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카일은 아델을 기다렸다. 독일행 비행도 처리해야 할 수많은 일도 전부 차후로 미뤄두었다. 다음날 어쩌면 한 달 뒤, 그리고 일 년 뒤. 정신이 나간 아델을 돌려놓으려면 몇 년이 걸려야 하는 걸까. 카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커다란 소파에 앉아 허공을 주시했다.
카일의 부하들은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외면할 수 없어 자세를 바꾸었다. 그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카일은 인상을 찡그렸다.
“아들 하나 키우기 힘들어.”
카일은 미간을 손가락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이미 피로로 관자놀이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오늘 밤 꿈에 리가 나왔다. 리를 감옥에 보내고 카일은 편히 잠이 든 적이 없었다. 제 옆에 뒤척이던 애완동물이 없어진 슬픔이 이런 것일까. 카일은 커다란 침대가 진절머리가 났다.
리가 자장가라도 되는 것인지, 최고급 매트리스라도 되는 것인지. 매일 밤 아버지와 리가 나와 꿈속을 괴롭혔다.
리는 늘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창문으로 뛰어들었다. 뼈가 조각난 리를 보면 꿈속에서도 머리가 얼얼했다. 현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울부짖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갇혀 멧돼지와 동고동락을 했던 기억은 괴로운 축에도 못 끼는 일이었나 보다. 카일은 리를 감옥에 보낸 후 그야말로 지옥을 맨발로 걷는 기분이었다. 이제 남들이 잠드는 시간에 침대에 눕는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겨우 그런 일상이 간절해질 정도로 기형적인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고작 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아침엔 뜨거운 커피로 머리를 식히고 밤에는 알코올을 들이부어야 했다. 이젠 꿈속에 리가 나오지 않으면 현실을 사는 것 같지도 않았다. 리는 죽어버린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그런 아델은 앙큼하게도 리의 감옥을 알아냈다. 제 출장 스케줄을 맞춰 도피를 시도한 것이었다. 아델은 리를 감옥에 보낸 이후로 한동안 앓는 듯하더니 잠잠해졌다. 그 나이대에 몽정일 뿐일 테지. 카일은 아델의 하찮은 짝사랑에 조소했지만 그것은 아델의 철저한 연기였음을 깨달았다.
아델은 지극히 선량한 아들처럼 굴곤 했다. 그 속에는 어떠한 꿍꿍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나름대로 리를 잊어보려 노력한 건 높이 쳐줄만 했다. 그러나 오늘 리를 찾아가 민간인을 살생한 건 도무지 귀엽게 봐줄 수 없는 문제였다. 리를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 카일이 처음 리를 만났을 때 저질렀던 일이었다.
결국 리는 모두를 망치고 끓는 피마저 갈라놓을 것이었다. 하나뿐인 제 후계자가 같잖은 사랑에 미쳐 낭만꾼이 되게 놔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카일은 아델을 걱정했다. 저와 잔인하게도 똑같이 생긴 열여덟 살의 청년을. 만약,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리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다짐은 아델을 향한 비틀린 분노로 자리 잡았다.
작은 노크 소리와 함께 아델이 들어왔다. 부하들은 아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카일은 그 광경을 느긋하게 바라보았다. 이것이 바로 아델에게 어울리는 그릇이었다. 한낱 남자를 쫓아다니며 세월을 허비하는 것은 해저든 가문과 어울리지 않았다.
“민간인은 죽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아델은 카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부하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너에게 살인의 재능이 있는 줄 몰랐어, 아들.”
카일은 여전히 무심하게 굴고 있었다. 마치 아델의 입에서 먼저 토로하길 원한다는 듯. 여유롭게 아델의 입술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리에게 손을 댔습니다. 그자가.”
굳이 카일을 속일 필요는 없었다. 이미 카일은 모든 것을 알고 있을 테니. 아델은 순순히 진실을 고백했다.
카일은 의자에서 일어섰다. ‘리’의 이름이 나오자 단정하던 카일의 낯빛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카일은 책상 옆에 놓인 골프채를 뽑아 들었다.
골프와 승마. 카일이 질색하는 스포츠였다. 그곳에 골프채가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칼도 총도 아닌 우아한 무기였을 뿐이다. 이곳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리.”
카일은 오랜만에 리를 불러보았다. 발끝부터 전율이 돋았다. 남몰래 숨겨두었던 마음이 들킨 것처럼 심장이 가빠졌다. 아마 혈기왕성한 18살 아델은 저보다 더욱 끔찍한 로맨스를 겪고 있을 것이었다.
“내가 너에게 총을 쏘지 않는 이유, 그게 뭐라고 했지?”
카일이 의문형으로 물을 때마다 아델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다정한 폭력이었다. 제게 답을 찾는 것 같은 숨 막힘이 아델을 옥죄여 왔다.
“아들이어서… 제가 아들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래. 아들아.”
그 순간 카일은 아델의 어깨를 내려쳤다. 골프채는 활처럼 휘었고 아델은 오른쪽 어깨를 잡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고통스러운 신음 없이 소리를 참았다. 늘 카일이 가르쳤던 기본적인 자세였다. 아델이 카일에게 손찌검을 당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카일은 시계가 거추장스럽다는 듯 버클을 풀었다. 손목에 아슬하게 걸쳐진 시계가 너덜거렸다. 부하들은 안절부절못하며 아델을 일으켰다. 카일은 골프채를 던지고 책상에 걸터앉았다.
“넌 내 아들이야. 널 가질 때 피임을 하지 않았어. 마피아들의 정관수술. 흔한 이야기잖아? 너도 알다시피 제니라는 여자… 보통이 아니지. 나와 그녀가 만난다면 최고의 살인마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카일이 짧게 조소했다. 아델은 오른쪽 어깨를 어루만지던 것을 멈추었다. 탈골이 되었는지 더 이상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카일의 눈에서 느껴지는 살기와 죽어가는 리의 모습,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환멸감이 아델의 마음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카일은 여전히 정적인 얼굴로 사태를 파악할 뿐이었다.
이제 저 뱀 같은 눈동자가 치가 떨렸다. 눈빛으로 온몸을 유린할 것처럼 번쩍거리고 있었다. 아델의 몸이 파르르 떨려왔다. 소년인 아델에게 카일은 너무도 무서운 존재였다. 아델은 카일의 광기가 두려웠다.
“그러니 부디.”
카일은 눈물로 젖어있는 아델의 뺨을 조심스럽게 쥐었다.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말아야지?”
카일은 저와 지독히도 닮은 아델을 바라보았다. 리를 만나고 온 그새 얼굴이 수척해져 있었다. 전날 밤 해맑게 농구를 하던 아이는 어느 곳에도 없었다. 다시 리라는 독약을 마시고 나태해진 것이었다.
나약해빠진 아델. 아델을 바라보면 꼭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거부할 수 없는 불쾌감과 동질감. 그리고 동족 혐오였다.
“넌 세포가 되기도 전 죽었어야 하는 생명이니까. 널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기 위해 죽었던 수많은 누이들을 떠올려”
카일은 한 글자 한 글자 낮은 목소리로 귀에 흘려주었다.
“사심을 품지 마. 리는 위험해.”
카일은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었다. 카일의 손동작 몇 번에 부하들은 부리나케 이곳을 빠져나갔고 아델은 입술을 덜덜 떨었다. 공포심에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려 퍼졌다. 카일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제니를 데리러 왔을 때도, 리를 감옥에 넣을 때도. 이보다는 괜찮았다. 카일은 무척이나 비정상적인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 카일은 인간의 이성을 잃고 어미를 잃은 불안정한 사자 같았다. 비련의 아버지. 아델은 제 눈동자에 비친 카일을 담아보았다. 그대로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
아델은 처음으로 카일을 불러보았다. 어린 소년처럼. 아델의 목소리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이미 카일에 대한 분노는 아델의 본모습마저 감추게 만들었다. 점차 닮아가는 것 같았다. 자신과 카일이. 카일을 보면 피가 끓는 기분이었다. 자신은 언제 카일과 같은 괴물 같은 표정을 지을 것인가. 아델은 치가 떨렸다.
“리를… 사랑합니다.”
카일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경고에도 굴하지 않던 아델은 굳은 목소리로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다. 아델의 처연한 눈빛 속에는 수많은 사연이 얽혀 있었다. 카일은 가슴이 울렁거렸다. 리를 향한 어린 날의 제 고백처럼. 카일은 골프채를 무참히 밟아대기 시작했다. 아델을 구타했던 순간보다 더 처참하게 구부러지고 있었다. 그 순간 밖에서 기웃거리던 부하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일은 분명 올곧게 아델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눈빛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데려가.”
카일의 떨리는 한마디에 부하들은 아델을 결박시켰다. 어디로 데려가라는 것인지. 제대로 된 목적지를 말하지 않았지만 부하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델은 어렴풋이 카일의 지하실을 떠올렸다.
* * *
아델이 눈을 떴을 때 입 주변의 쓰디쓴 맛이 느껴졌다. 아델이 부하들 중 한 명을 때려눕혔을 때 카일의 여유롭던 미소가 떠올랐다.
아델의 반항이 지겨웠던지 카일은 아델의 입에 약을 쏟아부었고 그 이후로는 아무런 기억도 나질 않았다. 끝도 없는 계단이 있었다.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고 작은 불빛에 다리를 의지해 걸어가야 했다. 창문 하나 없는 공간에는 한 점의 빛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아델은 두 손을 더듬거렸다. 벽을 짚고 섰다. 이곳은 앉을 곳도 누울 곳도 설 곳도 없었다. 아델은 그제서야 제 처지를 실감했다. 감금. 카일은 자신을 다시 감금한 것이다. 리를 가둔 것처럼, 감정을 다스릴 수 없어 자신을 가둔 것이다. 카일의 형벌, 화풀이는 늘 누군가를 가두는 것이었다.
아델은 어둠 속에서 덜덜 떨었다. 여섯 살 무렵 제니가 저를 가둔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늘 넓은 운동장과 경기장을 좋아하는 것도 전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트라우마를 이기기 위해 찾은 안식처였다. 그리고 카일은 가장 좁은 곳에서 아델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고 있었다.
