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급작스런 사랑 고백에 민후는 흠칫했다. 내 손바닥에 내려앉은 가슴이 쿵쾅쿵쾅 떨린다. 모든 감각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 지옥으로 들어간 랭보, 나는 모든 감각을 이해할 수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랑에 빠져든다.
나는 문득 민후가 남자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라면 아마 쉽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어머니를
보라. 한 때는 사랑이라는 것을 해서 결혼을 했고 한 때는 사랑이라는 것을 해서 나라는 존재를 낳았다. 그리고 가장
합법적인 방법으로 지난 20년을 구원받았다. 신이 할 수 없는 구원을 나라에서 대신 해주었다. 물론 나라는 미친놈의
새끼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긴 하였지만. 한 때 사랑이라는 것을 했던 사이와 나라에서 마련한 나라의 방법으로 나라의
사람들이 비인간적인 행위로 구원받는 절차를 나는 밟고 싶지 않았다. 이혼이란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인가. 이혼을 할
수 없는 민후는 그래서 더욱 낫다는 뜻이다.
민후가 등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고 굳어버렸다. 눈빛이 너무 뜨겁고 옹골차서 작열하는 태양
같았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눈을 바라보았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시선을 마주한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이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정말이지 사랑을 해보고 싶었다. 가슴이 뜨끔뜨끔 거려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민후야. 이거 만져 봐.”
나는 민후의 손을 들어 내 왼쪽 가슴에 내려놓았다. 길고 큰 손이 내 가슴을 덮는다. 떨리면서 꾹 쥐어짜듯 누른다.
“나 떨려. 나 정말 널 사랑하나봐.”
“…….”
민후의 손에 가슴과 머리가 뜨거워졌다. 투명하고 옹골찬 명주실이 목을 휘감고 있는 것만 같다. 호흡이 곤란해진다기보다
호흡지간에 목이 댕강 잘려나갈 것만 같은 격한 뜨거움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붉어진 내 얼굴을 민후는 무섭게 노려보기도
하고 처연하게 바라보기도 했다가 알 수 없는 저 혼자만의 고뇌에 빠지고 있었다. 나는 그러다 아차했다. 민후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전혀 생각지 않은 탓이었다. 민후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제야 사랑이라는 감정이 반작용으로 무언가가 반응해주지 않으면 더욱 외롭고 시리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짝사랑,
그것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보였다. 하지만 짝사랑이 안겨주는 모든 것이 모여 파생시키는 절망에 가까운 탈진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민후가 나를 사랑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내 가슴위에 올려져 있는 민후의 손을 꼭 잡았다.
“나도 사랑해.”
민후에게 사랑고백은 몹시 고통스러운 것 같았다. 고통에 차 있는 그의 언변은 나의 가슴을 더욱 떨리게 했다. 사랑을 하지
않았다면 이 절절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랭보가 어렸기 때문에 치기로 지옥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민후의 입술에 내 입술을 겹치면서 깨달았다. 오! 랭보, 나를 배신자라 칭하지 말고 이제 친구라고 불러주오! 그러나
우리는 배덕자(背德者)다. 우리는 동지다. 우리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모든 도덕을 면제 받을 수 있었다.
***
일요일 내내 민후와 침대 위에서 뒹굴었다. 섹스를 하기도 했고 키스를 하기도 했고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했다. 녀석이
아이스크림 빨던 입술로 내 몸을 핥아 온 몸이 끈적거렸고 바닐라 냄새가 났다. 민후의 핸드폰이 가끔 지악스럽게
울어댔다. 녀석은 번호는 확인하곤 받지 않다가 귀찮아 졌는지 아예 배터리를 빼버렸다. 또 우리는 야동을 봤다.
이성 섹스였는데 남자가 여자의 사타구니를 마구 빨아 당길 때 여자의 다리가 움찔움찔 굳어져 파르르 떨렸다. 나는
민후에게 날 저렇게 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민후가 나를 침대위에 던지듯이 눕혀놓고 그렇게 만들어주었다. 쥐가
나는 것처럼 발가락 끝이 기괴하게 비틀렸고 입에서 마구 소리가 터져 나왔다. 등골이 뽑혀 나가는 느낌에 그만해달라고
애원을 할 정도였다. 끝나고 나서 나는 민후를 끌어안고 울며 웃었다. 눈물이 나는데 동시에 웃음이 나왔다.
랭보의 말이 떠오른다. ‘예전에,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술이 흐르는 축제였다.
’ 축제, 사랑에 빠진 나의 삶은 지금 축제중이였다. 하지만 랭보가 ‘예전에,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마음에 걸렸다. 민후는 언젠가 나에게 흐릿하게 느껴지는 기억의 삼엽충이 되어버릴까. 예전에, 나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는 백민후라는 사람을 사랑해서 행복했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참 쓸쓸한 일일 것 같았다. 나는 민후의
가슴팍에 안겨 아직 오지 않은 상실을 대신해 울었다. 랭보는 아마 울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와 이제 동지가 된 랭보
의 상실을 대신하는 눈물이기도 했다.
