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힘줘!”
교도관의 눈빛이 포악해졌다. 마치, 포식자처럼 초식동물을 삼킬듯한 뜨거운 긴장감이 흘렀다. 이곳은 오물 덩어리 같은 곳이었다. 이 교도소는 카일의 부하들이 갇히는 최악의 시설이었다. 고로 악성 범죄자들이 몸을 담그는 곳이었다. 리는 제 죄의 막중함이 몸소 느껴졌다.
“죄수복에 어울리게 염색을 해보는 게 어때?”
카일의 이죽거림처럼. 오렌지 죄수복에 까만 흑발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리는 헛웃음이 나왔다. 건방지게 웃고 있는 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교도관은 사정없이 리의 허리를 내려쳤다. 마치 겁탈을 시도하려는 수컷처럼 눈이 이글거렸다.
“허리 숙여.”
욕망이 잔뜩 섞여 질척해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리는 벽을 짚고 섰다. 항문으로 하는 마약검사가 이어졌다. 리는 망설임 없이 바지를 내렸다. 교도관은 불순한 눈빛으로 리의 바지를 벗겨내었다. 순식간에 내려간 바지 탓에 리의 앙상한 흰 허벅지가 드러났다. 교도관은 전라를 보지 못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힘을 더 주란 말이야!”
벽을 짚은 리의 손이 애처롭게 떨려왔다. 여자 교도관이 오고 나서야 리는 바지를 겨우 올릴 수 있었다. 죄수복과 방을 배정받고 교도관의 뒤를 따랐다.
허벅지부터 팔뚝, 그리고 사정없이 긁은 얼굴까지. 리는 마약 중독자로 보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그런 존재가 살인이라니. 교도관은 비루하리만큼 건조하게 마른 리를 바라보았다.
‘저 몸으로 어떻게… 그런 살인을.’
교도관은 감상에 젖다 혀를 씹었다. 민망함을 감출 수 없던지 지레 경찰봉으로 화풀이를 시작했다. 교도관에게 매질을 당한 리는 조금 피곤한 듯 휘청거렸다.
“들어가!”
감옥은 팝옵티콘의 전형적인 디자인이었다. 교도관은 중심에서 죄수들을 바라보고 죄수들은 교도관을 볼 수 없는 구조였다. 죄수들이 서로가 서로를 관찰할 수 있는 둥그런 구조였다. 교도관은 리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그리고 속살이 훤히 드러난 순간에는 놓칠 수 없다는 듯 탐닉했다. 리는 초연한 얼굴로 떨어진 칫솔을 주웠다. 교도관은 커다란 자물쇠로 이중 잠금을 풀고 리를 던져 놓았다. 교도관이 고개를 돌린 순간 동그랗게 펼쳐진 교도소에서 약속한 듯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신참.”
“아가씨가 들어왔어?”
“언니”
저마다 리를 보며 조롱 섞인 환영 인사를 건네었다. 리는 인상을 찡그리며 물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재판부터 감옥에 오기까지. 무슨 정신으로 견뎠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로지 아델을 지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카일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기도 전, 누군가를 필사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리를 강해지게 만들었다.
“어머! 오빠인 줄 알았는데…. 꼬마야 넌 뭐니?”
리는 쩌렁쩌렁한 음색에 어깨를 흠칫 떨었다. 제 감방 동료였다. 리가 얼굴을 내비칠수록 휘파람 소리가 더욱더 거세졌다. 모든 죄수들이 리의 방만을 보는 듯 리의 모든 행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리는 민망함에 어깨를 움츠렸지만 동료는 그 시선이 싫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리를 꼬았다.
“아우…. 제기랄….”
동료의 터질듯한 허벅지 살을 보며 휘파람을 멈추고 욕설을 뱉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방의 커튼이 쳐지기 시작했다.
“미워!”
리의 감방 동료는 100킬로에 육박한 남자였다. 분명한 남자였지만 허리까지 닿는 긴 머리에 가슴이 풍만하고 허리가 잘록했다. 마치 여자를 흉내 내는 듯이 그는 볼륨감이 풍성한 남자였다.
이곳은 분명 남자 교도소인데. 리는 혼란스러움에 눈을 비비적거렸다. 제 앞에 있는 자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이 둘을 교묘하게 섞어놓은 것 같았다. 인위적인 비음을 제외하면 그는 분명한 남자였다. 다부진 턱과 수염 자국을 보면 도무지 여자라고 상상도 할 수 없는 몰골이었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여자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리는 남자에게 악수를 청했다. 피곤했지만 침대 위에서 요란을 떨고 있는 그를 잠재우고 싶었다. 그는 마치 모르는 남자와의 합방을 하듯 쑥스러운 얼굴로 리의 악수를 거부했다.
[유흥의 끝은 트랜스젠더라고 하더군.]
[그래서… 끝을 봤어?]
카일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렇게 사소한,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느껴지는 카일과의 추억이 진저리났다. 다행히 카일은 트랜스젠더와의 섹스는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지금 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날처럼, 비참해진 심장에 대한 위로였다. 더는 카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신참이야?”
그는 더 이상 ‘여자’인 척할 마음이 없는 건지 원래의 낮은 목소리로 리의 손을 맞잡았다. 손바닥이 거칠었고 목소리는 그보다 더 사포 같았다. 그의 이름은 ‘이안’이라고 했다. 현재의 이름은 캐서린.
신분증과 죄수들이 부르는 이름은 4593이었지만 리만은 부디 캐서린으로 불러 달라고 당부했다. 리는 떨떠름한 얼굴로 끄덕거렸다.
“네.”
리는 이안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근육질의 섹시가이와 한방을 쓰게 될 줄 알았는데, 계집애처럼 희멀끔한 남자가 들어와 이안은 실망하던 참이었다.
소년인지 청년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앳된 얼굴이었다. 하필, 품종이 고귀한 강아지처럼 보라색 눈은 또 뭐람. 이안은 리에게 몹시 실망했다. 제 욕망을 채워줄 남자가 아니라 아쉬웠는데다가 자신보다 예쁜 것이 또 기분이 상했다.
그럼에도 다행히 미국 바닥에서 먹힐 얼굴 같진 않았다. 섹시함이 결여되었으니까. 그것 하나만으로 이안은 리를 이겼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섹시함’은 보장할 수 있었으니까. 이안은 콧소리를 내며 리에게 물었다.
“하필 오빠는 왜 이 시기에 들어왔어. 어떻게 온 거야?”
“아… 차를 타고 왔습니다.”
“푸핫.”
이안은 빵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리는 여전히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포주를 죽였어. 그래서 온 거야.”
이안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리는 그제서야 제가 무엇을 잘못 이해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이안보다 더욱 어두워진 낯빛으로 중얼거렸다.
“여자를… 죽였습니다.”
이안은 소스라치게 놀란듯한 얼굴로 입술을 가렸다. 얌전해 보이는 리가 생각보다 사나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기… 생각보다 사이코… 뭐 그런 건가 보다.”
놀랐지만 그 충격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안은 이내 대수롭지 않은 듯 침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안과 리 사이에는 굵직한 줄 위로 커다란 시트가 걸쳐져 있었다. 전에 살던 수감자와 마찰이 잦았던 듯, 이안의 감방은 폐쇄적이었다.
결국 이안은 수감자를 폭행했고 독방 신세를 지다 겨우 돌아온 것이라고 했다. 이곳에 있는 것은 겨우 벽 하나를 둔 변기와 휴지, 그리고 비루한 수도꼭지뿐이었다. 몇 장의 수건과 두 개의 죄수복이 전부였다.
비참할 것도 억울할 것도 없었다. 죄수에게 내려지는 최소한의 처우였으니까. 만약, 자신이 살인자였다면 당장 바다에 빠뜨려 상어 밥이 되게 해도 괜찮았다. 리는 그저 제 처지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 뿐이었다.
‘카일이 보고 싶어.’