숨통이 트이고 환한 햇살이 내리쬐는 곳을 본능적으로 찾아야 했다. 늦은 밤, 새벽이 올 때 옷장에 가둬 두었던 제니. 제 코에 닿던 답답한 옷장이 떠올랐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이 꽉 메여있는 밧줄 같았다. 아델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삐걱거리는 적막과 손톱 속으로 박혀오는 시멘트 가루들. 아델은 벽을 주먹으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손등의 뼈가 훤히 드러났다. 아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대로 쓰러졌다. 그 순간 적막이 깔린 어둠 속 익숙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발걸음 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다니는 유일한 사람. 카일이었다.
“제니는 밤만 되면 널 가두고 나갔지. 네가 뛰쳐나갈까 봐 걱정했고 자신의 밤놀이가 끝날까 봐 조마조마했지. 그래서 선택한 게 감금이었어. 어때, 내 말이 옳아?”
아델은 허공에 대고 끄덕거렸다. 카일은 아델의 손바닥을 지그시 밟기 시작했다. 어느새 어둠에 눈이 적응되었을 무렵, 카일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카일은 아델의 두 눈을 가렸다. 그리고 이내 여섯 개의 발자국이 카일의 소리와 합쳐졌다. 아델은 오로지 귀의 감각을 곤두세우며 소리를 쫓았다. 제 시야를 압박하는 붕대에 허덕거렸다. 카일은 아델의 머리통을 세게 조으기 시작했다. 아델은 그대로 자신의 눈알이 팽창되어 터질 것 같았다.
숨이 조여오고 피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기분이었다. 마치 제가 시체가 된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 어머니가 약에 취해 욕조에 쓰러진 것처럼 긴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엉켜 있는 제니를 마주쳤을 때와 같은 끔찍함이 재현되었다.
죽어가는 자신을 마주하는 기분. 아델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카일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아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카일의 손은 굳은살로 단단했다.
“도와주세요…….”
카일, 카일은 누구였을까. 아델의 이성이 순식간에 새까맣게 변색되었다. 제 눈을 감싼 흰색 붕대처럼. 지하실을 가득 감싼 새까만 어둠처럼.
“내가 누구지?”
아델은 더듬거리며 뇌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머릿속을 잡아 뜯으며 존재를 파악하기 위해 자해를 시작했다. 카일의 목선부터 훤칠한 키까지는 무리없이 생각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카일의 얼굴이 떠오르질 않았다. 욕조에 엉켜있던 제니의 머리카락이 떠올랐지만 눈동자, 콧날, 턱 선이 떠오르지 않았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비의 동물을 떠올리는 것처럼 ‘얼굴’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아델은 바닥을 불안한 듯 만지작거렸다. 카일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눈을 떠. 널 가리는 건 무엇도 없으니까.”
아델은 두 눈을 번쩍 떴다. 흰 붕대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제 앞에 낯선 남자가 서있을 뿐이었다. 분명 목소리는 카일이었다. 제게 강압적인 어조로 뱉어내는 것과 달리 호소력이 짙은 목소리는 카일뿐이었다. 아델은 절규했다. 카일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끔찍한 현실감. 카일의 얼굴뿐이 아니었다.
“너의 트라우마를 자극할 거야. 기껏 사랑에 목매지 않도록 아버지가 도와줄게. 스스로 이겨내. 리를 사랑하는 너를 죽여.”
카일은 아델의 뺨을 내려쳤다. 아델의 고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방금 전 낯선 남자는 사라지고 다시 카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델의 몸 위로 차가운 약물이 부어졌다. 아델은 숨을 참고 바닥에 쓰러졌다. 카일의 싸늘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살기가 배가 된 미소와 함께.
아델의 감금은 삼 개월이 넘도록 이어졌다. 태닝을 게을리하지 않던 아델의 피부는 창백하리 만큼 희뿌옇게 떠있었다. 어깨부터 발목까지 전부 카일에게 당한 매질로 붉은 자국이 선명했다. 어두운 방 안 낯선 남자의 방문에 아델은 속절없이 떨어야 했다.
정해진 시간의 식사와 카일의 질문들. 아델은 카일의 얼굴을 구별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생긴 몹쓸 병이었다. 카일은 물론이거니와 제 얼굴과 그의 부하들의 얼굴을 판별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한마디로 아델은 장애를 얻게 되었다.
카일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델에게 씁쓸함을 표했지만 그것조차 아델은 익숙하지 않았다. 세상에 모든 사람은 낯선 인간일 뿐이었으니까. 내일이면 다시 낯선 남자가 찾아올 것이었다. 카일을 기억하려 애쓰는 일도 전부 부질없었다. 삼 개월 동안 매일 다른 남자에게 취조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늘 그는 다른 얼굴로 같은 목소리로 아델의 숨을 조여왔다.
“리를 사랑해?”
“아직도 리가 그립나?”
아델은 텅 빈 눈동자로 고개를 저었다. 하루빨리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지옥 같은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이곳은 거대한 옷장이었다. 제니가 저를 가두던. 그곳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언젠가 자신도 제니처럼 욕조에 갇혀 건져지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오늘로 낯선 남자의 방문이 시작된 지 100일째였다. 아델은 카일인 것을 눈치채야 했다.
“안면인식장애라고 하더군. 매일 새로운 아버지를 만나는 기분은 어때?”
“나약한 자식 결국 이런 장애를 얻고 말았구나.”
“넌 사람을 기억하지 못할 거야. 앞으로는 사람을 체취로 구별하는 연습을 하는 게 좋겠어. 난 너의 아버지야.”
카일은 독한 향수에 비릿한 피 냄새가 흘렀다. 그는 늘 검정 셔츠에 검정 바지, 그리고 얇은 줄의 시계를 차고 다녔다. 담배는 언제나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그것이 카일과 부하들의 차이점이었다. 아델은 필사적으로 카일을 기억해야 했다.
바보처럼 카일의 부하에게 고개를 숙이는 일은 두 번 다시없을 것이다. 안면인식 장애를 얻고 난 후 가장 큰 문제는 리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머릿속의 리의 이미지는 이미 지워진 지 오래였다. 눈과 코 그리고 입이 연상되지 않았다. 글자로만 잔상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개와 사람. 머릿속에서 엉켜버린다면 한참을 찾아 헤매야 할 정도로 아델의 병은 심각했다.
“리를 사랑해?”
다시 한 번. 하루를 시작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델은 오늘도 낯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검정 셔츠에 독한 향수 냄새. 카일이 확실했다.
“아닙니다.”
아델은 이제 목소리를 떨지 않고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카일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시계를 풀었다.
“정말?”
“네. 그렇습니다.”
“믿어도 될까?”
아델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카일은 웃음을 눌러 담고 있었다. 아델은 어색하게 웃으며 카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몇 분 후 카일은 낯선 남자를 데려왔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남자였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리의 형상처럼. 낯선 남자는 음울한 인상이었다.
기억 속 리처럼 흰 피부에 보라색의 눈동자였다. 그것까지가 기억나는 전부였다. 카일이 헤집어 놓은 머릿속을 정돈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제 기억에 불신을 갖기 시작했다. 정말 리가 보라색 눈동자였을까. 보라색은 무엇일까. 사람의 눈동자는 원래 보라색인 걸까. 아델은 흩어지는 이성을 잡기 위해 마음을 정돈해야 했다.
피골이 상접한 남자는 카일 앞에 무릎을 꿇었다. 카일은 남자를 일으켜 진하게 입맞춤을 시작했다. 혀가 질척이는 외설적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낯선 남자의 몸은 문신으로 가득했다. 결정적으로 카일을 바라보는 눈빛은 짙은 보랏빛이었다.
아델의 심장이 쿵쿵 울려 퍼졌다. 리가 출소한 걸까. 리일까. 저 남자는 누구일까. 카일은 리로 추정되는 남자를 지독히도 탐닉하기 시작했다. 낯선 남자의 피부가 닳아질 만큼 그를 핥고 빨아대었다. 그런 카일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카일이 무언가에 발정하는 모습은 리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델은 점차 반가움과 동시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리일까.’
카일은 남자의 옷을 벗겨내었다. 역시나 갈비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앙상했다. 마치 카일에게 집어 삼켜지는 토끼처럼 낯선 남자의 눈이 붉게 충혈되고 있었다.
아델은 불편한 듯 눈을 돌렸다. 기다란 타액이 떨어지고 카일은 돌연 남자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한 줌도 되지 않는 마른 남자의 목을 쥐고 흔들었다. 남자는 신음 하나 없이 인형처럼 흔들거렸다.
“리, 인사해야지.”
아델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낯선 남자를 살폈다. 남자는 아이처럼 어눌하게 말을 이어갔다. 교도소 때처럼.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리는 얇은 미성의 건조한 발음이었지만 남자의 목소리는 낮게 울려 퍼졌다. 아델은 감히 확신할 수 없었다. 사람 얼굴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제가 의심을 품는 것은 몹시 우스운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남자는 아델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카일은 남자의 목덜미를 잡아채 칼을 대었다. 아델이 벌떡 일어나 카일의 손을 내쳤다.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리로 추정되는 남자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카일은 그런 아델을 보며 웃었다. 삼 개월 동안의 세뇌가 통하지 않은 듯, 리와 닮은 남자만 봐도 아이처럼 흥분하곤 했다.
카일은 아델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델은 그제서야 제정신이 드는 듯 무릎을 꿇고 칼을 넘겼다. 만약 리라면. 리가 지금 죽는 것이라면. 공포심이 아델의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지켜주겠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리가 제 눈앞에서 죽어버릴 것 같았다.
“리를 사랑해?”
카일은 낯선 남자의 목에 천천히 칼을 박아 넣었다. 남자는 참혹한 짐승처럼 몸을 튕겨내기 시작했다.
“아파, 아파요….”
남자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전례 없는 상황에 아델은 더욱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카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바닥에 머리가 찧도록 사정없이 박아 내었다. 낯선 남자가 리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병신이 되어버린 자신을 자책하는 행위였다. 아델은 뜨거운 피로 세수를 시작했다.
“리가 싫습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리를 사랑하지…….”
아델은 목이 메여 왔다. 목구멍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코가 찢어질 만큼 눈물을 참아 얼굴이 따가웠다. 피가 역류하는 것 같았다. 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아델은 그대로 모든 감정이 죽은 기분이었다.