민후는 새벽녘에 돌아갔다. 가기 전에 물었다. 내일 연습이 있느냐고, 민후는 고개를 끄덕했다. 연습이 귀찮거나 마뜩치
않는 눈치였다. 그럼 오후에 놀러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더욱 인상을 조악하게 구기면서 망설였다. 가도 되느냐고 재차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하곤 가버렸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나는 민후의 팬티가 날아버린 100호 크기의 창문 앞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풍은 이제 정말 오지 않을 것 같다. 별들이 총총총 빛이 나고 있었다. 달은 불행하게도 얇실해서
희끄무레했다. 별들이 오히려 달보다 위력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
“뭐야, 또.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문제가 있어요, 문제가.”
나는 아까부터 조영인의 사무실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조영인의 렌즈를 좀 써야겠는데
조영인이 하루 종일 제 사무실에 처박혀서 노트북 끼적거리며 무언가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렌즈를 가져갈 수가
없는 것이다. 화장실도 안가고. 확실히 문제가 있다.
“무슨 문제?”
“항문외과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조영인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다 인상을 찌푸리고 말했다.
“왜, 엉덩이가 아파서 앉아 있지도 못하겠냐? 어지간히 해. 하긴 젊을 때 즐겨야지.”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한테 항문외과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요. 화장실도 안가고 뭐 쓰시는 거예요?”
“이번에 낼 사진집의 기획서.”
“사진집이요?”
“응, 널 발가벗겨서 찍을 예정이거든.”
“누구 마음대로!”
“내 마음대로.”
나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영은누나에게 달려가서 물어보았다. 조선생, 사진집 낸대요? 영은누나가 서류철을 펼치며
대수롭지 않게 응, 이라고 대꾸한다. 기겁을 하고 말했다.
“난 안해! 누구마음대로 날 찍어요!”
“무슨 헛소리야. 이번에 출판사 쪽에서 제의가 들어와서 사진집을 낼 계획이긴 한데. 우리가 왜 널 찍니? 조영인이 또
장난친 모양이네. 넌 순진한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그 반응이 재미있으니까 조영인이 평소 안하던 짓을 하게 만들어.”
나를 살짝 흘기며 타박하는 영은누나의 얼굴을 뒤로 하고 다시 조영인에게 가려다 멈칫했다. 그리고 마음에 걸리는
소리를 한 영은누나를 바라보았다. 왜, 하는 얼굴로 올려다보는 여자의 얼굴을 한대 때려주고 싶다는 비신사적인 충동이
일었다. 그런 불상사가 생기기 전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스튜디오를 나와 버렸다. 헬멧을 눌러쓰고 닌자에 훌쩍
올라탔다.
“치잇.”
닌자가 달리자고 나를 재촉한다. 제법 속도를 내며 달렸다. 그런 식으로 말하니 마치 내가 조영인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것 같다. 하긴,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만과 욕망으로 점철된 먹이사슬의 구조로 사랑을 하는 당신들과
같다고는 말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모든 도덕으로부터 일체의 면제를 받고 있는 나의 예술성을 모욕하는 발언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스링크장에 도착했다. 연습이 벌써 끝난 건지 입구에 가방을 메고 서 있는 민후가 보인다.
나는 닌자를 그 앞에 세웠다.
“어이.”
담배를 피우고 있던 녀석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곤 험악하게 입술에 꽂고 있던 담배를 집어 던진다. 그리고 갑자기
나를 끌어내려 닌자가 쓰러질 뻔했다. 하도 잡아당기는 통에 간신히 열쇠를 사수했다. 녀석은 나를 링크장의 비어있는
화장실로 끌고 들어갔다. 어디가? 하고 물었으나 대답이 없다. 씨근벌떡거리면서 빈 칸에 나를 무작정 밀어 넣는다.
쿠당하고 변기에 주저앉았다. 가방을 내려놓고 내 양 뺨을 쥐고 입술을 비벼댄다. 물론, 나도 보고 싶었다.
비록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그리움의 표현 방식이 너무 거친 것 아닌가. 한참을 정신없이
키스했다. 그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는지. 내 바지를 풀어 내린다. 나는 녀석의 손을 저지했다. 아랑곳없이 민후는 내
얼굴과 목 여기저기에 고상한 표현으로 입을 맞추며 헉헉거렸다. 그러나 실상은 거의 폭행과 비슷했다.
“아퍼, 천천히, 천천히.”
“뭐?…사랑해? 사랑을 한다고? 응?……그래? 왜, 왜 하필이면.”
“그래, 사랑해, 사랑한다고.”
“씨발! 나도 사랑한다고! 나도 사랑해!”