리는 찰나에 든 생각에 고개를 흔들었다. 온몸이 진동할 만큼 세차게 어깨를 털었다. 이렇게 카일을 떠올리지 않고 아델을 걱정하지 않는다면. 이곳이 견딜만하지 않을까.
24년형. 줄여질 방법은 죽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만약 죽어버린다면 영혼이라도 나가겠지만.
이 시간 동안 카일을 잊을 수 있을까. 리는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24년이 흘러도 카일을 사랑할 것 같은 분명한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기 때문이었다. 리의 두려운 착각을 깬 것은 이안이었다.
“근데 오빠… 조심해. 여기 이상한 애들 많아.”
“아… 그래요?”
“어유… 진짜 사이코인가 봐. 겁먹지도 않네. 갱단 두 개가 있거든? 걔네 맨날 치고받고 난리도 아니야. 진짜 무서워 죽겠다니까. 오빠는 실제로 갱단 만나본 적 있어?”
애인이 갱단이었어요. 아니, 갱을 쏴 죽이는 마피아였어요. 라고 말할 수 없었다.
리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건을 정리했다. 이안은 초연한 리의 반응이 재미가 없었다. 정말 사이코인 건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는 아무런 반응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신참이 어떤 일을 당하는지 모르는 리가 가여웠다. 한동안은 기저귀를 차고 지내야 할 텐데.
이안은 벌써부터 리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저렇게 말라서야. 머리숱도 덥수룩한 게 분명 그를 성 노예로 부려먹을 것이 분명했다. 리가 살아남을 방법은 부디 숨어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벌써부터 쇠창살에 매달려 리를 향해 혀를 날름날름 내밀고 있는 죄수들을 보면 그것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이안은 팔에 돋은 소름을 닦아내며 리를 재촉했다.
“일단 좆밥처럼 보이면 안 되니까. 어깨 좀 펴고. 오빠 응?”
리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안의 염려처럼 리는 갱이 두렵지 않았다. 일반인보다 더 많이 보고 자라온 게 갱이었으니까. 오히려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일반인을 만난 것은 겨우 택시 기사가 전부였다.
쇠창살로 얼굴을 내밀고 혀를 날름거려도, 제 성기를 쥐고 흔들어도 리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들에게 겁을 먹을 리가 없었다. 어차피 죽기밖에 더할까. 목숨을 담보로 당당해지는 건 어쩌면 가장 믿을만한 무기일지도 모른다.
교도관은 봉으로 쇠창살을 두들겼다. 말하기도 귀찮은 건지. 두어 번 두들기며 식사시간을 알렸다. 한 번은 정숙, 두 번은 식사, 세 번은 산책이었다.
리는 뻐근한 목을 풀고 쇠창살로 다가갔다. 그 순간 제 앞에 소름 끼치게 생긴 죄수와 마주쳤다. 죄수는 리에게 윙크를 하며 거대한 성기를 움직였다.
리는 한숨을 쉬고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안은 호들갑을 떨며 리를 감싸 안았지만 리는 그것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리의 당당한 모습이 죄수를 자극했는지 죄수는 오래간만에 재밌는 놀잇감을 발견한 것처럼 머리를 쓸어넘기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이 교도소는 폭력적 성향이 다분한 죄수들만 갇히는 곳이었으니, 그 죄수는 평범한 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도관은 죄수의 쇠창살을 두번 두들겼다.
리는 어기적어기적 다리를 끌고 방을 나섰다. 이안은 리의 뒤에 찰싹 붙어 리를 엄호했다. 그러나 그들이 리를 표적으로 삼은 순간부터 이안은 리에게 슬쩍슬쩍 멀어져야 했다. 죄수들에게 굽신대며 리를 파는 포주처럼 상냥하게 웃어 보였다. 리를 건드려도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라는 듯 이안은 밝게 미소를 지었다. 현재 갱단의 두목 두 명은 필사적으로 리를 노리고 있었다. 리는 신참이었고 하필 갱단의 세력 다툼에 이용되었다.
전례 없는 신참 신고식이 시작되었다. 두목 중 한 명은 리의 식판에 토악질을 시작했다. 머리카락도 침도 탐탁지 않는지 손가락을 목구멍에 찔러 넣기 시작했다. 누릿한 토사물이 리의 식판에 뿌려졌다.
리는 한 입도 대지 않고 묵묵히 토사물을 바라보았다. 원체 잘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편이었고 오늘은 더더욱 속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아쉬울 것도 없었다.
두목은 숟가락으로 배설 같은 잔여물을 섞기 시작했다. 리는 포크를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다시 식판을 들고 일어서려는 순간 두목은 리의 팔뚝을 잡아채 제 밑에 깔아뭉개기 시작했다. 동그란 식탁 밑으로 리를 끌고 가 허리를 결박시켰다. 그들의 부하들은 시시티브이를 피해 동그랗게 앉아 망을 보기 시작했다. 교도관들은 대수롭지 않은 듯 봉을 한 번 두들기고 사라질 뿐이었다.
“신입, 안녕?”
두목은 리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피가 흐르고 있음에도 리는 또렷한 눈빛으로 두목을 바라볼 뿐이었다. 마약 중독자라더니. 리의 눈빛은 두목에게 불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는 눈, 생존을 갈구하지 않는 몸짓은 두목의 분노를 절정으로 이르게 만들었다.
두목은 우악스럽게 리의 몸을 덮쳐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수많은 손과 발이 리를 겁탈하기 시작했다.
두목의 맛보기가 끝나고 리의 옷이 하나둘씩 토악질에 섞여 들어갔다. 일본에서 당했던 그날처럼. 입과 아래가 전부 막혀 숨을 쉴 수 없었다.
공기조차 통하지 않았다. 수많은 죄수들의 땀 냄새와 피 냄새가 섞여 두통이 일었다. 리는 부은 눈으로 애써 눈을 떴다. 그 순간 다른 조직의 두목이 성큼성큼 걸어와 두목에게 주먹을 휘날렸다. 약속되지 않은 싸움이었다. 두목은 방심한 탓에 볼이 부어올랐고 결국 패싸움으로 이어졌다. 실오라기 하나 남지 않은 리는 배를 움켜쥐고 콜록거렸다. 앞도 눈도 코도 입도 그 무엇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내 커다란 호루라기 소리. 리를 건든 것은 신참에 대한 소유권 주장이었다. 또한 아무런 합의 없이 신고식에 들어간 상대편에 대한 응징이었다. 리의 정신이 몽롱해졌다. 더 이상 토악질의 냄새도 사내들의 땀 냄새도 없었다. 지독한 소독약 냄새가 흘러나왔다.
“보라색 눈.”
리는 눈을 번쩍 떴다. 카일일까. 카일일까. 십 년 전 카일은 늘 그런 식으로 부르곤 했었다. 보라색 눈. 두 단어를 부드럽게 띄워 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키스. 눈두덩이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 카일의 입술.
“일어나.”
카일일 리가 없었다.
교도관의 목소리였다. 리는 천근만근한 눈두덩에 애써 힘을 주었다. 힘겹게 눈을 뜨고 뻐근한 몸을 일으켰다. 교도관은 리의 마약검사를 하던 그 남자였다.
이곳은 교도관의 개인 라커룸이었고 리는 가죽 소파에 누워있었다. 리는 엉망이 되어 있는 제 몸을 바라보았다. 막 치료를 끝냈는지 온몸에 묻어 있는 피를 제외하면 전부 닦인 상태였다. 입 주변과 눈에는 밴드가 붙어있었지만 찝찝하리만큼 교도관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는 어색하게 짧은 인사를 마치고 다리를 일으키려 했다. 그 순간 거대한 교도관은 리의 허리춤 위로 올라왔다. 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설마.
“이렇게 빨리 널 따먹을 줄 몰랐는데.”
리는 이를 세게 물었다. 역시 처음부터 그럴 의도였던 거였다. 정말 치료가 급하다면 병원 혹은 치료실로 데려갔어야 했는데 교도관의 라커룸은 들어본 적도 없는 처우였다.