“그래?”
카일은 마른 남자의 이마에 총구를 대었다. 하얀 이마가 붉게 달아오를 만큼 세게 박아 넣었다. 아델은 안절부절못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리를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확신할 수 없는 리를 방관해야 했다. 리를 죽이든 살리든 그것은 오로지 카일의 몫이었다.
“쏴.”
“네?”
“길게 말 안 해.”
카일은 아델에게 턱짓을 했다. 언제나 아델의 가슴팍엔 총이 들려 있었으니 당장 남자를 쏴 죽인다면 15초도 되지 않아서 죽을 것이었다. 아델은 떨리는 손끝을 진정시켰다. 카일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아델에게 건네었다.
아델은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제법 자신에게 카일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닮아가고 있었다. 카일과 자신은 무척이나 비슷해지고 있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서. 약에 찌든 머저리일 뿐이야. 망설이지 말고 쏴.”
카일은 비쩍 마른 남자의 팔뚝을 끌고 왔다. 남자는 앉아있는 상태에서도 휘청거리며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숨을 내뱉었다.
“쏴.”
카일의 목소리가 다가왔다. 아델은 가슴팍에서 총을 꺼내 남자를 향해 조준했다. 낯선 남자의 보라색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허공을 향해 싱긋 웃었다. 푸스스한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아델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약쟁이라는 남자는 싱긋 웃으며 아델을 바라보았다.
그의 마른 턱 선이 드러났고 아델은 가여운 짐승을 쏠 수 없었다. 바보처럼 총을 떨어뜨리고 만 것이었다.
카일은 남자의 뺨을 내려쳤다. 그리곤 아델에게 걸어가 거칠게 두 팔을 결박했다. 한 손으로 아델의 손을 쥐고 총을 조준했다. 그 순간 아델의 비명소리와 함께 남자의 머리가 터졌다. 흰 셔츠를 붉게 물들이는 핏자국과 함께 뜨거운 핏물이 아델의 얼굴에 튀었다. 작은 남자의 머리통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어두운 지하실 남자의 핏물만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카일은 남자의 몸통을 질질 끌고 왔다. 보라색 눈동자는 이미 피에 묻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아델은 절규했다. 제 손으로 죽여버린 남자를 떠올리며 경련하듯 사지를 떨었다. 그리고 이어진 카일의 웃음소리. 아델은 두 귀를 막고 구석으로 들어갔다. 사랑스러운 리가 울부짖는 것 같았다. 총에 맞을 때도, 맞아서도 아무런 말이 없던 가여운 리. 교도소에서 시체처럼 시들던 리가 죽어갔다. 아델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더 이상 현실을 버틸 힘이 없었다. 아델이 깨어났을 때 눈을 가리던 붕대도 몸을 압박하던 것들도 없었다. 무언가에 속박된 느낌은 지워지고 영혼이 타락한 느낌이었다.
[망자의 영혼만큼 가벼워지지.]
카일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델은 피식 웃었다. 입가에 바람 빠지는 소리가 여실히 들려왔다. 살인 후 장갑을 벗는 카일의 목소리처럼. 아델은 더 이상 소름 끼치지 않았다. 두려웠던 카일이, 끔찍했던 카일이. 이젠 자신 같았다. 더 이상 그가 두렵지 않았다. 카일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선 카일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아델은 카일이 되어버렸다. 리를 죽이고 카일이 되었다. 그날은 아델이 살인을 저지르고 새 생명을 얻은 날이었다.
* * *
카일이 아델에게 다가왔다. 나약한 환자처럼 보이는 링거를 뜯어버렸다. 아델은 침대 위에서 연달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연기가 매캐하다며 담배를 멀리하던 아델은 어느새 담배를 손가락처럼 여기고 있었다.
“리는 어떻게 되었는지 묻지 않는군.”
카일은 아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삼 개월 만에 밖으로 나온 아델은 어릴 적처럼 창백한 낯빛이었다. 아델은 비릿하게 웃었다. 카일의 손의 촉감과 향수 냄새. 얼굴을 보지 않아도 카일이었다.
“망자의 영혼만큼 마음이 가벼워져서요. 누이들을 실망시킬 순 없잖아요.”
아델은 씨익 웃었다. 카일은 변한 아델의 모습에 전율을 느꼈다. 이제서야 후계자 다운 면모를 띠는 것 같았다. 변한 아델이 탁월하게 마음에 들었던 카일은 그날 이후로 아델에게 일처리를 맡겼다.
무대를 점검하고 글을 쓰는 일은 망할 리와의 도피로 물거품이 되었으니 같은 일에 두 번 기대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애초에 아델은 글 쓰는 데 능력이 있는 아이가 아니었으니 구태여 킬러 본능을 잠재우는 건 능력 낭비였다.
차라리 카일은 아델에게 구역을 넘겨주는 쪽을 택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단 한 번도 카일은 제가 다스리는 구역을 넘겨준 일이 없었다. 제 손을 거쳐야만 안심하는 것이 그의 고집이었다. 제 일을 맡길 만큼 믿음직스러운 후계자가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아델은 카일의 명령을 받아들였다. 어떠한 변명도 궁금증도 나타내지 않고 묵묵히 총을 고를 뿐이었다. 지하실에서 멧돼지 머리로 맹연습했던 탓에 이제 총은 신체기관 중 하나 같았다.
카일은 아델에게 휴대폰과 차 그리고 집을 주었다. 이로써 완전히 아델을 독립시킬, 노예로써 예속시킬 일을 마친 상태였다.
아델은 그날 이후로 리를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유흥도 매춘도 관심이 없었다. 아델에게 사랑을 빼앗자 그는 시체처럼 굴고 있었다. 카일은 아델의 매춘을 부추겼다. 이곳에 수많은 여자와 남자들이 매춘을 목적으로 웃음을 팔았으니.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욕구를 분출할 방법을 가르칠 뿐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카일도 매춘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다분히 아델이 자신처럼 살지 않길 원하는 욕망뿐이었다.
[남자는 로맨스와 성욕을 구별 못해. 하등한 동물이니까.]
라고 말했던 카일은 로맨스가 간절했다. 성욕은 그저 분출구였고, 식욕과 수면욕으로 대체될 수 있는 얄팍한 감정이었다. 카일은 신선한 로맨스를, 거룩한 로맨스를 추구했다. 그러나 아델만은 멍청한 얼간이들처럼 욕구에 따르길 바랐다. 그것이 리를 잊는 지름길이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카일은 오랜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왔다. 제법 사무실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아델의 명패와 비서가 생긴 이후로 카일은 느긋하게 은퇴를 준비했다.
아델이 장애를 얻고 정확히 3년이 지난 날이었다.
리를 감옥에 보낸 후 사랑과 낭만을 노래하는 연극 사업을 접었다. 리가 집필한 모든 원고의 판권을 넘겼으며 더 이상 어린아이를 착취하지 않았다. 오로지 마약과 총기로 사업을 공고히 할 뿐이었다. 로맨스는 얼간이의 몫이니까. 평생 돈과 권력만을 쫓다가 죽는 인생을 바랐다. 남들이 선망하는 그 일상을 이룬 카일은 더 이상 무엇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 * *
아델은 카일의 연락을 받고 몸을 일으켰다. 아델의 옆엔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여자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넌 이름이 뭐라고 했지?”
창녀에게 이름을 묻는 사람은 아델뿐이었다. 금발의 여자는 아델을 힐끔 바라보았다. 이곳에 오는 남자 중 아델은 단연 어린 마피아였다. 매일 카일과 그의 부하들을 전담하던 베테랑이었지만 도무지 아델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곳에 마담으로 일한 지도 어느덧 20년이 흘렀지만 아델은 어느 손님보다도 난제였다. 늘 술이 거나하게 취해 이곳에 들렀다. 애초에 여자에 취할 생각이 없는 듯 그는 이미 만취된 상태로 술집을 활보했다.
여자들에게 일절 터치하지 않고 묵묵히 담배만 태웠다. 늘 허공을 바라보며 줄담배를 태우곤 정해진 시간에 기사를 불렀다. 여자들은 눈치를 살살 살피며 재떨이를 갈아줄 뿐이었다. 아델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계산을 하고 술집을 나섰다. 늘 같은 여자가 아델의 시중을 들었음에도 아델은 그녀를 늘 낯선 사람인 것처럼 대하곤 했다.
진실로 초면이라는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델은 늘 그녀들의 이름을 묻고 다음날이 되면 잊어버리곤 했다. 매춘부에게 정중한 인사를 하는 손님은 아델이 처음이었다. 아델은 마치 억지로 이곳에 방문하는 듯 불편해 보이기만 했다. 여자들은 오히려 그런 아델이 더욱 불편했다.
그런 아델이 처음으로 여자에게 말을 붙였다. 벌써 네 달째 보는 얼굴임에도 아델은 무심하기만 했다.
“너희들은 전부 같은 향수를 써서 기억하기 어려워.”
아델은 풀린 눈으로 여자의 머릿결을 만지작거렸다.
“꼭 그렇게 기억해야 하나요?”
여자는 아델의 잔에 술을 따랐다. 한 손가락으로 와인 잔을 빙빙 돌리며 아델과 눈을 맞췄다. 다시 아델의 싸늘한 눈빛이 이어졌다. 금발이 아델의 손가락에서 툭 끊어졌다. 여자는 처음 듣는 아델의 목소리에 흠칫 어깨를 떨었다. 낮고 굵직한 음색. 카일 다음으로 여자들을 동요하게 만드는 남자였다. 마담은 아차 싶었다. 네 달 동안 묵묵히 앉아 있다가 자리를 뜨는 아델. 여자에게는 일절 관심 없어 보이는 저 낯빛은 바로 카일의 젊은 시절과 똑 닮아 있었다.
여자는 그제서야 아델에게 비적비적 걸어가 팔뚝을 어루만졌다.
“해저든 씨의 아들이시군요.”
얼굴을 구별할 수 없는 아델은 마담을 빤히 바라보았다. 가슴팍을 겨우 가릴 듯한 드레스가 아슬아슬했다. 여자는 아델의 팔에 매달려 제 가슴을 대었다. 그녀의 나이는 얼추 카일과 비슷해 보이는 연배였다.
