠어요. 그럼 혹시 모르니까 번호만 주고 가요.”

“너도 참 징하다.”

이 상황에도 내 번호를 물어 오는 태도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번호를 찍고 통화 버튼을 누르자 내 핸드폰에도 서정연의 번호가 떴다.

“됐지?”

“네. 무슨 일 있으면 편하게 연락해요.”

내게 핸드폰을 돌려받은 서정연이 그림 같은 미소를 지었다. 기껏 생각해서 내건 제안을 거절당했는데도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과연 연락할 일이 있을까. 그보다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허구한 날 내 뒤만 쫓아다니던 일휘일비랑 카페에 자주 찾아오는 단골손님인 주제에 앞으로 내 얼굴을 어떻게 보려고.’

뭐, 장난 아니게 뻔뻔한 성격이니 신경도 안 쓰고 평소처럼 행동하려나. 아무튼 내가 서정연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할 일은 없을 거다. 그렇게 결론을 짓고 등을 돌렸다.

***

흔적, 아니, 서정연은 그 후로 이틀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카페는 물론이고 게임에도 접속하지 않았는지 내가 일휘일비에게 보낸 친추 요청이 계속 보류된 상태였다.

어나더 길드 쪽도 조용한 건 마찬가지였다. 하긴, 아무리 가짜라고 해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누군가를 따라 해야 하는 처지라면 더더욱 말이다.

나는 나대로 바쁜 이틀을 보냈다. 임소희가 맡긴 디자인 일과 카페 알바를 병행하고 남는 시간에 아크까지 하려니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그렇게 사흘째 되는 날 밤이었다. 알바를 쉬는 날이라 디자인 작업에 열중하고 있던 나는 핸드폰 진동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으으…….”

몇 시간을 모니터만 집중해서 들여다봤더니 피로가 장난 아니었다. 뻐근한 몸을 스트레칭하며 잊고 있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왜 메시지를 안 보냐?]

받자마자 상기된 목소리로 대뜸 본론부터 던지는 말에 눈가를 찌푸렸다. 전화를 건 상대는 마하였다. 근데 갑자기 무슨 메시지?

“나 일하느라고 바빴어. 뭔데?”

[하… 당장 들어와.]

뚝. 전화가 끊겼다. 통화가 종료된 핸드폰 화면을 어이없이 쳐다보다가 메시지 어플을 켜 봤다. 확실히 메시지가 100개가 넘게 쌓여 있긴 한데.

길드원들이 게임 밖에서도 메시지 어플을 통해 자주 수다를 떨어서 길드 단톡방의 메시지가 쌓이는 건 종종 있던 터라 딱히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내용을 살피다가 표정을 굳혔다.

“뭐야.”

어나더 길드가 어쩌고 어째? 빠른 속도로 쌓인 메시지를 훑어본 나는 급히 프로그램을 끄고 아크로드에 접속했다.

낭만이 가득한 모험, 아크 로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길드] 류페: 오오

[길드] 여여랑: 오셨다ㅠㅠㅠㅠㅠ

[길드] 야옹이라옹: 왤케 늦엇쏘요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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