리는 뻔한 상황에 한숨을 쉬었다. 입속에서 비린 피 냄새가 진동했다. 교도관은 서둘러 바지춤을 풀기 시작했다. 리는 저항할 힘이 도저히 남아있지 않았다. 맞아서 죽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정신은 잃을 수는 있어도 목숨을 앗을 수는 없었다. 교도관은 게걸스럽게 웃으며 리의 몸을 뒤집었다.
허벅지 사이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교도관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처음 리의 얼굴을 바라봤을 때 운명 같은 짜릿함에 휩싸였다. 죄수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처음이었다. 땀 냄새 가득한 짐승을 사육하는 이곳에서 리는 마치 요정 같았다. 그리고 무료한 일상 속에서 제 성욕을 채워준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교도관은 허벅지로 리의 성기를 누르기 시작했다. 리는 침을 질질 흘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합의 없는 삽입이 시작되었다. 리의 허벅지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 리는 눈을 감았다.
‘그냥 죽여줘.’
‘그냥 죽여줘!’
리는 눈을 감고 소리쳤다. 교도관은 커다란 손바닥으로 리의 얼굴을 내리쳤다. 리는 몽롱한 정신으로 눈을 감았다.
리가 눈을 떴을 땐 라커룸이 아닌 감방 침대 위였다. 교도관이 직접 눕혀준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곳까지 걸어온 기억이 나지 않았다. 허리 밑으로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입속도 마찬가지였다. 입안이 전부 터져버려 턱을 다물 수도 없었고 고개를 돌리면 머릿속에 돌이 굴러가는 듯 어지럽기만 했다.
강간 중 기절한 리에게 화가 났던지 교도관은 리의 뺨을 수차례 내려쳤고 겨우 치료가 끝난 것이 무색하게도 리는 다시 망가져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이틀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빠… 일어났어?”
리를 질투했던 이안은 고작 이틀 만에 리를 가엽게 여기고 있었다. 식사시간에 리를 매정하게 버린 탓에 리가 갱단의 표적이 된 것 같았다. 물론 모든 신입은 신고식을 받았지만 리의 경우는 너무 지나친 것 같았다. 이안은 모든 것이 제 탓인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될 일은 아니었다. 기절을 할 정도는 더더욱 아니었는데. 이안은 리를 일으켰다.
“교도관이 이거 주라는데?”
이안은 종이에 곱게 싸여진 마약을 건네었다. 교도관의 화대였다. 리는 허겁지겁 마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어머 오빠 이거 그렇게 먹는 거 아니야!”
이안은 리의 등짝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리는 최소 삼일 분량을 한꺼번에 삼키고 수돗물을 미친 듯이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리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리의 기억이 완벽하게 끊기는 시점이었다. 밤새 토악질을 하고 악몽에 시달렸다. 이안은 낡은 헝겊을 짜서 리의 몸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리는 꼬박 열흘을 앓았다.
치료실과 감방을 옮겨 다니며 시체처럼 골골대기 시작했다. 그 사이 죄수들은 신입 신고식을 멈추고 갱단 싸움에 돌입했다. 그러나 리의 앞방 두목은 밤낮으로 리를 관음 했다. 리는 불쾌한 듯 커튼을 치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네 시간 뒤, 산책 시간에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앞방 두목이 리를 잡아채 사각지대로 끌고 간 것이었다. 순식간에 10명의 사내들에게 둘러싸여진 리는 두려운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이제 이런 것은 전부 귀찮았다. 이런 짓들은. 두 번 다시 강간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두목은 리의 그러한 면이 열이 받았다. 분노에 차오르다 못해 리를 찢어버리고 싶었다.
감히 갱단의 두목을 무서워하지 않다니. 리는 차분한 얼굴로 두목을 바라보았다. 얇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려왔다. 리는 가쁜 한숨을 내쉬며 옷을 벗고 있었다. 두목은 왠지 쓰린 패배를 경험한 기분이었다.
이런 모욕감은 처음이었다. 죄수들은 리를 보며 전부 같은 생각을 했다. 건방진 신입, 표정 없는 신입, 맞아도 신음 한 번 안내는 신입.
그를 겁탈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리는 붉은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허리 한 번 돌리지 않고 신음을 참았다. 결정적으로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디 소속인지 누구와 지내고 있는지 신상에 관한 정보도 없었다.
두목은 리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늘 리의 허리만 보고 삽입을 했던지라 그의 얼굴은 처음이었다. 리의 얼굴을 보는 순간 속이 뒤엉키는 기분이었다.
석 달이 흘렀다.
리에게 발을 걸고 침을 뱉고 식사시간을 방해하는 것도 신입이 세 달이 지나도록 이어지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동안 세 명의 신입이 들어왔지만 리에 정신이 팔려 신고식을 미루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매일 밤 리의 방을 관음 하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두목은 어느새 손아귀 한가득 잡히는 리의 머리를 잡아챘다. 부드러운 머릿결, 미약하게 나는 체향. 두목은 황홀한 듯 눈을 감고 리를 느끼기 시작했다. 한참의 허리 짓이 이어졌지만 리는 약에 찌들었는지 초점조차 맞지 않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마른 기침을 토해낼 뿐이었다.
“야, 대답해.”
두목은 리의 가녀린 목선을 물었다. 부하들은 하나같이 리의 벗은 몸에 집중하며 소리 없는 침을 삼켰다.
“제기랄, 벙어리야?”
두목은 리의 혓바닥을 뽑을 듯이 다가왔다. 엄지와 중지로 축축한 혓바닥을 잡고 힘을 주었다.
“으읏.”
리의 잇새로 고통스러운 신음이 이어졌다. 리는 두목과 눈을 맞추지 않기 위해 고개를 떨구었다. 두목은 리의 눈을 쫓기 위해 다시 한 번 뺨을 내리쳤다.
“벙어리냐고! 왜 말을 안 해!”
두목은 리의 머리를 들고 반복적으로 바닥에 처박기 시작했다. 리의 흰 이마가 깨져 낡은 퍼즐 조각처럼 너덜거렸다. 하얀 얼굴로 흐르는 두 갈래의 핏줄기. 리의 얼굴은 이미 피로 젖어 엉망이었다. 리의 코와 입술 사이로 핏물이 뚝뚝 흘러나왔다.
“독한 새끼.”
두목은 리의 옷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리는 바닥에 쓰러져 피를 쿨럭거리기 시작했다.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포식자들의 먹이사슬이 붕괴되는 과정이었다. 돌연 부하 한 놈이 리에게 달려들었고 두목은 그의 면도칼을 들어 그의 대동맥을 끊어내기 시작했다. 리에게 남자들은 미치광이처럼 달려들었다. 리는 눈을 감고 축 늘어진 팔을 흔들 뿐이었다. 더 이상 카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 너 해저든 정부냐?”
두목은 웃음기 없는 말투로 싸늘하게 물었다. 리의 목덜미에 새겨진 카일의 표식을 발견한 이후 부하들은 일제히 리에게서 떨어졌다. 줄곧 리의 출신지도, 몸담고 있는 곳도 불확실했다. 그러나 리에 대한 모든 단서들이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그의 수상한 머그샷부터 목에 새겨진 문신까지. 해저든이 10년 동안 싸고돌았던 남창이 바로 리였다.
두목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리의 목덜미를 벅벅 밀어보기 시작했다. 카일의 아내라니, 카일의 애인이라니, 카일의 정부라니.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약속이나 한 듯이 이곳에 있는 갱 전부가 카일의 조직에 손해를 입은 입장이었다. 아마 카일은 한낱 동네 조직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겠지만 당한 사람은 꾀나 억울한 사연을 갖고 있는 법이었다.
그런 카일을, 죽이고 싶었던 카일의 정부를 이곳에서 만나게 되다니. 인생은 참으로 놀라운 일 투성이었다. 하필 보라색 눈동자가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서성거릴 때, 청소년 때도 하지 않았던 몽정을 했을 때. 하필 리가 카일의 정부라는 사실은 모든 죄수들의 마음을 따끔거리게 만들었다.