아마 카일의 오랜 동료쯤 되는 것 같았다. 포주와 창녀의 조합이라. 아델은 점차 도덕심이 뭉그러지는 기분이었다. 업소에 들락날락하는 주제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고 싶지 않아졌다. 세상 모든 것이 전부 귀찮았다.
[여자를 안을 줄도 알아야지.]
카일의 명령에 의무감처럼 방문하는 곳이었다. 아델은 여자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입안에 술을 머금고 여자와 입을 맞추었다. 여자는 진한 알코올 향이 쓴지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알았어?”
아델은 여자가 싱겁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카일과 제가 이렇게 닮았는데 알아보지 못하다니. 여자의 상술인지 애교인지 알 수 없었다. 일평생 리를 사랑했으니 여자의 마음을 짐작할 수 없었다.
여자는 아델의 허벅지 위에 올라탔다. 아델은 그럴 필요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여자는 고집스럽게 아델의 앞섶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아델은 인상을 찌푸리며 멀어졌다. 민망해진 여자는 아델의 주머니 속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여자는 제 의심을 확신하기 시작했다. 아델은 카일처럼 여자에 발정하지 못하는 불행한 호모였다.
“재미없으시잖아요.”
여자는 아델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델은 여자의 담배를 넘겨받아 볼이 움푹 패게 빨아들였다.
“재미없지.”
여자는 투명한 창밖으로 손짓을 했다. 이내 일분이 지나지 않아 남자들이 들어왔다. 아델의 또래로 보이는 젊은 소년들이었다. 소년들은 싱긋싱긋 웃으며 줄줄이 아델의 옆을 차고앉았다. 여자는 방관하는 듯 아델의 표정을 살피며 소년을 아델 곁으로 밀어 넣었다.
아델은 오묘한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카일의 동료라더니 눈치는 뱀처럼 빨랐다. 카일의 족속들은 눈꼬리에 살기를 가득 담고 있었다.
‘나쁘지 않지.’
그녀의 상황 판단이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보단 남자가 제 취향이었으니까.
아델은 소년들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녹색, 벽안, 검은색. 아델은 지루한 듯 술잔을 기울였다. 그 순간 구석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보랏빛 눈동자. 아델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상큼한 아델의 미소에 소년의 뺨이 달아올랐다. 아델은 진득하게 소년을 주시했다. 소년은 아델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푹 숙였다.
어리숙한 게 아무래도 신입인 것 같았다. 아니라면 태생이 웃음을 팔 운명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미숙한 취향을 좋아하는 변태들이 있을 테니까.
아델은 제 곁에 붙어있는 남자들을 망설임 없이 밀어냈다. 순식간에 짐짝 취급을 받은 사내들은 멋쩍은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구석에 있던 소년은 힐끔힐끔 아델을 바라보았다. 아델은 소년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다. 소년은 깜짝 놀라 눈동자만 굴릴 뿐이었다. 아델은 소년의 뒤통수를 부드럽게 감아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남자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결정적으로 제가 소년에게 발정하게 된 이유를 찾아야 했다.
‘보라색 눈동자.’
아델은 소년의 눈을 우악스럽게 벌리고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소년은 괴로운 듯 애처롭게 아델의 어깨를 두들겼다. 아델은 작은 욕설을 내뱉으며 소년을 밀어냈다. 아쉽게도 보라색이 아니었다. 차라리 잘 된 일일까. 아무런 죄책감 없이 남자를 안을 수 있을까.
아델은 포근한 웃음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제가 무자비하게 찢어놨던 눈꺼풀 위로 입을 맞추었다.
“미안해. 아팠어?”
소년의 붉은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부끄러운 듯 끄덕거리며 아델의 품에 안겨왔다.
마담은 아델의 손길을 받은 사내를 제외하곤 전부 쫓아냈다. 그리고 반대편에 앉아 아델에게 술을 따랐다.
“네가 따라.”
아델은 강압적으로 소년의 손목을 쥐었다. 마담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아델에게서 멀어졌다.
분명 이 소년의 얼굴은 내일이면 잊어버리겠지만. 적어도 여자들의 노래보단 지루하진 않았다. 소년이 익숙한 이유. 수줍은 뺨과 윤기나는 머리카락. 그리고 말주변이 없는 모습까지 리가 연상케 만들었다. 아델은 분노가 차올랐다.
“네가 보라색 눈깔이었다면 파버렸을 거야.”
마담은 아델의 거친 언어에 흠칫 놀랐다. 여자들과는 말도 섞지 않는 아델은 손길도 투박한 편이라 예상했건만. 아델은 너무도 거칠게 소년을 유린하고 있었다.
“아… 보라색 눈동자를 싫어하시나 봐요.”
붉은 눈동자의 소년은 불안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아델의 눈빛은 감히 다정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분노가 일었던 눈동자엔 그 무엇도 담겨있지 않았다. 두 눈은 메말랐고 음성은 건조했다.
전신에 싸늘하게 한기가 돌 정도였다. 아델은 버둥거리는 소년의 어깨를 세게 쥐었다. 테이블 위의 술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음식처럼 소년을 올렸다. 그리고 거침없이 소년의 옷을 벗겨내었다. 소년은 미세하게 발버둥을 쳤다. 그 모습에 아델은 피식 웃으며 소년을 테이블 밖으로 밀쳐냈다. 마담은 피우던 담배를 끄고 아델에게 다가갔다.
“유흥의 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델은 흥미롭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분명 소년을 가져다주면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델은 무언가를 집요하게 갈망하는 듯 겁탈 같은 관계를 시도할 뿐이었다. 소년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셔츠를 챙겨 입었다. 아델은 여전히 소년의 몸을 훑고 있었다.
“트랜스 젠더가 하는 바가 있습니다. 아델 씨에게 어울릴 것 같군요.”
“음… 별로요. 이리 와봐.”
아델은 제 관심을 돌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마담이 같잖아 보였다. 아델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떨고 있는 소년을 불렀다. 앳된 얼굴에 차분한 목소리, 상냥한 손길까지. 아델은 리를 느끼고 싶었다. 리와 전혀 닮지 않은 소년에게서.
소년은 눈물을 닦아내며 무릎걸음으로 걸어왔다. 아델은 소년의 목덜미를 세게 물었다. 역시나 짙은 향수 냄새가 흘러나왔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마담은 아델의 주머니 속에 명함을 꽂았다. 그날 밤 내내 소년의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다음날 아델은 제 주머니 속 명함을 꺼내어 보았다. 세 시간 동안 소년이 귀가 찢어지게 운 탓에 아직까지 귓가가 멍멍했다. 마지막엔 도망치듯 나간 소년을 다시 잡아 발목을 질질 끌고 와야 했다. 결국 소년은 기절했고 아델은 술집을 빠져나왔다.
아델은 비밀번호를 눌렀다.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소년을 안으면서 리를 떠올렸던 건 수치스러웠다.
[목소리 좀 낮춰봐. 좀 더 미성으로 질러봐.]
[스웨덴어 할 줄 알아?]
고개를 젓는 소년을 다그쳤다.
[넌 할 줄 아는 게 뭐야?]
아델은 소년에게서 리의 모습을 찾기 위해 발버둥 쳤다. 제가 죽인 리였는데. 손끝에서 죽어간 리를 발정하는 것은 굴욕이었다.
아델은 카일의 구두를 발견했다. 늘 실내에 들어오면 카일은 실내화를 바꾸어 신었으니까. 언제나 카일은 흔적을 남기며 탐색하는 버릇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더럽게 느껴지더라고.]
변명이었다. 늘 침대 위에 신발을 신고 올라오는 카일을 책망한 건 리였다. 예쁜 눈꼬리로 카일에게 투정을 부렸을 것이다. 핏물이 묻으니 조심해 달라고. 카일의 습관은 전부 리가 만든 것이다. 아직까지 카일은 리를 잊지 못했다. 아델은 쓰라린 마음이 들었다. 왠지 죽어버린 리도 카일을 떠올릴 것 같았다.
“아버지.”
아델은 고개를 숙였다. 술 냄새를 묻히고 와 다행인 걸까. 소년이 한바탕 싸질러 놓은 정액 냄새가 셔츠에 은은하게 묻어 나왔다. 카일은 비릿한 냄새에 인상을 찡그렸다.
“네 취향 알만하군.”
아델은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사실이었으니까. 아델은 손에 쥔 명함을 고이 접었다. 카일은 서류 한 장을 던졌다. 그곳엔 이번 달 아델의 임무가 적혀있었다. 매춘과 여자를 안는 일이 아닌 마피아다운 일이었다.
“간 큰 새끼들이지.”
최근 카일이 론칭한 마약을 헐값에 팔아넘기고 있었다. 카일의 마약에 싸구려 발정제를 섞어 파는 전형적인 족속들이었다. 아델은 카일이 넘긴 파일을 받아 들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방금 전 마담이 준 트랜스젠더 바의 주소와 일치했다. 아마 단속망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겠지만. 이런 우연은 삶의 활력소였다. 아델은 찝찝함을 덜어내기 위해 그렇게 생각해야 했다.
“일주일.”
카일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아델은 담백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젠 아델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었다. 어쩌면 리를 위해 살아왔을까. 리를 잃고 나니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았다. 그저 껍데기만 가진 인간일 뿐이었다.
아델은 명함을 집어넣었다. 주머니 속에서 명함이 구겨져 마담이 준 번호가 뒤엉켰다. 그래도 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목적지는 한 곳이었으니.
* * *
카일은 아델을 돌려보낸 후 와인 한 병을 열었다. 오늘은 아버지의 기일이었고 그를 추모하기엔 와인 한 병이 적당했다. 카일은 벽난로 가까이 다가갔다.
리의 눈동자가 벽난로에 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제 아비를 벽난로에 태워 죽이고 수많은 사람들을 태워 죽였다. 리는 알고 있었다.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만,
[뜨겁게 죽으면 더 아프지 않을까… 그냥 총으로 쏘는 게.]
라며 머뭇거렸다. 카일은 아련한 눈빛으로 미소를 지었다. 리는 위태롭고 사랑스럽고 가녀린 남자였다. 그런 리를 죽일 수는 없었다. 리를 잃은 3년은 아델을 지키기 위해 참으로 노력했던 시절이었다. 아름다운 리를 닮은 남자를 구하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이었는지. 아델이 죽인 건 리를 닮은 껍데기였을 뿐이다.