쿵, 쿵. 주먹으로 벽을 쳐대는 민후를 보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성격이 들쑥날쑥 하는 건 알고 있지만 진짜 어느
때는 미친놈 같다. 나 역시 가족으로부터 공인받은 미친놈의 새끼니까 녀석을 이해하는 거지, 아마 보통 사람이었다면
당장 질색팔색을 하고 도망쳤을 것이다. 국정교과서식 고정관념에 탈피해 있는 내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나도 사랑해!”
잔뜩 흥분한 녀석의 얼굴에 대고 나도 소리를 질렀다. 누가 누가 얼마나 더 사랑하는지 겨루는 사람처럼 악, 악, 악! 소리를 질러댔다. 장난치지 말라며 녀석이 더욱 소리를 질러댔다. 정신병자 같은 내 곁에 있어서 일까, 이 녀석은 나보다 더 심하게 물든 정신병자가 되어버렸다. 녀석은 바지를 벗어 내리고 타액을 윤활유 삼아 내 안으로 급하게 들어왔다. 이번엔 좋아서가 아니라 아파서 소리를 쳐댔다. 녀석이 내 입을 틀어막지 않았다면 목이 쉴 때까지 소리를 질렀으리라. 격한 정사 뒤에 가쁜 숨을 내뱉으며 변기에 털썩 앉아 버렸다. 눈물이 찔끔 흘러내려 내 눈은 빨갛게 되어 있었다. 우리는 한참동안 가슴을 맞대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 주섬주섬 바지를 끌어 올리고 나왔다.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었고 나는 머리가 폭발할 것 같아 차가운 물줄기에 머리통을 드밀었다. 흘러내리는 물질, 차가운 액체가 머리칼을 적시고 얼굴을 적시고 내 가슴을 적신다. 민후가 그러고 있는 내 어깨를 꽉 잡아 일으켜 세운다. 흠뻑 젖은 머리에서 물기가 떨어져 옷을 적셨다. 젖어가는 나를 바라보고 민후가 제대로 대답 안하면 죽여 버리겠다는 눈을 하며 묻는다.
“너 정말 나를 사랑하냐?”
“응, 그런 것 같다. 왜, 싫어?”
녀석은 갑자기 제 머리를 쓱 쓸어 넘겼다. 뭔가 우수 어리게 보이고 싶은 건지, 멋있게 보이고 싶은 건지, 제 멋들어진 헤어스타일을 손 갈퀴로 쓱 넘긴다.
“나 갈 데가 있어.”
머리에 젖은 채로 녀석에게 끌려 나갔다. 물방울이 계속 떨어져 어깨를 적셨다. 언제 빼간 건지 녀석의 손에는 내 열쇠고리가 들려 있었다. 내 헬멧을 제가 쓰고선 닌자에 올라탄다. 그리고 뒤를 가리켰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훌쩍 그 뒤에 올라타 헬멧을 툭툭 치고 말했다. 출발. 닌자가 출발하며 덜컹거려 엉덩이가 무지하게 아팠다.
항문외과적인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어디선가 New Order의 Temptation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빠른 비트의 가벼운 선율이. 녀석이 도착한 곳은 미용실이었다. 무지하게 큰 미용실이어서 여자들이 무지하게 많았다.
“어소세요.”
우리가 들어서자 입구에 앉아 있던 여자가 일어나 고개를 숙인다. 구석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여자들은 다들
머리에 무언가를 뒤집어쓰고 잡지책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녀석은 거울 앞 의자들이 죽 늘어서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다가온 미용사가 무어라고 떠들기도 전에 무조건 짧게 자르라고 한다.
“얼마나 짧게요?”
여자의 물음에 민후가 거울 속에서 날 쳐다본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선 날 쳐다보고서 무슨 위대한 결심을 하는
것처럼 삭발이라고 말했다.
“삭발하시게요?”
“빡빡 밀어요.”
제법 길다 싶은 녀석의 머리는 조금씩 조금씩 잘리기 시작했다. 야, 후회하지 않겠어? 내 말에 녀석은 대답 없이
거울 속으로 날 노려보기만 했다. 내가 자르라고 했나. 표정이 꼭 원한품은 귀신같았다. 어느새 녀석의 머리는 봄날 땅을
뒤덮은 연두색의 새순처럼 짧아져 버렸다. 미용사가 중간에 실수로 땜통을 만들어버려 아주 송구스러워하며 아예 줄을
넣어버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땜통 때문에 하는 수없이 녀석은 아이다스로부터 광고료도 못 받으면서 머리에
허연 줄을 넣고야 말았다. 다 자른 녀석의 민둥한 머리를 만져보았다.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런대로 예뻤다. 그리고
왠지 자꾸 만지고 싶어지는 그런 감촉이었다. 꺼끌꺼끌 한 것이.