리가 요물스러운 맛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겁탈이었으니 안는 맛이 훌륭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부숴버리고 싶은 눈빛과 보랏빛 눈동자, 물기 가득한 얼굴이 밤을 지새우게 만들었다.
하물며 모든 욕구가 제한되어있는 곳에서 리는 죄수들의 촉매제 같았다. 그리고 카일의 정부라는 걸 자각한 순간 알 수 없는 패배감이 들어 비참했다. 그리고 왜 카일은 제 정부를 감옥에 보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의구심은 리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톡톡한 역할을 했다.
“카일이 널 버렸나?”
리는 울컥하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울먹거렸다. 심장을 부여잡고 어깨를 가녀리게 떨고 있었다. 두목은 리의 머리채를 잡아 눈을 맞췄다.
잔잔한 보라색 눈동자가 멀미 날 만큼 흔들리고 있었다. 리는 떨리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드디어, 마침내, 비로소.
리의 무너진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두목과 부하들은 입을 떠억 벌리고 바보처럼 리를 감상했다. 리는 곧장 울어버릴 듯 아이처럼 훌쩍거렸다. 이내 어깨를 부르르 떨며 눈물을 토해냈다. 그 틈을 탄 두목은 리의 바지를 망설임 없이 벗겨내었다. 그리고 네 번째 리의 기절이 이어졌다. 리는 비명을 지르며 구석으로 달려갔지만 두목의 힘에 역부족이었다. 소리를 치며 저항하던 리는 마침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리는 그날 오랜 꿈을 꾸었다.
[첫 경험에 낭만이 있는 편인가? 좀 더 다정하게 대해줄 걸 그랬나?]
[아.. 아뇨. 그냥 충분히 다정하셨는데요!]
[그래. 넌 누구와 날 비교할 수가 없을 테니까.]
[비교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아요.]
[듣기 좋은 소리야. 생각보다 넌 영리할 수도 있겠어.]
카일은 담배를 붙였다. 그날 리는 침실 안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리는 조심스럽게 카일의 탄탄한 몸을 만져보았다. 자신과 같은, 별반 다를 것 없는 남성성에 이토록 마음이 설레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전부 카일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카일은 공중에 재를 털었다. 리는 황급히 얼굴을 돌리고 이불을 끌어당겼다. 이불 끝이 지글지글 타는 것 같았다.
[내 첫 경험… 아니 강간이었지. 난 새엄마한테 강간을 당했어.]
그날 카일은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건넸다.
리는 이불을 황급히 내치고 카일을 끌어안았다. 위로를 하고 싶었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저 카일의 목을 감싸 안고 토닥여줄 뿐이었다. 리는 마치 제 또래를 위로하듯 정성스러운 몸짓으로 애를 쓰고 있었다.
[위로할 필요 없어. 나도 즐겼으니까. 그 이후로 내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때면 그녀를 찾아갔지. 우린 그렇게 서로를 상처 내고, 의미 없는 짓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어.]
리는 카일이 안쓰러웠다. 단 한 번도 카일이 작아 보였던 적이 없었지만 왠지 카일이 울고 있을 것 같았다.
리는 카일보다 먼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카일의 어깨가 리의 방울들로 젖어갔다. 카일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리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너무 슬퍼서… 자꾸 눈물이 나와요…….]
리는 훌쩍거리며 카일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카일은 손에 쥔 담배를 베개 표면에 끄고 리에게 입을 맞췄다. 알싸한 담배 향과 카일의 진한 향수 냄새가 리의 과일 향과 섞여 들어왔다.
[난 꽤 성숙한 편이었으니까. 그녀가 발정할 만도 했어.]
카일은 피해자임을 부정했다.
[저.. 말 끊는 건 아닌데요. 그거랑… 아무런 상관없어요. 카일이 성숙한 거랑은.]
리는 손까지 휘적거리며 부산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얇은 리의 목소리가 엉망으로 떨려오기 시작했다. 리는 걱정스럽게 카일을 바라보더니 이내 온몸을 카일에게 기대었다. 카일의 축축한 아랫입술을 핥아내며 입술을 단숨에 삼키기 시작했다. 카일은 비로소 리의 말뜻을 이해했는지 포근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카일의 눈빛은 오래도록 리의 여운을 자극했다.
[죽였어.]
카일은 리의 허리선을 만지작거렸다. 리는 간지러움에 몸을 비틀거리며 제 귀를 의심했다.
[네?]
[벽난로에 넣고 태워버렸어.]
카일의 목소리가 귓가에 정적으로 멈추었다. 알싸한 담배 향도 진한 향수 냄새도 없이 공기의 흐름이 텁텁해졌다.
리는 번쩍 눈을 떴다. 이마부터 내려앉은 상처 덕분에 눈을 뜨는 것도 쉽지 않았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는 이안의 우는소리를 따라 눈물을 흘렸다. 카일이 보고 싶었다. 어린 카일이 보고 싶었다. 어린 카일을 지켜주고 싶었다. 오늘 같은 날 하필 카일이 떠올랐다.
그 넓은 코트 속에 숨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리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회색빛 베개 위 리의 눈물 섞인 핏자국이 번져갔다. 이불도 베개도 전부 피로 묵직하게 젖어갔다. 리는 수건을 쇠창살에 매달았다. 연신 두목이 저를 향해 카일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카일의 패밀리 네임까지 부를 때마다 리의 마음이 무참히 무너졌다. 두목 앞에서 눈물 바람으로 헐떡거렸던 것처럼 아직까지 카일만 떠올리면 마음이 아팠다.
“버려진 정부~.”
두목과 죄수들은 이상한 노래를 만들어 흥얼거렸다. 이안은 발소리를 크게 내며 쇠창살을 흔들었다. 저항하는 짐승처럼 이안은 포효했다.
“닥쳐!”
평소 가냘픈 목소리를 흉내 내던 이안은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가상한 노력에 두목은 피식 웃으며 침대 위로 쓰러졌다.
이안은 바닥에 주저앉아 훌쩍거리는 리를 일으켰다. 리는 베개 밑에 숨겨둔 마약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젠 마약이 없으면 제정신으로 버틸 수가 없었다. 두목들은 마약을 흔들며 리의 환심을 샀다. 그러나 거친 정사가 끝난 후 아무런 계약도 없던 것처럼 굴곤 했다. 늘 리는 지친 몸으로 감방으로 돌아서야 했다.
유독 A조직의 두목은 앞과 뒤가 달랐다. 리는 서러운 한숨을 내쉬며 침대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C조직은 약속은 지키는 편이었다. 담배나 마약을 쥐여 주며 30분 동안 마음껏 몸을 유린했다. 그러나 차라리 리는 A두목이 나았다. 적어도 화대를 받는 것 같은 비참함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변기통에 전부 부어버리거나 이안을 주곤 했지만 오늘 이후로 리는 참을 수 없었다. 차라리 현실과 동떨어지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이안은 알약을 물도 없이 삼키고 있는 리를 바라보았다.
리의 마약은 이 주일째 이어지고 있었다.
“오빠… 괜찮아?”
이안은 약을 털어 넣는 리를 말릴 수 없었다. 말린다고 한들 리에게 마약보다 더 좋은 위로를 해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리는 비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환각도 환청도 익숙했다. 제 귀에 입술을 바싹 붙이고 떠들고 있는 아이가 아니라면. 그 환청 속 아이가 자신임을 알았을 때, 리는 제가 미쳤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이제 정신병은 제 신체의 일부 같았다. 면도칼을 씹어먹고 깨어나지만 않는다면 완벽히 숨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응…. 괜찮아요… 저는… 늘 괜찮아요.”
리는 침대에 쓰러졌다. 그리곤 힘 하나 없는 손바닥으로 귀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윙윙 거대한 파리가 귀에 갇힌 듯 리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안은 리에게 달라붙어 그의 자해를 막았다. 그러나 리는 이명을 견딜 수 없는 듯 하반신을 경련하듯 떨기 시작했다.