그 고생이 마침내 결실을 얻고 말았다. 가짜 리가 죽고 아델은 살인에 맛을 들였고 감정을 죽인 냉혈한이 되었다. 아델이 안면인식장애를 얻은 것은 유감이었다. 트라우마를 자극해야 했지만 아들의 장애까지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리와 닮은 남자에게도 허덕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아버지의 가슴을 찢어지게 만드는 것을.
[조지 해저든.]
카일의 아버지, 즉 아델의 조부모였다. 아마, 아델은 평생 본 적이 없겠지만. 카일은 후회했다. 진즉 제 아비를 죽일 것을. 해저든 가문의 흐르는 피 중 단연 독보적인 유전은 제 아비를 죽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리를 사랑한다는 것. 카일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델이 제게 향하는 기하학적인 분노를. 먼 훗날 저도 벽난로에 갇혀 죽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손에 죽은 아버지처럼. 자신 또한 아델의 손에 죽게 될 것 같았다.
사랑에 미친 아델에게 필요한 것은 각성이 아닌 억제였다. 리를 억제하는 마음을 지켜주어야 했다. 조지 해저든도 같은 마음일지 모른다. 그러나 카일은 사랑을 선택했다. 그렇게 선택한 리는 카일의 인생을 망쳐 놓았다. 매일 밤 리를 제 가슴팍에 끼고 사는 일은 불안했다. 일을 하는 내내 불길했고 조지가 리를 만질까 봐 질투가 났다. 하루하루 지옥이었다. 아름다운 리를 소유하는 일은 그만큼의 희생이 동반되는 법이었다.
[카일의 아버지 있잖아요. 친절하신 것 같아요. 가끔씩 과자도 주시고요… 돈도 주시는데… 저는 쓸 일이 없으니까요.]
어느 날 리는 말했다. 카일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가슴팍에 달그락거리는 총소리를 망각하고 리를 따라 웃었다. 조지는 말했다.
[그 아이는 위험해.]
제가 아델에게 했던 말처럼 조지는 제가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었다. 다만 조지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리는 생각보다 영악하지 않았다.
그런 리를 교태롭고 남자를 홀리는 신화 속 요물로 만들어야 마음이 편했다. 순진한 리에게 빠져 인생을 허비했다는 것은 미치도록 한심한 일이었다. 차라리 리를 요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변명이었다.
카일은 리에게 빠진 스스로가 끔찍했다. 순박하고 천진한 얼굴에 홀렸다는 것은 전적으로 제 잘못임을 표하는 것이기에.
카일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리는 위험했다. 그래서 더 리가 두려웠다. 목적이 불분명해서. 태어날 때부터 본디 해저든을 타락시키기 위해 태어난 악마였다. 조지의 말처럼 카일 스스로 세뇌해야 했다.
조지는 참치 못하고 리에게 이기적인 욕망을 분출했다.
리가 순진한 얼굴로 노인을 홀린다는 헛소리를 하곤 했다. 리는 결코 그럴 리가 없었다. 만약 리가 그랬더라면 조지는 진즉에 마피아를 포기하고 지루한 농부가 되었을 테니까.
조지가 죽은 그날. 유난히 달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깔끔한 살인을 축복이라도 해주는 듯, 날씨마저 카일을 도운 날이었다.
리는 하루 종일 심심했는지 창문에 매달려 고개가 꺾일 듯이 달빛을 바라보았다. 리의 날카로운 턱 선과 뾰족한 콧날이 달빛에 드리웠다. 아마 달빛은 회색빛에 가까운 촉촉한 질감이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달의 흉측한 표면을 리가 알게 된다면. 그날 밤을 후회할까.
리는 아름다운 것만 보고 싶어 했다. 그가 아름다운 사람이었으니까. 사람은 제 마음속을 세상에 투영한다. 자신은 더럽고 불결한 사업가였고 리는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
[창문에 시체라도 달렸나?]
리는 화들짝 놀라 카일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날은 조지가 다녀간 날이었다. 조지는 늘 불편한 주제로 리를 공격하곤 했다. 언제까지 카일의 곁에 붙어있을 것인지, 너의 존재가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아는 것이냐며 조롱했을 것이다. 무엇도 팔아본 적 없는 리를 무릎에 앉히고 여린 살을 만지작거렸을 것이다. 조지의 손버릇은 고약했으니까.
[아니요.]
[나에게 할 말이 있어?]
리는 쉽사리 침대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윤기나는 서랍장을 고집스럽게 닦아낼 뿐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 믿어주셔야 돼요.]
[그래. 약속할게.]
[조지가 친절하다고 했잖아요….]
리는 망설였다. 그리고 카일은 확신했다. 조지가 리를 건드렸으리라고. 오히려 조지가 일을 벌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죽여버리고 싶던 이유가 명확해진 것이랄까. 그럼에도 리의 몸을 샅샅이 살피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조지의 손이 닿는다고 한들 오염이 되는 것도 아닌데. 자신과 아버지는 비슷한 부류일 텐데.
[사실…그 말을 취소하고 싶었어요.]
리는 우물쭈물 거렸다. 카일의 마음이 달빛으로 채워지는 것 같았다. 늘 ‘사랑해요. 좋아해요.’를 외치던 리가 내뱉은 가장 긴 단어였다. 물론 그것은 사랑한다는 말을 달리한 표현이겠지만. 리는 자신을 믿고 있었다. 지켜달라는 애교 섞인 투정이 아닌 생존권의 투쟁이었다. 조지에게서 멀어지게 해주세요. 조지를 죽여주세요. 카일은 그렇게 들렸다.
[앞으로 아버지에게 인사할 필요 없어.]
그날 가볍게 웃으며 리를 재웠다.
[따뜻해요.]
그날 밤 벽난로 속에서 조지가 타오르고 있었다. 후회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 * *
아델은 셔츠를 골랐다. 전부 흰 셔츠였지만 오늘따라 옷장에서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렇게 고민해본 것은 리의 집에 갈 때를 제외하곤 어느덧 3년 만이었다. 아델은 적당히 심플한 셔츠를 골라 입었다. 그리고 구두에 광을 내고 얇은 시계를 착용했다.
오늘은 기사 대신 스스로 운전을 했다. 카일의 명령을 수행하러 가는 주제에 데이트를 하는 것처럼 유난이었다. 아델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오늘따라 제 향수가 독하게 느껴졌다.
카일이 말한 그곳은 작은 펍이었다. 무릇 이런 곳 지하실에서 유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곤 했다. 경찰들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선 외관이 중요한 법이었다. 그래서 마피아들도 험악한 사람을 선호하지 않는다. 카일은 꽤 영특한 사람이었다.
아델은 핑크빛 네온사인으로 범벅이 되어있는 펍으로 걸어갔다. 카일의 말마따나 간이 큰 곳이었다. 도로 한복판에 이렇게 개방적으로 장사를 하다니. 아델은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두운 계단 밑으로 내려가야 했고 아델의 오랜 정신병이 재발했다. 아델은 황급히 주머니 속을 뒤졌다. 손등에 흰 가루를 부어놓고 음미했다. 그제서야 벽과 계단이 트여 보였다. 아델은 한숨을 내쉬고 문을 열었다.
오픈 전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델은 휘청거리며 그곳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쓸고 있던 리는 화들짝 놀라 아델을 바라보았다. 3년 전 출소 후 감방 동료인 이안과 차린 펍이었다. 정확히는 제가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입장이었지만. 포주는 죽어도 싫다는 리의 말에 이안은 멋쩍은 웃음으로 무마했다. 그 이후로 리는 청소와 설거지를 맡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날 아델이 면회 온 이후로 두목이 죽었다. 그리고 리를 향한 갱들 간의 다툼이 일어났고 사상자가 무려 16명이 넘는 교도소 희대의 사건이 되어버렸다.
결국 약에 절은 리는 교도소에 물의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독방에 가게 되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출소하게 되었다. 아마 다리가 괴사되고 몸이 망가진 이유였을 것이다.
전염병이라고 했을까. 리는 아직까지 제가 출소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마 성병 중 하나였으리라고 그렇게 추측했다. 감방에서 나온 이후로 약을 끊고 클리닉에 다녔다. 혼자서 아등바등 살아보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이런 육신으로 십 년도 살지 못할 테니, 이제부터라도 몸에 나쁜 짓을 하고 싶진 않았다. 곱게 죽고 싶었다. 그것이 리가 이곳에 있게 된 이유였다. 그리고 아델을 3년 만에 봤을 때 그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있었다. 카일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얼굴이었다. 청초했던 아델은 주변을 휘어잡을 만큼 사나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영업 전이야?”
아델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리는 아델을 바라보며 끄덕거렸다. 카일의 성당에 살 때처럼 심장이 뛰어왔다. 연신 아델의 뒤를 살피며 불안해했다. 그 불안함은 비참하도록 설레는 불안감이었다. 혹시 카일이 있을까. 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델은 그런 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흰 얼굴에 비쩍 마른 몸, 제 어미가 죽어갈 때처럼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다. 아마, 창부겠지. 마약도 거래하는 곳에서 매춘을 못할까. 아델은 웃었다.
리는 아델이 얼굴만큼이나 성격도 달라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긴 3년이나 흘렀는데. 소년이었던 자신이 이런 어른이 될 줄 몰랐듯이. 아델도 카일처럼 날카로운 어른으로 성장했다. 아델은 창부를 대하듯 천박하다는 눈빛으로 리를 바라보았다. 리는 그 눈빛에 조금 씁쓸함을 느껴야 했다.
[올바른 어른으로 자라라고 했을 텐데요.]
아델은 인상을 찌푸렸다. 왜, 이 순간 리의 목소리가 떠오르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델은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담뱃재를 털었다. 리가 청소 중인 것을 알면서도 배려하지 않았다. 어젯밤 눈물을 흘릴 만큼 사정을 했던 소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남자인 것만 빼면. 제 앞에 있는 남자는 몹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안면인식 장애인 자신이 언제 그를 봤는지 고민해야 할 정도로. 저 정도의 외모라면 잊을 리가 없었다. 그래봤자 창부일 테지만. 창부 아니면 마약 딜러. 그를 죽여야 하는 현실이 아쉬웠다. 그리고 아델은 약해진 제 마음이 역겨웠다. 카일이 경계하라고 했던 옛날의 소년 같은 졸렬함이 나오는 것 같았다.