이명이 시작되었다. 이명, 아이 목소리, 이명, 아이 목소리의 반복이었다. 리는 왼쪽으로 돌아누웠다. 이안은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백 킬로에 육박하는 그가 움직이자 리의 침대가 흔들렸다.
그 다음날도 다음날도 리는 일어나지 않았다. 벌써 보름이었다. 리는 눈에 띄게 망가져 있었다. 피골이 상접한 얼굴에 허벅지엔 핏자국이 눌어붙어 있었다. 하반신을 질질 끌며 걸어 다니는 모양새가 갓 태어난 짐승 같았다. 이안은 리를 바라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몸조차 성치 않은 리는 식사시간마다 돌아가며 두목들에게 끌려갔다.
그가 카일의 정부라는 사실을 안 이후 갱단뿐만 아니라 모든 죄수들이 리에게 화풀이를 시작했다. 카일에게 당했던 것들과 개인적인 호기심이 합쳐진 이유였다. 약 한 달 동안 리는 시름시름 앓았다. 그리고 밤마다 마약을 했지만 그 어떤 교도관들도 봉을 흔들지 않았다.
산책 시간, 식사시간, 목욕시간은 리의 강간시간으로 바뀌고 말았다. 원체 살점이 없었던 리는 엉덩이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라가고 있었다. 이안은 리의 손목을 붙잡고 빵을 넣어주기 시작했다. 리는 피가 흥건한 입술로 도리질을 쳤다.
“먹어야 살 거 아냐!”
이안은 소리를 빼액 질렀다. 리는 귀를 틀어막으며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이안은 말라비틀어진 리의 손목을 감싸 안았다. 엄지와 검지로 잡아도 흘러내리는 기괴한 손목이었다.
“넌 나가.”
두목은 이안의 턱을 세게 쥐었다. 이안은 쭈뼛거리며 리의 곁에서 멀어졌다. 의리보단 생존이 우선이었다. 방해꾼이 없어진 평화로운 식탁. 리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쁜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는 손에 쥔 포크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벌벌 떨고 있었다.
두목은 리의 식판을 던지고 싶었지만 그것만은 참기로 했다. 리와 자신의 침대. 즉 식탁에는 그 어떤 불결한 것들도 없어야 했다.
“아…….”
리는 굽은 허리로 포크를 줍고 익숙한 듯 식탁 위로 올라가 엎드렸다. 리의 죄수복에 샐러드가 엉망으로 묻어 더럽혀졌다. 두목은 새하얀 마요네즈가 묻은 리의 옷을 보고 아랫배가 딱딱해짐을 느꼈다.
“다리를 벌려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두목은 이죽거렸다. 싸늘해진 공기. 그 누구도 리에게 달려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최근 갱들은 리를 먹을 수 있는, 충분히 방해받지 않을 시간을 합의했다.
리를 건들 때 온전히 감상만 해주기로 계약을 한 결과였다. 리는 누구의 인형도 아닌, 모두의 인형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리는 두목의 팔뚝보다 얇은 허벅지를 두 손으로 벌렸다. 마른 허벅지가 애처롭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리는 식탁을 짚고 엉덩이를 공중으로 쳐들었다. 피멍이 가득한 무릎이 짓눌리기 시작했고 허벅지는 높은 식탁 위에서 경련하기 시작했다.
“소란스럽게 하지 마.”
늙은 교도관들은 허겁지겁 도넛을 들고 순찰을 했다. 구태여 두목의 짓을 말릴 것도 없었다. 한번 리의 구멍을 맛보게 해준다면 기꺼이 계약에 뛰어들겠지만 아직까진 교도관의 품위를 지켜야 했다. 교도관은 두목의 행위를 눈감아 주었다.
리를 인질로 던지지 않는다면 또다시 갱단 싸움에 휘말릴 것이 분명했다. 리가 온 이후로 귀찮게 겨드랑이부터 허벅지 사이까지 갱들을 수색해야 했다. 그럴 수고를 덜어내기 위해선 차라리 소란이 나을 법도 했다. 리를 갖겠다는 이유만으로 싸움이 붙었기 때문이었다.
A두목의 오른팔은 대동맥이 잘려나갔고 상대편 부하는 변기에 머리가 꽂힌 채로 즉사했다. 이 모든 것이 ‘리’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들의 계약을 존중해야 했다. 교도관은 큼큼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리는 겨우 중심을 잡고 중얼거렸다. 상처가 아물어 갈 때쯤 두목들은 무자비하게 흉터를 찢어놓곤 했다. 어린아이보다 마른 리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어느새 찌걱거리는 소리보다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려 퍼졌다. 살 한 점 없는 리에게 삽입한다는 것은 서랍장에 성기를 압박하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두목은 새빨개진 얼굴로 환희에 젖어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리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렸다.
“응… 이따가 줄게. 응, 지금은…….”
환청 속의 아이와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환청 속의 아이는 리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리는 앓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흔들었다. 팔꿈치로 겨우 들고 가슴팍을 일으켰다. 두목은 리의 죄수복을 훤히 열었다. 새하얀 가슴팍이 드러났다. 젖꼭지 근처에는 새파랗게 부은 흔적이 가득했다.
‘남기지 말라니까.’
두목은 욕설을 지껄이며 리의 젖꼭지를 잡아 뜯었다. 리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참을 수 없었다. 계약을 어긴 상대편에 대한 화풀이였다. 리는 가슴팍을 가리기 위해 헛손질을 했다. 상대편 두목은 리를 힐끔거렸다.
리의 가슴팍이 순식간에 벌어졌고 두목은 리의 흉통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목덜미에 이를 박아 넣기 시작했다. 명백한 소유권에 대한 표시였다. 분명 계약대로 식사시간은 제 차지였는데 상대편 두목이 리를 음미한 까닭이었다.
“박히면서도 흘리고 있네. 남창 같은 자식.”
두목은 리의 뺨을 소리 나게 내려쳤다. 리는 그제서야 중얼거리던 것을 멈추고 눈을 깜빡거렸다. 주먹을 쥐고 이를 떨었다. 손톱이 살갗에 뾰족하게 파고들었다. 두목은 오늘따라 거칠게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방금 전 리의 가슴팍을 상대편이 본 것부터 화가 치밀어 오른 탓이었다. 공동 구멍이니 자국을 남기지 말자고 계약한 것도 잊고 리의 목덜미를 물어놨다. 이건 계약 위반이었다.
두목은 리를 뒤집어 목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리의 사타구니 속으로 손을 넣고 성기를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두목의 노력에도 리의 성기는 잠잠했다. 이미 성 기능은 마비됐고 어떠한 통각도 느낄 수 없었다. 교도소에 온 이후로 무엇도 느낄 수 없었다. 리는 흡사 시체와 같았다. 그리고 시체에 발정하는 두목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두목은 리의 성기를 터질 듯이 두 손으로 쥐었다. 리는 여전히 허공을 바라보며 눈을 끔벅일 뿐이었다.
“넌 뭘 해도 이렇게 덤덤하지? 제기랄. 입 열어! 새끼야! 입 열라고!”
오늘따라 두목의 투정이 심해졌다. 평소 세 번의 사정을 하고 식탁 아래로 던지는 것이 절차였지만 오늘은 유난히 귀가 따갑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리의 입속에 손가락을 넣고 축축해질 때까지 목젖을 파내기 시작했다. 리는 토기가 치밀어 올라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 순간 두목은 리를 제 품에 끌어안고 목구멍부터 입천장까지 정신없이 핥아 내렸다.
“으읍.”
리의 입속에서 질척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리는 묘한 눈빛으로 두목을 바라보았다. 리의 하찮은 신음 소리에도 두목은 욕정에 가득 찬 얼굴로 허덕거렸다. 리가 고개를 뗀 순간, 두목은 리의 머리통을 감싸 쥐기 시작했다. 리는 피식 웃으며 두목을 바라보았다.
“왜? 키스하고 싶어? 이상한 새끼네, 너.”
리는 입가에 잔뜩 흐르는 타액을 닦아내었다. 두목은 움찔거리며 리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리가 고개를 떨구었을 때 리의 목덜미를 잡아채 혀를 섞었다. 리는 파리하게 손을 휘적거렸다. 두목의 떨리는 심장이 리의 가슴에 겹쳐졌다. 웅성웅성 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두목은 달콤한 리에 취해 품위를 유지할 겨를도 없었다. 파르르 떨리는 리의 속눈썹은 나비가 앉은 듯 간지럽게 느껴졌다. 두목은 리의 뺨을 부드럽게 핥아내었다.
작은 얼굴을 모조리 삼키고 싶을 정도였다. ‘키스’. 단 한 번도 이곳에서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었다. 삽입은 성욕 분출의 기본적인 행위였지만 키스는 숨결을 나누는 고귀한 행위였다. 사창가에서도 키스는 하지 않듯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짐승 같은 욕구를 채우는 곳에서 키스는 불가역적인 행위였다.
“이제 꺼져.”
리는 힘겹게 두목의 어깨를 밀어냈다. 리의 보잘것없는 내침에도 두목은 허망한 눈빛으로 멀어졌다. 리는 그 눈빛에 토기가 치밀었다.
“어때?”
두목은 리에게 물었다. 리는 두목의 앞주머니를 뒤져 약속한 알약 세 개를 꺼내었다. 작은 봉투를 탈탈 털어내었다. 리는 미세한 가루조차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리는 두목과 어떤 식으로도 엮이고 싶지 않았다. 친밀감을 표현하는 모든 짓들은 하고 싶지 않았다. 저 역겨운 눈빛을 보니 지금 당장 하나를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리는 잘게 부수어 코에 살살 털어 넣었다. 두목은 불안한 듯 연신 리의 눈치를 살폈다.
“어떠냐고! 시발!”
한동안 리가 대답이 없자 두목은 식탁을 세게 내리쳤다. 낡은 의자 다리가 흔들거렸고 리는 그대로 밖으로 떨어졌다. 리는 부딪힌 허벅지가 아프지도 않는지 벽에 기대에 눈을 감았다.
“뭐가.”
리는 한숨을 쉬었다. 짙은 약 냄새가 폐에 퍼졌다.
“나랑 한 키스 어땠냐고….”
두목은 리의 귓가에 속삭였다. 벽에 리를 가두고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부하들은 두목의 낯선 모습에 못 본 척 텁텁한 빵 먹기에 열중했다.
리는 두목의 뺨을 오른손으로 쓸어보았다. 덥수룩한 수염이 손끝에 걸렸다. 두목의 뺨부터 문신에 가려진 목뒤까지 전부 달아올랐다.
“왜? 첫 키스였어?”
리는 부드럽게 웃었다.
“미친 새끼가.”
두목은 리를 향해 주먹을 높게 쳐들었다. 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때리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두목은 머저리처럼 그 웃음에 희미한 미소를 걸고 리의 멱살을 흔들었다.
“말하기 전까지 안 보내줄 거야.”
두목은 리의 멱살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곧 식사시간이 끝나가고 꼼짝없이 갇혀야 할 텐데. 그가 떨고 있는 허세가 우스웠다. 그리고 왜 제 앞에서 소년 같은 표정으로 역겹게 굴고 있는지도. 약 기운이 가시기 전에 잠들어야 할 텐데. 이 바보는 비켜줄 생각이 없었다.
“하, 수염이 많아서 아파. 됐어?”
리는 무릎을 털고 일어섰다. 두목은 발그레해진 얼굴로 더 이상 리를 잡지 않았다.
그날 밤 이안은 송곳 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교도관 서너 명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안은 쇠창살에 얼굴을 박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시작된 리의 자살 소동. 리는 강간을 당한 날이면 예외 없이 자살을 시도하곤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일어나는 일이니 교도관은 마치 일기예보를 보는 것만큼이나 태연했다.
두목은 소란스러운 이안에게 칼로 찌르는 시늉을 시작했다. 지방층이 갈라지는 듯한 모션으로 이안을 겁주고 있었다. 입 모양으로 ‘리 죽으면 너도 뒤지는 거야’라고 발음했다.
이안은 거구의 몸을 덜덜 떨었다. 그 누구도 도와주러 오지 않자 이안은 리의 발끝을 잡아채 천장에 걸린 수건을 뜯어냈다. 며칠 고집스럽게 수건을 숨기더니, 이제 보니 목을 맬 작정이었던 모양이었다.
이안은 리의 얼굴에 물을 부었다. 리는 뻐끔뻐끔 입술을 움직이더니 이안을 향해 힘겹게 웃었다.
“오빠, 제발 그러지 좀 마. 나 진짜 한숨도 못 자겠다니까? 2496이 오빠 죽으면 나도 죽인댔어!”
“2496이 누구지…?”
리는 여전히 잠에 취한 채로 해롱거렸다. 겨우 침대에 두 다리를 뻗고 나서야 정신이 드는지 물을 벌컥벌컥 마셔댔다. 약에 내성이 생긴 뒤로 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물뿐이었다. 공복에 마약을 집어넣고 토악질을 하고 겁탈을 당하고. 그것이 리의 하루 일과였다.
이안은 리가 끔찍했다. 그가 처한 현실이 끔찍했다. 마치 제가 그 일을 당하는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아 견딜 수가 없었다. 한때 이안은 사랑을 받고 싶었다. 예쁜 옷을 입고 예쁜 구두를 신으면 잘생긴 남자가 자신을 사랑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줄곧 저의 정체성을 여자라고 믿어왔다. 태어날 때부터 여자였다고. 남자로 잘못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자의 성기가 좋았고 뒤로 박히는 느낌도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제가 평범한 여자가 된 기분이었다. 단순히 ‘남자’와 연애를 하고 싶었다. 이안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사랑은 아름답고 연애는 그보다 더 멋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리를 만나고 난 후. 전부 부질없음을 깨닫고야 말았다. 리의 잠꼬대를 듣는 순간. 사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말끔히 사라졌다. 사랑은 그저 괴로운 것일 뿐이었다.
리는 매일 밤 ‘카일.’ ‘카일.’이라며 울부짖었다.
“오빠… 아직까지 카일이 보고 싶어…?”
며칠 동안 리는 죽은 듯이 잠만 잤다. 처음처럼 카일을 울부짖거나 새벽을 뒤척이지 않았다. 새벽이 오면 리는 풀린 눈으로 바닥을 긁기 시작했다. 바닥처럼 리의 허벅지와 팔뚝도 괴사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새초롬한 얼굴을 제외하면 그는 흉측한 좀비 같았다.
“오빠, 그거 스토… 증후군?”
“스톡홀름 증후군.”
“그래. 그래 바로 그거야. 카일이 오빠를 가둬서 그렇게 된 거라고! 그거 사랑 아니다?”
“가둔 적 없어. 내가 갇힌 거야. 보고 싶어서.”
바닥을 긁던 리는 그 말만을 남기고 그대로 쓰러졌다. 이안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다음날 리의 방으로 식판이 던져졌다. 어젯밤 소동을 부린 탓에 리는 외부로 나갈 수조차 없게 되었다. 두목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형벌이었다. 리는 손톱을 세워 목을 긁어내었다. 그리곤 숟가락으로 연신 제 몸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코를 찡긋거리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벌레를 잡기도 했다. 이안은 지겹다는 듯 리의 어깨를 흔들었다.
“나 진짜 창녀 일하면서도 오빠 같은 약쟁이는 처음 봐. 제발 그만할 수 없어?”
리는 ‘약’ 소리가 나오자 미치광이처럼 이안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제발… 너 약 있어? 하나만 줘. 내가 뭐든 다 할게.”
새빨갛게 충혈이 되어있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이안에게 겹쳐왔다. 리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바지를 내리고 벽을 짚었다. 이안은 볼품없는 리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난 쑤심을 당하고 싶은 입장이라고. 오빠, 그러니까 허튼짓 그만해.”