남자는 하얗고 상처투성이인 손가락으로 담배꽁초를 주웠다. 아델에게 어떠한 언질도 없이 묵묵히 뜨거운 재를 줍기만 했다. 아델은 남자의 손을 지그시 밟았다. 어차피 카일의 마약을 손댄 간 큰 새끼일 뿐인데. 약해진 제 마음을 끊어 내기 위해선 눈앞의 이물질을 파괴시켜야 했다. 짜증나게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메슥거릴 만큼 제 취향이었고 내일이면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제 장애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아….”
리의 얇은 미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델은 인상을 찡그리며 리의 손목을 부술 듯이 짓이겼다. 하필 목소리도 죽어버린 리와 같다는 것은 더욱 아델의 분노를 치솟게 만들었다.
“영업 중이냐고 물었잖아.”
리는 분명 끄덕거렸지만 아델은 집요할 만큼 못되게 굴었다. 리는 변해버린 아델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리의 손등이 아델의 발자국 모양대로 부어올랐고 상처가 가득한 곳엔 진물이 터져 피가 흘렀다. 리는 조심스럽게 아델을 올려다보았다.
“한 시간만 기다리세요.”
리는 표지판을 향해 손짓을 했다. 아델은 천천히 제 발을 풀고 계단에 털썩 앉았다. 그대로 지하실을 뒤지고 목을 따면 되는데 왠지 남자는 실질적 주주가 아닐 것 같았다. 그 순간 거구의 남자가 달려왔다. 여자보다 더욱 얇은 목소리로 리의 등짝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어머, 오빠 이렇게 열심히 안 해도 된다니까!”
아델은 덩치 큰 남자에게서 나오는 가냘픈 목소리에 불쾌감이 들어 미간을 찡그렸다. 아프지도 않는지 그는 묵묵히 청소에 몰두할 뿐이었다. 청소 못해 죽은 귀신이 붙었을까.
“근데 오빠는 뭐야?”
이안은 아델에게 달려왔다. 아델은 이안을 빤히 바라보며 담배를 물었다.
“이런 손님이 오셨으면, 응? 빨리 들어오시라고 해야 할 거 아냐!”
“아직 영업전이라서… 죄송합니다. 들어오세요.”
리는 아델에게 가볍게 손짓을 했다. 이안은 아델에게 팔짱을 끼고 제 체중을 실었다. 그때까지 리는 묵묵히 계단을 청소할 뿐이었다. 방금 전 담뱃불에 데인 손이 아플만 한데도. 내색하지 않았다.
이안은 눈이 풀려있는 아델을 감지했다. 그리곤 더욱 교태스러운 목소리로 엉덩이를 흔들었다. 아델은 이안의 몸을 밀쳐내고 벽으로 몰았다. 이안은 수려한 외모의 아델이 제게 다가오자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유흥의 마지막은 트젠이라고 하던데.”
아델은 이안의 머릿결을 만지작거리며 부드럽게 웃었다. 카일의 명령대로 한 시간 아니 십 분이면 처리할 수 있었지만 남자를 본 이후에 그렇게 하기 싫어졌다. 담백하고 무심한 남자의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싶었다. 흰 셔츠에 연한 색의 청바지. 아델은 남자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아델은 이안의 턱을 부드럽게 쓸었다.
“어떻게 알고 왔어?”
이안은 흠칫 놀랐다. 분명 리에게는 숨기던 사실이었다. 리는 매춘을 끔찍이도 싫어했으니까. 카일의 구역에서 마약을 밀거래하는 것도, 매춘을 하는 것도 전부 이안의 독단적인 일이었다. 이안은 아델을 훑어보았다. 그는 낯빛이 창백했고 지방 한줌 없이 탄탄한 근육질이었다. 아마 며칠을 굶고 운동에만 매진하는 사람처럼. 건강한 몸과 달리 얼굴색은 심히 말이 아니었다. 아델은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었다. 이안은 절로 두 손을 들고 눈동자를 굴렸다.
“안내해.”
아델은 이안의 뒤통수에 총구를 고정했다.
그 말에 이안은 삐질삐질 땀을 쏟아내며 구석진 방으로 향했다. 리는 평생 알지 못하는 곳이었다. 일한 지 3년이 넘었음에도 리는 관심조차 없었다. 늘 주어진 생을 꾸역꾸역 사는 사람처럼 의지가 없어진지 오래였다.
이안은 뻑뻑하게 닫힌 방문을 활짝 열었다. 아델은 낡은 소파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안은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아델은 남자를 떠올렸다. 역시나 망할 장애는 1초 후에 얼굴이 기억나질 않았다. 건조한 입술과 상처투성이인 몸이 전부였다.
아, 젠장할 보라색의 눈. 아델은 풀린 눈으로 소파에 쓰러졌다. 곧이어 이안은 열 명의 사내를 데려왔고 아델은 피로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1번을 보다 2번을 보면 1번이 기억나질 않았다. 전부 의미 없는 짓이었다. 건장한 체구에 치마를 입고 있는 사내 다섯과 여자 두 명 그리고 남자 세 명이 있었다. 이곳에서도 진부함을 느껴야 했다. 유흥의 끝이 트젠이라더니. 양말을 욱여넣은 것인지 가슴과 엉덩이가 불룩한 사내를 안고 싶지는 않았다. 치마 위로 거대한 성기가 비치는 것도 거북했다. 아델은 일 번부터 오 번까지 짐짝을 치워버리듯 손짓을 했다.
“유흥의 끝이 궁금하지 않으신가 봐요?”
이안은 아델을 향해 조롱조로 이야기했다. 아델은 피로한 듯 연신 뻑뻑한 관자놀이를 만지작거렸다.
“7번부터 10번까지. 남자 빼고 다 나가.”
여자들은 싱겁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나섰다. 이안은 아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델은 누구일까. 영업 전부터 이곳을 불에 태울 기세로 달려온 약쟁이가 궁금했다. 그리고 이안은 불길한 공기를 느껴야 했다.
아델은 남자들의 뺨을 손으로 두들겼다. 남자인지라 상처가 크게 나진 않았지만 아델은 리를 만난 줄곧 붉어진 뺨을 선호했다. 소년 시절에는 그 습성을 숨겼고 이젠 가감 없이 드러냈다.
남자 셋은 아델에게 달려들었다. 아델은 힘을 쭉 빼고 소파 위에 편히 누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욕구를 분출할 생각이었다.
남자 셋은 부지런히 아델의 옷을 벗겨내었다. 아델은 셔츠 속 약들을 찾아 입에 넣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마치 죽은 것처럼 숨을 참아 보았다. 얼굴 끝으로 피가 몰려왔다. 아델은 참았던 숨을 내뱉었고 7번의 얼굴 위에 정액이 흩뿌려졌다. 그 순간 작은 소음과 함께 리가 들어왔다. 남자 셋은 아랑곳 않고 아델의 성기를 빨아내기 시작했다. 네 사람이 엉켜 질척한 소리를 내며 적막을 채워갔다.
아델의 난교를 본 리는 그대로 대걸레를 떨어뜨렸다. 아델은 힐끔 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보라색 눈동자 붉은 입술, 흰 셔츠까지 방금 전 술집 창부임을 깨달았다.
“너… 매춘 안 한다고 나한테……!”
리는 이안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를 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델은 순식간에 미소를 띠고 리에게 손짓했다. 이미 남자 세 명은 발정 난 것처럼 아델의 몸을 빨아들였고 리는 아델에게 비적비적 걸어갔다.
“이따가 이야기해.”
리는 이안을 향해 뾰족한 눈초리로 째려보고 아델에게 다가갔다. 아델의 발밑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줍기 시작했다. 아델은 제 밑에 놓여있는 머리통을 손으로 감싸보았다. 작은 머리통이 아델의 손바닥 사이로 차박 감겨왔다.
“안녕, 또 보네?”
남자는 아델의 위로 올라타 성기를 구멍 사이로 끼우고 있었다. 살덩이의 마찰음과 섞인 아델의 거친 숨소리에 리는 인상을 찡그렸다. 분명 어린 소년이었는데. 이 아이만큼은 그렇게 자라지 않길 원했는데. 조금 허무한 감정이 들었다.
“넌 뭘 팔려고 왔어?”
아델의 목소리가 신음으로 섞여 끊어졌다. 리는 황급히 일어나 담배꽁초를 주머니에 넣었다. 아델은 리의 팔목을 끌어당겨 제 품에 가두었다. 아델의 접합부를 만지작거리던 남자 셋은 순식간에 소파로 밀려나 바닥으로 낙하했다. 아델은 이제 가보라는 듯 남자 셋에게 손짓했다. 볼일 없으니 나가라는 듯 휘적거렸고 이안은 친히 문을 열어주었다. 이안은 걱정스럽게 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리는 올곧은 눈빛으로 이안에게 나가라는 듯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이안은 리가 교도소에서 어떠한 일을 당한지 알기에 안심이 되었고 그런 자신이 역겨웠다.
“청소를 맡고 있습니다.”
리는 상종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아델에게 잡힌 팔목이 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리는 미간을 찡그리며 아델에게서 벗어나려 팔을 움직였다. 아델은 리의 팔뚝을 잡고 제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넌 여자야 남자야?”
팔목까지 결박당한 리는 아델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입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올바른 어른으로 자라라고 했을 텐데요.”
아델은 다시 찢어질 듯한 이명이 들려왔다. 두통으로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리의 얇은 목소리와 함께 웃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기분이 순식간에 더러워졌다. 아델은 리의 머리채를 잡고 제 아랫도리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벌어진 벨트 사이로 리는 숨을 참으며 도리질을 쳤다.
“하….”
리는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지만 아델의 성기는 흉흉한 크기로 커져가기 시작했다. 아델은 리의 얼굴을 살폈다. 밑에서 봐도 위에서 봐도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이런 선량한 얼굴로 남의 구역을 손대다니. 아델이 리의 얼굴을 보며 감상에 젖은 순간 리는 아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어깨를 떨뿐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가 고생해서 만든 마약에 왜 손을 대. 응? 난 예뻐서 봐주는 거 없어.”
리는 그제서야 아델이 찾아온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이안은 최근 범상치 않은 지하실에서 새벽마다 의심스러운 짓을 했고 리는 애써 모른 척했지만 결국 일은 터져버렸다. 카일의 구역을 건들다니. 아마 카일이 생산한 마약이었을 테고 카일이 제일 싫어하는 짓 중 하나는 근본 없는 곳에서 제 마약을 파는 일이었다. 오로지 카일은 신성한 연극을 보며 즐기는 마약을 선호했다. 마약은 카일의 브랜드와도 같은 것이었다. 호화스러운 연극장에 팝콘 같은 존재였으니까. 이안은 제대로 사고를 친 듯했다.
리는 커다랗게 한숨을 내뱉었다. 아델은 풀이 죽은 리의 얼굴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라는 말이 우스울 만큼 자신은 장애를 가졌기에 그의 시선을 끌만한 말들을 할 수 없었다.
“넌 모르는 일이다, 캐셔일 뿐이다. 뭐 그런 말로 넘어갈 건 아니지?”
아델은 이죽거렸다. 리는 제 무릎을 털어내고 일어섰다. 아델은 다시 리의 손목을 붙잡았다. 마치 아쉽다는 듯이.
“이름이 뭐야?”
아델의 목소리는 처음 리를 만났을 때처럼 청량하게 울려 퍼졌다. 아델의 포악스러운 손길과 달리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리는 다시 아델을 바라보았다. 풀린 눈과 비릿한 정액 냄새를 보면 제가 알던 아델은 아니었다. 아델은 변했다.
“2048번. 그렇게 부릅니다.”
리는 죽을 때까지 아델에게 제 이름을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델이 가장 경계해야 할 사람이 자신이었으니까. 자신을 구하기 위해 두목을 죽이기까지 했으니까. 아델이 평생 자신을 모르길 바랐다. 만약, 아델이 알게 된다면 다시 무모한 짓을 벌일 테니. 사랑에 목숨을 걸었던 건 자신이면 충분했다. 누군가에게 카일이 되는 일. 죽어도 받지 못할 사랑을 기대하게 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빵 갔다 왔어? 장난 아니겠다, 너.”
아델은 리의 엉덩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리의 잇새로 옅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리는 아델의 손을 매몰차게 쳐냈다. 아델은 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분명 고개를 돌리면 잊을 테지만.
“벌려봐.”
아델은 현금을 테이블 위로 내던졌다. 문틈으로 지켜보던 이안은 돈벼락이라도 맞은 듯 쿵쾅거리며 뛰어왔다. 아델이 넘긴 현금 뭉텅이를 가슴팍에 가두고 씨익 웃었다. 리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이안을 바라보았다. 이안은 처자식이 있었고 빚이 산더미였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리는 체념했다.
“렌트 보이한테 500달러면 후한 거 알지? 아… 넌 보이가 아니라서 더 써야 하나?”
아델은 리를 소파에 우악스럽게 앉혔다. 분명 민간인은 건들면 안 되었지만, 카일은 매춘부가 아닌 상대를 건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델은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하고 싶었다. 아델은 리의 다리를 활짝 벌렸다. 허벅지 사이로 아델의 커다란 손이 들어왔다. 리는 소파를 간신히 집고 몸을 지탱했다. 아델은 사색이 된 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리를 희롱하던 것을 멈추고 놓아주었다. 리는 얼마나 떨었는지 일어서지도 못하고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랑 닮았어. 너.”
아델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 위로 가루를 부었다. 이내 아델의 높은 콧속으로 가루가 빨려 들어갔고 아델은 잔기침을 하며 남김없이 삼켰다. 그 사이 리는 올라간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흔하게 생긴 얼굴이니까요.”
아델은 리의 턱을 들었다. 그리곤 요리조리 얼굴을 살폈다. 보라색 눈동자는 짙은 빛깔을 띠었다.
“짜증 나.”
아델은 리의 턱을 부술 것처럼 쥐었다. 그리고 이내 허공을 응시하다 다시 리를 바라보았다. 일초만에 낯선 남자가 되어있는 그. 아델은 제 장애를 저주했다. 아델은 거칠게 리의 몸통을 끌어당겼다. 흰 셔츠 사이로 비치는 문신들과 생채기들. 이미 찢어져 울퉁불퉁하게 올라와 있는 모난 살들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리는 아델의 슬픈 눈을 마주 봤다. 아델은 필사적으로 리를 기억하고 싶었다. 리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향수도 바디로션도 즐기는 편이 아닌 것 같았다. 남자에게선 아무런 냄새도 나질 않았다. 아델은 절망적이었다. 내일 또 기억하고 싶은데. 그를 기억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델은 가슴팍 속 작은 칼을 꺼내 리의 쇄골 아래를 살짝 그었다. 리는 따가움에 이를 앙 다물었다.
“내가 기억할 수 있게 해줘.”
아델은 셔츠 사이로 흐르는 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제가 낸 상처를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커다란 웅덩이 같은 쇄골 아래에 그어진 칼자국. 아마, 내일이 되어도 잊지 않을 것 같았다. 아델은 리의 쇄골에 약을 부었다. 그리곤 리의 체향과 함께 들이마셨다.
그리고 아델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다만 제정신을 차렸을 때 남자의 흐느끼는 숨소리가 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델은 깜빡이는 전등을 바라보았다. 새빨간 전등이 눈동자를 찌를 듯이 발광하고 있었다. 아델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 남자는 제 밑에 깔려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아델은 고개를 저었다. 짐승에 물린 것처럼 온몸이 붉은 자국으로 가득했다. 아델은 제 밑에서 울음을 참고 있는 리를 일으켰다. 리의 허벅지가 애처롭게 떨려왔다. 아델은 그제서야 리의 허벅지 안쪽을 찌르고 있는 성기를 발견했다.
약 덕분일까. 내리 세 시간을 흉흉하게 발기가 되어있었다. 리는 전라의 상태였다. 리의 옷을 태운 건지 소파 아래에는 매캐한 연기가 흘러나왔다.
아델은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약에 취해 리를 강간했음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제 밑에서 울며 어깨를 밀치는 리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장면이었다. 아델은 리를 일으켰다. 다행히 약에 취해 그를 죽이진 않은 것 같았다.
리의 허벅지 아래로 흘러내리는 정액을 닦아내었다. 리는 내칠 기운도 없는지 소파 아래의 담요를 끌어당겼다. 아델은 리를 거칠게 일으켰다. 눈을 감고 리의 얼굴을 떠올렸다. 창백한 낯빛에 보라색 눈. 쇄골 아래에 제가 새긴 칼자국까지. 아델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리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델은 리의 어깨를 거칠게 들어 올렸다. 분명 얼굴을 마주보는 체위를 원했을 텐데, 처음 본 남자의 등짝만 바라보며 사정을 했다니. 아델은 약에 취한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린 남자의 뺨에는 눈물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이미 제 손목시계가 부서져 유리 파편이 날리고 있었다. 남자의 팔뚝과 허리선 그리고 목덜미에 아델의 손자국이 선명했다. 아델은 시계를 보려 손목을 들어 올렸다. 꼬박 세 시간이 지나 있었다.
“야.”
아델은 리를 불렀다. 낮은 목소리가 공포스럽게 깔려왔다. 줄곧 리를 붙잡고 허벅지 안을 찌를 듯이 쑤셔대던 아델이었다. 리의 등에 얼굴을 묻고 자국을 내며 아이처럼 매달렸다.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갈비뼈가 벌어지도록 빨아내고 있었다. 약에 취한 아델은 리의 품에 쓰러졌다. 몇 번 눈물을 토해내더니 3년 전 소년이었던 시절처럼 눈물을 삼키고 울었다. 리는 아델이 안타까웠다. 아델은 줄곧 카일에 대한 원망을 털어놓으며 문장에 맞지 않는 울분을 토해냈다.
“살 좀 쪄. 너한테 박다가 내가 죽을 것 같으니까.”
아델은 일부러 사악한 말을 내던졌다. 리는 제게 화를 내지도 문을 박차고 나가지도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게 눈물을 닦아낼 뿐이었다.
분명 온몸이 엉망이 되었을 터인데, 아니나 다를까 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빨린 흔적과 함께 생채기 속 피가 고여 있었다. 아델은 리를 눕히고 가슴팍을 크게 깨물었다. 리는 힘겨운 듯 시체처럼 늘어졌다. 팔을 소파 밖으로 빼놓고 가녀린 숨을 내쉬었다. 8피트에 육박한 아델의 몸이 올려져 숨이 가빠졌다. 세 시간의 겁탈과 아델의 어리광에 온몸이 축날 것 같았다. 아델은 리의 젖꼭지를 물었다. 리는 얇은 신음을 터뜨리며 아델의 머리를 밀어내었다. 아델은 결핍된 아이처럼 리의 젖꼭지를 집요하게 빨아내고 있었다. 아델의 입 사이에서 리의 가슴팍이 찢겨 나갈 것 같았다. 끔찍한 상상이 들었다.
“아무리 뜯어도 안 나와요. 나올 리가 없잖아요.”
리는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였다. 제가 삽입할 때 리의 표정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저렇게 초연한 얼굴로 외설적인 신음을 내뱉는 게 상상이 되질 않았다.
아델은 사악하게 웃으며 갈비뼈부터 살들을 끌어모았다. 빨간 자국이 선명해지도록 긁어내고 있었다.
“조금 확장해 보는 게 어때? 손바닥에 들어올 정도만. 빨아보고 싶어.”
아델의 말에 리는 같잖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미친놈들을 상대해본 연륜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아델은 리의 어른스러움에 매료된 것이었다.
첫인상부터 사납고 아름답게 생긴 리는 소년 같은 얼굴에 하는 짓은 60대 노인 같았다.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미련도 의지도 없었다. 저항도, 그렇다 할 반항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입술만 깨물 뿐이었다. 아주 투정이 심한 아이를 달래는 듯한 어조로 아델을 대했다.
아델은 리의 가슴팍에 턱을 올리고 눈을 맞췄다. 젖꼭지 부근에 잇자국이 선명했다. 리는 상처에 닿는 아델의 머리카락을 치우기 시작했다. 가슴팍에 닿는 아델의 머리카락이 간지러웠다. 그렇게 그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아델의 머리를 정리했다. 아델은 그 웃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럴 거면 여자를 만나세요. 왜 저한테 이러세요.”