리는 아쉬운 듯 그대로 바지를 추켜올렸다. 그리곤 얼마 남아있지 않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기 시작했다. 약 기운에서 점차 깨어나면 평소보다 배로 감각이 발달하곤 했다. 그 감각이 두려워서 약을 먹고 현실과 동떨어지려 발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의 후각을 자극한 건 교도관의 쓰디쓴 냄새였다. 그는 식판을 수거하러 손바닥을 내밀었고 리는 그의 팔뚝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약.. 있어요? 지금… 여기서 할까요?”
리는 끊어질 듯한 음색으로 교도관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불안정하게 연결된 음성에 교도관은 눈썹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것은 무한의 긍정의 표시였다. 교도관은 리의 팔목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보드라운 팔뚝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리의 손을 쥐고 제 덥수룩한 가슴팍의 털들을 쓸게 만들었다. 리는 눈을 딱 감고 교도관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리는 교도관의 가슴을 만져준 대가로 한 알을 얻었다. 리는 성수라도 맞은 것처럼 손을 덜덜 떨어가며 약을 쥐었다. 몇 번을 떨어뜨리고 줍고를 반복했다. 리는 바닥에 떨어진 약을 핥으며 개처럼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리는 건조한 목구멍에 약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행복한 미소로 침대 위로 쓰러졌다.
이안은 잠든 리의 코밑에 손가락을 대 보았다. 오늘도 리가 죽지 않았구나. 이안은 매일 리가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했다. 이안은 미뤄왔던 꽃단장을 시작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있는 면회 날이었다.
짝사랑했던 동료가 면회를 왔고 이안은 허술한 실력으로 머리를 땋기 시작했다. 그때 교도관의 봉이 쇠창살을 한번 훑고 지나갔다. 이안은 마지막으로 제 옷차림을 점검하고 도도하게 걸어 나갔다. 이안의 쿵쾅거리는 발걸음에 잠이 깬 리는 겨우 눈을 뜨고 면회장으로 다가갔다. 그곳은 배식을 받는 곳처럼 동그란 책상들이 늘어져 있었고, 교도관 네 명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족쇄 같은 교도소 속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는 공간이었다. 리는 피로를 떨쳐낼 수 없는지 책상에 그대로 엎드렸다. 윙윙거리는 외부인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관심을 갖진 않았다. 사회와 사람. 그것은 자신과 동떨어진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리는 테이블에 녹을 듯이 누워 하염없이 손가락을 빨았다. 짭짤한 맛이 입안을 감돌았다. 더욱 약이 고파졌다. 그때 두목이 풀린 눈으로 손가락을 빨고 있는 리에게 다가왔다. 리는 흘깃 그를 바라보곤 다시 빠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약 없으면 쳐다도 보지 말라며. 그래서 가져왔다. 시발 새끼야.”
거친 욕설과 달리 손끝은 멋없게 떨려오고 있었다. 두목은 마치 알약이 꽃다발이라도 된다는 듯 경건하게 두 손을 열었다. 리는 나른한 눈으로 약의 개수를 세어 보았다.
“미친 새끼야. 거래하냐?”
“사정 한 번에 한 알이야.”
리는 단호하게 손가락을 들었다. 두목은 씩씩거리며 리의 팔뚝을 붙잡았다. 밑지는 장사임을 알면서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제가 왜 그런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답이 나올 문제였다.
리는 평소처럼 뒤로 돌려고 했지만 두목은 제 체중을 싣고 비켜주지 않았다.
“얼굴 보고해.”
“뭐?”
리는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벌레가 드글드글 기어 다니는 제 얼굴이 무엇이 보고 싶은 걸까. 발기가 되기나 하는 걸까. 만약, 두목이 발기가 안 된다면 사정이 안 될 테고. 그럼 약을 얻지 못할 텐데. 리는 삽시간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공포심에 질린 얼굴로 두목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던 자신을 후회해야 했다. 약이 급한데. 정상위로 했다가는 면회시간이 끝나도록 약을 얻지 못할 것이었다.
“아니… 안돼. 내 얼굴 보고하면… 사정 못 하잖아. 안돼… 그럼 안돼.”
리는 두목의 죄수복을 쥐고 울먹거렸다. 리의 걱정과 달리 두목의 성기는 무서운 속도로 팽창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초 만에 발기를 한 것에 대한 수치심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리는 겨우 제 눈을 마주치고 울먹거렸던 것뿐인데. 두목은 쑥스러움에 도리어 리의 뺨을 내려쳤다.
리의 뺨이 보기 좋게 돌아갔고 두목은 마음과 달리 더욱 거친 손길로 패악을 부리기 시작했다.
“시발 네가 뭔데 거래 질이야. 바지나 내려!”
두목은 새빨개진 얼굴로 리의 바지를 벗겨 내었다. 다소 큰소리가 울려 퍼졌고 면회자들이 일제히 리에게 시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어색하게 자리를 잡았다. 두 팔로 몸을 지탱하고 아슬하게 떨고 있었다.
“목에 팔이라도 감던가. 짜증 나는 얼굴로 쳐다보지 말고.”
그 말에 리는 착실하게 두목의 목에 팔을 감았다. 가슴팍을 붙여오는 리를 바라보며 두목은 입맛을 다셨다. 이미 제 바지 사이로 쿠퍼 액이 흘러내렸지만 그것은 사정으로 칠 수 없었다. 알약 한 개의 쾌감을 이렇게 끝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챙겨온 알약은 세 개뿐이었으니. 두목은 제 방에 뛰어가 비상약을 가져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거친 삽입이 시작되었고 리는 여전히 인형처럼 흔들거리기만 했다. 삐걱삐걱 뼈가 닿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두목은 거친 숨소리로 성기를 꺼내 들었다. 뿌리 끝까지 삽입하려는 그 순간 두목의 등 뒤로 칼이 꽂혔다. 리의 얼굴 위로 새빨간 피가 흩뿌려졌다. 면회자들은 송곳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교도관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호루라기를 불기 시작했다. 리는 화들짝 놀라 옆으로 기대어 숨을 내쉴 뿐이었다.
리는 제 얼굴에 튄 뜨거운 피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바닥에 쓰러진 두목의 주위로 새까만 피가 번져가기 시작했다. 리는 초연한 얼굴로 바지를 올리지도 못하고 늘어졌다. 하필 이 순간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교도관들은 재빨리 두목의 시체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두목에게 칼을 꽂은 사람이 아닌, 두목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두목을 찌른 사람이 거물임을 상징했다.
리는 별 상관이 없었다. 크게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잠이 몰려왔다. 삽입을 당하기 전 두목의 주머니에서 나온 알약을 미리 삼켜 놓았기 때문이다.
“리… 리.”
리는 낯선 목소리에 눈을 떴다. 교도관들이 붙잡지 않은 무법자였다. 두목에게 칼을 꽂은.
남자의 행색은 교도관도 죄수들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리는 골똘히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얼굴은 막 청년을 벗어난 싱그러운 인상이었다. 눈 밑이 조금 퀭했고 피곤해 보인다는 것만 제외하면 눈에 띄게 수려한 외모였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짙은 회색의 눈동자 사이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값비싸 보이는 코트에, 향기로운 냄새. 결정적으로 교도관들도 함부로 하지 않는 사람. 교도관들은 양옆으로 갈라지며 자신과 남자의 공간을 비켜주었다. 교도소는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카페 같았다.
“리…….”
남자는 다시 한 번 자신을 애달프게 부르고 있었다. 이곳에 온 이후로 단 한 번도 면회 온 사람이 없었다. 부모도 그 흔한 친구도 빚쟁이도 없는 것이 제 인생이었으니까.
남자는 벗겨진 리의 바지를 입혀주었다. 그의 손은 부드러웠고 차가웠다. 겨울밤 찬 바람을 달고 온 사람처럼. 뜨겁고 텁텁한 감옥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누구세요….”