아델은 리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아델의 몸이 버거운 듯 끊어질 듯한 숨을 쉬었다.
“삐지지 마. 만질 곳이 없어서 그래. 살을 찌던가, 내 거라도 만지던가.”
아델은 리와의 섹스가 기억나질 않았다. 약에 취해 저지른 행동이었으니. 그의 안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델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리의 손을 제 성기에 가져다 댔다. 리는 조금 슬픈 눈빛으로 아델의 아랫배를 간질거렸다. 그곳에는 손을 댈 수 없다는 무언의 거절 같았다.
“왜 말이 그렇게 되는 거죠?”
아델은 만져주지 않는 리가 못마땅한 듯 리의 몸에 체중을 세게 싣고 고개를 묻었다. 방금 전 간지러움을 참는 리의 얼굴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예뻐 보였기 때문이었다.
짜증나게 눈을 감아도, 남자의 체향만으로도 아델을 발정하게 만들었다. 리는 아델에게 연민이 들었다. 아델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아델은 작게 하품을 하는 듯하더니 노곤노곤한지 눈을 감았다. 리는 아델의 머리를 헤집던 손을 멈추었다.
“만져줘.”
아델의 졸음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만져줘.”
리는 다시 포근하게 아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그때 리의 아랫배 위로 아델의 성기가 점차 팽창되고 있었다.
“주무시긴 할 건가요?”
리는 거대한 성기가 불편한지 허리를 달싹거렸다.
“아니. 못 자겠는데?”
찰나 아델은 일어나 리의 몸을 끌어당겼다. 제 허벅지 위에 올리고 허리를 끌어안았다. 아델은 리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그 순간 리는 아델의 혀를 세게 깨물었다. 아델의 입술 사이로 선명한 피가 흘러나왔다. 리는 숨을 몰아쉬며 다친 아델의 혀를 살폈다. 너무도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아델은 흐르는 피를 핥아내었다. 아델의 선홍빛 혀 사이로 붉은 핏물이 스며들었다.
“왜 이렇게 고상한 척하는 거야? 뒤는 되고 입술은 안 돼?”
아델은 리의 머리통을 부술 듯이 쥐었다. 주머니 속에서 총을 만지작거렸다. 리는 총알 소리를 듣고 있음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여달라고 발악하는 것처럼. 아델은 그 차분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제게 목숨을 구걸하며 아양을 떨었더라면 이 찝찝한 마음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다시 누워보세요.”
리는 침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델은 왜 제가 리에게 고분고분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신경질적으로 총을 식탁에 던져두고 리의 무릎 맡에 얌전히 누웠다.
“아델.”
남자의 목소리에 전율이 돋았다. 아델은 심장이 울렁거렸다. 3년 전 제 눈앞에서 죽은 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을까. 불쾌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마음속 응어리가 흔들거렸다. 남자의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제 이름을 불러준다면 아이처럼 울어버릴 것 같았다.
카일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며 제 인생을 포기하고 싶어 했다. 아델은 약에 취해 저주 같은 망상을 털어놓았고 카일에 대한 분노와 자신에 대한 혐오로 괴로워했다. 리는 아델이 안타까웠다. 순진하고 깨끗하고 사랑스러운 소년이 더 이상 망가지질 않길 바랐다.
아델은 리의 손을 가져다가 제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리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아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인디언의 기도라고… 혹시 아세요?”
“알 리가 없지.”
“원래 같은 문장을 반복하기도 하고, 언뜻 보면 세뇌 같아 보이기도 하는 기도가… 효과가 있대요.”
리의 목소리가 마음을 어지럽혔다. 심장에 민들레 씨가 앉은 것처럼 간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달콤한 꿈같았다. 리의 목소리를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고 싶었다. 달콤한 푸딩 같을 것이다. 아델은 조용히 눈을 감고 리의 목소리를 음미했다. 그리고 리의 덧붙인 말에 참아왔던 눈물 한줄기를 흘리고야 말았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아델 씨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어요. 카일과 상관없이… 당신은 사랑받을 수 있어요.”
아델은 마음속으로 울었다. 간질거리는 민들레 씨는 어느새 바늘이 되어 심장을 엉망으로 관통하기 시작했다. 뚫린 심장 사이로 리의 목소리가 들이쳤다. 따가웠다.
“네가 내 아버지 이름을 어떻게 알아.”
아델은 충혈된 눈으로 리에게 소리쳤다. 리는 조심스럽게 아델의 가슴팍을 끌어안았다. 몸집이 작은 리가 안기는 꼴이 되었지만. 리는 포근하게 아델을 끌어안았다. 분명 카일의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었는데. 리는 자연스럽게 카일을 입에 올리고 있었다.
“자꾸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괜찮아질 거예요.”
리는 그 말만을 남기고 대답을 멈추었다. 아델은 카일에 대해 추궁하던 것을 멈추고 더욱 세게 리를 끌어안았다. 첫사랑 때처럼. 몸 안에 가두면 리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녹아 흘러내릴 것 같았다.
“그 저주… 아니 기도가 안 통하면 어떻게 할 건데?”
아델은 비죽 입술을 올렸다.
“통할 거예요.”
리는 아델의 뺨을 쓰다듬었다. 리의 뼈가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아델은 리의 앙상한 몸을 살폈다. 쇄골 위의 흉터와 목뒤의 문신. 허벅지와 이어지는 안쪽에는 담배로 지진 자국들이 가득했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길래 몸이 이 모양일까.
“여기는 재떨이가 없나? 다 네 몸에 지지는 거야?”
아델은 허벅지 안쪽에 지져있는 자국을 쿡 찔렀다. 리는 가녀린 신음을 터뜨리며 허벅지를 모았다. 이런 행동들도 전부 교태가 섞이지 않은 행동일 텐데. 아델은 왜 리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매춘부일 뿐인데. 하루에 자신 같은 손님을 100명도 넘게 받을 텐데. 왜 그가 제 마음을 흔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가끔씩… 짓궂은 손님들이 있으니까요.”
리는 매춘부를 자처했다. 아델에게 캐셔 혹은 청소라고 자신을 설명하는 일도 힘에 부쳤다. 만약, 모른 척한다면 이안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았다. 차라리 아델이 망가지게 된다면. 매춘을 즐기게 된다면 닳고 닳은 자신이 나을 것 같았다. 아델은 더 이상 더럽혀지지 않길 바랐다. 한때 매춘을 한 건 사실이었다. 교도소에서 마약을 얻기 위해 몸을 팔고 담배를 얻기 위해 몸을 팔았으니까. 아델의 말이 전부 사실일지도 모른다. 제 인생이 매춘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었다.
“내일 다시 올 거야.”
“오지 마세요. 아델 씨는… 다시는 이런 곳 오지 마세요.”
리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아델은 약기운이 돌아 휘청거렸다. 리는 아델을 부축했다. 아델은 리의 손길을 쳐내고 얼굴을 똑바로 고정시켰다. 하필 리가 생각난 탓이었다.
[올바른 어른으로 자라세요…….]
아델은 떨리는 손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벽에 기대 쓰라린 독백을 시작했다.
“내가 아는 사람이랑 닮았어. 아니… 내가 죽인 사람인가?”
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델을 바라보았다. 아마, 기억의 왜곡이거나 큰 충격을 받아 그랬으리라고 생각했다. 두목을 죽인 아델이었으니까 웬만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욱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갖고 싶었는데.”
아델이 담배를 문 탓에 뭉개진 발음이었다. 리의 심장이 철렁거렸다. 자신의 이야기일까, 아닐까. 아델은 얼마나 아픈 걸까. 아델은 다시 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조금은 초조한 듯 눈빛이 엉망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아델은 이내 눈빛을 거두어 들였다. 풀린 벨트와 지퍼를 정리하고 코트를 팔에 걸쳐두었다. 넥타이와 셔츠가 엉망이 되었는데. 분명 저렇게 들어간다면 카일에게 혼쭐이 날것이 분명했다. 리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결심한 듯 아델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해야 되는 거야. 알겠지?”
리는 아델의 넥타이를 정리했다. 아델은 예상치 못한 리의 손길에 얼굴의 근육마저 굳어버리는 듯했다. 뻣뻣하게 숨도 내쉬며 리를 바라보았다. 전라의 상태로 제 넥타이를 매어주는 리. 그리고 자연스러운 반말까지. 처음 본 낯선 남자에게서 아델은 욕망을 느꼈다.
“반말하지 마.”
아델은 쑥스러운지 애써 거친 말로 대신했다. 그러나 사나운 아델의 태도에도 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타격조차 없는지 마무리를 하는 데 열중했다.
아델은 그런 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 죄송합니다.”
리는 제 손이 닿는 것이 불쾌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지 서둘러 몸을 가리기 시작했다. 아델은 해명을 해야 했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유일하게 자신을 바보로 만드는 사람. 아델은 자꾸 ‘리’가 떠올랐다.
리는 숨죽인 채 소파에 앉았다. 아델은 낯선 남자의 나이가 궁금했다. 사실 제게 반말을 해도 높임말을 사용해도 상관없었다. 다만, 처음 만난 그에게 발정한 자신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괜스레 부끄러워진 탓이었다.
“세시에 올 거야. 방 잡아놔.”
“오지 마.”
리는 허공을 바라보며 허무하게 대답했다. 아델은 달아오른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황급히 방을 나섰다. 아델이 문을 열고 나가기가 무섭게 문 앞에 기대어 있던 이안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안은 괴성을 지르며 남은 돈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오빠! 오빠도 줄까?”
리는 고개를 저었다. 제 몸을 팔아 번 돈이었지만. 아델의 돈을 받을 수는 없었다. 아델과의 관계에 썩은 물감을 칠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너 가져.”
리는 오들오들 떨었다. 아델에게 몇 시간 내리 삽입을 당한 탓에 온몸이 맞은 것처럼 아팠다. 늘 후유증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허리를 펼 수도 없이 욱신거렸다. 소파 위에 피가 번져갔다. 리는 자꾸만 눈꺼풀이 감겨왔다. 툭. 리의 몸이 맥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