리는 입술을 오물거렸다. 이내 현기증이 나는 듯 식탁 위에서 휘청거렸다. 아델은 믿을 수 없는 눈빛으로 리를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리를 받아들고 의자에 앉혔다. 3개월 만에 보는 리는 처참했다. 사람 몰골이 아니었다.
카일이 가둔 성당에선 나았을 정도였다. 리의 얼굴은 무너져 있었다. 눈물 자국이 말라붙어 눈가가 부어있었고 얼굴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라 있었다. 원래도 안쓰러울 만큼 말랐던 리였지만. 아델은 그의 벗겨진 하반신을 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뼈가 접힌 자국 그대로 멍이 들어있었고 허벅지 위쪽엔 말라붙은 핏자국이 선명했다. 얼마나 많은 강간을 당했던 걸까. 카일이 시키는 대로, 카일이 리를 두려워해서 생긴 파국은 상상보다 끔찍했다. 망가진 그를 보자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터져 흘렀다.
리는 호기롭게 아델을 바라보았다. 리는 진실로 그 무엇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델은 마약으로 생을 마감한 제니를 떠올렸다. 제니는 죽기 한 달 전까지 아델을 기억하지 못했다.
여섯 살인 아델을 찾으며 소년인 아델을 멀리했다. 그래서 아델은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리는 마약중독이었다.
“나는…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는데. 기억이 안 나요. 혹시 누구세요? 보험도 들어놓은 적 없는데…….”
“아델입니다.”
아델은 처음 자신을 소개했던 날을 떠올렸다. 리의 보랏빛 눈동자는 건조하게 말라갔다. 리는 바지를 추켜올리고 아델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빛에 무언가 광적인 기색이 스쳤다. 리는 아델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델은 넋이 나간 얼굴로 리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뼈가 고스란히 잡히는 허리가 소름이 끼쳤다. 리를 사랑하지만, 3개월 내리 밤새 그리워했지만. 리의 모습은 아델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좋아하지 않으려고 수백 번도 더 다짐했었다.
카일의 후계자 양성 교육을 받으며, 카일이 붙여놓은 경호원을 피해 겨우 리를 만날 수 있었다. 아델이 카일에게 제 마음을 선언한 이후로 카일은 경비를 단속했다. 외출 금지와 감금은 기본이었다. 카일은 제 심기를 건드리는 모든 것을 감금하곤 했다.
카일의 집과 무대가 아니라면 어느 곳도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새벽 다섯 시에도 머리맡에 있는 카일. 총을 들이대며 아델의 민첩성을 살피던 야수 같은 눈동자. 아델은 3개월 동안 짐승에게 사육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지금 리를 품에 안았을 때 그 세월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다시 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리의 손가락이 아델의 허리춤으로 내려왔다. 아델은 소년처럼 놀라 리를 바라보았다. 리는 텅 빈 눈으로 습관적으로 애무를 시작했다. 아델은 단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약… 있어… 요?”
리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망자처럼 뚝뚝 끊기는 발음에 아델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델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곳에서의 리의 위치를, 리가 어떻게 이곳을 견뎠는지도 실감했다. 리의 손길이 아델의 허벅지로 내려왔고 아델은 떨리는 손끝으로 리를 떼어놓았다. 리는 그저 조금 아쉬운 듯 손을 치우고 땅끝만 바라보았다.
“그러려고 온 거 아닙니다.”
아델은 리의 팔뚝을 걷어 몸 상태를 확인했다. 입술과 눈, 코 그리고 허벅지까지. 상처가 없는 곳이 없었다. 머리는 눈을 찌를 만큼 덥수룩하게 자라있었고 입술은 퉁퉁 부어 발음이 새어 나왔다.
“아. 해보세요.”
리는 아이처럼 입술을 벌렸다. 촉촉했던 입술은 어느새 피딱지가 얹어져 엉망이었다.
아델은 리의 입속으로 손가락을 넣었다. 어찌나 힘주어 씹었는지 여린 잇몸이 터져있었다.
“으.. 으.”
리는 여린 살을 건드리자 울먹거렸다. 마약으로 인해 온몸이 전부 마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델이 손가락을 대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파요?”
리는 아델을 노려보며 끄덕거렸다. 아델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리를 진정시켰다. 이 기분을 무어라 설명할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아델을 알지는 못했지만.
“경찰인가요 아니면 의사인가요?”
“어느 쪽도 아닐 겁니다.”
“날 어떻게 아시나요?”
“카일을 아십니까?”
정적이 이어졌다. 리는 갸웃거렸고 아델은 흔들리는 리의 머리를 받쳐주었다. 리가 기억을 해도, 하지 못해도 슬픈 문제였다. 만약 카일을 기억한다면 리의 경과를 지켜볼 수 있겠지만 리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을 기억하지 못했으면 했다. 용서는 어느 정도 피해자의 희생이 뒤따르는 일이었다. 리가 망각했으면 했다. 차라리 리가 카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안전하게 미쳤으면 했다.
“카일이… 누구지?”
리는 꾸벅꾸벅 졸았다. 아델은 부글거리는 속을 잠재웠다. 생에 처음 혈육에 대한 혐오가 느껴졌다. 카일을 죽이고 싶었다. 아버지라 칭하는 그 자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카일의 시체가 하늘에 찢겨 비로 내렸으면 했다. 나의 리를, 아직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마음을 찢어낸 카일을.
그때 교도관도 아닌 검정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무전기를 켜기 시작했다. 익숙한 기계음이 아델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아델은 싸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경호원들은 어느새 흩어져 공기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눈치챈 건가.’
이곳은 카일의 출장을 틈타 도망쳐온 곳이었다. 카일은 출장 내리 경호원과 대동할 것이었다. 카일의 스케줄은 짧아도 일주일을 넉넉히 잡아야 하는 출장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무언가 카일의 사람들로 보이는 자들의 냄새가 자욱했다. 아델은 결코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다. 카일을 죽이려는 목표가 생긴 다음부터 무모해져야 했다. 아이처럼 사소한 일에 매달리지 않아야 했다.
아델에게 카일과 닮은 광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카일의 젊은 시절과 흡사한 그늘이 드리웠다. 짙은 회색빛으로 리를 쫓고 있었다. 리는 아델의 손등 위로 작은 손을 올려두었다. 주삿바늘은 사라진 채 큰 멍울이 가득했다. 리는 힘겹게 웃음을 지어 보았다. 입꼬리가 경련하듯 떨려왔다.
“올바른 어른으로 자라라고 했을 텐데요.”
아델의 심장이 철렁거렸다. 리는 쓸쓸하게 웃으며 아델의 손을 간지럽혔다. 그리고 그때 사랑하던 리의 얼굴로 해사하게 웃고 있었다. 단숨에 칙칙하던 교도소에 무지개가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아델은 눈물을 흘렸다.
“너무 오랜만이에요.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는데…….”
리는 수줍게 웃었다.
“누군가 했는데… 아델이었구나.”
제 처지를 비관하며 누추해서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했다. 아마, 단편적인 기억만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카일에 대해 묻지 않는 리를 보면 완전한 리로 돌아왔다고 할 수 없었다. 리가 기억하는 것은 카일이 전부일 테니까. 리는 울고 있는 아델을 끌어안았다. 그때도 지금도 엄마처럼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한 줌도 되지 않는 리가 아델을 위로했다.
“구해줄게요. 꼭.”
아델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리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에요.”
리는 여전히 어른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 순간 면회를 종료하는 소리가 울렸고 두목의 시체는 말끔히 사라진 이후였다. 아델은 아쉬운 발걸음을 떼었다. 리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을 때 느껴지는 여전한 체향에 눈물이 쏟아졌다. 싸구려 비누에 비릿한 정액 냄새가 흘러나왔지만 그것마저 간절했다.
“나중에 봐요. 그때는 꼭…….”
아델은 주위를 살폈다. 아델은 불안한 듯 연신 뒤를 살폈다. 리는 다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델의 손길에 리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델은 마지막까지 리의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은 어쩌면 카일로 인해 눈을 잃을 슬픈 징조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